가명(假名)
어느 날 그의 꿈속에 목사님이 나타났다. 집행유예를 주고 싶으나 지금은 때가 아니니 조금 더 있다가 주겠다고. 그래서였을까? 내일 모레 앞으로 다가온 재판이 아무 까닭 없이 7월 8일로 연기 되었다. 그리고 1심에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받았다. 매우 신이 나서 교도관에게 외쳤다.
나는 자유인이라고 덕분에 담배 한 개비 얻어 아주 여유롭게 그리고 속 시원하게 내뿜었다. 하지만 그것은 새로운 시작에 불과했다. 교도관이 확인해보니 또 다른 한 건의 벌금이 숨어 있었다. 그는 결국 교도소 밖으로 한 발자국도 나가보지 못한 채 다시 45일간의 노역이 닻을 올렸다.
하지만 그는 절대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 왜냐하면, 집이라는 믿는 구석이 존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가족이 면회 오면 내주겠지. 꺼내줄 거야. 밤잠을 설치며 기다렸다.
하루라도 빨리 밖에 나가서 항소하고 집행유예 유지를 해야 한다. 안 그러면 실형을 살아야 한다. 하루하루 조바심이 발동해서 더는 못 견딜 수 없어 힘든 어느 날 검찰에서 그를 불렀다. 그리고 또 다른 사건을 조사받았고 벌금을 통보 받아야만 했다.
그의 삶이 어디에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내 꼬이고 있었다. 그는 점점 마음이 조급해지고 답답해져 왔다. 아니 미칠 것만 같아 파닥파닥 거리고 있었다. 그러나 집에서는 아무 소식도 없었다. 이제는 나가도 못 나가도 걱정이었다. 나간다 해도 집에 손 벌릴 수도 없고 그렇다고 있었던 일이 없었던 일이 되는 것도 아니고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했던가. 다시 자장면 배달원이 되어야 할 운명이었다.
“아저씨 아저씨는 벌금만 털고 나가시면 되죠. 아저씨가 우리 중 가장 마음이 편하고 홀가분하시겠어요.”매우 부럽다는 듯 바라본다. “너도 다 잘 될 거야 힘내. 하나님께서 도와주실 거야. 그리고 나가거든 벌금형을 선고 받고도 낼 돈이 없어 교도소에 갇히는 사람들을 위한 장발장 은행 문을 두드려 봐”그렇게 힘든 하루가 저물어 갔다. 이튿날 오후 돌아다니며 외쳤다.
“기독교 집회 가실 분들 나오세요.”나는 그에게 물었다. “가명아 오늘 기독교 집회 있어?” “예, 영주제일교회에서 와요 왜 그러세요. 아저씨도 가시게요. 명단에 이름이 있어야 돼요”괜히 마음만 싱숭생숭했다. “아저씨 교회 다니세요.” “응” “그래요”놀라는 듯했다. “왜 나는 교회 다니면 안 돼.” 그는 신나서 떠들었다. “영주제일교회 공광승 목사님이 말씀 전하시는데 귀에 쏙쏙 들어와요”순간 나도 모르게 가슴이 뭉클했다. 나는 이미 오래 전부터 주보를 통해서 안동교도소 시온교회 집회를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까지 반응이 뜨거울 것이라는 것은 전혀 모르고 있었다.
“공 목사님은 절대 빈손으로 오시지 않아요. 언젠가는 라면을 사오셨는데 그때 우리가 두 박스 받아서 이 앞에서 나눠 먹었어요. 그런가 하면 빵을 사 오신 날이 있었는데 그때 정말 배부르게 잘 먹었어요.”말로 다 형용할 수 없는 뿌듯함과 감동을 한 아름 안았다.
“아저씨 저는 아저씨만 보면 힘이 나요” “왜” “그래도 저는 하루 십 만원씩 사는데 아저씨는 오 만원씩이잖아요”어떻게 들으면 놀리는 것 같아서 괘씸하기도 하고 또 어떻게 들으면 얄밉다가도 대견스럽기까지 하다.
구매 있는 날이면 어김없이 나를 돌아보았다. “아저씨 드시고 싶은 것 있으면 말씀하세요. 커피 드실래요? 아니면 빵? 부담 갖지 마세요. 저도 처음 들어왔을 때 아무 준비도 못하고 맨 몸으로 들어와서 다행히 친구를 만나서 덕분에 살았어요. 이제 제가 받은 만큼 아저씨한테 베푸는 거예요”기특하기도 했지만 어린 나이에 고생을 많이 해서 빨리 철이 들었나 싶어서 안쓰럽기까지 했다.
“아저씨, 아저씨는 지금까지 살아오시면서 가장 힘들었을 때가 언제였어요?” “그야 우리 엄마, 아버지 다 돌아가시고 이 세상에 나 혼자 남았다고 생각했을 때였지”시간은 또 그렇게 흘러갔다. “앗 싸! 이제 엿새 남았다.”그는 달력을 보며 난리였다. 하루하루 나갈 준비를 했다.
싱크대를 열고 그 안에 물품이 얼마나 남아 있는지 앞으로 부족한 것은 없는지 일일이 확인했다.
“빨랫비누, 세숫비누, 주방 세제, 아저씨 계시는 동안 부족하지 않게 넉넉하게 쓸 수 있도록 사놓고 갈게요. 아저씨 생강차 좋아 하시지요. 두 통 사놓고 갈 테니까 아무도 주지 말고 혼자 드세요.”
그는 떠났고 항소심에서 집행유예를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