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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선규 시인의 작품읽기

정선규 시인
살면서 신세지다.
작성자: 정선규 추천: 0건 조회: 5812 등록일: 2016-05-17

살면서 신세지다.


이천 십 오년 십일 월 이십 일은 정말 나에게는 아찔한 순간이었다.

그날도 나는 여느 날처럼 오전에 도서관을 들러 집필 작업을 마치고 외박할 계획이 있어 오후 네 시를 넘어서 도서관을 나섰다.

저물어가는 가을바람을 맞으며 돈을 찾기 위해 영주농협 꽃동산지점으로 발길을 향했다. 그런데 전자파의 강도 높은 영향 때문이었을까?

다섯 시간을 컴퓨터와 마주하고 나왔더니 온몸으로 전율이 흐르는 듯 팔 다리가 짜릿하고 뒤통수는 누구한테 한 대 얻어맞은 양 쑤시고 띵하여 귓가에는 윙윙 날아다니는 벌레 소리만 요란하게 울고 있다.

그래서 어느 때에는 아무 생각이 없이 멍하기도 하고 지금 내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무엇을 하는지조차 분별하지 못할 때가 있다. 여름매미도 이렇게 유별나게 시끄럽지 않았다.

현실과 꿈속을 헤매는 것 같은 기분은 급기야 이게 몽유병이 아닐까 싶었다.

기분이 아득하게 느껴지는 것인지 정말 마음이 아득한 것인지 내 육체의 귓가에는 매미가 유별나게 우는데 이젠 아주 눈앞이 까마득해졌다. 뭐라고 할까. 매 몸은 여기 있는데 내 영혼은 저 멀리 떨어져 있음을 느끼고 온몸은 싸늘한 감기 기운에 짓눌려 사시나무 떨 듯 했다.

시간이 가면 갈수록 느낌은 점점 떨어지고 꿈속에서 먼데서 오시는 손님을 마중하는 것 같은 착각 속에서 있으면서 태연하게 A T M기 앞에 서서 통장정리를 하자 삼십 구 만원이 찍혔다.

나는 먼저 허기진 배부터 달래기로 하고 평소에 잘 가는 동서식당을 찾아서 맛있는 김치찌개를 시켜 배불리 잘 먹고 길을 나섰다.

우선 가까운 번개시장에 들러 가래 떡 하나와 파전 두 개를 간식으로 사고 영주 역전 앞의 편의점에서 탱글탱글한 귤 사가지고 모텔로 들어갔다.

병원 생활을 2년 넘게 하면서 먹고 싶은 것도 제대로 먹지 못하면서 언제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몰라 긴장하고 살았던 탓이었을까? 아니면 안 보고 안 들으니 그랬을까. 마음이 편하고 잠이 쏟아졌다.

혼자 있으면 이렇게 편하고 먹을 것 다 먹으면서 배부르게 지낼 수 있는 것을.

잠시 아주 잠시라도 이젠 때에 찌든 병원 생활을 내려놓고 마음 편하게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먹고 싶었던 가래떡 먹으면서 하룻밤을 즐긴다고 생각하니 뛸 듯이 기뻤다.

옷을 다 벗어 던지고 두 다리를 벌리고 최대한 가장 편한 자세를 하고 아주 멋지게 귤껍질 벗기는데 아까부터 자꾸만 손 전화가 울렸다.

발신 번호를 확인해보니 틀림없이 영주 같은데 어딘지 전혀 모를 번호인지라 귀찮고 듣기 싫어서 전원을 끄고 말았다.

그리고 파전도 먹고 가래떡도 먹으면서 포만감을 열심히 느끼고 있었다. 배도 부르겠다. 등도 따뜻하겠다.

솔솔 잠만 잘 왔다. 가만있자 돈을 내가 얼마나 썼을까? 또 얼마나 남았을까.

나중에 후회하지 않으려면 지금 내가 얼마를 썼고 또 얼마가 남았는지 확실히 계산해볼 필요가 있었다.

지갑을 열어 돈을 세어보니 쓴 것도 없는데 십 만원이 비었다. 어떻게 된 것일까? 생각하고 또 생각하다보니 대충 가닥이 잡히기 시작했다.

내가 돈을 찾을 때 먼저 이십 구 만원을 인출하고 나중에 십 만원을 뺐는데

귀신이 곡할 노릇이지. 이 돈이 어디로 갔을까. 내 생각이 맞는지 통장을 다시 확인해보았더니 십 만원이 그대로 남아 있어 더 헷갈렸다.

A T M기의 고장인가. 내가 지금 꿈을 꾸고 있는 것인가. 모든 생각을 접고 속 시원하게 다음 주 월요일 날 다시 농협에 들러 따져봐야겠다.

그렇게 휴일을 보내고 월요일 아침 영주농협 꽃동산지점 창구를 찾아가서 김진수 대리에게 통장정리를 부탁하는데 바로 이때 옆 창구에서 일을 보고 있던 박원희 계장이 나를 알아봤다. “고객님! 금요일 날 십 만원 찾으셨는데 놓고 가셨어요. 저희가 그날 여러 번 전화 드렸었는데 안 받으시고 전원을 꺼놓으시고 안 받으시는 바람에 연락이 안 됐어요.”

가만히 생각해보니 그날 A T M기에서 십 만원 인출할 때 뒤에 사람이 기다리고 있는 것만 생각하고 급한 마음에 돈은 안 챙기고 통장만 가지고 나왔다. 그렇다면 뒤에 있던 사람이 십 만원을 창구 직원에게 갖다 주었고 이 돈을 받은 박원희 계장은 무사히 네 손에 넘겨주었다.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그 분과 박 원 희 계장, 박 진숙 대리께 감사한다.

 

 

 
댓글 : 1
  • 이규석
    있을 수 있는 보통사람들의 삶의 진한 생각을 심었네요!
    나이는 그냥 세월에 껍질일뿐 흔적을 영글게하는 마음에 노숙자입니다. 잘읽고 갑니다.
  • ×
    M
    2016-0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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