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의 녀석 2
그 녀석은 심하게 간질을 앓고 있었다. 그 원인이 무엇인지도 모를 뿐만 아니라 언제부터 앓게 됐는지도 모른다. 살가운 부모도 없고 동생도 없이 젊은 나이에 어쩌다가 이렇게까지 됐는지 바라보면 가슴이 아프고 답답했다. 그만큼 “술 마시지 말라고 당부해도 간질을 앓고 나면 고통에서 벗어났다는 안도감에서 밀려오는 한숨일까? 아니면 자포자기를 선언하는 것일까? 마시고 또 마시고 거리를 헤매다가 땡볕 아래 쓰러져서 죽은 듯이 자고 일어났다.
초췌한 얼굴에 남루한 옷차림에 세수 한번 하지 않은 채 반은 정신 나간 모습이었다. “얼마나 술을 마셨을까? 어디에서 잤을까?” 저 멀리 한쪽 가슴이 찢어졌다.
어제까지만 해도 멀쩡하게 잘 있던 얼굴은 누구한테 맞은 것인지. 부딪힌 것인지 말도 못하게 깨졌다. 그런 데다가 누가 옆에서 챙겨주는 사람 하나 없으니 피가 흐르고 고름이 생겨서 파리가 날아들었다.
그야말로 마음과 몸은 만신창이었다. 얼마나 고통스러운 간질이 사람을 미치기 괴롭히기에 제 마음도 못 잡고 술병을 옆에 끼고 시장을 배회하는 것일까?
이럴 때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내가 무기력하면서도 정말 인정머리 없는 나쁜 사람이었다. 언제나 마음뿐이지. 따뜻한 내 집에 단 한 번이라도 데리고 가서 먹이고 재우지 못했으니 이게 죄가 아니면 무엇이란 말인가?
그런데 어느 날부터인가 사람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깨끗한 옷에 단정한 모습을 하고 그늘만 짙은 얼굴에는 보조개가 쏙 들어갈 정도로 밝은 미소가 화사하게 떴다.
“네가 웬일이냐? 오늘은 해가 서쪽에서 다 뜨겠다.” 하니까 녀석은 씩 웃었다. “형! 내일부터 나 일해. 자장면 배달하기로 했어.” 나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너 다시 말해봐. 뭘 한다고.” “명성 각에서 자장면 배달하기로 했다고.” 나는 녀석이 미쳤다고 생각했다. 사람이 죽으려면 무슨 짓을 못할까? “너 그냥 놀아 국민기초생활 수급비 나오잖아. 괜히 돈 벌겠다고 오토바이 타고 달리다가 발작 일어나면 그날은 네 제삿날이야. 무슨 말인지 알지” “싫어 내일부터 시작할 거야.” 도리가 없었다. 자신도 위험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냉정했다. 마치 죽일 때 죽더라도 할 때 한다는 식이었다.
참, 강아지처럼 목줄 달아 데리고 다닐 수도 없고 그렇다고 따라다니면서 밀착 감시를 할 수도 없으니 이 일을 어떻게 하면 좋을까? 벌써 내 가슴은 터질 듯이 심한 도리질 쳤다. 결국, 내가 두 손을 들고 말았다. 그리고 며칠이 지났다. 녀석을 시내에서 우연히 만났는데 얼굴이 다 깨어 있었다. “그러게 내가 뭐라고 하데. 하지 말라고 했지. 그건 그렇고 너 요즘 병원에 다니면서 약은 잘 먹고 있는 거야?” 물었다.
“내일 입원할 거야.” 뒤돌아서서 가는데 왜 그렇게 뒷모습이 아련하던지 그렇게 대전을 떠나온 후 한 번도 만나보지 못했는데 어떻게 잘 지내고 있는 것인지 대전에 올라가면 꼭 한 번 얼굴이라도 보고 내려와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