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달 첫째 월요일 강좌는 초청강사 특강이 있습니다.
이번에는 세번째로 이준섭 아동문학가의 특강이 있었습니다.
우리나라 최초의 동시 최남선의 <해에게서 소년에게>로 시작해서
동시 잘 짓는 법, 좋은 동시와 작가를 소상하게 설명하여 주었습니다.
아침 햇살이
이준섭
간밤 별꽃을 꽃피워 온 아침 햇살이
집집마다 새하늘을 하나씩 내려놓고 있다
간밤 꿈길을 밟고 온 아침 햇살이
아가 방 유리창에 꽃잎 피워놓고 있다
아직 남은 골목 어둠 스슥스슥 쓸어내며
아직 남은 구석 어둠 슬금슬금 훔쳐내며
창문마다 해님 웃음 소르르 솔솔 띄워 준다
아가 꿈에 햇살 꽃잎 사르르 살살 뿌려 준다
초청강사 <이준섭 아동문학가 약력>
1977;월간문학 시조 당선.1980: 동아일보 신춘문예 동시 당선, 한국아동문학상, 방정환아동문학상 등 수상 1986: 동시집 “대장간 할아버지”외 4권 발간.1988:시조집“새아침을 위해”외 3권 발간.수필집“ 국화꽃 궁전”동화집“ 잇꽃으로 핀 삼총사” 발간. 전화: 010-8467-9915
목마와 숙녀 / 박인환
한 잔의 술을 마시고
우리는 버지니아 울프의 생애와
목마(木馬)를 타고 떠난 숙녀(淑女)의 옷자락을 이야기한다.
목마는 주인을 버리고 거저 방울 소리만 울리며
가을 속으로 떠났다.
술병에서 별이 떨어진다.
상심(傷心)한 별은 내 가슴에 가벼웁게 부숴진다.
그러한 잠시 내가 알던 숙녀는
정원의 초목 옆에서 자라
문학이 죽고 인생이 죽고
사랑의 진리마저 애증(愛憎)의 그림자를 버릴 때
목마를 탄 사랑의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세월은 가고 오는 것
한때는 고립을 피하고 시들어가고
이제 우리는 작별하여야 한다.
술병이 바람에 쓰러지는 소리를 들으며
늙은 여류작가(女流作家)의 눈을 바라다보아야 한다.
등대에 …
불이 보이지 않아도
그저 간직한 페시미즘의 미래를 위하여
우리는 처량한 목마 소리를 기억하여야 한다.
모든 것이 떠나든 죽든
그저 가슴에 남은 희미한 의식을 붙잡고
우리는 버지니아 울프의 서러운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
두 개의 바위 틈을 지나 청춘을 찾는 뱀과 같이
눈을 뜨고 한잔의 술을 마셔야 한다.
인생(人生)은 외롭지도 않고
그저 낡은 잡지(雜誌)의 표지처럼 통속(通俗)하거늘
한탄할 그 무엇이 무서워서 우리는 떠나는 것일까.
목마는 하늘에 있고
방울 소리는 귓전에서 철렁거리는데……
가을 바람 소리는
내 쓰러진 술병 속에서 목메어 우는데……
세월이 가면 / 박인환
지금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
그의 눈동자 입술은
내 가슴에 있어
바람이 불고
비가 올 때도
나는 저 유리창 밖
가로등 그늘의 밤을 잊지 못하지
사랑은 가고
과거는 남는 것
여름날의 호숫가
가을의 공원
그 벤치 위에
나뭇잎은 흙이 되고
나뭇잎에 덮여서
우리들 사랑이 사라진다 해도
지금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
그의 눈동자 입술은
내 가슴에 있어
내 서늘한 가슴에 있건만
검은 강 / 박인환
신(神)이란 이름으로서
우리는 최후의 노정(路程)을 찾아보았다.
어느 날 역전에서 들려오는
군대의 합창을 귀에 받으며
우리는 죽으러 가는 자와는
반대 방향의 열차에 앉아
정욕(情欲)처럼 피폐한 소설에 눈을 흘겼다.
지금 바람처럼 교차하는 지대
거기엔 일체의 불순한 욕망이 반사되고
농부의 아들은 표정도 없이
폭음과 초연(硝煙)이 가득 찬
생(生)과 사(死)의 경지로 떠난다.
달은 정막(靜寞)보다도 더욱 처량하다.
멀리 우리의 시선을 집중한
인간의 피로 이룬
자유의 성채(城砦)
그것은 우리와 같이 퇴각하는 자와는 관련이 없었다.
신이란 이름으로서
우리는 저 달 속에
암담한 검은 강이 흐르는 것을 보았다
살아 있는 것이 있다면 / 박인환
살아 있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나와 우리들의 죽음보다도
더한 냉혹하고 절실한
회상과 체험일지도 모른다
살아 있는 것이 있다면
여러 차례의 살육(殺戮)에 복종한 생명보다도
더한 복수와 고독을 아는
고뇌와 저항일지도 모른다
한 걸음 한 걸음 나는 허물어지는
정적(靜寂)과 초연(硝煙)의 도시(都市) 그 암흑 속으로……
명상과 또다시 오지 않을 영원한 내일로……
살아 있는 것이 있다면
유형(流刑)의 애인처럼 손잡기 위하여
이미 소멸된 청춘의 반역(反逆)을 회상하면서
회의와 불안만이 다정스러운
모멸(侮蔑)의 오늘을 살아 나간다
아 최후로 이 성자(聖者)의 세계에
살아 있는 것이 있다면 분명히
그것은 속죄(贖罪)의 회화(繪畵) 속의 나녀(裸女)와
회상도 고뇌도 이제는 망령(亡靈)에게 팔은
철없는 시인(詩人)
나의 눈 감지 못한
단순한 상태의 시체(屍體)일 것이다
박인환(1926-1956) 약력
강원 인제(麟蹄) 출생. 경성제일고보를 거쳐 평양의전(平壤醫專) 중퇴. 종로에서 마리서사(書肆)라는 서점을 경영하면서 많은 시인들과 알게 되어 1946년부터 시를 쓰기 시작했다. 《거리》 《남풍(南風)》 《지하실(地下室)》 등을 발표하는 한편 《아메리카 영화시론(試論)》을 비롯한 많은 영화평을 썼고 1949년에 김경린(金璟麟) ·김수영(金洙暎) 등과 함께 《새로운 도시와 시민들의 합창》을 간행하면서 모더니즘의 대열에 끼었다. 1955년 《박인환선시집(朴寅煥選詩集)》을 간행했고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를 번역하여 시공관에서 신협(新協)에 의해 공연되기도 했다. 《세월이 가면》 《목마(木馬)와 숙녀》 등은 널리 애송되는 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