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선규 시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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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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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정선규 |
추천: 0건
조회: 8021 등록일: 2015-08-2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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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님 내가 이 형님을 알게 된 지도 벌써 3.4년이 되었다. 다 사람 사는 모습이 똑같다고 하지만 이것은 그냥 남들이 말하기 좋은 말로 하는 것이고 살기 어려운 현실 속에서 꿈인지 생시인지 이제는 그 정신마저도 몽롱해지는 정신을 이끌고 가느라 살아가는 길에서 떨어져 나와서 갈 길을 잃어버릴 때가 있다. 사경 속을 헤매듯 살아가는 길을 놓치거나 되돌아서거나 또는 그때를 알지 못하고 방황하기도 한다. 사람이 사노라면 항상 돈이 말썽을 부린다. 형님도 이외는 아니었다. 아는 여인에게 20만 원을 빌리면서 꼭 한 달 안에 갚겠다고 약속했지만, 그 후 약속은 깨졌고 형님은 까마득히 잊고 살았다. 죄짓고는 못 산다는 말이 괜히 있을까.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여전히 흘러만 갈 줄 알았던 세월은 파투가 나고 전혀 생각하지 못한 날 쪽방에서 재회하는 그 날의 감격을 맞았다. 그 후 여인은 수시로 형님을 조용한 곳으로 불러내어 무슨 말을 하는지 밤이슬이 내리도록 놓아주지 않았다. 기다렸다는 듯이 가장 먼저 집 주소와 전화번호를 적었다. 말 그대로 바지 고무줄 잡고 늘어지는 전법 구사로 형님을 괴롭혔고 형님은 오늘, 내일, 줄게, 줄게, 차일피일 미루고 있었다. 홀아비 신세였던 형님은 이제 독 안에 든 쥐 신세와 같았다. 옆에서 보다 못한 내가 말했다. “형님 오늘이라도 20만 원 주든가 아니면 매달 나오는 기초생활 수급비에서 5만 원씩 갚아나가면 되겠네.” “아니야. xxx 같은 년 누구한테는 돈 받고 누구한테는 안 받고 그러면 안 되지. 나 돈 받으면 그 사람들 돈부터 받아 가지고 와야 할걸. 안 그러면 나도 못 줘.” 그렇게 고집부리더니 이것도 인연인지 돈 안 주면 집에 안 간다며 안방 차지하고 누웠다. 그게 한 달이 되고 두 달이 되어 인제는 부부처럼 둘이 꼭 붙어 다니면서 그 여자의 짐꾼이 다 되었다 싶은 게 혹시 형님이 저 여인을 좋아하는 게 아닐까 하는 마음이 굴뚝같이 들어왔다. 딱 그 모양새이다. 홀아비가 과부 심정 알아주고 과부 심정 홀아비가 알아준다 하지 않았던가. 소문은 삽시간에 퍼졌다. 먹어주고 재워주면서 둘 사이에 과연 아무런 역사가 일어나지 않았을까? 지금까지 재워주고 먹여준 게 얼마인데 형님은 빚을 갚고도 남았다. 20만 원에 어디 가서 이렇게 먹고 잔단 말인가. 어림도 없다. 당뇨 합병증을 앓는 여인은 날이 가면 갈수록 꼬챙이처럼 말라 비틀어져 갔다. “형님 이러다가 시체 채우겠습니다. 빨리 자식한테 연락해서 죽기 전에 데리고 가라고 하세요. 정말 이러다가 형님 장례까지 치러주겠습니다.” 재촉했다. 하지만 형님은 그 여자를 한국병원에 입원시켜놓고 집과 병원을 출퇴근하며 죽을 때까지 병시중을 말없이 들었고 죽어서는 장례식까지 다 치러주었다. 형님은 왜 그랬을까? 그 집 아들이 불쌍해서일까? 100만 원을 교회의 건축헌금으로 냈다고 해서 제 누나가 미쳤다면서 정신병원에 강제입원 시켰다는데 어쩌면 형님은 어딘가에 살고 있을 자기 아들을 그리워하며 이혼했다는 아내를 잊지 못하는 형님의 십자가였으리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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