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어느 날 새벽 네 시가 조금 넘어서 칼바람을 온몸으로 부대끼며 영주 365시장(골목시장)
을 관통한다. 차갑고 싸늘한 침묵이 묵묵히 가라앉은 고즈넉한 시장 골목, 낙원떡집 진열대 위에 루게릭 병으로 근육이 점점 뻣뻣하게 굳어가며 죽음을 눈앞에 둔 가래떡이 있다.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하얀 온기를 가래떡은 가죽 벗김을 당하듯 한 올 한 올 벗는다.
“내가 알기에는 나의 대속 자가 살아 계시니 마침내 그가 땅 위에 서실 것이라. 내 가죽이 벗김을 당한 뒤에도 내가 육체 밖에서 하나님을 보리라. 내가 그를 보리니 내 눈으로 그를 보기를 낯선 사람처럼 하지 않을 것이라. 내 마음이 초조하구나."(욥 19:25-27) “스데반이 성령 충만하여 하늘을 우러러 주목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및 예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고 말하되 하늘이 열리고 인자가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노라 한대”(행 7:55-56) “그들이 스데반을 돌로 치니 스데반이 부르짖어 이르되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 하고 무릎을 꿇고 크게 불러 이르되 주여 이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이 말을 하고 자니라."(행 7:59-60) 말씀을 묵상한다. 칼바람을 쌩하니 타고 장터분식으로 이륙했다. 쫄깃쫄깃하게 차진 밀가루 반죽은 혀에 쩍쩍 달라붙을 만큼 끈기가 배어 있었다. 그게 신기해서 가던 걸음을 멈춘 채 아주머니의 어깨너머에서 시선을 거두지 못했다. 아주머니는 일회용 비닐장갑을 알토란 같이 끼고 온 대지에 토닥토닥 속삭이며 내리는 봄비처럼 밀가루 반죽 위로 손바닥을 지그시 내려 다독였다. 뜨거운 철판 위에 인 박인 듯 여봐란듯이 누워 밀가루 반죽이 밀집하여 부추전과 배추전으로 굳혔다. 순간 아주머니와 눈이 마주쳤고 나는 남의 주방에서 밥 훔쳐 먹다 들킨 사람처럼 화들짝 놀랐다. 하지만 나는 아주머니에게 그냥 손님 같은 사람이었을까?“안녕하세요. 교회 가시나 봐요?”나는 괜스레 민망했다.“안녕하세요.”아주머니는 눈과 입을 살며시 움직이며 소리 없이 부드럽고 정다운 미소를 자꾸만 자아냈다.
그날 이후 아주머니와 가까워졌고 어느 날, 아주머니는 내게 귓속말을 전했다.“어느 교회 다니세요? 목사님이세요?”내 입가는 일시에 모래가 와르르 무너져내리듯 미소가 와르르 아우성치었다. 어디 가서 누구한테도 이런 말 안 하는데.“영주 제일교회 집사입니다.”아주머니는 잠시 일손을 놓고 빤히 내 얼굴을 바라보셨다.“저도 전에는 영주제일교회 다녔었는데 먹고 사는 게 바빠서 요즘은 못 나가요. 핑계도 참 좋지요.”생글생글 웃는다. 아마 그래도 교회 다니는 게 싫지는 않았던 모양이다. 아주머니의 미소는 아리송하게 개구쟁이 말썽꾸러기의 그 얄궂은 것이었다.“그래요. 수고하세요." 장터분식을 뒤로하고 안정분식을 만났다.
하루하루 고단하게 장사를 하시면서도 하루도 거르지 않고 매일 새벽 교회에 나오셨다. 바쁘면 바쁜 대로 그 선율을 타고 흘러가며 새벽예배 1부를 드리고 그런대로 괜찮은 날이면 새벽예배 2부를 드리고 사브작사브작 발 도장을 찍으며 가게로 향하셨다. 가게 앞을 지날 때면 나는 이야기했다.“어떻게 오늘은 많이 파셨어요?" 그러면 살포시 웃으셨다.“하나님이 함께하시니까요.” 어린아이같이 해맑게 웃는 그 얼굴에는 구김살 하나 없는 최고의 명품 감사였다.
어느 날인가 새벽예배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우연히 만났는데 기도를 부탁하셨다.“오늘 새벽에 못 나갔어요. 기도 좀 해주세요." 장사가 잘되게 해달라는 것도 아니요. 부자가 되게 해달라는 것도 아니요 오직 새벽예배 나갈 수 있게 해달라는 기도 요청에 자기를 위하여 장수를 구하지 아니하며 부도 구하지 아니하며 원수의 생명을 멸하기도 구하지 아니하고 오직 송사를 듣고 분별하는 지혜를 구했던 솔로몬이 나를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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