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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를 하며 환하게 웃고 있는 李 國花 시인 |
시집을 11권 출간한 시인이라는 정보를 듣고 연락을 취하기 위해 전화를 걸었다. 뜻밖에 빨리 통화가 된다.
전화의 목소리가 하도 젊게 들려 실버인 줄 알았던 나는 전화가 잘못 걸린 줄 알았다.먼저 몇 가지 인터뷰를 하겠다는 용건을 알렸을 때 그럴만한 인물이 못된다면서 정중히 거절한다.
사정을 해서 복지관 커피숍으로 약속 장소를 잡았다. 만나기 전 머리가 하얗다는 그 한 마디로 나는 얼른 그녀를 알아볼 수 있었다. 겨자색 방울 핀을 꽂고 나온 그녀의 모습에서 처음 만나는 대면이지만 뭔지 순수하고 하얀 머리가 풍기는 연륜이 편안했다.
- 복지관은 자주 나오시나요?
"일주일에 한 번이요. 외국에 사는 자녀가 있어 영어회화를 배우기 위해섭니다."
- 시집이 11권이신데 시만 전문으로 쓰시는지요?
"장편소설도 한 권 출간했습니다."
- 그럼 시인이며 소설가이신가요?
"어디요. 시를 전문으로 쓰지요. 살다보니 시만으로는 안 되는 얘기가 있어 소설을 쓰게 된 것입니다. 수필도 쓰곤 하죠. 다방면으로..."
- 죄송합니다만 몇 년 생이신지요?
"38년생 77세랍니다. 7x7=49 해서 49세라고 농담도 하죠."
말에 재치가 있다고 생각하면서 다음 질문으로 넘어갔다.
- 고향은 혹 충청도신가요? 말씨가 비슷해서요.
"맞습니다. 고향은 충남 광천이고 고향에서 중학교를 마쳤어요. 서울로 이사해 진명여고와 대학은 2년제 사범대학 국문과를 나왔네요."
국문과를 다닌 것이 문학을 하게 된 동기인가 싶어 질문을 던졌으나 의외의 답이 날아왔다. "웬 걸요. 그저 평범하게 결혼하여 아이 기르며 살다가 잘못 손 댄 사업이 망하는 바람에 제2의 인생을 살게 되었죠. 그때부터 글을 쓰기 시작했어요. '고통은 천재를 낳는 조산부'라는 말을 나는 좋아합니다. 망한 사업이 나를 시인으로 만든 셈이지요."
남의 아픔을 건드리기보다 전철역 스크린 도어에 올라있는 그녀의 시를 읽은 적이 있어 그리로 말문을 돌렸다. 내가 그 시를 좋아해서 옮겨 적은 수첩을 내보였더니 읽어보라고 한다. 제목이 '철학하는 나무'다.
아니라고 아니라고 / 고개를 살랑살랑 / 가로 젓는 이파리들 // 그렇다고 그렇다고 / 고개를 아래위로 / 끄덕이는 이파리들 // 한 뿌리 / 한 몸통 / 한 가지에 붙었어도 // 찬성 반대 찬성 반대 / 민주주의 하느라고 / 수선스런 이파리들 // 그러면서 / 뿌리는 아래로 깊어지고 / 가지는 위로 키 크고 // 나무도 그렇게 철드는 거다 / 철드는 거다
그 시를 좋아하느냐고 기자에게 묻는다. 사실 나는 그 시가 전철역 스크린도어에 있을게 아니라 정치하는 사람들이 하도 여와 야가 헐뜯고 싸워서 차라리 국회의사당에 걸리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옮겨 적었던 것이다. 나 같은 생각 속에 그 글을 썼는지가 궁금했는데 의외로 아니란다. 미루나무 이파리들이 바람에 팔랑팔랑 날리는 것을 보다가 쓰고 보니 기자의 생각과 같았노라 한다.
- 바느질도 잘 하신다고 들었습니다만 그렇지요?
"그거요? 취미죠. 시간을 깁는다 생각하고 마음을 수양하기 위해 하는 짓입니다. 성격이 좀 급한 편이라 서요. 바느질은 조금만 방심해도 손가락을 찌르잖아요? 조용하고 차분하지 않으면 안 되죠."
- 남의 옷을 늘이고 줄여주는 봉사도 하신다고 들었습니다만 사실이지요?
"봉사라니 당치 않습니다. 어쩌다 한 번 좋은 일 한다고 봉사라곤 못하죠. 바느질하길 좋아하니까 헌 옷을 잘 얻어 와요. 또 중고 옷가게에서 싸게 사기도 하죠. 약간씩 손을 보면 한 번 빤 새 옷 같아져요. 그래서 좀 어려워 보이는 사람에게 나눠 주지만 아주 가끔입니다. 내가 바느질하길 좋아해서 시간을 깁는다는 생각으로 사는 방법일 뿐인데요. 남의 옷은 만들어도 제 옷 한 벌 없는 바늘에서 겸손도 배웁니다."
사실은 팔 한 쪽 없는 분을 위해 잘 알지도 못하는 사이지만 자청해서 바느질거리 내놓으라 해서 고쳐주었다는 얘기를 들었지만 함구하였다. 트레이닝이 길어서 못 입는다는 소리를 듣고 성탄 전날 종일 들앉아 트레이닝 네 개를 줄이는 바느질을 해서 추운데 어서 입으라고 아들 차에 싣고 그녀가 사는 집 앞까지 갖다 주었다는 얘기를 들었기에 물어보고 싶었지만, 더욱 펄쩍 뛸 것 같아서 그만두었다.
- 시신을 기증하셨다고요? 어떻게 그런 결정을 하게 되었는지요?
"사업에 실패하고 느낀 것이 왜 좀 더 남을 돕는 일을 못 했을까? 하는 생각 끝에 장기 기증을 했는데 내놓을 바에야 깨끗이 하자 해서 시신기증으로 바꾼 것입니다. 사람은 흙에서 왔으니 흙으로 돌아가면 되는 거죠."
흙에서 왔으니 흙으로 돌아간다는 말에서 기독교인임이 드러난다. 종교가 사람에 끼치는 영향은 지대한 것이다. 글을 쓰며 이웃의 아픔을 조금이라도 나누려는 삶을 살고 있는, 머리에 귀엽게 예쁜 핀을 꽂은 이 國花라는 시인이 꽃보다 더 아름답다 싶어 돌아오는 발걸음에 힘이 실렸다.
실버넷뉴스 이정님 기자 leeruth1@silver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