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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해 시인의 작품읽기

김소해 시인

황치복 평설

작성자: 김소해

조회: 688 등록일: 2023-11-25

시조시학 시인연구 2018 가을호 <o:p></o:p>깊이의 시학, 열림의 시학―김소해의 시조미학 <o:p></o:p>황치복 <o:p></o:p>1. 시간의 길-삶의 깊이에 이르는 길1983년 󰡔현대시조󰡕에서 추천이 완료되고, 1988년 다시 <부산일보> 신춘문예에 시조 ｢탑｣이 당선되어 문단에 나온 김소해는 그동안 󰡔치자꽃 연가󰡕, 󰡔흔들려서 따뜻한󰡕, 󰡔투승점(投繩點)을 찍다󰡕라는 시조집을 펴낸 바 있으며, 현재에도 왕성한 창작열을 보여주고 있다. 시인은 그동안 고향의 풍물과 거기에 깃든 생명 현상, 그리고 파괴적인 시간이 만들어내는 다양한 인생의 문양에 주목하면서 그러한 현상에서 아름다운 서정을 길어내는 데에 탁월한 문학적 성취를 보여준바 있다. 물론 생명 현상에 대한 각별한 태도에는 여류시인이 간직하고 있는 고유한 모성적 시각이 빛을 발하고 있지만, 그러한 보편적인 현상으로 김소해 시인을 아우르기에는 부족함이 있다.시인의 시조 작품에는 어떤 삶의 깊이나 사유의 깊이와 같은 “깊이”에 대한 향수가 자리잡고 있어서 그것이 그녀의 시조 작품에 품격을 부여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삶과 문학에 대한 열망의 강렬도를 대변해주고 있으며, 독자들에게는 잔잔한 감동의 원천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그녀가 깊이를 추구하는 방식은 다양하지만, 주로 시간의 함수를 이용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즉 오랜 기간에 걸쳐서 누적되어온 시간의 단층을 잘라 그 아래로 내려가 보는 방식, 즉 인생의 연륜을 파고들어가 그것들이 어떤 과정을 거쳐서 현재에 도달해 있는지, 그리고 그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원망(願望)과 실패, 그리고 고통과 열망이 스며들어 있는지를 읽어주고, 그러한 피와 땀과 눈물들이 그려내는 때 묻은 무늬들을 묘사함으로써 감동의 샘물을 길어내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그녀의 작품에서 느낄 수 있는 감동은 흑백사진이나 낡은 옛 영화를 볼 때 경험할 수 있는 그러한 감상적인 느낌이 아니다. 그것은 한 유한자가 이승에 새겨 놓은 삶의 흔적과 무늬를 보면서 느끼는 숭고하면서도 아득한 그러한 감동인 것이다. 시인의 작품 속으로 들어가 본다. <o:p></o:p>쟁깃날 벼리고 세워 경작한 바다였다수평선 너머까지 가보고 오는데 육십년근육질 어깨 죽지에 동해호가 파도친다 <o:p></o:p>아버지 가시던 길 따라가지 않겠다고빈 어창魚艙에 버티던 길 여기까지 따라왔다한 그물 당길 때마다 다시 듣는 그 말씀 <o:p></o:p>비장秘藏의 낡은 유산 놓고 가신 어장도漁場圖난바다 물너울에 투승점을 찍는다소금길 썩지 않는 법 나침반에 새긴다―｢투승점(投繩點)을 찍다｣, 전문 <o:p></o:p>아버지의 삶의 터전인 바다에는 보이지 않는 “소금길”이 있다. 그것은 아버지가 육십년의 세월을 통해 일구어온 것인데, 이제 그것은 가업으로서 그의 후손이 걸어가야 할 길이 되었다. 아버지는 육십년의 세월 동안 바다를 넘나들어 바다와 하나가 되어 있다. “근육질 어깨 죽지에 동해호가 파도친다”는 첫 수의 종장 구절은 아버지의 어깨 너머로 동해의 바다가 파도치는 광경으로 이해할 수도 있지만, 아버지의 육신에 새겨진 동해의 파도로 해석할 수도 있을 것이다. 후자로 해석할 때 시의 묘미는 더욱 강화되는데, 아버지와 바다가 혼연일체가 되어 함께 출렁이게 되기 때문이다. 어쨌든 아버지가 일군 소금길이나 그의 어깨 죽지에 새겨진 동해의 파도 등은 60여년이라는 아버지의 한 평생이 온전히 담겨 있다는 점에서 감동의 원천이 된다.아버지의 육십 여년이 새겨진 길은 둘째 수에서 그의 후손에 의해 더욱 연장되는데, “버티던 길 여기까지 따라왔다”라는 구절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다. “버티던 길”은 아버지가 “가시던 길”로서 60여년의 시간이 흐르던 길이기도 하면서 아버지가 넘다들던 “소금길”이기도 할 것이다. 아버지의 길을 외면하고자 했던 시적 주체가 왜 아버지의 길을 이어받아 걸어가게 되었는지는 의문으로 남겨져 있는데, 그것 또한 시간이라는 기제가 빚어낸 신비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전환의 궁극적 계기로 우리는 운명(運命)이라는 어휘를 떠올릴 수 있는데, 역시 운명이라는 신비에는 시간이라는 요소가 작동하고 있다. 사실 “투승점(投繩點)”이라든가 “소금길”이라는 시어에서도 먼지처럼 누적되어 있는 시간의 계기를 발견할 수 있다. 어부들이 고기를 잡기 위해 그물을 투척하는 적정 지점이라는 의미를 지닌 투승점은 오랜 삶의 경험과 그것에서 파생된 직관으로 인해 생성한 것이기에 그 이유를 말로 해명하기 어려운 신비로운 것이며, 소금길 또한 “썩지 않는” 길로서 신비로운 것인데, 그것 역시 60여년의 시간이 바다에서서 발견해 낸 것이다. 결국 이 시의 주인공은 “시간”인 셈인데, 그것은 인간과 자연의 동화, 혹은 운명과 신비의 원천을 제공하고 있는 것이다. <o:p></o:p>선 채로 늙어가는 그런 길도 있다는 걸 <o:p></o:p>발목을 빠뜨린 채 한 생이 저문다는 걸 <o:p></o:p>알면서 제 할 일 끝낸 저 넉넉한 파안대소―｢가을, 허수아비｣, 전문 <o:p></o:p>역시 길이 등장하고 있다. “선 채로 늙어가는 그런 길”이다. “선 채로 늙어가는 그런 길”은 인간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불가항력의 어떤 운명이나 외부의 힘을 암시한다. 주체적이고 능동적인 의지로 자신의 인생을 선택하거나 개척하는 것이 아니라, 주어진 운명을 감내하며 그렇게 되기로 정해진 하나의 생을 완성해야 한다는 것이 암시되어 있는 것이다. 따라서 그것은 “발목을 빠뜨린 채” 저물어가는 “한 생”과 다르지 않다. 외부에서 주어진 어떤 조건에 붙들려 옴짝달싹 못한 채 자기에게 다가오는 운명의 시간을 고스란히 받아들여야 하는 삶의 자세가 투영되어 있다. 더구나 그것이 몰락과 소멸의 길이라는 점에서 그러한 태도는 비극적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다.하지만 이 시조 작품에서도 궁극적인 감동은 시간성에 있다. “선 채로 늙어가는 그런 길”이라는 표현 속에는 운명을 감내해온 인내의 시간이 내재되어 있으며, “발목을 빠뜨리 채” 저물어 가는 한 생에도 수많은 시간의 흐름이 누적되어 있다. 하나의 사건이나 일회적인 결단이 아니라 무수한 사건들의 중첩과 무수한 결단과 삭힘의 시간들의 누적되어 있어서 그러한 표현들은 독자들에게 감동을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종장의 “알면서 제 할 일 끝낸 저 넉넉한 파안대소”라는 비약적 표현 또한 시간의 축적을 상기하지 않으면 이해하기 어렵다. 선 채로 늙어가는 삶의 길, 그리고 발목을 빠뜨린 채 저물어가는 한 생을 감내하면서도 “넉넉한 파안대소”에 이를 수 있는 심리적 전환은 시간의 발효작용이 없으면 이해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물론 이러한 삶에 대한 달관의 자세는 “제 할 일”을 모두 마쳤다는 소명의식으로 인해 가능해진 것인데, 소명의식이란 자기 너머에서 기인하는 것으로 느껴지는 초월적 부름, 혹은 내적 성찰에 의해 발견되는 내적인 부름에 대한 응답이라는 점에서 위대한 수동성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다. <o:p></o:p>살다가 섭섭할 땐 자갈치에 와 보시게사유 깊은 그대 마음 짐이 되면 부디 오게올 때는 빈손으로 오시게빈 그릇 빈 마음 <o:p></o:p>어판장 돌아 나온 향수 묻은 뱃고동첫 새벽 열고 오는 봄 도다리 가을 전어내 더는 권하지 않겠네오던 길 되돌아가든 <o:p></o:p>반백년 품어 온 삶 아니리로 풀어내면시든 가슴 그대 심장 박동소리 들리겠네돌아갈저기 충일한 길말은 두고 가시게―｢자길치｣, 전문 <o:p></o:p>사유의 세계와 말의 세계가 자갈치의 세계와 대립을 이루고 있는데, 시적 화자는 후자의 가치가 전자를 감싸도록 하고 있다. “자갈치에 와 보시게”라는 구절을 보면 자갈치가 특정한 생선의 이름이 아니라 시장을 지칭하고 있음을 알 수 있는데, 시적 화자는 자갈치 시장이 깊은 사유나 말의 가치보다 훨씬 깊고 그윽한 것이어서 그것들의 얄팍함을 감쌀 수 있다고 암시하고 있다. 물론 자갈치 시장의 세계가 깊은 사유나 언어의 세계보다 깊고 풍부할 수 있는 것은 구체적이고 생동감 있는 삶의 현장이기 때문일 수도 있다. 하지만 시적 논리에 의하면 자갈치 시장이 그러한 가치를 지니는 것은 그곳에서 살아온 “반백년 품어 온 삶”이 있기 때문이다. 삶의 구체적 현장성이 문제가 아니라 그 곳에 아로새겨져 있는 반백년의 시간이 문제가 되는 셈이다.반백년의 시간이 아로새겨져 있는 자갈치 시장은 사유로 인해서 생겨난 마음의 짐이나 말로 인해서 생겨난 “시든 가슴”을 치유할 수 있는 힘을 지니고 있다. 사유로 인해서 마음의 짐을 지니게 된 사람은 “빈 그릇 빈 마음”이 되고, “시든 가슴”이 된 사람은 “심장의 박동소리가 들리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어떻게 해서 자갈치는 이처럼 치유의 힘을 지니게 된 것일까? 역시 해답은 “반백년 품어 온 삶”에 내포되어 있는 시간일텐데, 자갈치에서 겪어낸 반백년의 삶의 시간은 온갖 희로애락을 담고 있어서 그러한 시간의 지층과 무늬는 사념과 언어가 만들어내는 고뇌와 번민을 퇴색시킬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자갈치 시장에 아로새겨진 반백년의 삶이 지닌 삶의 신산함과 숭고함 앞에 사유와 언어에서 파생된 고뇌와 번민은 얼마나 사치스럽고 초라할 것인가? 그것들은 시간의 무게를 감당하기 어려울 것이며, 시간의 무게에 정화되어 “충일한 길”이 무엇인지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반백의 시간은 눈에 보이지 않는 헤아릴 수 없는 삶의 깊이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삶의 깊이를 지닌 시간에 대한 천착은 결국 삶의 궁극에 대한 질문으로 이어지고, 삶의 궁극에 대한 질문은 죽음에 대한 사유에 다가간다. <o:p></o:p>내 사랑 어디에서 길을 물어 볼 것인가 <o:p></o:p>사람들 웅성거림 말이 되지 못한 말들 <o:p></o:p>불꽃만 살아 춤추는 제 할 일을 하느니 <o:p></o:p> <o:p></o:p>만나고 헤어짐이 태우고 씻는 거라면 <o:p></o:p>이곳에서 이루어지고 다시 또 흩어지는 <o:p></o:p>먼 훗날 한 줌 재를 모아 갠지스에 온다 하리 <o:p></o:p> <o:p></o:p>치장할 그 무엇도 남지 않은 얼굴이다 <o:p></o:p>이승으로 돌아오는 버스에 오르면서 <o:p></o:p>꽃다발 꽃잎 몇 장으로 깊어지는 강이 있다―｢화장-깊은 강｣, 전문 <o:p></o:p>갠지스강은 인도인들에게 어머니의 강으로 불리며 순례자들과 구도자들이 몸을 씻기 위해서 방문하는 곳으로, 살아있는 자들은 갠지스강에 몸을 담가 죄를 씻고, 죽은 자들은 버닝가트에 담겨 화장을 함으로써 윤회의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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