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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문자 시인의 작품읽기

민문자 시인
벗의 병 문안 ㅡ 충성
작성자: 민문자 추천: 0건 조회: 10880 등록일: 2013-12-19

충성

 

민문자

 

 

그 환한 미소

그 사근사근한 목소리

그 덕스러운 모습

그 아름다운 마음씨

 

이 세상 모두에게 충성했지

아니

이름대로

열심히 살았을 뿐이야

 

그런데 왜?

공평해야 하지 않아?

나도 모르지

아마도 하늘의 오류일 거야

 

어느 날 하도 힘들어서

딱 한 번쯤

충성을 덜 했는지도 몰라

 

다음부터는

하늘이 헷갈리지 않게

더욱 충성할텐데

내가 사정 한번 해볼게

 

 

추억

 

민문자

 

친구야

무심천이 보이느냐

남다리가 보이느냐

곤색 교복을 입었던 교대시절

4·19 와중에 도청 앞마당까지

스크럼을 짜고 하던 데모

너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다고

울상을 지었지

 

학교 기숙사에서

영숙이의 자취방에서

생쌀을 먹으며 공부하던 시절

넷이서 하하 호호

어울려 다니며 꿈꾸던 미래가

이런 세상이 올 줄 알았니?

그때는 정말 상상도 못 했지

허접했어도 아름다운 추억이었어

 

그래도 모두 초등학교 교사를 거쳐

건강한 신랑들을 맞고 일가를 이루었지

아이 못난 병신은 없어 다행이었어

이 세상에 와서 꼭 할 일을 모두 잘한 거야

그중에 네가 제일 잘했지

아이들 골고루 낳아 모두 성혼시켜서

그동안 재롱둥이 손자손녀들

재미 톡톡히 보는 걸 하늘은 샘이 났나?

 

벗이여, 기억하는가

억수로 비가 오는 장마철

무주구천동 연화사에서의

젊디젊은 스님이 아침을 가르는 소리

~ 목동아~ ~ 목동아~’

지금도 그 목소리 들려온다

 

우리 네 쌍의 부부와 아이들 열 명

열여덟이 밤 벚꽃을 즐기던 창경궁

열 살을 전후한 개구쟁이들 챙기며

또 여덟이 제주도 여행을 하던 에피소드

! 그리워라

그 아름답던 젊은 날이여

 

어쩌랴

파뿌리 된 허연 머리

그 펄펄 뛰던 우리들의 심장

이제는 쉬고 싶다고 아우성이니

시간이 없다고 생명시계가

자꾸만 신호를 보내는구나

지금은 아름다운 추억을 잘 보듬을 때

사랑하는 그대여

너를 좋아했다 그리고 사랑했다

그럼 안녕

 

 

막다른

 

민문자

 

우리는 태어나면서부터

길을 찾아 헤매었다

길을 찾다 길이 끊어진 막다른 골목에서

얼마나 당황하는가

 

젊은 날 다정했던 벗

오늘 입원한단다

자신의 발로 걸어가는 길

그 길이 얼마나 길게 뻗어 있을까

 

수년간 암 투병으로 시들어버린 그녀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이

무엇이란 말인가

아름다웠던 추억담도 잠시뿐

 

희망을 잃은 그녀에게

나는 길 잃은 미아

어찌 해야 하나

막막한 심정 울고 싶어라

 

 

기도

 

민문자

 

하늘에 계신 신이시여

저의 기도를 들어주세요

 

마음이 예쁜 벗 하나가 있습니다

그녀가 지금 몹시 아파합니다

절망하고 있습니다

 

신이시여

그녀의 고통을 사르시고

희망을 안겨주세요

 

얼른 다가가 그녀의 손을

잡아주지 못한 죄

간곡히 참회합니다

 

그녀의 아름다운 마음

예쁘게 받아주소서

벗의 소망을 들어주소서

 

 

 12월 12일, 그대의 향기 노래 C/D, 난을 그린 시화 1점,  또 이렇게 시 몇 점을 가슴에 품고

언젠가 그렇게 맛있게 먹었노라던 호박떡과 홍시 몇개를 사가지고 눈바람을 헤치고 찾아갔다.

가슴 두근거리며 찾아가 보니 생각보다는 양호하였다.

암투병 5년 희망이 없다며 다시

17일 입원한다고 했는데 전화걸기가 겁이 난다.

무슨 말이 필요하단 말인가, 그저 웃는 얼굴은 쓸쓸한 그림자를 어쩌지 못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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