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아비의 피난지
민문자
고희의 지아비가 경북 아포에 가고 싶은 눈치다
이제 그의 발이 된 나는 봄비 내리는
경부고속도로 빗길을 달렸다
열 살 초등생이
6.25 전쟁으로 아비를 잃고
피난민이 되어 떠밀려 갔던 곳
배고플 때 밥을 먹여 주었다는 곳
서울내기 피난민이란 놀림과 질시에
1년 동안 학교에 가지 못했다는 곳
그래도 그곳에서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마친
제2의 고향이라서 일까
지아비는 해마다 3월1일과 8월15일이면
마음과 몸이 함께 달려가
친구들의 환대를 받고 돌아왔었다
지아비가 한창일 때
모교의 교실마다 TV를 들여놓고
노인잔치를 베풀었던 일을
친구들은 지금도 되뇌며 술안주로 삼았다
모두 고희를 넘기는 중이라
대졸도 초졸도 모두 평등한 처지이다
햇참외를 보내주던 분은 이미 고인이 되었고
자두를 보내주던 분이 총무 일을 보고
가을 사과를 보내주던 이는 회장이다
귀로에 김천까지 동승한 친구 분은
여름 냉면철에 값지게 내놓으려고 아껴둔
삼도봉 극락산 참배 한 상자를 실어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