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사이버문학관 / 문인서재 / 문학관.com / 문인.com

대한민국 사이버문학관
문인.com
작가별 서재
김성열 시인
김소해 시인
김순녀 소설가
김진수 큰길 작가
김철기 시인
류금선 시인
문재학 시인
민문자 시인
배성근 시인
변영희 소설가
송귀영 시인
안재동 시인
양봉선 아동문학가
오낙율 시인
윤이현 작가
이기호 시인
이영지 시인
이정승 소설가
이룻 이정님 시인
이창원(법성) 시인
정선규 시인
정태운 시인 문학관
채영선 작가
하태수 시인

대한민국 사이버문학관




▲이효석문학관

 
정선규 시인의 작품읽기

정선규 시인
아주머니 표 김치
작성자: 정선규 추천: 0건 조회: 6140 등록일: 2016-10-25

아주머니 표 김치

 

주인집 아저씨는 아침 일찍 밭에 나가셨다. 저녁 무렵이 되면 자전거 채소 자루를 자전거 뒤에 싣고 오셔서 살포시 마당에 내려놓으면 집안에서 볼일 보던 아주머니는 말없이 나와 다듬으셨다.

아저씨여! 아저씨여!” 나는 그럴 때마다 잠시 책에서 눈을 떼고 밖으로 나갔다. “! 아주머니.” “밥 해먹어요? 이거 우리가 밭에서 직접 농사지은 나물인데 갖다 먹어요.” 하시기에 바라보니 어린 열무와 푸짐한 상추가 산더미를 이루고 있다.

바라만 봐도 비빔밥 열 그릇을 벌써 해치운 듯 배가 부르고 행복에 겹다. 그렇지 않아도 병원 생활만 삼 년 넘게 하면서 목구멍에서 신물이 나도록 제일 먹고 싶었던 것이 채소였다. 대전에 있을 때 반찬이 떨어져 먹을 것이 없는 날이면 가까운 역전 시장에 나가서 상추 이천 원어치에 어린 열무 한 단 사다가 서너 번 물에 깨끗이 씻어서 고추장 한 숟가락 떨어뜨리고 참기름 한 방울 길게 떨어뜨려 비빔밥을 만들어 먹곤 했다.

그렇게 깊은 우여곡절이 있는 싱싱한 채소를 3년 끝에 영주에서 만났으니 그야말로 마음에 깊이 사무치는 느낌이 그지없다.

얼마나 그리웠을까? 얼른 씻어 풀냄새가 진한 향수처럼 우러나도록 큰 양 푼 이에 담고 참, , 말도 잘 나오지 않을 정도로 귀한 참기름 한 방울을 떨어뜨리기 위해서 오른팔을 하늘 높이 추어올리고 또 빨간 고추장 한 덩이를 오른손으로 힘껏 퍼 올려 마치 탁 트여서 시원하고 야성적이면서 성격의 품위를 지켜 거칠게 떨어뜨렸다.

그리고 오른쪽으로 돌리고 왼쪽으로 돌리고 열심히 비비는가 싶더니 머리를 양 푼 이에 처박고 그야말로 숨 한 번 쉬지 않고 목숨을 걸고 먹었다.

정말이지 한동안 아침, 점심, 저녁을 비빔밥으로 해결하는 시간이 한 달을 지나고 두 달이 되면서부터 얼마나 풀만 먹었을까 싶은 정도로 입안에서 풀냄새가 물씬 풍겼으니 진력이 날 만도 했다.

정말이지 이젠 채소 비빔밥과 이별을 하고 빨간 고춧가루에 빨갛게 버무려 놓은 김치 생각이 간절해진 탓으로 가까운 골목 시장에 가서 냉장고에 들어 있는 싱싱한 배추김치를 사 먹기로 했다. 바로 이때 주인집 아주머니는 언제 그렇게 내 속에 들어갔다가 나오셨는지 말씀하셨다.

김치 있어요?” 나는 쑥스러워 죽겠다는 듯이 배시시 웃으며 말했다. “김치요 없어서 못 먹어요.” 아주머니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묵은 지 좋아해요? 우리 집에 작년 십일월에 담은 김치가 있는데 그래도 괜찮아요?” 나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말했다. “걱정하지 마세요. 묵은 지만큼 좋은 찌갯거리도 없으니 주세요.” 아주머니는 이젠 알았다는 듯이 말씀하셨다. “언제부터 반찬을 주고 싶어도 뭘 잘 먹고 안 먹는지 알 수 없어서 망설이느라 그동안 채소만 줬네. 그렇다고 욕하지 마. 돼지고기 사다가 찌개 끓여 먹고 떨어지면 또 얘기해요. 아직 몇 포기 더 남았으니까.” 냉기를 하얗게 뿜어내는 김치 냉장고를 아주머니께서 살짝 열고 김치를 꺼내 오시는데 빨간 국물에 숨을 죽이고 눈에 고인 눈물처럼 그렁그렁 잠겼고 김치 위에는 살얼음이 시원하게 덮여 있어 싱싱하게 느껴졌다.

보아하니 아주 무르게 익지도 않았으며 그렇다고 아주 덜 익지도 않았는지라 줄기 한 입 꼭 집어 물 때 아삭아삭 파도 부서지는 소리가 넌출하고 잎은 씹을수록 씹히는 맛이 매우 차지고 질긴 듯하여 돼지 볼 때기 살을 연상케 한다.

아주머니 늘 감사합니다.”

댓글 : 0
이전글 시편 41편
다음글 새 나루
번호 제목 작성자 추천 조회 등록일
1107 수필 영주정신병원 정선규 0 7555 2015-06-08
1106 별이 쏘다 정선규 0 8035 2015-06-04
1105 해 바가지 정선규 0 7899 2015-05-29
1104 수필 이것이 내 인생이다. 1 정선규 0 8151 2015-05-29
1103 바람의 속달 정선규 0 8183 2015-05-21
1102 도시의 숲 정선규 0 8177 2015-05-18
1101 수필 살아가는 향기 정선규 0 8056 2015-05-14
1100 햇살마루 정선규 0 7595 2015-05-14
1099 코베어가는 세상 정선규 0 7296 2015-05-07
1098 자유글마당 하늘에 낙서가 정선규 0 7189 2015-04-30
1097 꽃 감기 정선규 0 7094 2015-04-30
1096 피부의 가뭄 정선규 0 7341 2015-04-30
1095 바다 위에 햇살 정선규 0 7668 2015-04-23
1094 수필 교회와 사람 정선규 0 8054 2015-04-20
1093 햇빛 그리고 꽃 정선규 0 8299 2015-04-16
41 | 42 | 43 | 44 | 45 | 46 | 47 | 48 | 49 | 50
이 사이트는 대한민국 사이버문학관(문인 개인서재)입니다
사이트소개 개인정보취급방침 이용약관 이메일주소무단수집거부 알립니다 독자투고 기사제보

 

Contact Us ☎(H.P)010-5151-1482 | dsb@hanmail.net 서울시 구로구 고척동 73-3, 일이삼타운 2동 2층 252호 (구로소방서 건너편)
⊙우편안내 (주의) ▶책자는 이곳에서 접수가 안됩니다. 발송전 반드시 전화나 메일로 먼저 연락을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