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부신 방황
1. 일탈
구름 몇 점 떠있는 하늘이 청명하다.
가로수 가지가 바람에 흔들리며 이파리들이 비늘처럼 뒤채이고
이면도로에선 방금 무슨 일이 일어난 듯 도로 한복판에 오토바이 한 대가 물구나무 설 자세로 하늘을 향해 누워있다.
꿀 병이 깨져 진득거리고 있는 걸 봐서는 오토바이 주인은 꿀을 싣고 가던 중이었던 것 같다.
걱정 반, 구경 반, 사람들이 모여 웅성거리고 정작 오토바이 주인은 간데없다.
-여기요, 여기 박스 밑에 아저씨가 날아와 쳐 박혔어요.
숨 막힐 듯, 신기한 듯 초등학생 정도의 남자아이가 말을 더듬고 까만 눈동자를 굴리며 박스를 가리킨다.
박스 쪽으로 우르르 몰려드는 사람들도 제 정신이 아닌 것 같다.
거기엔 무릎을 끌어안고 고통스러워하는 남자가 있었다.
외관으로 봐선 아무 상처도 없는 것 같지만 신음의 강도는 골 깊은 응어리 같다. 곧 경찰이 와 박스를 헤집고, 남자를 태운 구급차는 병원으로 향한다.
-이름, 장진태. 승용차가 뒤에서 오토바이를 들이 받았음. 무릎을 안고 기절한 걸 보면 아마 슬개골이 깨졌거나 인대가 끊어진 것 같기도 하고. 죽지 않은 걸 보면 명은 긴 사람인 것 같음. 이상!
경찰은 목구멍 속에서 꺼낸 듯 찰진 가래침을 도로에 뱉으며 이런 일은 부지기수 인 듯 대수롭지 않게 핸드폰을 끈다.
가끔, 도로 표지판이 없는 이면도로를 건너던 사람들이 끈적한 꿀에 신발이 붙어 난감해 하는 모습을 볼 수 있지만 여린 바람 부는 거리는 연초록 나뭇잎의 향연으로 기분 좋은 오후의 날씨를 연출하고 있었다.
병원 응급실은 구급차를 타고 온 급박한 환자들로 만원이다.
경상의 환자도 응급실을 거치면 병실을 쉽게 얻을 수 있다는 꼼수를 알았는지 웬만해 보이는 사람도 응급환자 무리 중 섞여있는 것 같다.
서너 살 가량의 어린애를 들쳐 업고 응급실로 달려 온 장진태의 아내 김은실은 아이는 등에 장난감 인형처럼 매단 채 남편의 무릎을 어루만지며 사색이 되어 어쩔 줄 모르고 있었다. 장진태는 칭얼대는 아이를 어르며 애써 고통을 참는다.
-양봉하는 친구에게서 장모님 드리려고 꿀을 사오다가 그랬어.
-꿀 사는 게 뭐 그리 급해서 사고까지 나고. 응급처치라도 하고 병실로 올라가야 하는데 병실이 있을지 모르겠네.
-여보세요. 홍실이 친구 영화가 이 병원 임상병리실에 있지요?..
김은실은 다급한 목소리로 지인이면서 병원 관계자인 듯한 사람에게 병실 간청을 하는 모양이다.
병실을 구하지 못한 사람들의 부러움을 한눈에 받으며 병실로 올라온 장진태는 진통제 덕분인지 고통을 잊은 채 붕대 친친 동여맨 왼 쪽 무릎을 내려다보며 ‘이 정도는 괜찮다’ 며 아내를 달랜다.
장진태의 병실은 소식을 듣고 달려온 가족과 친지들로 시끄러워 다른 환자들의 눈살이 곱지 않다.
장진태를 향해 손 위 누나는 꿀 탓을 하다가 김은실을 향해 ‘네 탓도 있다’는 식으로 말끝을 흐리자 장진태는 누나와 친지들을 향해 이제는 집으로 돌아가라고 재촉한다.
사고가 자신의 탓도 있다는 시누이의 말에 토 달 생각이 없는 김은실은 아이를 데리고 병실 밖으로 나간다.
성격이 온순하며 비위가 약하기로 동사무소 직원들에게 소문난 김은실. 그에게 환자와 보호자들로 북적이는 병실의 공기는 탁하고 역한 냄새로 속이 울렁거렸다.
잠시 후, 남의 일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의 호기심이 인물이 훤하고 예의 바른 장진태를 그냥 보고만 있을 리 없다.
어쩌다 다쳤는지 궁금한 가운데 제법 나이가 들어 보이는 환자의 6하 원칙 질문으로 신상 털기가 시작 된다.
질문을 던지는 남자는 통성명도 없는 질문이 좀 어색했는지 “통증은 좀 어떠냐?”를 시작으로 본격 질문에 돌입한다.
-젊은 사람이 오토바이 운전을 조심히 하지, 어쩌다 그랬어요.
승용차가 받았어요?
장진태는 간호조무사가 들고 온 환의로 갈아입은 다음 천천히 입을 열었다.
-네에~.
-저런, 제기랄...어디서요?
보호자인 듯한 한 남자가 다그치듯 물었다.
환자와 보호자들의 눈과 귀가 장진태를 향해 곤두 선 가운데 병실은 잠시 정적이 맴돌았다.
그 때 마침 들어오던 간호사가 조용해진 병실 분위기에 당황한 듯 본인이 먼저 소리내어 “장진태 씨”를 높은 음으로 부르며 다가온다.
-엉덩이에 놓는, 조금 아픈 주사니까 그런 줄 아세요.
-알겠습니다.
침대를 가린 케텐 밖으로 간호사가 장진태의 엉덩짝을 ‘탁!탁!’ 두어 번 때리는 소리가 들리자 마음 여린 김은실은 남편이 걱정스러운 듯 눈을 아래로 감으며 한숨을 길게 내쉰다.
탁! 탁! 엉덩이 때리는 소리가 허공에서 사라지지 않고 머물러 있는 듯 김은실은 그 소리가 머릿속에 각인돼 떠나지 않고 있어 마음이 언짢았다.
김은실은 속으로 중얼거렸다.
‘그렇게 대차고 찰 지게 엉덩이를 때리지 않아도 되는데...’
아무튼 김은실은 정수리 위에서 유영하듯 떠나지 않는 소리, 소리를 떼버리려 아이의 기저귀 가방과 간식 통을 꺼내면서 주위를 환기시켰다.
잠시 뒤 커텐을 젖히고, 주사를 놓고 나오는 간호사는 스물 대여섯 정도로 얼굴빛이 유난히 희며 눈이 맑아 보였고 인상이 꽤나 좋은 편이었다.
간호사는 김은실의 아이의 손을 잡아보며 “예쁘다, 귀엽다”를 연발하며 나간다.
김은실은 나가는 간호사의 뒤에다 대고 고개를 숙이며 감사의 인사를 올리고 잠시 ‘아~저런 여자가 바로 백의의 천사로구나’ 생각하며 남편의 수술이 잘 되기만을 기원한다.
한편, 장진태는 간호사가 나가자 여전히 자신을 향하고 있는 사람들의 궁금 어린 시선이 부담스러운지 아이를 어르고 나서 입을 연다.
-이면도로라 혹시 무단횡단 하는 사람들이 있을까봐 천천히, 난 정상속도로 가고 있었는데 승용차가 뒤에서 들이박는데 낸들 어떻게 합니까. 그냥 나가떨어졌지요.
남자환자의 보호자 인 듯한 아주머니 한 분이 혀를 쯧쯧 차며 그만한 게 다행이라며 장진태가 아닌 김은실을 위로한다.
동병상련이랄까. 병실은 서로를 위로하고 때론 다독이는 분위기로 전환되며 늦은 오후 시간이 흐르고 있다.
곧이어 저녁밥이 나오고 병실은 구수한 밥 냄새와 반찬 냄새가 어우러져 점심도 먹지 못한 장진태의 위에서는 음식을 갈구하는 아우성이 타전되고 있었다.
간호사들이 분주히 오가고 드디어 장진태의 수술시간이 잡혔다.
유난히 뚱뚱하고 어깨를 뒤로 젖히며 걷는 간호조무사와 좀 전에 주사 놓은 얼굴이 흰 간호사가 침대로 가까이 다가오더니 내일 아침 여덟시, 수술에 들어가고 수술시간은 대략 3~4시간 정도 걸릴 것 같다고 전해준다.
지금부터 물과 음식은 절대사절이라며 안내판을 침대 앞에 걸어주고 나가는 간호사를 바라보며 김은실은 잘 생기지도 않은 얼굴에다 몸매 또한 잘 빠지지 않은 자신의 모습과 비교를 해본다.
차츰 어둠이 내리는 병실 밖을 바라보던 장진태는 칭얼대는 아이를 안고 볼에 입을 맞추며 아내에게 피곤할 테니 집으로 돌아가고 내일 수술시간에 맞춰 오면 될 것이라고 아내의 등에 아이를 업혀준다.
김은실은 친정어머니가 내일 아침 버스로 인천에 도착하실 것이라며 떨어지지 않는 발길로 병실 문을 나선다.
사실 결혼해서 남편과 한 번도 떨어져 자 본 적이 없는 김은실은 내일 아침 오실 친정어머니를 위안 삼으며 집으로 향한다.
찰싹!찰싹!...‘뭔 엉덩이를 그리 야무지게 때리지!’
김은실은 얼굴빛이 희고 눈매가 맑고 고운 간호사의 매서운 손 매가 머릿속에서 한 바퀴 돌며 회전하자 어지럼증을 느낀다.
-슬개골 파열입니다. 조각난 무릎 뼈를 얽어매야 합니다. 아주 정교한 수술이지요.
육 개월 후에는 철심을 제거하는 수술을 다시 해야 합니다.
보호자 분들은 병실, 수술 안내 현황판 앞에서 기다리시면 됩니다.
시동생, 시누이가 김은실 보다 먼저 도착한 수술실 앞은 서로 간 인사도 없이
싸늘한 기운이 감돌았다.
김은실은 두 사람을 수술실 앞에 남겨두고 팔층 수술 안내 현황판 앞에 자리를 잡았다.
김은실은 눈 부라리는 시누이 보다 차라리 수술결과를 기다리는 생면부지 타인들과의 주고받는 위로가 속이 편한 것이었다.
아무리 동생의 사고가 속상하다고 하지만 살 부대끼며 살고 있는 부부간 보다 더 돈독하고 뼈아플 수 있을까 싶어 눈 마주치지 않는 시누이가 곱지 않았지만 귀청 따가운 잔소리도 위로인지라 김은실은 서운한 감정을 긴 한숨으로 내보내며 기다림의 시간과 마주 앉는다.
수술실에 들어 간지 네 시 간여가 지나자 장진태는 회복실로 옮겨지고 김은실은 급하게 수술실 앞으로 간다.
시동생과 시누이도 수술이 잘 끝났음을 인지했는지 김은실을 향해 겨누던 살 곱지 않던 시선을 거둬들인다.
잠시 후 무통주사와 혈관으로 들어가는 주사약을 주렁주렁 매단 채 팔층 병실로 올라온 장진태는 아이 먼저 찾는다.
김은실은 친정어머니가 보고 계시니까 괜찮다며 남편을 안정시킨다.
간호사들이 번갈아가며 혈압과 체온을 재가며 어제 그 얼굴빛이 유난히 흰 간호사도 김은실과 눈인사를 하며 오간다.
-저어~~간호사 선생님. 제 남편, 주사 놓기 전 아프지 말라고 엉덩이 두어 번 때리는 것,,,그러지 마시고 주사 그냥 놔주시면 안 될까요?
-ㅎㅎ...그거요? 아프실까 봐요? 그게 뭐가 아파요? 항생제 주사라서 약 들어갈 때 뻐근하고 아파서 그러는 거니까 괜찮아요. 걱정돼서요?
‘안 그러겠다는 말을 하지 않는 걸 보니 또 그렇게 착살맞게 때릴 건가!’
김은실은 괜한 걱정을 하는 자신이 어제 오늘 들어 조금 이상하다는 생각을 하며 그 간호사의 이름이 궁금해졌다.
이름도 얼굴만큼이나 예쁜 이름일거라며 김은실은 자신도 모르게 간호사실 쪽으로 걸어가며 옷매무새를 고치고 굵은 파마에 커트머리를 손가락으로 빗기고 있었다.
외까풀의 평범한 눈과 낮은 코에다 다소 큰 입의 외모는 언제나 김은실의 자존감을 바닥에 떨어뜨리는 일등공신이었다.
은실이라는 이름과 그의 외모는 잘 어울리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부부의 일은 부부만이 안다고, 장진태는 김은실을 여왕마마 모시듯 끔찍하다.
간호사실 앞에서 주춤거리던 김은실은 다행히 얼굴빛이 희고 눈이 맑은 간호사가 자리에 없음을 감지하고 당당히, 조심스럽게 물어본다.
-저기요, 죄송하지만 501호 담당하시는 얼굴이 하얗고 예쁘장한 간호사 이름이 뭐에요?
-아아~~이화 요? 이화라고 해요.
이화! 어쩜 얼굴에 딱 어울리는 이름이네~~를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리며 병실로 돌아오자 장진태는 어디를 갔다 오는 거냐며 다소 의기소침해 있는 아내에게 거푸 묻는다.
남편 목소리는 뒷전에 두고 김은실의 눈앞에는 눈송이처럼 날리는 배 꽃잎이 나비처럼 하늘에서 유영하고 있었다.
허공에서 일제히 날고 있는 너무나 눈부신 흰나비의 유영에 김은실은 잠시 눈을 감는다.
-당신! 지금 졸고 있는 거야?
남편의 목소리에 잠에서 깬 듯한 김은실은 나른한 듯 중얼거린다.
‘백일몽? 내가 뭐에 홀린 것도 아니고! 꿈을 꾼 것 같은데...’
김은실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정신을 차리려고 고개를 흔들어보기도 하고 목을 좌우로 돌려 보기도 한다.
장진태는 다소 몽롱한 아내의 모습이 마냥 예뻐 보이는지 어깨를 다독거리며 자신의 통증은 미열에 불과하다고 치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