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의 즐거움
민문자
인간은 자기를 표현하려는 욕구와 더불어 미지의 세계에 대한 호기심으로 여행을 하고 싶어 안달한다. 그러나 여행이 어디 그리 만만하던가. 여행하고 싶은 마음만 앞선다고 되는 일이 아니다. 여행은 이 걱정 저 걱정 다 접어두고 떠날 수 있는 용기가 있어야 한다. 그리고 비용과 건강상태와 가족의 배려가 모두 조화로워야 가능하다
혼자 하는 여행을 즐기는 특별한 여행가가 있는가 하면 보통 사람들은 친구나 지인과 함께 여행한다. 긴 여행은 보통 그룹 여행이다. 기회가 왔을 때 빠른 선택을 할 수 있어야 여행을 많이 즐길 수 있다. 외국 여행은 더욱 그렇다. 한 번도 가 보지 못한 곳에 간다는 그 설렘과 흥분은 초등학교 시절 소풍 가기 전날, 밤잠을 못 이루던 기억과 흡사하다.
과거에는 세상 사람들이 미개발된 세상과 이념 때문에 불통의 세계에서 사느라 자기가 사는 땅 울타리에서만 살았다면, 과학의 발달과 열린 세상이 되어 지금은 지구 구석구석을 여행할 수가 있다. 과거 죽의 장막이니 철의 장막이니 하던 시절을 상기해 보자. 어디 우리가 중국이나 러시아 땅을 밟아볼 수나 있었는가.
지금은 우리 국민이 북한만 빼놓고는 북극과 남극까지도 마음대로 여행할 수가 있지 않은가.
세상 좋아져서, 조국이 자주 독립국으로 부자나라가 되어서, 세계 여러 나라를 여행하는 중에 내 나라가 다른 나라를 돕고 있는 현실과 우리 기술이 이룩한 상품과 광고를 보면서 뿌듯한 자부심을 느낀다.
조국의 위상이 자랑스러우니 나도 자랑스럽다. 삶을 살아가는데 어떤 태도로 사느냐 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 조국의 일원으로 부끄럽지 않은 국민이 되려는 마음이 스미게 된다. 등잔 밑이 어둡다 하지 않던가. 밖에서 보면 우리 자신의 전체도 잘 드러나 보인다. 인천국제공항 출입국장부터 우리는 이제 세계 제일이다. 어느 나라 공항보다도 세련되고 깨끗하다. 출입국 절차도 빠르다.
1994년 너른 벌판과 자작나무숲 위 시베리아 상공을 날아서 러시아 모스크바와 상트페테르부르크를 여행한 일이 있다. 러시아는 지구 전체 땅 면적의 1/8을 차지하고 있어 세계에서 가장 큰 나라다. 시베리아에서 대문호 도스토옙스키가 『죄와 벌』의 주인공처럼 자신도 10년간 유형 생활을 했다고 해서 시베리아 열차에 대한 궁금증을 늘 안고 있었다. 모스크바역과 블라디보스토크까지 운행하는 시베리아 열차는 9,288km 85개 역 6박 7일이 걸린단다. 짧지만 하바롭스크에서 블라디보스토크까지 시베리아 열차를 타볼 기회가 왔다.
러시아의 극동지방 5박 6일 여행이다. 기대감에 가슴이 부풀었다. 오랫동안 함께한 일행과 이번에는 자유여행이다. 인천공항에서 러시아 오로라 항공기로 하바롭스크까지 2시간 20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인천공항까지 1시간 20분밖에 안 걸리고 하바롭스크 기차역에서 저녁 8시 시베리아 침대열차를 타고 한잠 자고 나니 이튿날 아침 8시에 블라디보스토크 기차역에 도착해 있는 것이다. 시베리아 열차를 12시간은 타볼 수 있었다.
겨울은 영하 40도를 오르내리는 동토 시베리아의 하바롭스크와 블라디보스토크, 거슬러 올라가면 고구려와 발해 유민의 숨결이 스몄던 곳이다. 가지각색 인종으로 서양문화의 꽃을 극동에 피운 하바롭스크와 블라디보스토크는 자본주의 물결이 자유로워 보였다. 러시아 특유의 고풍스러운 건축양식의 건물들과 번쩍번쩍 빛나는 러시아정교회들, 거리에는 금발의 젊은 미남 미녀와 예쁜 아가들의 모습이 싱그럽게 보였다. 마트료시카 러시아 인형이 가는 곳마다 눈길을 끌고 거리의 악사가 연주하는가 하면 라비요아무르스키 동상, 푸시킨 동상, 레닌 동상, 혁명 일꾼 동상과 박물관, 러시아정교회에서 이 땅의 역사를 읽었다.
하바롭스크 부자들만 산다는 최고급 리치빌이 우리나라 계룡건설 작품이라니 빛나는 우리 기술을 뽐내고 서 있어 기뻤다. 2002년부터 하바롭스크와 부천시가 자매결연을 맺은 기념비와 심장병 무료수술 사업을 이어오고 있는 박영관 세종병원원장 하바롭스크 명예시민의 사진도 발견했다. 엄혹한 일제 치하에서 찾은 새 삶터로 애국지사 거점지역으로 독립운동을 싹틔웠던 곳이다. 1937년 스탈린의 강제이주 명령으로 쫓겨서 우리 동포 18만 명이 시베리아 횡단 열차에 탑승하고 중앙아시아로 떠난 곳이다.
블라디보스토크 외곽의 신한촌은 대일항전과 독립운동의 구심점 역할을 했던 근거지로 지금도 많은 교포가 살고 있다고 하는데, 1999년 한국 사단법인 해외 한민족연구소에서 세운 신한촌 기념비가 쓸쓸히 지키고 있음을 보았다. 블라디보스토크는 2012년 루스키 섬의 극동연방대학교에서 아시아 경제포럼인 APEC 정상회담을 개최한 이후 여러 나라가 몰려들고 있어 국제도시로 새로운 교역과 관광지로 급부상하고 있다.
가깝지만 아주 오랫동안 우리에게 닫혔던 땅이다. 4월 27일 남북한 정상회담에서 좋은 성과를 얻으면 부산과 서울에서 기차를 타고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를 거쳐 유럽으로 여행할 수 있는 날이 머지않아 오지 않을까, 그렇게만 된다면 얼마나 편리하고 경제적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