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갛게 타오르던 단풍잎들이 지고 있다. 그 지는 모습이 안타까워 가을을 배웅하기 위하여 용문사를 찾았다. 가을햇살에 황금색으로 단장한 은행나무와 마주 할 생각을 하니 가슴이 벅차다.
상봉역에서 일행과 만나 전철을 타고 용문역에서 내린 후 5분정도 걸으니 버스 터미널이다. 터미널에서 30분에 한 대씩 용문사를 향해 떠나는 버스에 올랐다.
20분쯤 걸려 용문사 입구에 닿았다. 주변에 아직도 빨갛게 익은 단풍들이 손을 흔들며 낙하 하지 못하고 우리를 기다렸다는 듯 손짓을 한다.
즐비한 식당에서 맛있어 보이는 집을 골라 더덕 무침, 더덕 찌개로 점심을 한 후 용문사로 향했다. 끝물 단풍을 배경으로 추억을 담는 무리들이 무척 행복해 보인다.
몇 컷을 사진에 담고 천 년이 넘었다는 용문사 은행나무를 향했다. 널따란 길 양옆으로 단풍나무가 흐드러지게 줄을 서서 우리를 환영한다. 드디어 마주 하는 것만으로도 신령스러운 기운이 도는 천연 기념물 제 30호로 지정된 은행나무 앞에 섰다.
천수를 넘긴 은행나무를 우러르며 마의태자를 그려보았다. 일편단심 망국의 한을 가슴속에 삭이며 외로이 깊은 산길을 걸어가는 그 분의 모습을.
선친께서 가지고 계시던 금강산 사진첩에는 늘 초라한 마의태자 능이 있었다. 일제 강점기에 인쇄된 금강산 사진첩이기에 흐릿했지만 수시로 보아온 탓에 금강산에 대한 그 정경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비석 한 개도 없이 누렇게 변색된 잔디 아래 초라한 범부의 무덤 같은 마의태자 무덤이 잊히지 않는다. 원래 마의태자란 이름이 망한 제국의 왕자로 베옷을 걸치고 방랑길을 떠났다 해서 마의태자가 된 것이란다.
그렇게 떠돌던 길에 용문사에 들러 꼽아놓은 지팡이가 싹이 나서 지금의 은행나무가 되었다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망국의 한이 얼마나 깊었기에 금강산 어느 길목에서 세상을 버렸기에 무덤이 금강산 자락에 있었던 것 이였을까? 나는 오늘도 천 년 묵은 은행나무의 노란 잎들을 보며 위험 있는 군왕의 곤룡포 자락을 생각한다.
산을 내려오면서 전화를 받았다. 저녁을 사주기 위해 우리 일행을 마중하려고 상봉역에서 기다린다는 K박사의 전화다. 작은 감동이 행복이 되어 단풍처럼 물든다. 정갈한 한식집에서 불고기로 대접을 받았다. 실버에겐 다음이란 칸이 없다. 항상 마지막이라 생각하고 하루하루를 소중히 채우며 사는 것이 최선이다.
실버넷뉴스 이정님 기자 leeruth1@silver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