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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선규 시인의 작품읽기

정선규 시인
가뭄
작성자: 정선규 추천: 0건 조회: 7839 등록일: 2015-02-10
가뭄
빼빼 말라 비틀어진 무우말랭이처럼 생기를 불어가는 바람에 다 빼앗긴 채 등에는 뱀의 무늬가 생기고 바닥은 쩍쩍 갈라지느라 뒷굼치가 아프다. 이렇게 가물어 땅이 갈라 서서 입을 쩍쩍 벌리는 작은 지진의 흉기에 촉촉한 바세린을 바르지만 무엇이 또 아쉬운지 돌아서는가 싶으면 여지 없는 통증을 유발하여 어제 그 시간 그 거리를 찾아 배배 비틀어 물 한 방울까지 빈틈없이 쥐어 짠다. 시물시물 흔들리는 통증에 욕실에 들어가서 대야에 물 받아놓고 흐뭇한 듯 어깨를 펴고 앉아 두 발을 가만히 담그니 무릉도원이 따로 없다. 쩍 벌어진 입은 따그랭이가 덮고 까칠한 피부는 촉촉하게 젖어 매끄럽게 제 몸매를 가졌으니 그야말로 사람은 오래살고 볼 일이다. 톡톡 빗방울이 토닥이면 그저 발 내밀고 촉촉하게 씻어주길 기다린다면 변화는 내 발에서부터 시작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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