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지금 얼마나 행복한가
민문자
저는 지금 퍽 행복합니다. 1995년 처음 <한국언어문화원>에 와서 김양호 원장님과 조동춘 박사님께 십여 년 간 말을 배우고 간 사람입니다. 이곳에서 십여 년 전에 이미 고인이 된 박진민 씨의 권유로 수필공부를 하게 되었고 그 후 또 시도 공부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서예와 문인화도 접하게 되었지요. 제가 행복한 시간을 누릴 수 있었던 것은 훌륭한 스승들을 많이 만나 공부 시간을 즐길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행복이란 모름지기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먹고 싶을 때 먹고 잠자고 싶을 때 자고 어디든 가고 싶은 곳에 갈 수 있는 거리낌 없는 자유가 있을 때 행복합니다. 그런데 뜻하지 않게 지난 6개월 동안 세계 인구 대부분이 코로나19에 매몰되어 전전긍긍하면서 마음대로 행동할 수 없는 불행한 삶을 살고 있습니다. 마스크를 써야만 외출할 수 있고 직장에서도 마스크를 쓴 채로 근무를 하게 되니 이 얼마나 불편합니까? <사회 거리두기>가 다소 완화되기는 했지만 언제 이 암울한 터널을 완전히 벗어날 수 있을까요?
대부분의 사람들은 계획했던 사업이나 여행도 할 수 없고 매일 매스컴에서는 코로나 확진자와 사망자를 실시간으로 방송으로 알려주니 행복지수가 떨어지고 우울증 환자가 많이 늘어날 수밖에 없는 일이지요.
먹고 싶은 음식을 마음대로 먹을 수가 있나, 가고 싶은 곳에 마음대로 갈 수가 있나, 지금까지 겪어보지 못한 불행이라고 모두들 힘들어할 때, 저는 다행히 시집을 만드는 일에 전념하느라 행복한 시간을 가졌습니다.
십여 년 전에 부부시집 두 권을 내놓고서, 부부시집 한 권 더 내놓고 나의 개인시집을 내놓으리란 각오를 했었어요. 그런데 남편이 지금 12년째 혈액 투석을 하고 있습니다. 만사가 귀찮아서인지 우리 집에 배달되는 수많은 문학서적을 섭렵하면서도 쓰지는 않고 저의 시집만 내라고 해서 그래도 기다리면서 시 쓰기를 멈춘 적이 없고 계속 창고에 쌓기만 했습니다.
시 나부랭이들을 간추려보니 시집 네 권 분량이 되는 거예요. 한 권 만 내놓자니 시 한 편 한 편이 저를 뽑아달라고 아우성이어서 모두 함께 독자들을 만나기로 하고 시집 네 권을 한꺼번에 내놓았습니다.
소정 민문자 제1시집 『시인 공화국 』 소정 민문자 제2시집 『독신주의』
소정 민문자 제3시집 『공작새 병풍』 소정 민문자 제4시집 『꽃시』
3월부터 시집 만드는데 정열을 쏟느라 행복했고 시집이 출간된 후에는 조촐하게나마 스승을 모시고 성의껏 준비한 음식으로 출판기념회를 해서 행복했습니다. 그리고 그동안 받기만 했던 문우들에게 일일이 봉투 겉봉에 붓글씨로 주소를 쓰면서 기쁜 시간을 보냈습니다. 어제도 오전에 우체국에 들려 시집 몇 권 우송하고 저녁 모임에 스물다섯 권을 가지고 가서 나누어 주는 기쁨을 가졌습니다. 오늘도 여러분께 드리려고 몇 권 가져왔습니다.
이 봄날에 저는 시집 출간의 기쁨을 누리게 되어 퍽 행복하다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2020.5.19 <한국언어문화원> 화요 스피치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