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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표

작성자: 민문자

추천: 0건 조회: 2560 등록일: 2017-12-16

이름표                                                                                        민문자   학생 시절에는 언제나 교복의 왼쪽 가슴에 이름표를 부착하고 다니는 것이 교칙을 지키는 일이었다. 처음으로 이름표를 달았던 기억은 초등학교 시절이다. 그때에는 하얀 광목에 두꺼운 마분지를 속에 넣고 밥풀로 빳빳하게 만들어 연필로 삐뚤삐뚤하게 쓴 이름표를 붙이고 다녔다. 이 이름표가 며칠 지나면 구겨지고 때가 묻어서, 그리고 비를 맞는 날이면 금방 훼손되어 다시 만들어 달아야 했는데 이게 보통 귀찮은 일이 아니었다.   어렸을 때 우리 집에는 두꺼운 마분지도 귀했고 내가 맏이어서 스스로 이름표를 만들어야 하는 것이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언니 오빠가 있는 친구들은 만년필이나 펜을 사용해서 청색 잉크로 글씨도 예쁘게 잘 써서 이름표를 달고 다녔다. 그런 친구들이 나는 무척 부러웠다. 그래서 나도 사범학교에 다니는 육촌 큰오빠에게 부탁해서 예쁜 이름표를 만들어 여러 번 단 적이 있었다.   초등학교 3학년 때의 까치설날, 그날도 큰오빠에게 다시 이름표를 만들어 달라고 어렵게 청했는데 바빴든지 작은 오빠에게 부탁해 보라고 하였다. 할 수 없이 중학생인 깍쟁이 작은 오빠에게 이름표를 만들어 달라고 부탁하였다.   “흰떡 열 가락을 가져다주면 만들어 주마.”   그래서 할 수 없이 집으로 뛰어와서 어머니 몰래 흰 떡가래를 가져다주고 예쁘게 만든 이름표를 받아들고 좋아하던 기억이 엊그제처럼 느껴진다. 이제 반세기가 넘는 세월이 흘러 과학의 발달과 풍요로운 시대가 도래하여 이름표도 목걸이형 등 여러 가지 아름다운 형태로 바뀌었다.   성인이 되어 결혼해서 남편과 함께 사회생활을 하면서 평생 배운다는 자세로 여러 대학 캠퍼스를 찾아 주경야독하게 되면서 자주 이름표를 바꾸어 달았다. 여러 단체에 회원가입을 하고 세미나에도 자주 참석을 하니까 왼쪽 가슴에나 목걸이 이름표가 자주 바뀌어 달린다.   어릴 때 나의 이름이 왜 그리 촌스럽게 느껴졌는지, 한때는 집에서 정임이라고 했다가, 현숙이라고 도장 새겨 은행 통장도 만들기도 했지만 호적에 등재된 민문자(閔文子)는 항상 내 곁에 있었다. 그런데 수년 전부터 ‘이름대로 살아지는 것인가 보다.’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름에 글월 문(文)자를 둘이나 가진 나는 불혹을 넘긴 나이에 생각지도 않게 글자와 씨름을 하는 작은 신문사를 경영하게 되었고 또 문단에 수필가로, 시인으로 이름표를 붙였다.   거기에 존경하는 나의 스승은 남편의 아호(雅號)까지 글월 문(文)자를 넣어 문촌(文村)으로 지어주시니 그야말로 우리 가정은 문촌(文村)이 되었다. 나이 들어 글과 가까이하는 생활을 하라고 지어준 아버지의 깊은 뜻이 깃든 나의 이름이라고 생각되어 오래전에 돌아가신 분께 늦은 감사를 드렸다.   지금은 청주 시내가 되었지만 내가 태어날 당시에는 내 고향은 과수원도 없는 보리와 벼농사만 하는 농촌이었다. 내가 열다섯, 어머니가 서른다섯에 아버지는 서른아홉의 짧은 생을 마쳤다. 아버지가 안 계신 가정에서 자란 탓인지 자신감이 없고 소극적이며 우울한 처녀 시절을 보냈다. 뒤돌아보면 언제나 오금을 펼 수 없을 정도로 주눅이 든 모습으로 허약한 몸에 행동도 굼뜨고 매사에 자신감이 없었다.   그런데, 가난하였지만 다행히 가슴이 따뜻하고 여성의 사회참여에 긍정적인 생각을 지닌 남편을 만나 사업에 동참하고 함께 고락을 나누며 사는 동안 적극적이고 긍정적으로 살아가는 삶으로 바뀌었다. 1987년도 남편과 함께 숭실대학교 중소기업대학원 최고경영자과정에 가서 공부하는 것을 계기로 우리 부부는 평생 공부하는 자세로 산 셈이다. 여러 대학의 평생교육 과정과 단체의 세미나 참석이나 조찬강의나 스피치교육, 문학공부를 우리 부부는 함께 참석하면서 공부하는 자세를 잃지 않았다.   평소 글 잘 쓰는 선배 문인들은 대체로 국어국문학을 전공한 분이 많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환갑이 넘은 나이에 한국방송통신대학교 국어국문학과 3학년에 편입학하여 학생 기분을 유감없이 발휘하였다.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글 쓸 수 있는 자질을 키우려고 ‘수필가입네, 시인입네’한 이름표를 당당하게 붙이려고 애썼다. 스승께서 지어주신 아호 ‘소정(小晶)’, 작고 빛나는 보석으로 갈고 잘 닦아야겠다고 마음먹은 지 벌써 십수 년이 지났다.   끊이지 않는 열정으로 평생교육을 받으며 또 강사로서 후배들과 웃고 생활하고 보니 어느덧 긍정적인 사고에 매사 자신감이 있는 당당한 모습으로 변화한 자신을 발견했다. 그동안 아호를 내려주신 스승은 가시고 나의 이름표가 여러 형태로 바뀌어 우리 집 안방 문고리에 모아 걸려 있다. 실버넷 뉴스 기자, 자원봉사자, 수필가, 시인, 시 낭송가 등등.   앞으로도 내 가슴에 단 이름표가 모두 개선장군의 훈장처럼 더욱 당당하게 빛나도록 겸손한 마음으로 훌륭한 선배 문인들을 뒤따라 가면서 문학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것이다. 열심히 살다가 눈 감고 이 세상을 하직하고 나면 나의 마지막 이름표는 어떤 모습으로 남게 되려나 궁금하다.                             (2017.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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