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
민문자
지금부터 신년에 대하여 말씀드리겠습니다.
신년이란 우리말로 ‘새해’라는 뜻입니다.
‘새해’ 이 얼마나 신선한 말입니까? 오늘 새벽 당신도 가슴이 설레지 않았습니까?
우리는 새것을 좋아합니다. 새해, 새달, 새날, 새신랑, 새색시, 새아기, 새집, 새 옷, 새 신발…….
해마다 12월 마지막 날인 제야가 지나면 어김없이 언제나 오는 새해 첫날은 보통 날과 다름이 없건만 이날 새벽의 사람들 마음은 하이타이 세제로 말끔히 씻어낸 것처럼, 아니 금방 어머니 뱃속에서 나온 아이처럼 순수해집니다.
1월 1일, 첫째 날은 누구나 하루가 지나면 흐트러질지라도 눈같이 하얀 마음으로 올해는 삼백예순날을 잘 보내겠다고 굳게 마음먹지요. 이런 마음을 초심이라고 하는데 올해 기필코 12월이 끝날 때까지 적어도 50% 이상은 자기 계획을 성취하도록 해봅시다.
저는 새벽 여명이 밝아오기도 전에 목욕재계하고 두꺼운 옷을 겹겹이 입고 얼굴만 살짝 내놓고 구로구 해맞이 장소인 매봉산 구마루 정상에 올라섰습니다. 발을 옮길 수조차 없을 만큼 많은 사람과 함께 영하 10도가 넘는데도 빨갛게 언 양 볼을 부비면서 한 시간 이상을 기다리다 말갛게 떠오르는 해님을 맞이했습니다. 다른 사람들도 엄숙한 표정으로 기다리다 풍선을 하늘 높이 날리며 환호하면서 황금빛으로 온 누리를 비추는 태양을 맞이했습니다. 모두 진지한 표정을 지으며 자신의 소망을 해님과 약속하는 광경은 참 볼만했습니다.
저는 2015년 새 아침 새 결심을 꼽아보았습니다.
나는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존재
나의 마음의 소리에 귀 기울여 그 소망을 이루게 하라.
나 자신을 믿어라. 내가 나를 믿어야 남도 나를 믿는다.
나 자신을 칭찬하라. 자신감은 기적을 만든다.
나의 기쁨은 소망을 이루는 촉진제 미소를 항상 잃지 마라.
나의 건강은 내가 지킨다. 밥 잘 먹고 잠 잘 자고 배변 잘한다.
나는 약속을 잘 지키는 사람이다. 신뢰가 가장 중요하다.
나는 매사에 정성을 다하는 사람이다. 정성은 하늘도 감동한다.
나의 걸음이 느려도 계속은 힘이 된다. 준비하는 자에게 기회가 온다.
나는 긍정의 힘을 믿는다. 긍정과 열정은 나를 발전시킨다.
우선 해님과 단단히 약속했지요.
아무리 도리질을 해도 이 세상에서 내 꿈을 펼칠 기회가 얼마 남지 않았다는 생각을 뿌리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남은 세월만이라도 효율적으로 잘 이용해야 하는데 그러려면 건강을 잘 유지하는 것이 최우선 과제이므로. 첫째 건강하게 살겠습니다.
둘째 지난 세모에 다음카페 ‘구마루 무지개’를 개설했는데 많은 손님이 즐겁게 찾아오는 명소로 만들겠습니다. 셋째 더 좋은 스피치와 시낭송 강좌가 되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올해는 이 세 가지 결심을 모두 잘 이루게 해달라고 해님께 부탁했습니다.
지금까지 저는 신년에 대하여 말씀드렸습니다.
이승훈 약력
1942년 강원 춘천 출생, 아호는 이강(二江), 1960년 춘천고를 졸업했다.
그 후 한양대 섬유공학과를 수료하고 동대 국어국문학과 졸업과 석사과정, 1968년 연세대 국문과 박사 과정을 수료하고 1963년 [현대문학]에서 시 <낮>과 <두 개의 초상>이 추천되어 문단에 데뷔하게 되었다. 현대시 동인으로 활동했으며 춘천교대, 한양대, 동덕여대, 동국대, 연세대, 등에서 강사, 부교수 교수 등을 역임하였으며 현재 한양대 국어국문학전공 교수
★수상경력:*1976년 강원도 문화상*1982년 현대문학상 *2003년 백남 학술상 *2004년 제 9회 <시와시학> 평론상(모더니즘의 비판적 수용을 수상)
★저서와 논문 : *모더니즘의 비판적 수용(비평집)등 평론집과 이론서 등, 학술가로서 현재까지 거의 매년 한 권 정도의 총 활발한 저서활동을 보여 주고 있다.
*1979년 시론(평론집)
*1983년 비대상 *1983년 문학과 시간
*1987년 이상 시연구 *1987년 한국시의 구조분석
*1988년 시작법 *1989년 이상 시선집
*1991년 포스트모더니즘의 시론 *1992년 글을 어떻게 쓸 것인가
*1993년 한국 현대시론사 *1993년 한국 대표시
*1995년 모더니즘 시론 *1995년 문학상징사전(편)
*1996년 한국현대시 새롭게 읽기 *1997년 나는 사랑한다
*1998년 해체시론 *1999년 한국 현대시의 이해
*2000년 한국모더니즘 시사 *2001년 현대비평이론
*2003년 시적인 것도 없고 시도 없다 *2003년 탈근대 주체이론
★작품으로는
1969년 사물A라는 시집, 1976년 환상의 다리
1981년 당신의 초상, 1983년 사물들
1984년 상처, 1986년 당신의 방
1987년 너를 본 순간, 1989년 너라는 환상
1991년 길은 없어도 행복하다, 1993년 밤이면 삐그노가 그립다
1995년 밝은 방, 1997년 나는 사랑한다
2000년 너라는 햇빛, 2002년 인생, 2003년 비누
[출처] 이승훈 시인|작성자 느낌표
봄날은 간다 / 이승훈
낯선 도시 노래방에서 봄날은 간다
당신과 함께 봄날은 간다 달이 뜬
새벽 네시 당신이 부르는 노래를 들
으며 봄날은 간다 맥주를 마시며 봄
날은 간다 서울은 머얼다 손님 없는
노래방에서 봄날은 간다 달이 뜬 거
리로 간다 술에 취한 봄날은 간다
안개도 가고 왕십리도 가고 노래방
도 간다 서울은 머얼다 당신은 가깝
다 내 목에 두른 마후라도 간다 기
차는 가지 않는다 나도 가지 않는다
봄날은 가고 당신도 가지 않는다 연
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휘날리더라
해가 뜨면 같이 웃고 해가 지면 같
이 울던 봄날은 간다 바람만 부는
봄날은 간다 글쟁이, 대학교수, 만성
떠돌이, 봄날은 간다 머리를 염색한
우울한 이론가, 봄날은 간다 당신은
남고 봄날은 간다 연분홍 치마가 봄
바람에 휘날리더라 새파란 풀잎이
물에 떠서 흘러가더라
모욕 / 이승훈
그리움과 모욕밖에 남은 것이 없다
머언 들 위로는 마른 바람 일고
하아얀 불이 탄다
벙어리같은 시를 쓰며
풀잎에 어린 햇살처럼
나는 살고 싶었다 파열하는
마음만이 그 뜻을 안다
하늘 한 조각 베어 먹고
배가 고프면 웃는다 그래도
살아나는 웃음이 희열이 되는 날
헤매이는 날
마파람에 얼굴 트며
벙어리 벙어리 말도 못하고
비를 맞으면 맞을수록 목마른
그대와 나, 아아 그리움과 모욕밖에
남은 것이 없다
밤비 / 이승훈
밤비는 내리고 바람은 불고
님은 떠난다
추운 밤 불빛에 젖는 이 종이가
나인지 모른다 그러나 가을밤
비는 내리고 바람이 자면
빗소리 이 종이를 뚫고
나를 뚫는다 밤비 속에 밤비 속에
허옇게 센 머리 펄럭이며
이런 시를 써서 무얼 하나?
가을밤 비는 내리고
님은 떠나고 나는 기침을 하고
계속 입을 틀어막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