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 방
이룻: 이정님
비오는 날은 차를 달이시게나.
찻물 끓는 소리의 핵심 속
미움도 그리움도 한 갈래로 엉키는 연(緣)도
찻잎 몇 개를 띄워주면
파르스름한 본질로 회귀하는 품성들.
너무 뜨겁거든
핵심에서 슬쩍 비껴 앉아도 좋다네.
장렬해야할 까닭을 넌지시 밀어놓고
자진해서 달아오른 다관을 쓰다듬으면
친근하게 밀착하는 찻잎의 숨결들.
그것이 빗소리라도 좋고
빗소리의 갈피를 뚫고 찾아든
찰라와 영원의 교감音이래도 무방하다네.
그대 귓바퀴가 파놓은 함정에
그 소리들이 빠져들거든
너무 깊이 받아들이지는 마시게나.
깊으면 퍼낼 수 없는 상(相)이 되느니
너무 깊은 곳에 이르기 전에
왼손에는 찻잔을 들고
바른손 엄지와 검지로 소리의 꼬리를 잡아
살포시 잡아당기어 보시게나.
남을 것은 거기에 남고
끌려나올 것은 어김없이 끌려나온다네.
달이더라도 "달인다."의 핵심에 들지는 말고
변방으로 비껴 앉으시게나.
비껴 앉아 "달인다."를 잊으시게나.
"
잊는다."조차 잊으시게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