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나는 여느 때와는 아주 다르게 자꾸 집으로 마음이 끌렸고 도서관을 나와서 병원으로 가지 않고 집에 들렀다. 집에는 어머니와 형이 텔레비전을 보고 있었다. 나도 별수 없이 함께 앉아서 텔레비전을 보는데 나는 맡지도 못한 타는 냄새가 난다고 아까부터 말씀하시고 계셨다. 나와 형이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자 어머니는 형을 콕 집어 말씀하셨다.
“무슨 타는 냄새 안 나나?” 형은 어머니가 이상하다는 듯이 바라보며 “아니 안 나는데.” 대답했다. 나 역시도 아무 냄새도 나지 않았다. 이상한 일이 아닌가. 사람은 세 사람인데 어찌 어머니 코에서만 타는 냄새가 나는 것일까?
혹시나 싶은 노파심에서 냄새를 맡아보았지만 역시 냄새는 나지 않았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소변이 보고 싶어 일어나서 방을 나오자 어렴풋이 어디선가 플라스틱을 태우는 것 같은 고약한 냄새가 여리게 코끝으로 와 닿았다.
하지만 막연하게 이웃집에서 쓰레기를 태우는가보다 싶었을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렇게 볼일을 보고 화장실을 나서는데 좀 이상했다. 조금 전 화장실 들어갈 때보다 나올 때 냄새는 더 진동하고 있었다.
이게 무슨 일일까? 싶은데 이때 시커먼 연기가 주방에서 새어 흩어지고 천정에서는 벌써 펑펑 튀는 불꽃이 번쩍이며 별똥별이 떨어지듯 시커멓게 타는 불똥이 하나둘 떨어지고 있었다.
순간 정신없이 주방으로 뛰어들어가 보니 천정에서 전선이 타고 있었다. 나는 놀랍기도 하고 무척이나 당황한 목소리로 “이게 뭐야.” 소리쳤고 방에서 내 비명을 듣고 어머니와 형이 놀라서 “왜 그래? 왜 그래?” 다급한 소리와 함께 뛰쳐나왔다. 일단 나는 물 받을 만한 큰 그릇 같은 것을 찾았다. 그리고 싱크대 안에서 가장 큰 설거지통을 발견해서 얼른 물을 받는데 매우 놀란 어머니는 신들린 듯이 외쳤다. “소화기, 소화기, 소화기 가지고 와.” 나는 멋도 모르고 소화기를 가지러 가기 위해서 주방을 나서는 찰나 짧은 생각이 내 머리를 스치는 것이 있었다. 지금까지 내가 집에 와서 단 한 번도 소화기를 보지 못했다는 것이다.
나는 다시 몸을 돌이켜 설거지통에 물을 받았고 불은 그동안 신나게 타들어 가는데 생각하지도 못한 일이 생겼다. 천정을 올려다보니 알루미늄이어야 할 천정은 언제 플라스틱 슬레이트로 교체되었는지 완전 비상 상황이었다. 만약 불이 슬레이트로 옮겨붙는다면 말 그대로 끝장이었다. 온몸으로 소름이 오싹하게 끼치면서 내 귀에는 사이렌이 소리가 들리고 눈에는 달려오는 소방차가 보이는 듯했다.
바짝 긴장을 조였다. 하지만 이 작은 키에 제아무리 물을 천정에 던진다 해도 얼마나 정확하게 불에 명중하느냐의 관건이었다.
입안에서 침은 말랐으며 얼마나 긴장했는지 손이 다 떨리는 듯했다. 반드시 성공해야 한다. 천정을 무섭게 노려보고는 저 밑바닥에 숨어 있는 젖 먹던 힘까지 쭉 끌어올려 힘껏 물을 천정을 향해 던졌다. 순간 퍽하고 물벼락을 맞은 불은 옹기점같이 시커멓게 피어오르더니 이내 주저앉았고 연신 두 번, 세 번 물을 총알 같이 날리자 불은 맥없이 사라졌다. 어머니는 합선 같다면서 밖으로 나가서 차단기를 내리셨고 온 집안은 한 치 앞도 분간 못 하는 칠흑 같은 어둠이 내려앉고 말았다. 정말 십 년을 감수했다. 나는 그때 일을 통하여 일 초라는 짧은 시간에 얼마나 많은 일이 일어나며 또 얼마나 금쪽같은 시간인지 그리고 삶을 어떻게 좌우하는지 다시 한 번 똑똑히 각인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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