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집
민문자
우리는 비바람을 피할 수 있는 안전한 집에서 태어나고
평생 그 집이라는 울타리를 중심으로 생활하다 숨을 거둔다
그래서 사람들은 좀 더 좋은 집을 갖고자 평생 그리 땀 흘리며 방황하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 집이 내 원하는 대로 소유되기를 거부한다
심지어는 미꾸라지처럼 빠져나기도 한다
우리는 원시시대의 움막집을 선사시대박물관에서 본다
지금도 아프리카나 남미의 오지 원시생활을 영상으로 본다
나는 그 움막집보다 조금은 더 개선된 농촌 초가 삼 칸에서 태어났다
소녀 시절에는 새로 지은 너른 대청이 있는 기와집에서 살았고
결혼해서는 도회의 구석진 곁방살이 신혼을 맞았다
숙부님 배려로 상가 25평 주택에서 4년
처음 마련한 우리 집은 대지 63평 건물 22평
그 돌 붙인 슬라브 주택에서 3년의 단꿈도 잠깐
가장의 사업실패로 옮겨야만 했던 집
1977년 처음으로 아파트 생활 15평에서 다시 13평으로
또다시 두 군데의 상가주택 단칸방에서 와신상담
드디어 25평의 로얄 아파트 구입해 3년 살다
내 이름으로 5층 빌딩 신축해 가슴 부푼 꿈의 집도 가져보았고
59평 아파트에서도 살아보고
잘 꾸며서 평생 살 줄 알았던 49평 새 아파트도
가장의 2차 사업실패로 3년이 한계였어
43평 33평 임대아파트 세 군데 거쳐
드디어 장성한 아들과 함께 마련한 집
18층 고층 아파트 허리 7층 누각에서 10년을 살고 있다
재테크 유리한 번잡한 지역으로 이사하자는 아들에게
여기가 천국이니 이곳에서 눈감게 해달라고 부탁했다
숨이 다하면 시댁어른들 발치에 내 집
이 몸뚱이가 영원히 누워 있을 자리가 기다리고 있다
내가 돌아갈 수 있는 집이 있다는 것은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비록 그곳이 그 무서운 6‧25전쟁의 격전지 철원 비무장지대 안이라 하더라도
푸른 하늘 맑은 바람 부는 우청룡 좌백호 명당임에 가슴 설레며 기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