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산 없이
빈 화분 두어 개를 땅이라 섬기고 있다
모종 값 계산 없이 기껏 상추 몇 포기
놔두면 죄 될 것 같아
흙에게 죄만같아
-김소해 <계산 없이>전문 (<좋은시조>2022년 가을호)
죄없이, 이런저런 계산 없이 그저 좋은 시다. 저 중앙아시아 사막이나 시베리아 동토로 흘러가서도 기어이 땅을 일궈 식구들을 건사하는 우리민족의 마음자리를 쿵, 하고 울리는 시다. 어려울 것 하나 없이 그대로 가슴에 안기는 시다.
부러 짓거나 꾸밀 것 없이 일상에서 툭 터져 나온 시다. 공자가 시를 한 마디로 정의한 ‘사무사毋邪思’, 삿된 것 아닌 진솔한 마음이 시란 말이 그대로 와 닿는 시다.
3장 6구 45자 내외의 짧은 단시조 안에서도 ‘죄 될 것 같아’를 반복 변주하며 죄 없는 우리네 그 유구한 마음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구구절절 풀어놓으면 잡히지 않을 마음을 이리 쉽고 간명하면서도 절절하게, 이게 우리 시조의 특장特長 아닐 것인가.
<정형시학> 2022 겨울호. 화제작, 화제의 초점. 이경철(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