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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선규 시인의 작품읽기

정선규 시인
언어의 숨바꼭질
작성자: 정선규 추천: 0건 조회: 4230 등록일: 2016-12-07

언어의 숨바꼭질

사람은 언제 어떨 때가 가장 외로울까? 하는 삶의 도전을 어제 중학교 동창에게서 받았다. 요즘 3월이 되면서 나는 심하게 봄을 타는 탓일까? 싶게 푸성귀 생각에 간절하다. 따끈따끈한 밥을 바가지에 푹 퍼서 고소한 참기름 한 방울 떨어뜨리고 푸릇푸릇한 상추를 갓 넣어 간장에 축이고 시뻘건 고추장으로 덧입혀 셋이 먹다가 둘이 죽어도 모를 맛에 쓱싹 해치우고 싶은 갈증에 내 입안에서는 침을 고인다.
그 덕분에 상추 한 근에 고추장과 참기름 한 병을 사려고역전 시장에 나갔다가 우연하게도 그 친구를 만났다. 그는 나를 보자마자 따지는 말투로 결혼했느냐며 물어왔다. 나는 하회탈처럼 씩 한 번 웃어 주며 그거 별거 아니야 하는 마음을 실어 이렇게 대답했다. “결혼, 결혼은 무슨 결혼 나는 자유인이야.” 나는 여전히 웃고만 있었다. 그 친구는 안타까움을 그윽이 우려내는 눈빛으로 딱하다는 듯이 나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너 참 그 나이에 진짜 외롭겠다.”한다.

나는 빙그레 웃으며 속으로 이렇게 말했다. “외로움 네가 그 깊이를 아느냐?” 자식을 낳고 살면서 이 시대에 불어 닥친 명예퇴직을 통보받고도 아내가 걱정할까 봐 가정에 불화가 생길까 싶은 마음을 홀로 다독이면서 벙어리 냉가슴 앓듯 매일 아침이면 PC 방으로 혹은 쓸쓸히 만홧가게를 찾아가 배고픈 시간을 보내고 사랑하는 아내는 그런 줄도 모르는 바보가 되어 매일 가계부만 살뜰하게 챙기고 남편은 이제 곧 숨통이 조일 생활의 염려에 찌들어가는 자신의 모습을 예견하며 역시 또 이 밤에 잠 못 이룬다. 알뜰살뜰한 아내는 돈 한 푼이라도 아끼겠다고 몸이 부서지도록 아파도 미련하게 꾹 참고 또 참고 살다가 더는 참을 수 없을 만큼 밀려드는 통증으로 어느 날 병원을 찾으니 자궁암 말기 시한부 인생이라 한다.

그래도, 그래도, 가정을 단란하게 지키기 위해서는 남편과 자식을 속이고 속 깊은 비밀을 고이 접어들인 채 소리 없이 죽어가는 그 여인을 보았는가? 그토록 눈이 부시게 외로운 모습을 상상이라도 해보았는가? 하늘이 정해놓은 아버지, 그 숙명의 가장과 아내에서 어머니로 하늘이 내린 숙명은 외롭기만 하다.
가정과 직장을 지키며 살아가야 할 우리 장래의 일은 이 시대가 우리에게 들어오는 외로움의 연장선뿐인지라 정말 사람이 외로운 것은 결혼했기 때문도 아니요 안 했기 때문도 아니요 그게 삶인 것을 내가 스무 한 살 때이든가. 큰 누나를 따라 경주에 내려갔다. 난생처음 세탁소 일을 배울 기회가 있었는데 잠깐 몸담았다가 살짝 그만둔 적이 있다. 그때 내게 두 가지 외로움이 잠재하고 있었다. 첫째 투박하다 못해 억 세기까지 하고 거친 경상도 사투리를 잘 몰랐기 때문이었으며 둘째 당시 내가 일하고 있던 세탁소 거래처에 무속 인이 있었는데 죽어도 그 집에는 가기 싫었던 것이다.
한 번은 주일 아침에 조카 녀석이 교회를 가야 하는데 볼 일이 급한지 화장실을 가면서 나를 향해 말했다.


삼촌 기달겨! 기달겨.” 나는 처음에 이게 무슨 말인가 했더니 나중에 알고 보니 기다리라는 뜻이었으며 공가라, 공가라 하기에 무슨 공이 살아서 움직이나 싶어 멀뚱멀뚱 서 있기가 일쑤였는데 집에 와서 매형한테 물어보니 파이프 밑에 지렛대처럼 뭔가를 고이라는 것이었다. 또 치근 치근 하기에 맨송맨송하게 서서 "뭐 뭐." 했더니 치아, 이빨이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그런가 하면 누군가 나한테 문둥이 자슥 문둥이 자슥 하기에 속으로 문둥이면 문둥이고 자식이면 자식이지 자슥은 또 뭐야 했더니 충청도 말로 아주 점잖게 바보 하는 말이라고 안 하나 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이것도 서러운데 나는 교회를 다니건만 가끔 그 무속 인이 맡겨놓고 간 옷을 사장이 수선하고 다림질해 놓으면 배달은 내 일인 지라 집에까지 갔다가 주어야 했으니 참 곤욕이었다. 마당에 들어서자마자 진동하는 향냄새에 속이 매스껍고 넘어올 지경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어느 해인가? 대전에 아는 누나네 집에 간 적이 있었는데 마침 그 어머니가 무속이었나 보다. 집으로 들어서자마자 코끝을 짓누르는 향냄새에 견디다 못해 끝내 화장실로 달려가 내장이 노리게 될 정도까지 정신없이 토악질하느라 정말 말도 못하게 고생한 일이 있었다. 지금 그 시절을 가만히 생각해보면 참으로 외로웠다.
나는 교회를 다니며 향냄새만 맡으면 토악질이 나서 도저히 그 집에 가기가 죽기보다 싫다고 애원을 하고 사정을 해도 세탁소 사장은 사장대로 처음에는 다 그런 것이라고 별 대수롭지 않게 말하기 보통이고 또한 동료에게 말해보지만 돌아오는 말은 문둥이 자슥. 문둥이 자슥.” 하는 말뿐이었으며 누나는 괜찮다, 괜찮다.” 하거나 또는 남의 돈 먹기가 그렇게 쉬운 줄 알아.” 핀잔먹기 일쑤였다.
나는 당시 그 누구에게도 아무것도 바라는 것이 없었다. 다만 1분 아니 30초 만이라도 내 말에 귀를 기울이고 그래, 그렇구나. 그래서 어떻게 하지. 천연덕스럽게 빈말이라도 해주면 큰 위로가 되겠건만 오히려 핀잔에 비웃음만 사게 되어 미운털만 박히게 되는 상황으로 기울어가니 어디 다 말 한마디 할 데 없이 혼자 외로울 수밖에 없다. 결국, 나는 혼자 고민하고 고민하다 세탁소 일을 접고 말았다. 사람은 동질감을 느낄 때 다른 사람도 별수 없구나! 또 나 같은 사람이 있었구나 하는 동기부여가 되어 진정 절묘하게 하나가 되는 응집력의 구실이라는 사실을 그러므로 나를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 남을 사랑할 줄 알게 된다는 사실에 그 놀라움을 금할 길이 없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는 이것이 남을 긍휼히 여기는 마음이라는 깨달았다.
진정 사람이 네게 위로가 될 때 감동에 희망은 살아난다.
내 주위에 이런 사람이 있다. 한 날은 친구와 함께 공원 벤치에 앉아서 고물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쏜살같이 그가 달려왔다. 그리고 그는 내 친구를 바라보며 아주 침착하게 말했다.
형님! 정말 다행이야. 조금 전에 형님 동생 영운이 있잖아그가 중동 인쇄 골목을 가다가
뒤에 따라오는 택시와 부딪혀서 많이 다친 줄 알고 걱정했더니 다행히 가벼운 찰과상이라네."하고 전한다. 잠시 친구는 깜짝 놀라서 몸을 멈칫하더니 그 사람 얼굴을 뚫어지게 쳐다보다가
이내 나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하지만 만약 내가 그 친구에게 그런 일을 알렸다면 일은 커졌지 싶다. 늘 습관처럼 숨을 헐레벌떡이며 다짜고짜 큰일 났다며 이렇게 떠벌였을 것이다.
! 큰일 났어. 네 동생 영운이가 교통사고 당했어.” 하는 순간부터 이야기가 들어갔을 것이고 친구는 내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동생이 교통사고를 당했다는 말에 소스라치게 놀라 흥분한 채 자리를 박차고 밖으로 뛰쳐나갈 것이다.
뭐 영운이가 교통사고를 당했다고. 어디를 얼마나 많이 다쳤는데. 지금 어디 있어?” 지금 어느 병원이래.” 자신도 모르게 떠들며 정말 큰일 났다 싶은 마음에 정신없이 밖으로 뛰쳐나갔을 것이다. 본의 아니게 일은 커져 친구의 마음에 하늘이 노랗게 무너지고서야 본의 아니게 아닌데.”하고 후회를 하며 도리어 큰소리쳤을 것이다. “진정해 그게 아니라 그게 아니고 가벼운 찰과상이래.” 병 주고 약 주고 그야말로 폭풍전야를 만들었을 것이다.
이 말에 친구는 휴~ 하고 마음을 놓겠지만 순간 화가 나서 내 뺨을 때릴 수도 있는 상황이 될 수도 있다. 친구는 내 말을 다 돋고서야 겨우 가슴을 쓸어내리며, “! 그러면 그렇다고 진작 그렇게 말했어야지.” 핀잔을 주었지 싶다. 이렇게 된다면 나는 친구에게 전혀 도움도 못 되는 사람이 되고 말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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