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행 배행에서 벗어나는 작품이 다소 적은 김소해 시인의 이번 시집에서는 바다 또는 고향과 관련된 ‘심상지리(心象地理)’가 각별해 보인다. “앵강 바닷가 펜션 어머니 발소리”(「앵강 펜션」) 있는 곳, “거기 오래 당신 없어 고향집 쓰러질 듯”(「만근인 줄 몰랐다」)하여 고향집을 팔았더니, “낡은 집 한 채 무게가 만근인 줄 몰랐다”고 탄식을 내뱉은 시인. “시 쓰다 고향 말 부딪치면 도움 받는 곳”(「폐 타이어」)이 바다이고 고향이기
때문에 그런 듯하다. 그동안 시인은 멀리 고향과 바다를 떠나왔나 보다. 이제 돌아가야 한다면, 돌아갈 수 있다면 어떤 삶을 살게 될까.
처마 낮은 슬레이트 집 그 바다의 어매들은
뻘밭이 연분인 듯 발을 묻고 못 떠난다
숨겼던 말들은 끝내 구새 먹어 깊어가는
그리움이 바래지면 하얗게 파도라 한다
늑골 밑 파도 한 장 씩 꺼내어 철썩, 철썩
아껴서 벼랑 언저리 바람에게 주곤 한다
― 「해식동굴」 전문
“처마 낮은 슬레이트 집” “바다의 어매들”은 “뻘밭이 연분인 듯 발을 묻고 못 떠”나는 사람들이다. 어떤 곡진한 사연이 있을지는 짐작이 가능할터, 한 행이 끝난 후 여백(엔터,↲)은 마치 ‘뻘밭’에 빠지듯 쉽게 다음 행으로 나아가지 못하게 한다. ‘바다의 어매들’의 사연은 “구새(오래 된 나무에 구멍이 뚫린) 먹어 깊”고 깊으니, 독자도 ‘뻘밭’에 빠져야 하고, “숨겼던 말들” 앞에서 한 번 더 빠져야 한다. 그리고 2행의 여백이 나타난다. 시인이 독자에게 “숨겼던 말들”이 무엇인지, “처마 낮은 슬레이트 집”에서 떠나지 못하는 그들에게 이입할 시간을 좀 더 배려한 것일까. ‘바다의 어매들’에서 ‘해식동굴’로 화면이 줌-인에서 줌-아웃되면서, “그리움이 바래지면 하얗게 파도라 한다”는 결론은, 아마도 ‘바다의 어매들’로부터 기인했을 것이다. 그래서 “늑골 밑 파도 한 장 씩”가지고 있는 ‘바다의 어매들’은 “철썩, 철썩” “벼랑 언저리 바람에게 주곤 한다”. 하얗게 파도가 될 때까지의 그리움과 오래되고 곡진한 사연은 바람에 날려 보낼 뿐, 떠나기도 그렇다고 정주하기도 그런 곳. ‘그리움’이 문제다. “달리기를 배우던 몇 살 적부터 그랬던가// 하늘을 쳐다본다는 건 들이받는 일이라고// 그 증거 흉터로 남았다 이마에 가로 놓인// 그리움을 아는 이만 하늘을 들이 받는다”(「아름다운 흉터」)는 시인에게 ‘그리움’은 ‘아름다운 흉터’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낙인이기도 하며, 극복의 불가능성을 알면서도 극복하기 위해 애써야 하는 존재의 고통에 다름 아니다.
리듬의 어원인 ‘류트모스(rhuthmos)’가 강이 흐르는 모습을 형상화한 것으로 질서와 무질서의 운동 전체라 했다. 파도가 치듯, 바람에 파도가 밀리듯, 시인은 한 행, 한 행 서두르지 않는다. 그러면서 1연에서 2연으로 장면이 전환될 때, 여백을 좀 더 마련했다. 시공간 전환에 그치지 않고, 구체에서 추상으로, 현상에서 본질로, 보다 존재론적인 성찰을 위해서다. 김소해 시인에게 행간은, 엔터(↲) 한 번이 아니라, 떠나왔던 고향과 바다로 다시 돌아가려는 시인의 존재론적 모험이니, 몇 년 혹은 수십 년이 켜켜이 접혀 있을 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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