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7강 스피치와 시낭송 문학의 집 ‧ 구로 2013. 10. 21. 월
우정
오늘은 우정에 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절친한 벗과의 우정을 지음(知音)과 절현(絶絃)이라고 합니다
백아(伯牙)와 그의 벗 종자기(鐘子期)의 고사가 있습니다. 백아는 진(晉)나라 대부 유백아라는 사람인데 원래는 초(楚) 나라 사람으로 거문고를 기가 막히게 연주한, 요즘 말로 하자면 그야말로 달인 중의 달인이었습니다. 지음(知音)이란 말은 춘추시대 거문고의 명인인 백아가 자신의 조국인 초나라에 사신으로 가면서 모처럼 고향을 찾았습니다.
그때가 마침 추석 무렵이어서 한가위 보름달이 휘영청 밝은 밤 거문고를 탔습니다. 그야말로 아름다운 달빛 아래서 아름다운 연주가 어우러진 한 폭의 그림이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마침 그 연주를 엿듣고 있던 사람이 있었습니다. 차림새는 볼품없는 젊은 나무꾼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외모와는 달리 귀는 아주 밝았습니다. 놀랍게도 그 젊은 나무꾼이 백아의 음악을 꿰뚫고 있었습니다. 백아는 자신의 음악을 그토록 정확하게 파악한 사람이 놀랍기도 하고 반갑기도 했습니다. 그때까지 그 어느 누구도 백아의 음악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해석한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 점이 늘 못내 서운하고 아쉬웠던 백아였으니 그가 얼마나 놀라웠겠는지 짐작하기 어렵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백아는 그 사람이 우연히 자신의 음악을 알았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해 시험해 보기로 했습니다. 그는 다시 혼신을 다해 거문고를 탔지요. “참으로 웅장합니다. 하늘을 찌를 듯한 산이 눈앞에 있군요.”나무꾼은 정확하게 백아의 표현과 의도를 알아냈습니다. 속으로 놀랍기도 하고 반갑기도 했던 백아는 그 속을 끝까지 캐내고 싶어 이번에는 다른 곡을 탔습니다. “기가 막힙니다. 유유히 흐르는 강물이 눈앞을 지나가는 것 같습니다.”백아가 어떤 곡을 연주하든 그 나무꾼은 한 번도 틀리지 않고 정확하게 파악해냈습니다. “당신은 진정 소리를 아는 사람이오.”백아는 감탄해서 그의 이름을 물었습니다. “종자기라고 합니다.”
백아는 자신을 종자기라고 소개한 나무꾼과 의형제를 맺었습니다. 자신의 소리를 알아주는 사람, 그것은 자기의 속마음까지 알아줄 수 있다는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다음 해에 다시 만나자고 약속하고 헤어졌습니다. 이듬해 백아가 종자기의 집을 찾아갔습니다. 자신의 음악과 속마음까지 정확하게 이해한 친구와 함께 마음껏 어울리고 행복을 누릴 기대가 컸지요. 그러나 종자기는 이미 세상을 떠났기 때문에 백아는 종자기를 만날 수 없었습니다. 백아의 절망감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지요. 종자기의 무덤을 찾은 백아는 그 무덤 앞에서 아주 슬픈 곡을 연주했습니다. 그리고 그 곡은 백아의 마지막 연주였습니다. 그는 거문고의 줄을 끊고 산산조각 냈습니다. 다시는 연주하지 않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그게 바로 절현(絶絃)의 고사입니다. “지음이 없으니 더 이상 거문고를 타서 무엇 하랴.”자신의 소리를 제대로 이해해 주는 사람이 없으니 소리 자체를 포기한다는 결심이었지요.
그래서 우정하면 지음지교(知音之交), 백아절현(伯牙絶絃)을 떠올리게 되었습니다.
오늘은 우정에 대하여 말씀 드렸습니다.
해 / 박두진
해야 솟아라, 해야 솟아라, 말갛게 씻은 얼굴 고운 해야 솟아라
산 너머 산 너머서 어둠을 살라 먹고 산 너머서 밤새도록
어둠을 살라 먹고 이글이글 애띤 얼굴 고운 해야 솟아라
달밤이 싫어, 달밤이 싫어, 눈물같은 골짜기에 달밤이 싫어
아무도 없는 뜰에 달밤이 싫어
해야 고운 해야, 늬가 오면, 늬가사 오면, 나는 나는 청산이 좋아라
훨훨훨 깃을 치는 청산이 좋아라. 청산이 있으면 홀로래도 좋아라
사슴을 따라 사슴을 따라 양지로 양지로
사슴을 따라 사슴을 만나면 사슴과 놀고
칡범을 따라 칡범을 따라 칡범을 만나면 칡범과 놀고
해야 고운 해야 해야 솟아라 꿈이 아니래도 너를 만나면
꽃도 새도 짐승도 한자리에 앉아 워어이 워어이 모두 불러
한자리에 앉아 애띠고 고운 날을 누려 보리라
강(江) 2 / 박두진
나는 아직도 잊을수 잊을 수가 없다
그날 강물은 숲에서 나와 흐르리
비로소 채색되는 유유(悠悠)한 침묵
꽃으로 수장(水葬)하는 내일에의 날개짓
아, 홍건하게 강물은 꽃에 젖어 흐르리
무지개 피에 젖은 아침 숲 짐승 울음
일체의 죽은 것은 떠나게 가리
얼룽대는 배암 비늘 피발톱 독수리의
이리 떼 비둘기 떼 깃죽지와 울대뼈의
피로 물든 일체는 바다로 가리
비로소 햇살 아래 옷을 벗는 너의 전신(全身)
강이여, 강이여, 내일에의 피 몸짓
네가 하는 손짓을 잊을 수가 없어
강 흐름 피무늬길 바다로 간다
하늘 / 박두진
하늘이 내게로 온다
여릿여릿 머얼리서 온다
하늘은 머얼리서 오는 하늘은 호수처럼 푸르다
호수처럼 푸른 하늘에 내가 안긴다
온몸이 안긴다 가슴으로 가슴으로
스미어드는 하늘 향기로운 하늘의 호흡
따가운 볕 초가을 햇볕으로 목을 씻고
나는 하늘을 마신다 자꾸 목말라 마신다
마시는 하늘에 내가 익는다 능금처럼 마음이 익는다
향현(香峴) / 박두진(朴斗鎭)
아랫도리 다박솔 깔린 산 너머 큰 산
그 너머 산 안 보이어, 내 마음 둥둥 구름을 타다
우뚝 솟은 산, 묵중히 엎드린 산, 골골이 장송(長松) 들어섰고
머루 다래 넝쿨 바위 엉서리에 얽혔고, 샅샅이 떡갈나무 억새풀 우거진 데
너구리 여우 사슴 산토끼 오소리 도마뱀 능구리 등 실로 무수한 짐승을 지니인
산 산 산들! 누거 만 년(累居萬年) 너희들 침묵이 흠뻑 지리함즉 하매
산이여! 장차 너희 솟아난 봉우리에 엎드린 마루에
확확 치밀어 오를 화염(火焰)을 내 기다려도 좋으랴?
핏내를 잊은 여우 이리 등속이 사슴 토끼와 더불어
싸릿순 칡순을 찾아 함께 즐거이 뛰는 날을 믿고 길이 기다려도 좋으랴?
묘지송(墓地頌) /박두진
북망(北邙) 이래도 금잔디 기름진데 동그만 무덤들 외롭지 않어이
무덤 속 어둠에 하이얀 촉루가 빛나리, 향기로운 주검의 내도 풍기리
살아서 설던 주검 죽었으매 이내 안 서럽고, 언제 무덤 속 화안히
비춰 줄 그런 태양만이 그리우리
금잔디 사이 할미꽃도 피었고, 삐이 삐이 배 뱃종! 뱃종! 멧새들도 우는데
봄볕 포근한 무덤에 주검들이 누웠네
마법의 새 / 박두진
바다를 떠나 너의 손을 잡는다
사람의 손에게 이렇게
따뜻함을 느껴본 것이 그 얼마만인가
거친 폭포를 뛰어넘어
강물을 거슬러 올라가는 고통이 없었다면
나는 단지 한 마리 물고기에 불과했을 것이다
누구나 먼 곳에 있는 사람을 사랑하기는 쉽지 않다
누구나 가난한 사람을 사랑하기는 쉽지 않다그
동안 바다는 너의 기다림 때문에 항상 깊었다
이제 나는 너에게 가장 가까이 다가가 산란을 하고
죽음이 기다리는 강으로 간다
울지 마라 인생을 눈물로 가득 채우지 마라
사랑하기 때문에 죽음은 아름답다
오늘 내가 꾼 꿈은 네가 꾼 꿈의 그림자일뿐
너를 사랑하고 죽으러 가는 한낮
숨은 별들이 고개를 내밀고 총총히 우리를 내려다본다
이제 곧 마른 강바닥에 나의 은빛 시체가 떠오르리라
배고픈 별빛들이 오랜만에 나를 포식하고
웃음을 터뜨리며 밤을 밝히리라
꽃구름 속에 / 박두진 시, 이흥렬 작곡
꽃바람 꽃바람 마을마다 훈훈히 불어오라
복사꽃 살구꽃 화안한 속에
구름처럼 꽃구름 꽃구름 화안한 속에
꽃가루 흘뿌리어 마을마다
진한 꽃향기 풍기어라
추위와 주림에 시달리어
한 겨우내 움치고 떨며 살아온 사람들
서러운 얘기 서러운 얘기
아 아 까맣게 잊고 꽃향에 꽃향에 취하여
아득하니 꽃구름속에 쓰러지게 하여라
나비처럼 쓰러지게 하여라
도봉 / 박두진
산(山)새도 날러와 우짖지 않고
구름도 떠가곤 오지 않는다
인적 끊인 듯 홀로 앉은 가을 산(山)의 어스름
호오이 호오이 소리 높여 나는 누구도 없이 불러 보나
울림은 헛되이 빈 골 골을 되돌아 올뿐
산(山)그늘 길게 늘이며 붉게 해는 넘어 가고
황혼과 함께 이어 별과 밤은 오리니
생(生)은 오직 갈수록 쓸쓸하니 사랑은 한갓 괴로울 뿐
그대 위하여 나는 이제도 이 긴 밤과 슬픔을 갖거니와
이 밤을 그대는 나도 모르는 어느 마을에서 쉬느뇨
청산도 / 박두진
산아. 우뚝 솟은 푸른 산아
철철철 흐르듯 짙푸른 산아숱한 나무들,
무성히 무성히 우거진 산마루에
금빛 기름진 햇살은 내려오고 둥 둥 산을 넘어
흰구름 건넌자리 씻기는 하늘 사슴도 안 오고
바람도 안 불고 넘엇 골 골짜기서 울어 오는 뻐꾸기
산아 푸른 산아 네 가슴 향기로운 풀밭에 엎드리면
나는 가슴이 울어라 흐르는 골짜기 스며드는 물소리에
내사 줄줄줄 가슴이 울어라 아득히 가버린 것 잊어버린 하늘과
아른 아른 오지 않는 보고싶은 하늘에
어쩌면 만나지도 못할 고운 사람이
난 혼자 그리워라 가슴으로 그리워라
티끌 부는 세상에도 벌레 같은 세상에도
눈 맑은 가슴 맑은 보고 싶은 나의 사람
달밤이나 새벽녁 홀로서서 눈물 어린 볼이 고운 나의 사람
달 가고 밤 가고 눈물도 가고 티어 올 밝은 하늘
빛난 아침 이르면 향기로운 이슬밭 푸른 언덕을
총총총 달려도 와줄 볼이 고운 나의 사람
푸른 산 한나절 구름은 가고 골 넘어 뻐꾸기는 우는데
눈에 어려 흘러가는 물결 같은 사람 속 아우성쳐 흘러가는
물결같은 사람 속에 난 그리노라
너만 그리노라 혼자서 철도 없이 난 너만 그리노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