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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문자 시인
제22회 시의 날 기념행사 『문학의 집•서울』에서
작성자: 민문자 추천: 0건 조회: 18150 등록일: 2009-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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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22회 시의 날 기념행사 『문학의 집‧서울』에서

 

시월의 마지막 날 종일 비가 내리자, 기온이 쑥 내려가 겨울이 갑자기 찾아온듯하다. (사)한국시인협회와 (사)한국현대시인협회는 11월1일이 일요일이어서 ‘제22회 시의 날’은 부득이 11월2일 월요일, 『문학의 집‧서울』에서 기념행사를 하게 되었다.

한국시인협회 최영규 사무총장이 사회자로서 행사를 진행하였다. 먼저 오탁번 (사)한국시인협회장은 인사말을 다음과 같이 하였다.

“시인은 민족과 국가의 미래를 예언하는 천부적인 임무를 타고났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 땅의 시인들은 식민지의 어둠과 이념 대립의 그늘을 오직 모국어의 피어린 숨결로 형상화하며 극복해 왔습니다. 시의 날을 기념하는 것은 시인이 고독하면서도 힘을 합쳐 우리 모국어를 갈고 닦아 언젠가는 민족 통일이 되고 민족 앞에 경배하는 날이 되기를 바라기 때문입니다.”

 

신세훈 (사)한국현대시인협회장은 ‘시의 날’ 선언문을 낭독하였다.

시는 삶과 꿈을 가꾸는 언어의 집이다.

우리는 시로써 저마다 가슴을 노래로 채워 막힘에는 열림을, 어둠에는 빛을, 끊어짐에는 이어짐을 있게 하는 슬기를 얻는다.

우리 겨레가 밝고 깨끗한 삶을 이어 올 수 있었던 것은 일찍부터 그러한 시심을 끊임없이 일구어 왔기 때문이다.

이 땅에 사는 우리는 이에 시의 무한한 뜻과 그 아름다움을 기리기 위하여 新詩 80년을 맞는 해, 육당 최남선의 <海에게서 少年에게>가 1908년 《少年》지에 처음 발표된 날, 십일월 초하루를 시의 날로 정한다.

 

시의 날 제전 모임 (사) 한국시인협회와 (사) 한국현대시인협회

 

 

김남조 원로 시인은 다음과 같이 축사를 하였다.

“시인은 시인 아무개란 관사를 붙여 저승에 갑니다. 운명적으로 시보리를 몸에 감고 세상에 나온 듯합니다. 그렇게 시의 가치가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제대로 표현할 수 있거나 없거나 유정하게 이 시대 시인들에게 아름답게 하고 깨어나게 하며 22년을 함께 시의 날을 한국시협과 현대시협이 기념해 온 역사는 아름답고 뜻이 깊습니다.”

 

다음은 문덕수 원로시인의 축사이다.

“시를 쓰는 사람들의 마음은 하나입니다. 사람들을 둘로 분류한다면 정치를 하는 사람들처럼 역사 속에서 사는 사람들과 역사를 바라보며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역사 속에서 살아가는 것도 중요한 일이지만 역사너머의 세계에서 만났다는 의미는 역사와 역사 너머의 세계를 아우르는 삶입니다. 시의 날 행사가 우리끼리도 좋지만, 시민과 함께하는 행사도 생각해 보았으면 합니다.”

 

시낭송 시간으로 먼저 현대시협의 김종제 시인, 임솔내 시인, 신주원 시인이 차례대로 나와 자작시를 낭송했다.

 

힘 / 김종제

 

러니까 말이여 네가 숨이 아직 붙어 있다고 힘(力) 자랑하지 말란 말이여, 힘(力)이란 무엇이냐, 우물가에서 우리 어머니가 물을 길어 올려 모여든 그네들의 항아리에 물 담아주는 것이 힘(力)이여, 이웃 논에 모내기에 김매기 한다는 소식을 듣고 우리 아버지가 득달같이 달려들어 바지 걷고 뛰어드는 것이 힘(力)이여, 그려, 힘(力)이란 무엇이냐 하면 말이여, 부싯돌이요, 쏘시개랑께, 부싯돌이 팅기면 쏘시개에 불이 붙고 그놈의 불꽃이 거친 분노의 함성으로 들판으로 번지는 것을, 아, 그게 바로 힘(力)이여, 달도 없고, 별도 없고, 이미 헤쳐 놓았던 길도 없고, 칠흑의 천지를 한꺼번에 무너뜨리는 한 점 불꽃이 힘(力)인 줄 여태 몰랐제, 자네 쇠뚝이를 아는가, 굿을 할 때 작살판으로 열어 박살판 살판 죽을판 난장판 맘판으로 이어붙지만, 성에 안차서 시드는 판을 확 뒤집어엎어버리고 새로운 판을 만드는 것을, 그러니까 언땅에서도 죽지않고 비바람이 거셀수록 솟구쳐일어나는 풀포기가 힘(力)이여, 천길벼랑에서 떨어져서 밑바닥부터 뒤집어엎어버리는 폭포가 힘(力)이여, 허깨비가 아니란 말이여, 깨뜨려버리고 부숴버리면서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힘(力)이여, 앞만 보고 달려가다 목이 부러진 곧은목지가 바로 그 무서운 힘(力)이여, 아는가 자네, 힘(力)이란 몸도 아니고 머리도 아니고 한곳에 모여든 마음이라는 것을.


 


배꼽 항(港) / 임솔내

 

가와바다야스나리의 ‘설국’을 가기위해

비행기채 휙 날아오른다

그리 오래지 않아 내 떠나 온 그곳이

밑으로 깨알처럼 멀어진다

비행기가 제 발을 오무려 들이는 그 순간부터

내 몸엔 날개가 돋기 시작한다

어둡고 아득한 공간 내 태아기의 어머니 몸 속, 태고의 바다

엎질러진 청춘의 잉크 물 같던 그 바다를

떠나올 때도 그랬다

배꼽 항港의 비릿내도 따라 왔었다

뿌리째 뽑아온 내 바다 넘실댄다고

쪼글쪼글 구겨진 바다 함부롭게 잊었다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햇볕에 졸아 달빛에 졸아 가문 전답처럼

실강江만 흐르는 그 바다 지금도 이생에 계신다

청청했지만 내 뒷골목의 만행

아직도 바람이 불때마다 내 심장에서 헤엄치던 것들은

비릿해지면서 무겁게 닫힌 자궁 바다 빗장을 연다

세상하고 품이 맞지 않아 거북할 때 마다

그 바다 그리웠다

그렇게 훌렁훌렁 떠나는게 아니었다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주제, 그 바다가 마르지 않기를

나는 바랬고, 하마, 혼백이 희붐해져 챙김도 버림도 모르는

그 바다를 밥 먹듯 버리는 몹쓸 나는 딸년이 맞나?

 

 


빗상속 햇살 / 신주원

 

황혼바다 저편

누천빛깔 햇살,

빗장속 햇살

 

반달별이 깃을 단다

 

단 한 번 뿐인

동트는 순간,

나는 빗장속을 열고 나온다.

 

소프라노 정진경이 천혜련의 피아노 반주에 맞추어 제일 먼저 김소월 시 김동진 작곡의 <진달래꽃>을 먼저 부르고 두 번째는 구노의 오페라 파우스트 중에서 파우스트의 여주인공 마르그리트가 부르는 아리아로 자신의 집 앞에 놓인 보석상자를 열어보고 상자 안에 들어 있는 보석들을 치장하여 공주가 된 것 같은 자신의 모습을 보며 흐뭇해하며 부르는 <보석의 노래>를 불렀다. 세 번째는 <그리운 금강산>을 불렀다.

 

한국시협의 이명수 시인, 김지헌 시인, 노명순 시인의 시낭송을 차례로 들었다.

 

 신라의 달밤 / 이명수


 

경주 사는 석공 윤만걸은

달밤에 석수질을 한다

대낮에는 돌의 속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낮에 폐사지에서 놀다

밤에 남산에 올랐다

탑곡 마에불들이 밤에 더 예쁘다

돌로 돌을 쪼아내고 있는 신라의 석공.

거친 돌의 숨소리가 남산에 가득하다


 

달밤에 석공이 돌을 마르듯

마음으로 마음을 쪼아

시 한 편을 마른다

뾰족이 솟아난 마음 한 쪽이

이슬에 젖고 있다


 

강변도로 / 김지헌 시인 

 

8차선 컨베이어벨트에 실려가는

형형색색 미니카들의 질주 뒤로

강변의 풍경이 접혔다 펴졌다

 

오로지 속도를 위하여 직선으로 펴놓은

출발점과 도착점만 있을 뿐

과정이 생략된

패스트푸드 같은,

풍경을 지운 강변도로는

강변이라는 수식어를 지워야 맞다

 

오늘아침 갑자기 아찔한 생각이 든 것은

밤섬의 버들강아지 힐끔힐끔 엿보다 잠깐

강아지의 영혼에 대해 생각하다 하마터면

앞차와 추돌할 뻔한

바로 그 일 때문

 

그러니 연애의 추억을 위하여

강변도로를 달린다는 말은 하지 말자

가로수를 이팝나무로 수종갱신 한다는 것도

모순이다

배추흰나비가 포물선을 이루며 지나간

곡선처럼 에돌아 나가는 그런

사람의 길 어디 있을까

 

 

안단테 칸타빌레 / 노명순


깊은 속에 처박아둔 음향의 단추들이

제 몸에 붉은 산소를 입히고 있다

시디 풀레이어를 건들어 보아도

식은 열정의 음질만 묻어나고

문득, 제 몸 이곳저곳에 주파수를 맞추어가며

플레이어 버튼을 누르던

히말라야 산봉의 대황이라는 꽃을 생각한다

 

해발 5,000M의 차디찬 고지대 바위산에서

자신의 몸에 하얀 소용돌이의 온실을 높이 짓던,

그 포낭 속으로 곤충을 불러 들여

암술 수술의 단추를 누르며 꽃가루 받이를 하던,

찬바람 속에 길쭉이 홀로 서 있는

그 식물을 생각한다

 

가파른 찬 벼랑에서 살자면

자화수분에도 능숙해야 돼

꽃의 몸놀림대로 먹구름을 몰아대는

싸이클을 맞추어 놓고

나는 내 손으로 처음 녹슨 감성의 칩속에

전류를 넣는다

알파베타 파장을 일으킨다

 

소리의 물방울들 깨운다

푸른 계곡이 풀리며

각양각색의 소리가 흐르기 시작한다

 

불붙는고흐의황금빛보리밭이익어가고

천경자미인도화관에고정되었던꽃들이

흔들리고뜨거운여름날들녘에서온갖풀

꽃과곤충과그사람과나와의

 

안. 단. 테. 칸. 타. 빌. 레

 

한 겨울 찬 벼랑에 서서

오랜만에

차이코프스키의 안단테 칸타빌레를

들어 본다.

 

사회자는 ‘방짜시 징 기증식’ 이 있다고 하였다. 문덕수 원로시인에게 국보 시 <청운교 백운교>가 새겨진 방짜시 징 기증식에 앞서 시낭송이 있겠다고 설명하자 (사)한국시협 강영은 총무간사가 나와서 낭송을 하였다.

 

청운교 백운교 / 문덕수 시 / 강영은 낭송

 

청운교 백운교를 건너 님의 뜰, 두 손 모으거나

날개 펴고 싶은 청운교 홍예문 돌사다리 열일곱

그 사다리 받친 백운교 돌다리 열여섯 계단

속세의 흙발로 밟으니 두렵네

하찮은 벌레 한 점 머무는지 삼가면서

다듬고 갈고 닦아놓은 이 맑음 이 높이

조심스런 내 발걸음만 오르락내리락 하네

 

청운교 건너 잠시 숨 고르고

올라온 길 굽어보니 가파르고

돌아서 오를 길 우러러 보니

도리천(忉利天) 달디단 향내 문득 머리 위에 쏟네

백운교에 다시 첫발 올려 내 삶 다잡으니

저 아슬한 자하문 비로소 열리고

다보탑 석가탑이 뿌려놓은 꽃길도 보이네

 

(사)현대시협 문덕수 원로시인은 오탁번 (사)한국시인협회장으로 부터 방짜 시를 기증받아 징채로 힘껏 치니 소리가 청아하게 울렸고, 참석자 모두 환호하며 박수를 쳤다.

행사가 모두 끝나 기념사진을 찍은 후, 좋은 시의 여운을 안고 이층 만찬장소로 자리를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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