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영오의 진짜 좋은 시조-김소해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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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ejung ・ 2021. 1. 6. 10:53
대장장이 딸
사랑을 훔치려다 불을 훔치고 말았다
무쇠 시우쇠, 조선낫 얻기까지
숯덩이 사르는 불꽃
명치 아래 풀무질
탄생에 대한 짜릿한 보고, 김소해
빼어난 시조집도 많지 않지만 단시조만으로 빼어나게 엮은 시집은 더 드물다. 단시조는 잘 썼을 때는 수많은 말들을 압도하지만, 그렇지 못할 때는 작자의 밑천을 다 까발리는 수가 있다. 그만큼 위험한 장르다. 단시조야말로 '한 칼'이 없으면 안 쓰는 게 낫다.
그러니까 연시조로까지 밀고 나가는 힘이 부족해서 중도에서 멈춘 것이 단시조여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투수에 비유하자면 단시조는 직구다. 아무리 변화무쌍한 변화구를 갖고 있더라도 직구의 구속이 부족하거나 적재적소를 공략하는 컨트롤이 없다면 성공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특히 구속은 노력한다고 향상되는 게 아니라는 점에서 단시조와 더욱 흡사하다.
사랑을 훔치려다 불을 훔치고 말았다
무쇠 시우되, 조선낫 얻기까지
숯덩이 사르는 불꽃
명치 아래 풀무질
■ 평론
과연 시조의 역사를 통틀어 이만큼 에로틱한 시가 있었을까 싶을 만큼 "명치 아래 풀무질"에서 침이 꼴깍 넘어간다. 어차피 사랑이라는 것은 '불'이 들어가지 않고는 미완성이다. 불이야말로 사랑을 지속하는 엔진인 셈이다. 초장부터 감동 작렬이다. "사랑을 훔치려다 불을 훔치고 말았다"는데 그 다음 줄, 중장을 안 읽을 수가 없다. "무쇠 시우쇠, 조선낫"에 이르면 어쩐지 무시무시한 무언가가 기다리고 있는 느낌이다. 그렇지만 언젠가, 어디선가 본 듯한 느낌이 들면서 '우리 것은 좋은 것'으로 끌고 가는 것은 아닌지 걱정스럽다. 대체로 '글발'이 떨어지는 작가라면 이 지점에서 통속이나 구태의연의 나락으로 떨어지기가 쉽다. 그런데 김소해는 "명치 아래"를 통해 에로티시즘의 초고봉에 오르고 만다.
쉭쉭 소리를 내며 풀무는 드나들고, 이글이글 숯에는 불꽃이 튀고, 무쇠 같던 사람도 녹지 않을 수가 없는 경지를 열어 보인 것이다. 거꾸로 읽어보면 불이 들어가 무쇠를 녹이고, 불을 훔치고 사랑을 훔치는 과정이 순서대로 정렬돼 있다. 의도하지는 않았겠지만 이 또한 명작에나 따라붙는 행운이다.
결국 대장장이 딸은 잉태와 산고와 탄생에 관한 보고다. 세상에 이렇게 짜릿한 보고라니, 이렇게 아름다운 불장난이라니.
-《좋은시조》2020.겨울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