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9강 여행 -스피치와 시낭송 문학의 집‧구로 2015. 1. 12. 월
여행
민문자
지금부터 여행에 대하여 말씀드리겠습니다.
‘여행’이란 단어만 들어도 가슴이 설렙니다. 하던 일을 잠시 쉬고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 충동을 느낍니다. 매일 똑같은 일상에서 벗어나 새로운 곳을 찾아다니며 휴식하고 새로움을 경험하고 싶어집니다. 여행은 우리에게 희망이고 활력을 주기 때문입니다.
여행은 산지식을 쌓는 좋은 교육으로 자신을 뒤돌아보는 계기가 됩니다.
미지의 세계 경험은 새로운 시각으로 자신을 바라볼 줄 알게 합니다.
그러나 여행은 아무나 할 수 있지만 용기가 있어야만 합니다. 이일 저일 바쁘다는 핑계로 여행하기가 결코 쉬운 것만은 아닙니다. 연중 생활환경 계획을 잘 세우면 나름대로 가끔 여행을 하면서 즐겁게 살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이렇게 사는 것은 어쩌면 신의 깊은 뜻이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합니다. “지구에 나가 많은 것을 눈에 담고 돌아오너라. 그리고 네가 본대로 아뢰어라.”
그래서 저는 한 번뿐인 인생 최선을 다해서 잘 해보려고 노력했습니다.
소녀시절 7~8시간씩 뱃멀미를 하며 다녀오던 제주도 여행, 비행기를 타던 첫 경험, 단풍철에 찾던 내장산 백양사 설악산 지리산 경주 불국사 등 전국의 명소가 모두 아름다운 추억이 되어 무료한 일상생활에 조미료 역할을 많이 하여 살아갈 힘을 보태주었습니다.
우리나라 경제가 좋아진 기점인 88 올림픽이 끝난 후부터는 이웃 일본을 비롯하여 홍콩 필리핀 태국 대만 하와이 미국 호주 러시아 이집트 터키 그리스 몽골 티베트 중국의 땅을 밟아 본 것은 그때마다 큰 용기가 필요했습니다.
“여행은 떠날 각오가 되어 있는 사람만이 자기를 묶고 있는 속박에서 벗어날 수 있다.” 라고 헤르만 헷세가 말했습니다. 맞는 말입니다.
저는 기회를 잃으면 다시는 그 기회가 오지 않는다는 생각으로 열심히 참여하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래서 어렸을 때부터의 꿈이던 백두산 천지며 한라산 구상나무도 바라볼 수가 있었습니다.
한겨울 한라산에 올라가다 백록담 300m를 전방에 두고 꼭대기까지 못 오른 것은 두고두고 가슴 아픈 일입니다. 그래서 여행도 건강이 좋을 때 해야 합니다. 젊어서 해야 합니다.
그런데 그 깨달음이 너무 늦었고 이제는 늙고 힘이 없어 가벼운 여행밖에 할 수가 없습니다.
사막에서 낙타를 타고 모래썰매를 타던 일, 몽골 초원에서 말 타기, 소금호수를 걷던 일, 투탕카멘과 스핑크스를 보러 이집트의 37도 뜨거운 사막을 걷던 일, 동로마의 고대경기장, 그리스 신전, 그랜드캐년, 돈황 막고굴의 벽화, 병령사 수많은 불상들, 상그릴라 옥룡설산, 천칭열차, 라싸의 포탈라궁, 에르미타슈 미술관 등을 돌아보던 때는 그래도 다리 힘이 좋았던 때입니다.
이제는 텔레비전을 통하여 간접 여행도 즐겁습니다. 이름난 세계 여러 풍경을 마주할 때마다
제가 그 장소에 있는 듯 착각을 합니다.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다.”라는 김우중 대우회장의 자서전이 있었지요. “귀여운 자식에게 여행을 하게하라“라는 인도 속담도 있습니다.
저도 젊어서 여행을 많이 해보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여러분 여행을 하면서 인생을 즐겁게, 정신을 젊게 합시다.
지금까지 여행에 대하여 말씀드렸습니다.
송수권 시인 약력
전남 고흥군 1940년 3월 15일 출생, 1975년 서라벌예대문예창작과 졸업, 순천대학교 인문예술대학 문예창작학과 교수 역임. 1975년 《문학사상》에 〈산문에 기대어〉가 당선되어 등단하였다. 시집으로 《산문에 기대어》,《꿈꾸는 섬》,《우리들의 땅》 등이 있다. 문공부 예술상, 전라남도 문화상, 소월시문학상, 서라벌문학상 1990 국민훈장 목련장 1993 서라벌문학상 1995 제10회 평화문학상 1996 제7회 김달진 문학상 1999 정지용문학상 2003 제1회 영랑시문학상 2012 제8회 김삿갓문학상 2013 제5회 구상문학상 수상
수눌음 / 송수권
잠녀들이 바닷속으로 들어간 까닭은
설문대가 바닷속에서 솟았듯이
수직의 깊이로만 그들은 바닥을 긁는다
한라산이 그녀의 치마 속에서 솟았고
4백여 오름오름이 그 헤진 치마폭 구멍 속에서
쏟아져 쌓인 흙이었듯이
수직으로만 오름을 오르고
수직으로만 한라산을 오른다
용천수가 땅 속에서 솟아나듯이
제주 사람들은 태생적으로 모두 삶의 길이
그 바닥을 처음부터 보고 있었던 것이다
걸대를 정낭에 걸어 안을 비워 놓고
애기 구덕 하나는 밭가에 부려 놓고
허리에 멱서리를 차고서
바닥을 긁어 씨감자를 묻듯이
외롭고 높고 쓸쓸한 섬을
바다가 늘 수평선으로 빨랫줄을 치듯이
안보다는 밖을 더 튼튼히 얽어
올레길을 만들고 돌담을 쌓는다
유채꽃이 아름다운 빌레밭
오늘은 저녁 노을의 양파밭을 깔고 앉은
그 밭담 안의 수놀음 풍경이 물까마귀들 같이 정겹다
왱병 / 송수권
캄캄한 대숲 오래된 집 부뚜막엔 언제나 왱병 한 개가 놓여 있습지요. 왱병 속엔 무엇이 들어있을까요? 가전비법으로 전해져 오는 식초 눈이 살아 있어 들척지근 혀끝이 오그라붙기도 하지요 남도 사람들은 이 맛을 두고 왱병이 운다고 합니다 봄바람 불어 한 번 가을바람 불어 또 한 번 그래서 앵병을 아예 왱병이라고 부르는데 그 병 모가지만 보아도 눈이 절로 감겨오고 황새목처럼 목이 찔룩거려 옵니다
봄은 주꾸미 철이고 가을은 전어 철입지요 부뚜막 왱병이 한 자리 얌전히 있지 못하고 오도방정 떠는 통에 구들장 들썩거려 빙초산 초파리들처럼 잠 못 이루는 밤이 시어집니다 앞대 개포, 주꾸미 배 들었나 한 겨울 밤에도 허리가 쑤시고 늙은이는 아리고 쓰린 가슴 잠 못 듭니다 죽을 때도 허공에 마지막 깍지손 얹고 왱병 모가지 잡는 시늉 하며 손무덤 짓습니다
그래서 남도 살마 소리는 왱병 모가지 비트는 소리로 통성이 되고 수리성도 됩니다 또 이것을 시김새 소리라고도 합지요 시김새 붙은 소리는 왱병속에서 왔기에 소리 중에서도 땅을 밟는 뱃소리 하다못해 한바탕 바가지로 설움을 떠내는 큰 소리꾼이 되고 명창도 되는 것입지요
아내의 맨발1. / 송수권
-연엽에게
그녀의 피 순결하던 열 몇 살 때 있었다
이불 속에서 사랑을 속삭이던 때 있었다
蓮(연) 잎새 같은 발바닥에 간지럼 먹이며
철없이 놀던 때 있었다
그녀 발바닥을 핥고 싶어 먼저 간지럼 먹이면
간지럼 타는 나무처럼 깔깔거려
끝내 발바닥은 핥지 못하고 간지럼만 타던
때 있었다
이제 그 짓도 그만두자고 그만두고
나이 쉰 셋
정정한 자작나무, 백혈병을 몸에 부리고
여의도 성모병원 1205호실
1번 침대에 누워
그녀는 깊이 잠들었다
혈소판이 깨지고 면역체계가 무너져 몇 개월째
마스크를 쓴 채, 남의 피로 연명하며 살아간다
꿈꾸는 섬 / 송수권
말없이 꿈꾸는 두 개의
섬은 즐거워라
내 어린 날은 한 소녀가 지나다니던 길목에
그 소녀가 흘려내리던 눈웃음결 때문에
길섶의 잔풀꽃들도 모두 걸어나와
길을 밝히더니
그 눈웃음결에 밀리어 나는 끝내 눈병이 올라
콩알만한 다래끼를 달고 외눈끔적이로도
길바닥의 돌멩이 하나도 차지 않고
잘도 지내왔더니
말없이 꿈꾸는 두 개의
섬은 슬퍼라
우리 둘이 지나다니던 그 길목
쬐그만 돌 밑에
다래끼에 젖은 눈썹 둘, 빼어 눌러놓고
그 소녀의 발부리에 돌이 채여
그 눈구멍에도 다래끼가 들기를 바랐더니
이승에선 누가 그 몹쓸 돌멩이를
차고 갔는지
눈썹 둘은 비바람에 휘몰려
두 개의 섬으로 앉았으니
말없이 꿈꾸는 저 두 개의
섬은 즐거워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