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천십오 년 한 해가 저물어가는 십이월어느 날 네이버 블로그 신의 문학에 들어갔더니 정희 사랑에 아주 특별한 손님의 댓글이 선명하게 달려서 깜짝 놀랐다.
“외삼촌 보고 싶었다. 응답해라.” 외삼촌이라니, 어디에서 많이 듣던 말인데 어떻게 된 일일까? 꿈인지 생시인지 비몽사몽 간에 전혀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그 얼마 만에 들어보는 우리 명희 목소리이던가? 얼마나 그리고 보고 싶었던 조카딸이든가? “외삼촌 보고 싶었다.” 하는 말을 듣는 순간 왠지 모르게 내가 없는 동안 얼마나 힘들었기에 그만큼 보고 싶어 했을까? 하는 생각이 애잔하게 밀려드는 아픔이 가득하게 차올랐다.
부모님이 피땀 흘려 모아 물려주신 재산 이렇게 저렇게 다 허비하고 나니 벼룩도 낯짝이 있다고 했던가. 누나 볼 면목이 없어서 연락하지 않았다.
그 세월이 벌써 이십 년을 훌쩍 넘어서 외삼촌은 사십 대 중반이 되어 있었고 어느덧 조카딸은 삼십 대 중반이 되었다. 이십 대에 경주 누나네 집에서 직장생활 했던 나는 우리 조카 딸 명희가 중학교 입학하던 해 경주를 떠나 고향으로 올라왔고 그게 마지막이었다.
세월은 무심하게 여봐라 듯이 흐르고 흘러서 어느 길을 가다 마주쳐도 몰라보고 어디 그냥 스쳐 갈 만큼 많이 변했으리라. 얼마나 더 예뻐졌을까? 머리는 생머리일까? 짧은 머리일까? 몹시 궁금해서 내 블로그에 가장 최근에 찍은 예쁜 사진 한 장 올리라고 했더니 변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고집 부린다.
“외삼촌 변한 것은 하나도 없네. 그때나 지금이나 똑같아. 그런데 외삼촌은 전보다 살 많이 붙었네. 나는 외삼촌이 이렇게 살진 모습은 처음 봤어. 나하고 외삼촌은 많이 닮았어. “교회 다니는 것도 그렇고 나는 작가를 꿈꾸고 외삼촌은 작가로 살고 키 작은 것까지 똑같이 닮았어.”
종달새는 반갑다고 우짖는데 나는 목이 꽉 메어왔다. 나한테 이렇게 좋은 녀석이 또 어디 있을까.
예나 지금이나 쫑알쫑알 대는 모습이 무척이나 예뻐서 꼭 안아 주고 싶으면서도 작가가 되겠다는 말에 선뜻 뭐라 말하기 쉽지가 않았다. 이 땅의 작가로 살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길인지 잘 알기에 말려서 될 일이라면 도시락을 싸서 다니면서라도 아주 간절히 말리고 싶었다.
내 소원이 있다면 그것은 이 춥고 배고픈 가난한 작가는 우리 집안에서 오직 나 혼자이기를 원하고 바랐거늘 힘들고 지치는 이 길을 대물림하여 고생시켜야 한단 말인가.
생각하면 할수록 가슴은 새까맣게 타들어 가고 자다가도 나도 잠꼬대하듯 심한 몸부림쳤다.
이미 명희의 생각에는 조금도 흔들림이 없어 보였다. 명희가 내 블로그를 찾아온 이유도 어떻게 하면 작가가 될 수 있을까? 인터넷을 검색하다가 우연히 내 블로그 신의 문학 신인문학상에 올려놓은 자료가 뜬 것을 보고 들어왔다가 프로필 사진을 보고 “어! 우리 외삼촌이네.” 이렇게 된 것이다.
내가 평소 남들에게 “사람은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아야 가장 행복하고 보람이 있다고.”했는데 빈 말이었던가? 우리 조카딸이 그 말을 받았으니 걱정이 아닐 수 없다. 외삼촌으로써 아무것도 해줄 수 있는 것이 없지만 매우 신중하게 생각하면 일단 직장이 있으니 가난하고 배고픈 작가의 길을 가더라도 경제적인 어려움에서 벗어날 듯하다.
차근차근 사람 살아가는 일상에서 좋은 소재를 발견하여 살아 있는 글을 쓴다면 얼마든지 훌륭한 작가가 되리라.
우리 조카딸이 무슨 일을 할까? 조급한 마음을 앞세워 네이버에 블로그 시츄 동 동이의 추억 노트에 들어가 보았다.
“오늘 외삼촌을 찾았다. 하지만 아직 우리 부모님께는 말씀드리지 못했다.
외삼촌은 이미 작가로 살고 있었다. 나와 외삼촌은 많이 닮았다. 교회 다니는 것도 똑같고 작가가 되는 것도 그렇고 키 작은 것까지 닮았다.” 내 얼굴에서 살포시 미소가 번졌다.
외삼촌도 작가이고 조카딸도 작가라. 역시 그 추임새가 보기 좋았다. 하지만 이것도 잠깐 우리 명희가 결핵을 앓았다고 한다. 그 여정이 얼마나 힘들었을까? 오죽했을까? 결핵이 폐와 기관지, 목, 림프샘까지 전이돼서 결국 림프샘 제거 수술을 했고 전염 균이 떨어지지 않아서 병원에 오랫동안 입원하여 지속적으로 약을 먹었는데 약의 부작용으로 간수치가 오백까지 두 번이나 뛰어올라가서 약을 바꾸는 끔찍한 일이 벌어졌다는 말을 들으니 가슴을 도려냈다.
다행히 그 혹독한 대가를 치르고 나서야 겨우 몸은 다 나았지만, 불행하게도 스물여덟 살 되던 해 교통사고 당하여 목 디스크, 어깨충돌 증후군, 척추 족만 증을 앓고 있으며 결핵약 부작용의 후유증으로 인한 말초 신경염으로 인하여 양쪽 발 감각이 떨어지고 늘 저리다고 한다.
하지만 천만 다행한 것은 죽지 않을 만큼의 한정 되어 있는 정도라서 그나마 직장생활 하는 데 지장은 없단다.
사랑하는 내 조카의 살아온 삶을 듣다가 문득 하나님의 말씀이 떠올랐다.
“그러나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 로라.(고전 15장 10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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