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선규 시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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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내 인생이다. 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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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정선규 |
추천: 0건
조회: 8052 등록일: 2015-05-2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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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내 인생이다. 1 2013년 11월 2일 막 추운 겨울이 밀어 다칠 무렵 찬바람에 가로수 잎이 비로 쓸려나가듯 떨어지고 또 떨어지고 있었다. 그날 켜켜이 쌓인 먼지를 다 털어내느라고 한바탕 싸우고 삼봉병원에서 퇴원해서 길을 나섰다. 11월의 날씨가 그렇게 춥다는 것을 나는 그날 알았다. 그렇다.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야지 어떻게 주인인 스님한테 떠나라 하면 말이 되겠는가? 홀연히 이런 마음이 들어왔다. 그래 내가 떠날 때가 오늘인가 보네. 하지만 며칠만 더 있다가 한 방에 날렸으면 더 좋았을 것을. 이제 악연의 꼬리를 과감한 결단력으로 미련 없이 끊어내고 홀가분하게 내 고향으로 내 삶의 터전인 대전으로 올라갈 것을 서서히 암시하고 있었다. 아이를 해산하는 어머니의 아픔과 같이 이제는 더 좋은 곳에서 더 좋은 모습으로 거듭나야 할 과제만 남았다. 하지만 복병을 만났다. 막상 호주머니를 다 털어 보아도 딸랑 만 원짜리 한 장뿐이었으니 오지도 가지도 못할 최대의 적을 만난 것이다. 그저 가슴은 먹먹하고 아려오면서 도저히 뭐라고 할 말이 없었다. 나는 삼봉병원 간호사가 내게 건네준 약 봉지를 열었다. 그런데 이게 어떻게 된 일인가? 상상도 하지 못했던 최악의 상황이 일어났다. 원무과 주임의 말은 온데간데없고 일주일 것은커녕 우울증, 약 1일분, 허리 통증 및 대장증후군, 약 5일분에 그나마 변비약은 버렸는지 구어를 먹었는지 없었다. 설마, 설마 하는 마음으로 두 번, 세 번 약봉지를 확인해보았지만, 시간 낭비였다. 그들은 내가 떠나는 그 마지막 순간까지도 여전히 근무태만에 업무태만까지 저질렀다. 그야말로 삼봉병원 근무자의 정신 나간 상태의 직원 관리와 해이한 기강을 그대로 잘 나타내고 있었다.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고. 고객의 돈을 손도 안 대고 코 풀고 날로 먹겠다니. 매사가 이랬다는 말인가? 다시 말하면 건강보험공단을 농락하고 조롱하며 도전하는 매우 심각하며 중대한 범죄를 저질렀을까? 그것을 알면서도 눈먼 돈이라 여기고 얼마나 신바람 나게 곳간의 곶감 빼먹듯 시와 나라에서 주는 돈을 얼마나 배가 터지게 폭식했을지 절로 가늠이 가는 대목이다. 어느 병원이든지 원장을 보면 그 병원을 모든 사정과 직원들의 수준을 한눈에 들어오면서 아래 사람의 허물은 곧 윗사람의 허물인 것을. 우리는 7월, 8월의 더위가 극성을 부리는 한여름에도 아침, 점심, 저녁 식사 시간에만 한 시간씩 에어컨 바람을 쐤을 뿐만 아니라 11월 겨울의 추운 문턱으로 가는 길에서도 전혀 난방도 들어오지 않는 병실에서 얇은 이불 하나로 버텼다. 2층 병동은 개방병동이라 하여 대부분 집도 절도 없는 사람들이 수원 노숙인 다시 서기 센터와 서울 노숙인 다시 서기 센터에서 그 당시 1인당 30만 원을 주고 데리고 왔다. 대한민국 전국을 차 가지고 돌아다니며 오고 갈데없는 사람들이 그 주를 이루었다. 그는 항상 환자의 생명과 안전은 뒷전이면서 과속 운전하면서 한 손에는 운전대를 잡고 또 다른 한 손으로는 게임을 즐겼다고 한다. 다들 병원에 도착하는 그 순간까지 사고 날까 걱정에 바짝 긴장했다고 파다하게 소문이 나 있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들에게 먹여 주고 재워 주고 병도 고쳐준다고. 또는 본인이 원한다면 3개월 후에 국민기초생활 보장 수급자를 만들어 주겠다는 사업전략을 구사하고 있었다. 주소가 말소된 사람들은 병원으로 전입시켜 놓고 3개월 동안 한 달 동안 1인당 백만 원 이상 3개월 동안 3~4 백만 원을 쭉 빨아 먹을 수 있었다. 뭐라고 할까 이상야릇하면서 쿠린 냄새가 났다. 말은 개방이지만 실상은 반 개 방이었다. 낮이나 밤이나 잠겨 있는 뒷문은 무엇이고 특히 야간에는 밖에 경비나 간호사, 보호사가 없는 상황에서 불이 난다면 우왕좌왕 갇힌 환자의 안전과 생명도 유기하고 저들만 살고자 도망갈 것이 뻔하다. 저들은 틀림없이 환자를 3개월 동안만 먹여 주고 재워 주고 병 고쳐준다는 명분을 내세워 입원시켜 놓고 건강보험공단에 요양급여를 신청하여 쭉 빨아 먹고 유통기한이 지나면 버리려 했을 것이다. 이런 은밀한 계획에 따라 저들은 개방병동이라는 구실을 삼아 2층에 방을 만들어놓고 돼지 떼 몰아넣듯 몰아넣고 서서히 고립시켜 조여들어 갈 때 환자는 견딜 수 없는 상황에서 스스로 나갈 수밖에 없는 시스템이다. 저들의 손에 더러운 때 안 묻히고 닭 먹고 알 먹고 이 얼마나 좋은 일거양득의 기회인가. 환자들이 온종일 사람 볼 수 있는 시간은 점심시간이 유일했다. 2층 병동을 거쳐 3층 식당으로 밥 먹으러 가면서 힐끔힐끔 동물원에 갇힌 원숭이 대하듯 하면서 이상하게 경계하는 무척이나 따가운 눈초리에서 찬바람만 쌩쌩 일었다. 아니 할 일 잘하는 2층 병동 간호사를 난데없이 4층으로 빼돌리더니 2개월 동안 내버려두었다. 이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3개월 동안의 시간 보내기 작전이다. 2층에서 얼마나 간호사와 얼굴 보기 힘든지 가물에 콩 나듯 한 것이 대통령 얼굴 보기보다 더 어려운 정말 희귀할 정도였다. 그래 저들 말대로 다 바쁘다. 그러니까 하루빨리 인력을 보충하던가? 2층 병동을 허물고 3, 4층 폐쇄병동에 흡수시키던가? 손을 써야지 2층에 환자를 유기해놓고 어떤 누구도 들여다보지 않았다. 환자들이 아무 일도 없이 사이좋게 잘 지내고 있는지. 식사는 제대로 하는지. 어디 아픈 사람은 없는지. 병동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고나 있는지. 뭐하나 불편한 것은 없는지. 둘러보면서 파악할 것은 파악해서 개선할 것은 과감하게 개선해야지. 세상에 뭐 이런 엉터리 시스템이 다 있는 것인지 내 기본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 선이다. 간호사와 보호사는 아침 투약시간보다 늦게 내려와 굶주린 사자에게 먹이 던지듯 매일 아침, 점심, 저녁 약을 한꺼번에 주었는데 때로는 2일분까지도 주었으며 특히 저녁 투약은 보호사들 마음대로 6시에 볼일 보러 내려왔다가 8시 30분에 두 번 내려오기 귀찮아서 미리 주고 가는가 하면 7시도 좋고 7시 30분도 좋고 엿장수 마음이었다. 이는 마치 인간을 사육하는 사육사를 연상케 했다. 도대체 어떤 사람들을 데리고 오는 것일까? 이뿐인가? 얼마 전에는 새로 들어온 환자가 의료진으로부터 아무런 설명도 듣지 못한 채 하루분의 약을 아침 약으로 착각하여 다 먹고는 쓰러져 이틀간을 아침, 점심, 저녁을 거르고 사태가 벌어졌다. 하여서 고용노동부에서 운영하는 작업 넷에 들어가 확인해보았더니 학력, 경력, 나이, 자격증 소지 여부 등 제한은 없었다. 대충 말귀만 알아들을 수 있는 수준이라면 된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2013년 5월 17일이던가? 4층에서 남자 간호사가 내려왔으나 환자가 간호사를 교육해야 할 만큼 전혀 일머리도 모르는 것을 보면 인계인수조차 뭐 하나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음을 잘 말해주고 있었다. 월요일 당뇨 측정과 혈압 측정 화요일 201호~202호 화요일 203호~204호 금요일 몸무게 혈압 측정 등 일괄 폐기하고 할 일 없다고 이 병실 저 병실 다 쫓아다니면서 환자들과 농담을 하거나 텔레비전을 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정신과 간호사로서 가장 기본적인 환자를 관찰하면서 기록하는 일은 고사하고 환자와 약이 뒤바뀌지 않도록 무척이나 신경 써서 잘 분류해야 보호사들이 취침 전 약을 투약하게 되는데 이것도 제대로 돌아가지 못해서 두 주일 동안 환자들은 서로 남의 약을 먹었다. 주사 놓는 데도 잔뜩 겁을 주워 먹고는 사시나무 떨듯 손을 떨면서 혈관도 찾지 못해 헤매거나 엉뚱한 곳을 찔러 피만 빼는가 하면 얼마나 긴장하고 찔렀는지 링거를 부탁했더니 주삿바늘이 3분의 일이 휘어져 있었다. 오죽하면 링 겔을 뽑던 다른 간호사가 보고 깜짝 놀랐을까? 급기야 병동에서 말이 나왔다. 자격증도 없는 말귀나 알아듣고 심부름할 수준이라면 마구 데려다가 쓰는 것이 아니냐는 술렁임이 있었다. 그렇게 무심한 세월은 흘러 2013년 11월 2일 그 날이 왔다. 변함없는 일과를 기다리며 병실에 누워 있는데 병동 청소를 하는 환우가 불쑥 방으로 들어오더니 이내 불만을 쏟았다. 우리는 3층 간호사가 내려온 것도 까마득히 모르고 있었는데 간호사가 약 주러 왔다가 올라갔는데 이상하게 우리 방만 안 주고 갔다는 말이었다. 순간 병실은 찬물을 끼얹은 듯 숙연해지듯 차갑게 냉각되었다. “야! 그걸 밖에서 간호사 있을 때 이야기해야지. 가만있다가 지금 방에 들어와서 얘기하면 어떻게 해.” 그는 금방 얼굴이 달아오르며 울상이 되었고 당장 나가서 3층에 전화해서 약 가지고 오라고 하라고 성화였다. 잠시 후 발걸음 소리가 방문 앞에서 멈추고 문이 열렸다. 순간 치밀어 오르는 부아에 못 이겨 한 마디 던졌다. “제기랄 누구야! 누군데 왜 우리 방만 약을 안 주는 거야.” 얼굴을 보니 전혀 새로운 간호사였다. “ 몰랐어요. 병실이 하나 더 있는 것을 몰랐어요.” 이게 말인가? 막걸리인가? 온정이 뚝 떨어지면서 얼마나 2층 병동이 폐쇄적이면 3층 간호사가 바뀐 일도 몰라 3, 4층 새로 들어온 직원들 얼굴조차도 까마득히 모르고 있었을까? 이 얼마나 한심한 일인가? 급기야 일단 간호과장 얼굴을 보고 직접 이야기하기 위해 3층으로 올라갔다. 간호과장은 없고 간호사를 보조하는 보호사도 없고 원무과 안 주임만 의자에 턱 하니 다리를 꼬고 앉아 있는데 그 간호사 정신없이 혼자 투약하느라 바빴다. 답답하고 도대체 어디에서부터 어떻게 잘못된 것인지. 직원 관리의 시스템은 있는 것인가? 그 선을 찾아내야 할 정도였으며 더 나아가서 직원 채용의 기준은 무엇인지 누가 선발하는 것인가를 알고 싶었다. 나는 안 주임을 믿고 물었다. “아니 도대체 이 병원에서는 어떤 기준을 가지고 직원을 뽑는 거야. 3교대 인계인수는 제대로 이루어지는 거야.” 그는 실실 웃기만 했다. 아니 말한 만도 못한 꼴이었다. “간호과장은 언제 와요.” 그는 컴퓨터에서 확인하고 이렇게 말했다. “내일모레.” 할 수 없이 2층 병동으로 들어가던 중 문득문득 며칠 전만 해도 병동 게시판 밑에 비치해놓았던 고충처리 서가 떠올랐다. 마침 우리 정 선생이 당직인지라 쉽게 물었다. “정 선생님! 전에 게시판에 비치해놓았던 고충처리 서 안 보이는데 치웠어요?” 정 선생은 원무과 접수창구 서류함에서 고충처리 서를 찾아 주었다. 나는 방으로 가지고 들어와서 쓰기 시작하는데 밖에서 아주 요란한 발소리가 탱크 몰아오는 소리가 가까이 오는가 싶더니 이내 문은 매우 거칠게 열리면서 “나는 우리 직원들 욕하는 꼴은 못 봐.” 하는 소리와 함께 병실 문 앞에 서 있는 안 주임의 모습이 보였다. “정선규 님!” “예” “정선규 님!” “예” 몇 번을 불렀다. “정선규 님이 간호사한테 욕했다면서요.” “내가 3층에서 다 얘기했잖아요.” “욕했다는 말은 안 했잖아요.” 참 어이가 없어도 한참 없었다. 누구 말대로 꼴뚜기 값한다. “그럼 약을 안 주고 그냥 가는 간호사는 뭐 하는 사람입니까?” “약 좀 늦게 주었다고 그렇게 죽을죄입니까?” 안 주임 스스로 간호사의 업무태만과 근무태만을 시인하고 있었다. 팔은 안으로 굽는다고 했던가? 누가 이 정신 나간 정신 병원 아니랄까 봐. 어이가 없다. 그랬다. 원장에서부터 모든 직원에 이르기까지 그들은 모두가 자격 미달이었다. 그러기에 직원 채용하는데 있어서도 아무런 자격제한이 없었다. 그런데도 여전히 부끄러운 줄 모른다. 안 주임 무섭다는 말에 감히 어디 손님이나 가겠는가? 인계인수와 업무 파악까지도 제대로 시스템 하나 없고 2, 3층 사이에도 소통이 없는 시스템 정말 사는 것이 고생이겠다. 본래 원장부터 정신과 전문의가 아닌 철학박사인 것을 고려하면 그 전문성은 확연하게 떨어진다. 그랬던 저들은 지금도 병원은 물론이거니와 진실성 있는 사과 한마디 없이 그 자리를 보존하고 앉아 있는 것도 부족해서 날 보란 듯 주임을 껑충 뛰어넘어 계장으로 올라갔다 한다. 지금 생각해 보면 우리는 거지였다. 빨랫비누, 세제, 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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