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소해시인은 <만근인 줄 몰랐다>를 펴냈다. 고희를 넘기면서 등단 연조 또한 40년이 가까워 오는 가운데 무르익은 시상을 대하는 독자의 시선 또한 흐뭇하다. 시인이 살아온 세월만큼이나 시대현상은 엄청나게 변하였고, 시인은 그 상황 속에서 생활의 파고를 힘들게 넘어면서도시조에 대한 인연의 끈을 잠시도 놓지 않았음을 시집을 통하여 실감할 수 있었다.
거기 오래 당신 없어 고향집 쓰러질 듯
빈 집 애처로워 제값이라 팔았는데
이상한 거래도 다 있다 고향이 없어진
고향을 잃어버린 남의 동네 서먹하다
하늘과 바람이며 갯바위나 파도까지
덤으로 팔려버렸다 어이없이 밑진 장사
그게 그렇게 고향산천 떠받치는 줄 몰랐다
마당만 몇 평 값으로 팔았다 싶었는데
낡은 집 한 채 무게가 만근인 줄 몰랐다
<만근인 줄 몰랐다> 전문
시집의 표제이기도 한 이 작품은 고향을 떠나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시골마을을 가면 눈여겨보는 것이 있다. 빈집이다. 지금 우리나라 시골을 가보면 마을마다 사람이 기거하는 집보다 빈집이 더 많을 정도이다.
너도 가고 나도 가고 다 떠나 횅댕그렁한 마을에 그나마 집을 지키고 있는 이는 죽음을 코앞에 둔 노인들이 대부분이다. 저 분들이 가고 나면 저 집 저 들판과 산은 누가 지켜줄 것인가?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면 공연히 가슴이 저린다. 시인의 고향집도 이제 쓸모가 없어 처분한 모양이다. 그런데 그 낡은 집을 팔고 나서야 그 집이 그냥 낡은 집이 아니었음을 알고 가슴을 치고 있다.
곱게 물든 감잎들이 벗은 발 닦는 늦가을
서리 묻은 깃을 털며 누군가 대답할 듯
붉은 감 아직 붉은 나무
꽃목걸이 고요 한 줄
해거름 산그늘 지는 나이가 저물기 전
주소 적고 우표붙인 감잎편지 시들기 전
그 글씨 읽는 이가 읽는
뜰 안 가득 생의 후편
<11월> 전문
때맞춰 지금 입동 철이다. 바야흐로 겨울의 문을 여는 계절이다. <11월>을 읽으면서 문득 인생의 11월을 생각하게 되었다. 시인도 이제 인생 11월의 문을 노크하고 있다. 중국의 시성 두보는 그의 곡강 시에서 인생칠십고래희라 노래했지만 지금 칠십대는 스스로 노년이기를 거부할 정도로 정정한 삶을 누리고 있다. 하더라도 그것은 신 앞에서 오만한 모습이다. 인생 칠십은 ‘해거름 산그늘 지는 나이가 저물기 전’ ‘뜰 안 가득 스며드는 생의 후편’에 대하여 겸허한 모습으로 깊은 생각을 해보아야 하는 시점임을 부인할 수 없는 계절이다. 아무리 건강하다고 거들먹거려 보아야 앞 물은 이미 저만치 흘러가버렸고 뒷물이 자신의 자리를 차고 들어오는 시간이다. 지난 시간을 관조하고 실제를 인정하며 주어진 하루의 생명에 감사하며 행복해 해야 할 나이가 일흔이라고 나름대로 자리매김 해본다.
지면이 한정되어 있어 길게 언급하지 못함을 미안하게 생각한다. 시인이 쌓아온 연륜만큼이나 무거운 생각들이 어떨 때는 가벼운 텃치로, 어떨 때는 천 근 무게로 독자의 가슴을 울려왔다. 김소해의 <만근인 줄 몰랐다>의 마지막 장을 덮으면서 문득 ‘추억은 모두 아름답다’는 말을 생각해보았다. 그 아름다움의 끝에 아른거리는 만상과의 깊은 교감의 ‘목선 한 척’에 동승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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