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빠르지도 단단하지도 못해서 * / 안재동
도마뱀류의 어느 파충류 한 마리, 엉금엉금... 아주 느려 터졌네 혓바닥은 빨라서일까 뭘 잡아 먹는지 용케 살아는 간다
갑자기 뱀 한마리 나타나 그놈의 몸통을 물고 집어삼키려 한다 느려터진 체질이라 도망갈 맘도 없는지 아예 가만 있구나 뱀은 아무리 애를 써도 놈을 삼킬 수 없어 결국 포기한다
그래, 가죽이라도 두껍고 단단해서 살아남았구나
몸이든 마음이든 너처럼 두껍고 단단하지도 못한 나도 참 용타
무엇에 부닥치면 잽싸게 피하지도 못하고 잘 이기거나 돌파하지도 못하면서 여지껏 살아온 것만도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다른 무엇을 더 바라랴
* 계간 <한국시학> 2019년 봄호 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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