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월의 단상
어느 고즈넉한 새벽 내리는 틈으로 문득 잊었던 일을 다시 상기하듯 그동안 활동을 중지하고 있었던 치통은 잇몸의 능선을 타고 살갗을 새빨갛게 태우며 입안으로 녹아내렸다. 마른하늘에 날벼락이라고 했던가 갑자기 이빨은 온통 차가운 음식에 뎄 을까. 시큰거림에 도저히 제대로 눈을 뜰 수가 없었다 .
가랑비에 옷 젖는 줄 모른다고 잇몸은 어느덧 촉촉이 치통에 젖어 새빨갛게 부어올라 터질 듯이 팽창했다. 이를 악물고 참고 참는 동안 이윽고 입안에서는 침이 마르고 뻑뻑하게 거칠어고 혀가 펴지지 않아 말조차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급기야는 마취를 당한 듯 얼굴이 다 얼얼하고 이빨은 끈적끈적하게 깨어지고 바삭바삭하게 부서지는 듯했다.
시간의 질곡이 깊고 길어질수록 치통을 해산하는 고통은 몸조차 마음대로 움직이지 못하도록 압박을 가해서 묶어 놓았다 . 질끈질끈 머리가 아프고 이내 속은 매스껍고 머리가 어지러워 울컥 멀미가 났다.
치통은 신경을 따라 신속하고 정확하면서도 빠르게 움직이고 있었다. 어금니가 아픈 것인지 이빨 뿌리가 아픈 것인지 아니면 이고루가 아픈 것인지 혹은 앞니, 송곳니가 앞어금니가 뒷어금니가 아픈 것인지 모르겠다 싶었다. 아무튼, 아파서 입안이 다 날아갈 것만 같았다.
할 수만 있다면 통증을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유도해서 어딘가에 한꺼번에 다 버리고 싶었다. 치통의 파노라마가 파도처럼 일렁이고 있었다.
어느 정도가 되면 좀 가시겠다 싶어 그렇게 기다리고 또 기다려봤지만 가시기는커녕 여전히 예리하고 날카로운 창으로 찌르고 칼로 쪼개고 몽둥이로 때리는 치통의 강도는 그야말로 지칠 줄 모르고 활화산처럼 타오르기만을 거듭했다. 그 렇게 얼마나 버티고 견디었을까. 시간 속에서 여무는 치통은 알토란처럼 여물대로 여물어 알약처럼 단단하게 깨물어졌다 .
그렇게 이젠 아프다 못해 지루했다. 흐린 물속을 뚫고 긴 가물치 한 마리가 은은하게 어디론가 유유히 헤엄쳐 가는 모습이 한동안 보였다 . 입안 구석구석에서는 견디다 못해 허물이 벗겨지고 보푸라기 같은 물집이 빼곡히 물집처럼 들어차고 있었다.
그 절정의 순간을 뭐라고 말하면 될까? 아주 큰 별이 마지막 진화의 단계에서 자체 중력을 견디다 못해서 스스로 붕괴하여 강력하게 수축하는 아주 엄청난 밀도와 중력을 가진 천체가 주변의 통증을 끌어들여 폭발할 것 같은 위기의 순간 그것이었다.
내가 처음 치통을 만난 것은 초등학교 오 학년 때였는데 그때마다 나는 긴 시간 동안 견디고 버티면서 진통제를 사 먹었다. 이렇게 나는 어느 순간부터인가 치통을 마치 자신의 내면 철학 혹은 사상처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며 살았는지도 모르겠다.
아픔이 클수록 그때마다 내 고집도 눈덩이처럼 커졌고 마음은 완악해졌다. 그때는 왜 몰랐을까 ? 사람은 고통스럽고 어려울수록 그 마음이 완악해지고 피폐해진다는 사실을.
뭐라고 할까.
마치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며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하여 돌이켜 죄 사함을 받지 못할 지경에 놓여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생각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