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은행잎에 새긴 편지
가을 동산에 누워 있는 어당!
내 여기 왔소, 소정이 왔소
은행잎이 물들기 시작하면
나는 어당을 생각한다오
어당이 그립다오
그리워 이리 달려왔소
여기에 오는 길이 하 멀어서
5년이나 걸렸소
은행잎 노란 춤사위 함께 바라볼
시간을 재다가 놓치곤 이제야 왔소
어당!
그대를 처음 만나던 날과
그대가 수필공부를 권유하고
김병권 선생님을 소개해 주던 날
그대가 내 마음을 알아주던 날들과
병상에서의 그대 얼굴과 검은 캐딜락이
파노라마 영상으로 떠오른다오
그리고 이곳에서 마지막 작별을 하고
그대는 흰 국화 징검다리 저쪽으로 가버렸지
그대는 왜 그리 일찍 가야만 했을까
어당!
내 그대에게 알려 줄 이야기가 있다오
스승님 가르침 받잡고 십 년
내 첫 수필집이 출간되어 어당에게 보여주고 싶었소
《인생의 등불》
이렇게 한 권의 책으로 엮어 당신의 영혼을 위로하고 싶었소
내 그대를 못 만났다면
이 수필집은 이 세상에 나올 수가 없었지
그대가 책을 이리저리 살펴보고 환하게 웃어주는구려
5년 전 그대를 떠내 보내는 나의 슬픈 마음도 들어 있다오
어당!
그대와 그토록 염원하던
위대한 작품은 물거품이 되었다오
나의 스승은 세상을 하직했다는
그대 소식을 듣고
크게 상심하시다가 결국
지난해에 그대 사는 세상으로 가셨다오
살아서 상면(相面)하지 못하고
그대 영정에 고개 숙인 나의 스승이오
혹시 그곳에서 상봉(相逢)했는지 궁금하구려
어당!
다 못한 공부
나의 스승 만나서 그곳에서 많이 하시오
나의 백일기도가 정성이 부족했는지
그대도 떠나고 나의 스승도 떠나고
나만 홀로 남아 그대와 스승이 그리워 눈물 흘린다오
가을이 깊어가는 동짓달 초하루
환갑도 못 지내고 떠난 어당 박진민 영전에
풍성한 과일과 새로 나온 배 막걸리 한잔 올리며
내 마음 은행잎에 새겨 띄웁니다
2009 년 11월1일
小晶 민문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