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장 나비야 청산가자 에덴시학 1. 나비야 청산가자 모더니즘 계열의 서정시인 1.) 길 떠나기의 진행형홍 문표 시인은 모더니즘 서정계열이다. 정 지용의 이미지 중심계열에 서긴 하지만 정 지용의 도시적 모더니즘과는 다르게 서정이 있는 모더니즘 시인이다. 모더니즘 시인이면서 서정성을 지닌 홍 시인은 하나님을 향한 에덴으로 길 떠나기를 나비야 청산가자에서도 한다. 이 서정은 혼자가 아닌 많은 사람을 데리고 청산을 가자는 호소의 진행형이다. 이러한 증거는 일찍이 홍 교수께서 석사과정을 각기 서울대와 고려대에서 두 번 거치고 이 배움의 진행형으로 문학박사와 신학박사 2회 리듬 Alger F. Johns · 『성경아람어 문법: A Short Grammwa of Biblical Aramaic』 · 김이곤 역 (오산: 한신 대학교 출판부 · 2002) · 9. 기법에서 얼마만큼 탐색적인 가를 알리는 작업을 한다.『나비야 청산가자』시집은 에덴이 있는 청산을 표면구조로 한 반복리듬이다. 아주 성서적 [* 표 א(알레프 · 배움의 의미)로 시작하는 · 진행 중인 하나님의 일] אותּ֗(12) א(11) א(5) א(4) א(1) ↓ ↓ ↓ ↓ ↓ אותּ֗(24) א(11) א (5) א(10) א(21) ↓ ↓ ↓ ↓ א(12) א(8) א(12) א(27) ↓ ↓ ↓ א(10) א(18) א(27) ↓ ↓ ↓ א (10) א(21) א(27) ↓ ↓ א(25) א(2: 3) ↓ א(31) 이다. 성서는 2회 리듬을 아주 많이 한다. 그 이유는 그리스도를 들어내기 위해서이다. 홍 문표 교수는 교회이름을 ‘말씀과 문학교회’에서 한국문인교회로 바꾸는 2회 리듬에 있다. 하나님의 법을 배우기 위해 항상 길 떠나기를 시작하는 홍 교수의 새로운 도전의식에서 그 기저가 되고 있는 내면구조는 에덴시학이다. 홍 시인의 에덴시학 선택신념은 단순하다. 숨쉬기 위해서다. 하나님의 법을 배움 의미 א(알레프)와 같이 하나님 보호 아래에서 하나님에 의존한 학문과 시와 논문과 비평과 목회를 겸하면서 연구하며 숨을 쉰다. 최선 진행의 현재에서 홍 시인의 신앙철학은 이 처음 · 새로운 길 떠나기(알레프) 李 英芝 ·『물의 신학과 문학』(서울: 창조문학 · 2013) · 267. 그 좋은 결과를 주신 하나님을 확인한다. 언제나 늘 모자람의 순수로 시를 쓰는 홍 시인의 호소력은 절대 뽐내지 아니한다. 예기에 악기처럼 홍 시인의 마음에서 생기는 낮춤의 소리 음향을 낸다. 시인의 마음에서 울어나는 소리는 태극이다. 이 특징은 홍 시인의 믿음으로 시작되는 날마다의 주 바라기 메시지를 ‘나비야 청산가자’로 시작한다. 이 청유형 순수의 색채리듬으로 엮어진 길 떠나기는 목숨을 걸고 가는 발걸음의 음향리듬을 청산으로 한다. 그 이유는 지상이 ‘짓밟혀진 계곡 = 부정한 약탈이 핏발을 세운 곳’이기에 그 정상의 장소는 반대로 ‘구름으로 닦여진 은빛 순수의 흔적 = 정숙이 있을 곳이기에 정상을 향한다. 오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미 짓밟혀진 계곡에 무슨 미련이 있을 것인가. 손쉬운 소유로 하여 부정한 약탈이 핏발을 세우고 마침내 진창으로 침몰하는 낙화의 절망정상이야 그래도 구름으로 닦여진 은빛 순수의 흔적이라도 널려 있을 것이고 바람이 머물던 무념의 그림자 그 가난한 정숙의 몸짓이라도 남아 있을 것이 아닌가무수한 바람의 역사가 대지의 순결을 유린하고 이제 마지막 남은 자존심 · 아스라이 나부끼는 부끄러움만이 유일한 존재의 흔적일지라도 오를 수밖에 없는 것이다.오르다 지쳐 쓰러지는 눈물 그것이 무모한 지상의 허무일지라도 오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리하여 오르다 오르다 지쳐 쓰러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 홍 문표 「날마다 산에[ 올라 3」전문 홍 문표 시인이 신화의 주인공이 되는 것은 목표점이 정상을 향하여서 움직임 때문이다. 정상은 청산이라는 문제제기이다. (1). 길 떠나기 그런데 아주 놀라운 사실은 홍 교수의 고향 부여나 백제 모두 우리말로 찾아 볼 수 있는 정상 · 우두머리 · 우뚝한 곳을 찾는 일이다. 그런데 흔히 일반적인 영웅들이 신념 하는 정상에서의 우뚝 섬이 목적이 아니다. 그래도 길 떠날 수밖에 없고 · 그리고 뚜렷한 목표를 향해 달려갈 수밖에 없는 정상은 순수와 정숙이 파란 이끼가 끼도록 기다리고 있다. 기다림의 파아란 이끼색이 지상의 ‘무모한 허무일지라도/ 오를 수밖에 없는’ 색채리듬이다. ‘오르다 오르다 지쳐/ 스러질 수밖에 없는’ 길이라 할지라도 오른다. ‘나비야 청산가자’에서의 길 떠나기는 나와 절대자와의 언약으로 인한 내면적 약속에서이다. ‘눈물’ 같은 표적이 있다. 바로 정상이 있는 청산이다. 청산을 향하여 갈 때는 나팔을 분다. 그러나 자신만을 위하여서는 나팔을 불지 않는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가라사대 은나팔 둘을 만들되 쳐서 만들어서 그것으로 회중을 소집하여 진을 진행케 할 것이라 두 나팔을 불 때엔 온 회중이 회막 문 앞에 모여서 네게로 나아올 것이요 하나만 불 때에는 이스라엘 천부장 된 족장들이 모여서 네게로 나아올 것이며 너희가 그것을 울려 불 때에는 동편 진들이 진행할 것이고 제 2차로 울려 불 때에는 남편 진들이 진행 할 것이라 무릇 진행하려 할 때에는 나팔 소리를 울려 볼 것이며 또 회중을 모을 때에도 나팔을 불 것이나 소리를 울려 불지 말 것이며 · 그 나팔은 아론의 자손인 제사장들이 불지니 이는 너희대대에 영원한 율례니라(민 10:1∼8). 이 지혜는 여호수아가 여리고 성을 향하여 가던 때의 모습이다. 신앙영웅의 덕목이다. 시인의 심상 속에 있는 정상 청산은 첫째 구름이 늘 머무는 곳이다. 구름은 히브리어의 원형에서 말씀따옴표의 모양을 지닌 것으로 후일 오늘날 회자되는 따옴표 “”의 형태이다. 따라서 앉아 있거나 누워있거나 하나님의 일을 하는 시간은 구름을 따라 움직이는 시인 믿음의 깊이가 청산이고 정상이다. 이 믿음의 본산지인 당신은 ‘손’으로 은유된다. 이 절대자의 손은 치료해주시는 손이며 그의 나라와 의를 향해 움직이는 홍 시인을 어루만지신다. 따스한 손길인 절대자 손길인 은총을 홍 시인은 받고 싶어 한다. ‘당신’은 돌 판에 10계명을 가지고 있고 · 지팡이와 항아리를 가지고 있는 분이시다. 이 당신은 그릇을 먼저 예비하게 하시는 분으로 그 내용물 또한 주시는 분이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칠 수 있는 믿음을 허락하신 후 모리아 산상에서 어린 이삭을 요구하신 분이다. 그런 후 그 앞으로 지나시며 반포하시니 여호와로라 출 34:16. 하심을 보는 홍 시인의 마음은 그 분의 자비롭고 은혜롭고 인자하시고 진실하신 분을 정상에서 · 청산에서 만난다. 이리하여 마음에 하나님 법을 저술과 시로 기록하라 하시매 숱한 언약시를 쓰는 홍 시인의 시가 있다. 당신은 말씀하시기를 나는 여호와라 나는 너의 하나님이라 하시고 너는 내 백성이라 하신다. 이 분이 계신 곳에 머물려 오늘도 홍 시인은 에덴을 향한다. 정상의 청산은 하얀 세마포로 커텐이 드리워져 성막 · 동쪽 문은 항상 열려 있어도 얼핏 알아 볼 수 없으나 진주를 발견한 홍 문표 농부가 되어 동천(東川) · 동쪽으로 흐르는 물이 된다. 동천의 발바닥에는 땅방울이 얼룩져 빠알갛고 내장과 뼈를 태워 번제 드리려 새롭게 태어나기를 희망하여 에덴을 향한다. 절대자의 모습에 따라 움직여지는 시인의 에덴으로 가는 홍 시인의 길에는 늘 새롭게 태어나는 자신의 음성을 듣는 귀가 있다. 칭찬하시는 분의 음성을 들을 수 있어서이다. 그것은 늘 평을 쓰며 학문을 연구하며 확인하는 작업이다. 그 음향리듬은 물두멍에 물을 길어 손을 씻고 발을 씻은 뒤 하얀 세마포의 커텐을 열고 나오는 드맑은 영혼의 음성이다. 내 안에 하나님이 거하는 음향이다. 그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하늘보좌를 버린 낮은 자의 음성을 쫓는 절대의 추종으로 길 떠나기를 멈추지 않는다. 홍 학자의 평생 에덴시학의 길은 이처럼 꿇어 엎디어 철저히 낮아지고 그러기에 세상에서는 더욱 의지할 곳이 없어서 철저히 말씀을 기다려 말씀을 전하는 연구자의 길이다. 빛과 소금이 되어 가기를 희망하는 복종한 자의 음향리듬이다. 섬기는 자가 되어 간다. 역설적으로 사람들은 섬겨주는 사람을 좋아하기에 섬기는 자가 되는 나비야 청산가자를 부른다. 연단되어지는 음성을 가지고 사랑하면 할수록 더 사랑하게 되기 위하여 그 분이 있는 곳을 향한다. 그러기에 평생 메추라기와 만나를 먹이시는 자를 체험한 목회자로서의 기쁨의 목소리가 있다. 갈증 날 때 반석을 열어 주시는 그 분의 물을 먹는 자 · 나만 믿고 따라오라는 자의 말씀을 듣고 보는 행복함이 있는 목소리로 삶을 살며 연구하는 비평가이다. 이 음성은 태극 소리 주자왈 태극지시일개리자 · 태극지시천지만물지리 · 재천지즉천지중유태극 · 즉만물중각유태극(성리대전저) · 권25 · 4. 이기일(朱子曰 太極只是一箇理字 · …太極只是天地萬物之理 · 在天地言則天地中有太極; 則萬物中各有太極“([性理大全書) · 卷26 · 4 · 理氣一). 이다. 일반적이지 않는 홍 시인의 사랑 원형질은 부끄러움이다. 홍 시인은 자신을 돌아보며 오랜 기다림을 허락하신 절대자에 대해 감격하며 자신을 낮게 낮추고 이웃을 사랑하기 시작하는 신앙영웅의 그 분 따라가기이다. 홍 시인의 특징은 사랑이다. 이 사랑은 특유의 기법으로 시나 논문이나 그리고 저서에서 지극한 사랑의 원형질을 가진다. (2). 빠알간 사랑을 나도 들고 이 원형질은 부여인 특유의 미소이다. 온유이다. 다시 말하면 어려운 논문이나 저서나 그리고 시 비평이나 모두 쉽게 대상의 기준에 맞추어 하는 버릇을 홍 시인은 가진다. 홍 시인의『나비야 청산가자』시집에는 ‘사랑’ 시어가 가장 많다. 시에서 시어를 많이 사용하는 것은 시인 자신 바램의 표현이다. ‘사랑’ 언어는 이차적 메타퍼 언어이다. 홍 시인에게 사랑 언어는 사랑의 직설이 아니라 가장 부끄러움에서 출발하고 있다. 이 부끄러움은 일찍이 헌화가에서 실명노인이 부끄러워아니한다면 꽃을 꺾어드리겠다는 사랑시를 고백 실명노인. 함에 접목할 수 있다. 이 사랑은 홍 문표 학자가 시를 통해 신앙영웅으로서의 면모를 갖추는 가장 깊은 마음의 표시 곧 그토록 평생의 철학으로 하는 에덴시학이 『나비야 청산가자』고 하는 청유형의 사랑이다. 사랑의 은혜적 음향리듬을 들고 나온 신앙 영웅 홍 시인은 바울이 3년간 아멘을 준비한 거나 모세가 40년 동안 아멘을 준비한 것이나 사가랴가 불순종으로 벙어리가 되고 귀머거리가 된 상황에서 아멘을 준비한 것처럼 다시 한 번 기회가 온다면 지체 없이 순종하고 찬양하고 기쁨으로 맞이하리라는 준비의 긴 기다림에서 들고 나온 푯말이다. 나서지 않으면 안 되는 이유가 명백한 소명감 시행에 대한 준엄한 명령에 따라 · 시대의 요청에 따라 행동하는 에덴시학이다. 하나님이 사랑하는 홍 문표의 나비야 청산가자는 광야 · 산에서 얻는 은혜를 갚는 감동의 표시이다. 사랑 음향리듬은 삶에서 겪어지는 신기함의 일상과 충족과 연단과 고난을 통하여 과거에 대한 부끄러움에서 떠나는 시인의 현재이다. 현실성은 와병의식으로 인한 하향의식을 이기 이퇴계는 죽음의식에서 벗어남을 위한 방법으로 낙동강 상류 토계(兎溪)에 양진암(養眞庵)을 지어 제자들을 기르며 학문에 몰두 · 퇴계라는 호를 짓고 “동방의 주자”라는 칭호를 받는다. 중앙관직을 피하여 외직을 지망 48세 때에 풍기군수가 되었는데 · 전임군수인 주세붕(周世鵬)이 창설한 백운동서원(白雲洞書院)에 편액(扁額) · 서적(書籍) · 학전(學田)의 하사를 청하여 조선조 사액서원의 효시가 된 소수서원(紹修書院)과 60세(1560)에 도산서당(陶山書堂)을 짓고 7년간 기거하면서 많은 제자를 길러냈다. 이황은 특별한 스승이 없이 거의 독학으로 대성하였다. 정지운(鄭之雲)의 『천명도설(天命圖說)』 개정 · 대승(奇大升)과 7년 여에 걸쳐 사단칠정논쟁(四端七情論爭)이 일어나게 된다. 57세에는 『역학계몽전의(易學啓蒙傳疑)』를 완성하고 · 58세에는 『주자서절요(朱子書節要)』와『자성록(自省錄)』을완성하였다. 63세(1563)에는 『송원이학통록(宋元理學通錄)』을 지었고 · 66세에는 『심경후론(心經後론)』을 지었으며 · 68세에는 『성학십도(聖學十圖)』를 완성한다. 1970년 서울에 퇴계학 연구원이 창립된 이후 · 일본 동경에 이퇴계연구소 · 대만 국립사범대학 내에 퇴계학 연구회가 부설되었으며 · 근래에는 미국의 워싱톤 · 뉴욕 · 하와이 · 독일의 함부르크 · 본에 퇴계학 연구소가 설립되었다. 1976년 이래 해마다 세계 도처에서 국제학술회의가 개최되고 있다. 이황을 종사한 서원은 전국에 40여 곳에 이른다. 려 부여군 내산면에 밤 매실 농원경영으로 유기농산물을 생산한다. 때로는 그냥 나누어 주기도 하는 청정 유기농산물은 푸른 청산을 색체리듬으로 선택한 결과에서 오는 와병 불면의 쾌유와 더불어 사랑의 음향리듬으로 변한다. 산이 산인 것처럼 눈물이 눈물일 수 있다면 눈물은 눈물이 되고 산이 산인 것처럼 믿음이 믿음일 수 있다면 사랑은 사랑이 되고 산이 산인 것처럼 당신이 당신일 수 있다면 당신은 당신이 되고 산이 산인 것처럼 우리가 우리일 수 있다면 우리는 우리가 되고 ∼ 홍 문표 · 「산이 산인 것처럼」 홍 문표 · 『나비야 청산가자』(서울: 창조문학사 · 1997) · 140∼141. 홍 문표 학자의 추구는 우리와 평화와 노래이다. 이 때문에 자신을 비워낸 사랑의 음향이 살아온 삶의 음향으로 울린다. 미래를 향한 시인의 소고가 ‘눈물’과 ‘믿음’과 ‘당신’과 ‘우리’와 ‘평화’와 ‘노래’의 음향리듬이 된다. 저 높고 푸른 ‘산’ 색채리듬을 향하여 놓여진다. 이 절대의 이상향은 시적 육성 18회의 시적화자목소리이다. 이 ‘산’은 ‘눈물’과 ‘믿음’과 ‘당신’과 ‘우리’와 ‘평화’와 ‘노래’를 네 모 안에 하나님이 보호하고 있음 암시이다. 사각형 네 모가 되는 은유로 인간의 눈으로는 볼 수 없는 하나님의 성역이다. 이 네 모는 완전지향성의 은유이다. 홍 문표는 이곳을 최고의 지점으로 한다. 높이 오를수록 멀리 보이고 높이 오를수록 내려다보이고 높이 오를수록 하늘 복판 낮에는 불 수레로 우주를 달리고 밤에는 은하수 넘실대는 아슬한 강가에서 반짝이는 별들을 가슴에 달고 어둠을 굽어보는 짜릿한 평화, 그래서 날마다 산에 오르고 할 수만 있으면 병벽의 정수리 새하얀 에베레스트 영봉에 내 오른 손의 빨간 손수건 하나 펄럭이고 싶었지 정상이 무엇인지 깃발이 무엇인지 그 펄럭이는 의미도 모르면서 그런데 요즈음은 오를수록 희미하게 보이고 오를수록 숨이 차고 차라리 낮은 계곡 강가에 흔들리는 버들강아지 발밑에 깔리는 조약돌 하나 그도 아니면 물결 따라 흔들리는 갈대꽃 산 그림자 ∼ 홍 문표「날마다 산에 올라」7 홍 문표 ·『지상의 연가 ∼늘 푸른 강물이 듯이∼』(서울: 창조문학사 · 1997) · 23∼24. 홍 시인이 가지는 신화의 결정타는 ‘은하수 넘실대는 아슬한 강가’이다. ‘아슬한’은 전세계의 반을 차지한 우리민족의 DNA 발현이다. 더구나 ‘반짝이는 별들을 가슴에 달고/ 어둠을 굽어보는 짜릿한 평화’이다. 어둠을 이기려는 마음 · 그 절대의 경지까지 울리는 음향리듬을 소유하는 시적 화자 색채는 빠알간 사랑리듬이다. 이 빨간 사랑의 리듬은 의미지수로 흰색으로 돌출된다. 고난을 감당하는 리듬이다. 해발 오천을 넘은 영봉은 이미 청산이 아니다. 에베레스트나 몸불랑이나 킬리만자로나 맥귄리의 정수리 거기엔 소나무도 없고 산나리도 없고 범나비도 없다. 억년빙설로 무장한 장엄한 침묵 거기엔 은빛 권력과 바람의 항거와 산들의 질투가 있을 뿐이다. 흰 구름마저 오르다 지쳐 허리춤에서 흩어지는 저 아득한 봉우리 얼굴조차 가늠키 어려운 이승의 먼 거리에서 너도 없고 나도 없고 우리들의 구구한 넋두리도 눈물도 한숨도 미움도 사랑도 없는 그리하여 죽음조차 빙벽의 아득한 두려움으로 가리어진 새하얀 나라일 뿐이다 ∼ 홍 문표 「새하얀 나라」 홍 문표 · 『나비야 청산가자』(서울 창조문학사 · 1997) · 97∼98. 홍 문표 시인의 기질은 그분의 세계에 대한 하얀 의식이다. 그러기에 그에게 고난은 더 이상 고난이 아니며 · 고민은 더 이상 고민이 아니다. 요셉은 그의 약혼녀 마리아를 사랑함으로 만삭된 마리아를 수 천리 데리고 가서 보호한다. 사랑하는 자의 음성 “무서워 말라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에게 전하노라”를 듣고 그의 가정을 보호한다. 사랑하는 자가 나를 위해 믿음의 빛을 전해 눅 2:10∼11 참조. 주시기에 홍 시인은 늘 에덴을 향한다. 하나님은 그의 사랑하는 자에게 영혼이 곤할 때 인자한 말씀을 듣게 하시고 · 다닐 길을 알게 하시고 나는 주의 종이니이다라고 고백하시게 하신다. 전율하며 하나님을 향해 길 떠나기 ‘나비야 청산가자’를 주저하지 않는다. 하나님이 사랑하는 자와 사랑 받는 자의 관계는 떨어질래야 떨어질 수 없는 관계 시 14:7∼12 참조. 이다. 홍 문표의 삶 베르그송 외 · “지속의 관념,” 『시간과 자유의지』 · 정석해 역 (서울: 삼성출판사 · 1976) · 111∼112. 은 단순히 새싹과 같은 순서로 시작되어 늙어 죽음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하나님이 명하신 모든 도를 행할 때에 장구하게 된 날 히브리어 얌 임 םי(얌임 · 신 5: 33). 이다.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아니 한 하나님의 자손이 왕위에 앉는 여러 날 얌 임 םי(얌임/날들 · 신 17: 20). 동안 사는 날이다. 장수하는 오늘의 삶이 있다. 홍 시인은 삼위 곧 우리 곧 성경의 삼위가 합하여 만들어낸 하나님의 사람이다. 가장 보편적인 그래서 가시적인 이 세상 내의 진 나무들을 비롯한 삼라만상이 서로 도와주는 리듬으로 그 생명을 유지함을 본다. 우주 전체가 살아나고 있는 리듬이다. 이 리듬은 삼위의 리듬이며 혼자가 아니라 셋이서 어울려 살아남의 리듬이다. 내가 남을 구하고 남의 마음을 어루만져 주고 그리고 어머니가 자식을 생각하고 그리고 아버지가 가정을 위해 혈육들을 돌보는 리듬이다. 혼자의 리듬이 아니라 성부와 성자와 성신의 삼위가 어울려 같이 만들어 내는 공동 작업이다. 그러기에 남을 미워하고 헤치는 일은 동시에 내가 죽는 길이다. 파멸의 길이다. 이 길이 아닌 신앙영웅들의 길은 서로 돕는 일에 앞장서고 시를 통하여 그 사랑을 실천하여 파아란 나라를 이루려한다. 가장 기본적인 이 세계내의 질서 속에 서 가장 자연스러운 시인이 상상할 수 있는 일이다. 비록 현실에서 그 일이 이루어지지 않을지라도 시라는 상상력을 동원하여 하나님이 주신 상상력의 행복을 누릴 수 있는 강점이다. 이러한 시속에서의 신앙 영웅 화자는 그 메시지를 전하기를 소홀히 하지 않는다. 한 나무가 되어 하나님의 질서를 드러내는 일로 시는 전 생애를 기울이고 이러한 자리에서 선 나무이다. 신앙영웅 신화를 시로 쓰는 일이다. 신앙나무이다. 때문에 문학인으로서의 소명의식이 있다. 가지고 있는 문학적 기질의 글 · 논문 · 시를 담당한다. 특히 하나님의 일을 하는 사역 물고기 · 즉 믿음이 있는 자가 해야 할(ל/할) 일에 선다. 언제나 하나님 울타리 안에서만 하는 일의 목적성이다. 홍 시인이며 · 문학박사이며 · 신학박사가 할 일은 에덴동산을 향하여 가는 일이다. 홍 문표 박사는 모더니티의 개념 속에서 이 세상의 에덴시학을 이루려는 신앙시학이 있다. 한 가장의 아빠이면서 · 사회에서의 아버지 의식이 늘 적용된다. 그러기에 한국 창조문학 · 잡지 창조문학 · 말씀과 문학 · 그리고 목양문학회장직에 머무른다. 그 사역은 창세기 1:1절에서 2:3까지에서 제시하는 41회의 예수님의 족보 자리 41번째 · 예수님 암시 李 英芝 · 『물(ם)에 대한 신학과 문학의 비교연구』(서울: 영예문학 · 2008) · 76~77. 에 철저히 제자역할 소명 李 英芝 · 『한국인이 복을 받는 물은 생명이다와 한국말과 성경의 히브리어와는 닮았다. 그 이유』(서울: DSB 한국문학방송 · 2009) · 602~702. 의식이다. 일을 하여 ה(하야). 야 하는 것은 철저히 하나님을 위하여서이다. 언제나 예 예 저는 만군의 하나님 הה(여호와)시라 הה(여호와)는 하나님의 기념 칭호니라(호 2: 5). 아멘 아멘 하며 절대명령에 복종한다. 하여 신앙 영웅이 길 떠나야 하는 이유의 타당성이다. 하나님 손 ה(에흐예)와 הה(여호와)가 (바/실존)와 (요드/하나님의 손). 에 붙잡힌 홍 시인은 신앙영웅이 가지는 절대자가 명령하는 일 곧 그 사역 S. D. Goitein · "YHWH the Passionate,“ The Monothistic Meaning and Origin of The Name YHWH," VT 6(1956): 1∼9 · 5. 을 붙든다. 줄을 잡는다. 하나님 돌보심 에흐예 ה(에흐예)의 (알레프/시작). 따라 에덴으로 길 떠나기 한다. 동천은 에덴을 향하여 흐르는 시냇물 · 동천(東川)이다. 성서에서의 에덴 물은 동방에서 발원하여 흐르는 물이다. 반면에 홍 시인의 물은 오히려 에덴을 소망하며 에덴으로 흐르는 물이다. 그럼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지극히 받음에 대한 감동으로 이 사랑을 이행하는 절절한 그리움의 무게를 문표라는 글 몫으로 한다. 물의 흐름은 강의 속성이다. 흘러가는 강은 히브리어 나하르 · 나할이다. 홍 시인의 호 동천은 졸졸 흐르는 강물이다. 자신을 낮추는 신과의 분리의식을 철저히 한 나할 강이다. 그러기에 주신 기업에 충실한다. 비평정학을 확립한다. 지극히 적은 내해 나의 것 李 英芝,『한국인이 복을 받는 물은 생명이다와 한국말과 성경의 히브리어는 닮았다 · 그 이유』(서울: 영예문학 · 2010) · 676. 에 온 마음과 정성을 다 기울인다. 부지런리 길 떠나기를 감행하는 신앙영웅은 절대자와 나와의 그 먼 타자거리를 철저히 인식 · 하나님만큼의 사랑이 없음을 절감한다. 환한 대낮에도 부끄럼을 모르는 정말 낮달처럼 투명한 사랑이 있을까종로 네거리 시퍼런 욕망이 질주하는 광장에서도 훨훨 나비되어 춤추는 정말 홀가분한 자유가 있을까가시밭 돌짝밭 뜨거운 불길마저 사랑하는 불새춘향이처럼 사랑이 그렇게 확실한 것이라면 가진 것 모두 버리고 저승까지라도 달려가련만 연민의 잎들은 여전히 기억의 발등에 쌓이고목마른 아스팔트 아물대는 저녁 길 아직도 부끄럼으로 포장된 내 영혼은 오늘도 후미진 골목을 돌며 바람 한 자락 움켜잡아 본다 ∼ 홍 문표「알몸 달리기」이 세상에 완전한 사랑이 없음을 절감하며 절대자 하나님만이 사랑완전성을 주실 수 있음을 내면의 리듬으로 한다. 신과 나와 분리된 그 먼 거리는 다름 아닌 절대사랑과 인간의 완전할 수 없는 사랑거리를 확인하게 된다. 기업으로 얻은 홍 시인의 분야인 내해 · 본인 나름에 내 할 일에 철저히 다한다는 철학이 존재한다. 이 하나님의 손이 되는 동적 사역을 엣레이젤(Dr. M. Reisel)은 ‘사랑으로 가는’(to love) 길이라 했다. 사랑이 주제가 되는 일만을 들고 예 · 예 하면서 따라가는 신앙영웅 홍 시인의 길이다. 그러기에 홍 시인은 한 별이 아닌 동천으로 그 호를 바꾸었다. 지금도 살아계신 출 3:14. 그 놀라운 일들을 홍 시인 자신은 동천 · 동쪽으로 흐르는 물이 되어 생명의 문학 · 영성의 문학을 위해 구원의 문학임을 이성적인 최대의 방법을 동원한다. 목사로서의 설교시간에 · 그리고 대다수를 향하여 디지털 문명이기를 빌린 동영상을 실시한다. 사역의 범위는 예수님이 하셨음에 감히 인간이 안하고는 아니 된다는 불타는 신앙심 영역이다. 홍 시인은 둘째 아들로서 · 예수님을 본받으면서 일 한다. 이 움직임의 동적 에너지는 에덴을 향하여 가는 길에서 있다. 사랑의 길이다. 1700년 르 끌레르끄(Le Clerc)는 사역의 길을 “Creator eteffector rerum”이라 하였다. 그 후 라가르트(De Crere)가 ‘약속의 땅을 존재에로 불러들이는 분’ derjenige welsher das Verheissene in das Desein ruft: 김정철 · op. cit · 39.에서 재인용. W. F. Alblbright · "Contributions to Biblical Archaeology and Philogy," JBL 43 (1924) · 375. 을 따르는 일이라 하였다. 반대학자 레이몬드도 하여(היה/하야) 동사가 사용된 근거가 없다 Raymond Abba · "The Divine Name Yahweh," JBL 80(1961) · 320∼323 · 325. 하면서도 동일한 어원아래 묶고 있다. 홍 시인은 냉철하게 이 세상에 사람으로서는 완전한 사랑이 없음을 절감한다. 다만 절대자만이 베푸는 사랑을 흠모하면서 내면의 리듬을 전제로 신과 나와 분리된 그 먼 거리를 그분의 사랑 방법 배우기로 길을 연다. 이일을 맡은 본분 내해로 여기며 사역한다. 2). 5월의 단 꿈홍 시인은 오월에 단 꿈을 꾼다.바람이 불면 언어는 날개를 달고 오월의 하늘을 나른다. 영롱한 호랑나비가 되어 조용히 가슴으로 내려와 앉는다. ∼ 홍 문표「언어의 꽃밭에서」 홍 문표 · 『囚人(수인)과 바다』. 미루나무 열병한 신작로 따라 허리 굽은 논 티 고개를 넘을 때면 언제나 마음은 오월의 하늘이었지 ∼ 홍 문표「장승백이 시절」 홍 문표 · 『囚人(수인)과 바다』. 에서五月의 하늘에 강물이 흐른다 ......... 우리들의 사랑은 날개되어 한없는 五月의 강가로 달린다. ∼ 홍 문표「五月의 강가에서」 홍 문표 · 『囚人(수인)과 바다』. 밤이면 무서운 그림자 온몸을 휘감아도 억년을 지켜온 한결같은 마음 아아 치정만큼이나 진한 오월의 빛깔 ∼ 홍 문표「바닷가에서 Ⅱ」 홍 문표 · 『囚人(수인)과 바다』. 하늘도 푸르고 그대의 가슴도 물씬 풋내가 터지는 五月 ∼ 홍 문표「출발의 팡파레」 홍 문표 · 『囚人(수인)과 바다』. 에서그리하여 오대조 할아버지 사랑방 문지방을 넘나드는 동심이게 하소서 ∼ 홍 문표「늘 푸른 강물이 듯이 · 17」 홍 문표 ·『지상의 연가 ∼늘 푸른 강물이 듯이∼』. 홍 문표 시인은『囚人과 바다』시집에서의 시어 “오월”을 두 번째 시집 『지상의 연가 ∼늘 푸른 강물이 듯이∼』에서 그 답을 5부로 절대화한다. 의미를 강조하며 답을 푼다. 왜 그토록 홍 시인은 5월을 좋아할까. 그것은 부르는 느낌 · 이미지가 좋아서일 것이다. 사람이름도 부르기 좋으면 잘 부르게 된다. 그러기에 이름철학이 있게 된다. 야곱도 이스라엘로 바뀌어 졌다. 있으라 하나님이 존재의미를 주셨다. 하나님이 부르시기 좋아서이다. 하나님이 즐겨 부르시는 이스라엘 그 이름! 영원한 우리의 고향이다. 사례도 사라로 바뀌어 졌다. 아마 사례 그렇게 사레라고 누구누구에게 전달하는 것 보다 살아 라고 생명을 주신 것이다. 그것도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명령! 사레라 하지 말고 살아라! 하나님이 명령하시었다.
(1). 당신 만해 한 용운의「님의 침묵」은 대상에 대한 존칭으로 ‘당신’을 296회나 하였다. 李 英芝 · “한 용운의 ‘당신’ 시어,” ‘현대시에 나타난 순수 유추적 님의 분석,’ 『명지어문학』제 14호 (서울: 명지대학교 · 1982) · 188. 홍 문표는「늘 푸른 강물이 듯이」 홍 문표,『지상의 연가 ∼늘 푸른 강물이 듯이∼』 (서울: 창조문학사 · 1992). 에서 ‘당신’을 51회 사용하였다. 51회 신비는 여호수아서 23장에서 여호수아가 마지막 고별설교에서 ‘너희 하나님’을 섬기라! 51회 반복한다. 홍 박사의 하나님 섬기기는 문학단체를 통해서 이루어진다. 말씀을 들고 사는 나날이 이어지면서 하나님에게로부터 받은 축복이자 명령이다. 이 명령에 순종하는 · 그리고 즐겨하면서 하는 일은 ‘여호수아가 51회나 반복했던 너희 하나님을 섬기는 일이다. 그 분은 홍 시인에게 있어서는 당신이다. 당신이란 호칭은 참으로 정겹다. 정겹다 못하여 애칭이다. 그렇기에 사랑하는 부부사이의 애칭이다. 그럼으로 하여 그 은밀한 속삭임까지 들려오는 가까움이다. 하나님이 허락하여 주신 애칭을 홍 교수는 하나님을 향하여 시 속에서 51회 사용하였다. 마치 여호수아처럼 · 그리고 시 쓸 때의 나이만큼 사용하였다. 일 년에 한 번씩 사용한 셈이다. 성서에서 1의 숫자는 매일 매일의 대명사이며 일주일의 대명사이며 십일조의 대명사이다. 일생의 대명사이다. 한 번의 의미가 아니라 매일 매일의 의미로 발전하는 것이 성경의 하나이다. 그러기에 하나님의 아들 한 분이시며 우리들도 하나님의 일을 잘하는 하나님의 아들이다. 5의 10배에 하나 1을 더한다.(2). 수리 5와 17의 모더니티 축복은 당신에게 라고 말 할 수 있는 사람 · 하나님과의 허락된 애칭이다. 지극히 다정하고 지극히 사랑스러웁다. · 지극히 가까운 사이에 통용되는 언어이다. 시인 홍 문표와 시인 이상을 연결하는 모더니티는 수리 5에 있다. 그리고 다시 17로서 그 연결성을 하이퍼성으로 점검할 수 있다. 동천은 오월을 다빈도 반복리듬으로 한다.바람이 불면 언어는 날개를 달고 오월의 하늘을 나른다. 영롱한 호랑나비가 되어 조용히 가슴으로 내려와 앉는다. ∼ 홍 문표「言語의 꽃밭」 『囚人과 바다』. 에서 미루나무 열병한 신작로 따라 허리 굽은 논티 고개를 넘을 때면 언제나 마음은 오월의 하늘이었지 ∼ 홍 문표「장승백이 시절」에서」 『囚人과 바다』. 五月의 하늘에 강물이 흐른다 ......... 우리들의 사랑은 날개되어 한 없는 五月의 강가로 달린다. ∼ 홍 문표「五月의 강가에서」 『囚人과 바다』. 밤이면 무서운 그림자 온몸을 휘감아도 억년을 지켜온 한결같은 마음 아아 치정만큼이나 진한 오월의 빛깔 ∼ 홍 문표「바닷가에서 Ⅱ」 『囚人과 바다』. 하늘도 푸르고 그대의 가슴도 물씬 풋내가 터지는 五月 ∼ 홍 문표「출발의 팡파레」 『囚人과 바다』. 에서그리하여 오대조 할아버지 사랑방 문지방을 넘나드는 동심이게 하소서 ∼ 홍 문표「늘 푸른 강물이 듯이 · 17」『지상의 연가 ∼늘 푸른 강물이 듯이∼』. 에서홍 시인은『囚人과 바다』시집에서의 “오월”에 대한 시어에 대하여 두 번째 시집 『지상의 연가 ∼늘 푸른 강물이 듯이∼』에서 그 답을 5부로 되게 하는 하이퍼성 연결로 한다. 두 시집의 공통점을 5월로 한다. 囚人과 바다는 갇힘과 열림의 대응관계 · 그리고 지상의 연가는 끊임없이 흐르는 사랑의 물결 따라 흐른다. 홍 시인이 가장 좋아하는 오월이면 산과 들이 부르는 유혹따라 사람들은 들과 산으로 나들이를 간다. 아름다운 옷을 입고 한 마리의 나비처럼 · 한 송이의 꽃이 되어 들과 산으로 간다. 그곳에서는 하나님이 베풀어주신 아름다운 산과 구름과 하늘과 푸르른 들이 반긴다. 모두들 집을 나선다. 한국에서만도 5월 5일 어린이날이며 · 5월 8일 어버이 날이며 · 그리고 5월 15일 스승의 날까지 있다. 모두 모두 주인공이 되는 날 홍 시인도 주인공이 되는 날이다. (3). 산과 나무와 동천(東川) 물 흐르듯이 흐르며 사는 생물들의 삶 모습은 3과 4의 비율을 지닌다. 동천(東川) 시 또한 이 황금률에 있다. 부활 율은 동천(東川)시에서 온 자연계에나 삼라만상에서 그 신비한 리듬이 되어 활기와 생기를 불어 넣어 준다. 부활의 신비한 매력에 어긋나 있지 않다. 함께 어울려 만들어 내는 황금 비율 3/4이다. 그 리듬은 다음과 같다. * 홍 문표 시의 파이 비율산 · 산=눈물 · 눈물 · 눈물 · 눈물 산 · 산=믿음 · 믿음 · 믿음 · 믿음 산 · 산=당신 · 당신 · 당신 · 당신 산 · 산=우리 · 우리 · 우리 · 우리 산 · 산=평화 · 평화 · 평화 · 평화 산 · 산=노래 · 노래 · 노래 · 노래 산 · 산= 산 · 산 · 산 · 산 ∼ 홍 문표 시「산이 산인 것처럼」 홍 문표 · 『나비야 청산가자』 (서울: 창조문학사 · 1997) · 79. 의 리듬산의 리듬은 ‘눈물 → 믿음 → 당신 → 우리 → 평화 → 노래’로 동적이동을 하였다. 李 英芝,『시조문예미학』 · 109. 구약성서언어 물과 하늘이 함께 어울려 만들어 내는 황금 비율이다. 3:4 비율이다. 명함판 사진 비율 3:4이다. 이 황금률은 삼라만상을 하나님이 살리시는 햇빛 비침 비율에서 드러난다. 홍 시인의 신앙작품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산에서 산으로 끝나는 이 리듬은 홍 시인의 눈물리듬이다. 홍 시인의 눈물이 노래가 되었다. 노래는 히브리어로 ∼ 시르 רי(쉬르/노래). 이다. 눈물이 시가 된다는 말이다. 왜 시인이 시를 쓸까. 눈물의 고백이다. 마음속에서 나오지 않으면 아니 되는 마음의 노래가 시이다. 바로 성가대의 노래이다. 마음속에서 물이 다 빠져 버린 상태의 목소리가 성가대의 목소리 · 그 절규 곧 시이다. 야곱의 나그네 생활이 가져온 마음의 소리이다. 이스라엘의 노래이다. 이스라엘 민족들이 하나님을 믿느라 그 고통을 받았던 기나긴 여정의 마음노래이다. 성가이다. 시인의 시이다. 예수님의 몸에서 물과 피가 다 빠져나간 절규의 그 음성이 노래이다. 길을 떠나 청산 행을 선택한 동천(東川)시는 ‘사랑으로 가는’(to love) Dr. M. Reisel · 395. 길에 서 있다. 이 사랑으로 가는 길(to love)은 곧 물의 동적 이동이다. 말씀들 들고 가는 길이다. 나무들이 그리고 잎들이 꽃을 피우기 위해 보내는 나날의 고백이다. 부활의 리듬이다. 부활 리듬은 하나님이 인간들의 사는 모습을 지탱해주기 위해서 내려주는 은혜의 나날들이다. 각기 천차만별의 얼굴들로 서로 다른 나날을 살아가는 리듬 음표이다. 문표이다. 시이다. 하나님은 각기 다른 분획이 그어지게 하면서 숨 쉬는 표시 생물체 내에서도 정보를 담고 있는 DNA 구조 분자는 폭이 21Ǻ(angstrom · 1억분의 1cm) · 나선이 완전히 한 번 회전했을 때의 길이가 34Ǻ으로 · 둘 다 피모나치 수이다. Ǻ분자는 문자 그대로 긴 황금 직사각형 더미[Marl Wahl · A Mathematical Mystery Tour · (Tucson: Zephry Press · AZ · 1988) · 128]를 이룬다. 원자 세계에서는 4가지의 근본적 비대칭(원자핵의 구조 · 핵분열 파편의 분포 · 많은 동위원소의 분포 · 방출되는 입자의 분포)를 이루는데 비 부활[J · Wlodarski · The Golden Ratio and the Fibonacci Numbers in the Word of Atoms' Fibonacci Quarterly (1963. 12) · 61.]은 수소 원자의 양이 변하는 상태에서 핵이 연속적인 에너지 단계로 방사성 에너지를 얻거나 잃을 때 · 원자의 전자에서도 피보나치 수(H. E. Huntley · 'Fibonacci and the Atom,' Fibonacci Quarterly (1969. 12) · 523∼524]가 존재하며 태양 주변의 각 행성의 공전주기를 인접한 행성의 공전주기와 정수(round numbers)에서도 피보나치 수는 해왕성(Neptume)부터 시작해서 태양을 향해 안쪽으로 감에 따라 그 비는 1/2 · 1/3 · 2/5 · 3/8 · 5/13 · 8/21 · 13/14를 이룬다. 를 해 보인다. 서로 다르게 좁으면 좁은 대로 어두우면 어두운 대로 빛을 받으면서 각기 나름의 꽃을 피우는 리듬 · 햇빛과 공기에 최대한 노출되도록 허락되어지며 빨간 꽃을 피우는 리듬이다. 꽃피우는 일은 꽃피게 하는 절대자가 있어야 가능하다. 이 사랑의 나선은 한 점 사람의 마음에 들어 있는 기쁨의 생산이다. 자기 나름의 기쁨을 내는 보람리듬이다. 그러기에 젊디젊은 나이에서 나이가 더 먹어갈수록 주름이 늘어가면서도 포기하지 않는 나날 리듬이다. 헌 옷을 입어도 부끄럽지 않고 가난해도 부끄럽지 않은 정의로운 나날을 만들어 내는 리듬이다. 예수님의 가슴 안에 한 점 피가 우리를 살렸듯이 시인으로 하여 시를 읽는 사람이 잘못 살아온 생애를 바꿀 수 있는 일이 일어난기적 리듬이다. 하나님이 사랑으로 흘린 피로서먼 설명되어 질 수 있는 리듬의 일생이다. 한 생애의 곡선리듬이다. 이 신비한 한 사람의 생애는 어디에서나 해당되는 일회 리듬이다. 나무가 되고 싶다. 나무가 되어 바람에 흔들리거나 양지바른 산자락에 앉아 시나 몇줄 쓰고 싶다.청청한 하늘 바라보면서 새털구름 한 자락 잘라 백두산에는 바늘꽃 꼽고 한라산에는 미나리아재비 밤에는 초롱한 별빛을 세면서 흥얼흥얼 콧노래나 부르고 싶다.가지는 꺾이어도 좋다. 허리는 부러져도 좋다. 잎들은 떨어져 너에게 짓밟혀도 좋다.봄이면 속살이 돋고 여름이면 또 꽃이 피는 것을 꺾어지면 어떠리 부러지면 어떠리 짓밟히면 어떠리 순리를 씹으며 고독을 씹으며 풋내를 씹으며바람처럼 살다가 강물처럼 살다가 청산에 붙어사는 나무가 되고 싶다 ∼ 홍 문표「나무가 되고 싶다」 홍 문표 · 『나비야 청산가자』(서울: 창조문학사 · 1997) · 77∼78. 그 분은 나무에 황금 수 파이비율리듬이 있게 하시었다. 그 비율은 1.6180339887…로 계산된다. 이 비율은 모든 자연계에 걸쳐 나타나는 리듬이다. Livio 2003: 65. 물리학자 Mario Livio 박사는 해바라기(sunflower) 꽃의 씨가 시계 방향과 반시계 방향의 나선 형태로 얽히면서 꽃의 중심을 향한다는 것이다. 이 들의 비율은 한쪽 방향으로 감겨지는 씨앗의 수와 다른 방향으로 감겨지는 씨앗의 수 사이 특정한 비율 · 55/34 · 89/55 · 144/89 · 233/144이다. 1837년 결정학자(Crystallographer)인 Auguste Bravais와 식물학자 Louis는 새로운 잎이 줄기에서 돋아날 때 “파이에 의해 결정된 각도에 따라 잎들이 배열됨으로써 · 거의 겹쳐지지 않으면서 가장 유효한 방식으로 공간을 채울 수 있게 된다”(Ibid. 66) 하였다. 파이 비율은 황금 비율의 또 다른 특이한 수학적 특성 파이 수의 제곱이 단순한 파이에 일을 더함으로써 1.618 ☓ 1.618=2.617924(lbid)가 되는 자연계 전체의 황금비율이다. 이 비율은 물 ם(마임)과 하늘 ם(솨마임)의 관련에서도 드러난다. 홍 시인의 시에서 이 비율은 앞의 시에서 일어난다. 하나님의 사랑이 없는 곳에서는 설명될 수 없다. 하나님의 사랑을 성서는 생명의 샘물(계 7: 17) ・ 생명수의 샘물(계 21: 6) ・ 생명수의 강(계 22: 1)・생명수(계 22: 17)라 하였다. 이 묵시성은 문학에서의 초월성 李 英芝 ·『오감도의 구조와 상징에 관한 연구』명지대학교 대학원 박사학위논문 (서울: 명지대학교 · 1985) · 46∼129. 으로 시어의 리듬을 통하여 표출된다. 李 英芝 · “이상의 시 오감도의 연구,” 『명지어문학』 (서울: 명지대국어문학과 · 1984).133∼152: 시제 1 · 2 · 3 · 4호는 시어의 반복리듬으로 초월성의미가 되게 하고 있다. 따라서 초월성이며 정상이 되고 청산이 되는 아스라이 광대한 영역은 하나님의 것이며 죽음 문제나 삶의 문제를 초월하는 영원자만이 가질 수 있는 영역이다. 절대자를 설명하는 성서는 ה(에흐예) ה(출 3: 12 · 14(3회) · 4: 12; 삼하 7: 14; 시 119: 17. → הה(여호와)의 동적 이동에서 사랑을 전제로 한 전자 구어 → 후자 성호에서의 하나님이 권위와 명예를 나타낸다. 하나님의 이름을 두기 위하여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동천(東川) 또한 이름을 두기 위한 것이다. 동쪽으로 흘러가는 동천(東川) 홍 시인이다. 당신 눈빛이 뿌려질 때마다 진동하는 두려움 나는 수줍은 장미한 송이 별이 초롱한 시각이면 바람 부는 언덕에 올라 당신 창가에 머무는 피리를 불고 새벽이면 온 몸을 풀어 길섶에서 반짝이는 이슬이게 하소서 ∼ 홍 문표 「늘 푸른 강물이 듯이」16 홍 문표 · 『지상의 연가 ∼늘 푸른 강물이 듯이∼』 (서울: 창조문학사 · 1992) · 47∼48. 에서어머님은 비옥한 이랑의 벽오동 심으시고 새벽마다 하나님께 기도드리셨지 ∼ 홍 문표 「어머님 · 아버님」 홍전문 · 열두시인 시집『아침의 노래』(서울: 쿰란출판사 · 2002) · 205∼206. 새벽이면 온 몸을 풀어 길섶에서 반짝이는 이슬이게 하소서 ∼ 홍 문표 「늘 푸른 강물이 듯이」에서정상인 청산에는 새벽과 아침이 이슬을 매개로 한 하이퍼성의 시가 되는 향기가 있다. 향기의 발산은 하나님의 말씀 따라 순종하여 그의 길을 가는 때 하나님의 씨를 생산하고자 코를 벌름거리며 냄새를 맡아 하나님의 일을 하는 아침 새벽 예수님과 요한・제자 시몬 · 안드레 · 야고보 · 요한・새벽 미명에 예수께서・병자 치유(마태복음 1장). 이 있다. 일어나는 때는 새벽이다. 새벽 수 6: 15; 삼상 29: 10; 삼하 17: 22; 막 1: 35. 에 아브라함이 브엘세바에서 일어나 이삭 창 26: 28~33. 을 얻는 때이다. 오월이다.오월의 하늘을 나른다. 영롱한 호랑나비가 되어 ∼ 홍 문표「언어의 꽃밭에서」에서 언제나 마음은 오월의 하늘이었지 ∼ 홍 문표「장승백이 시절」에서 五月의 하늘에 강물이 흐른다 ......... 우리들의 사랑은 날개 되어 한없는 五月의 강가로 달린다. ∼ 홍 문표「五月의 강가에서」에서오월의 빛깔 ∼ 홍 문표 「바닷가에서 Ⅱ」에서 그대의 가슴도 물씬 풋내가 터지는 五月 ∼ 홍 문표「출발의 팡파레」에서 그리하여 오대조 할아버지 사랑방 ∼ 홍 문표「늘 푸른 강물이 듯이 · 17」에서오월이여! 그 비밀스럽게 생명이 가장 많이 보이는 때여! 온통 온 들판이 살아있는 것으로 꿈틀거리는 때여! 아지랑이 살아서 온 들을 메우며 비밀스러운 삶의 현장으로 인도하려 오월이면 라일락 향기 짙다. 2. 왜 향기 나는 에덴으로 와야 하는 가들에 달콤함이 넘쳐흐르는 향기로 하여 벌떼들이 제철을 만나 분주히 꿀을 찾아 나서는 때는 5월이다. 꽃들은 꿀을 주고 나서 제 할 일을 다 한양 하는 주고받고 그래서 서로 행복해 하는 이 나눔의 오월의 시를 홍 시인은 쓰지 않을 수 없다. 그러기에 홍 시인은『囚人과 바다』시집에서의 “오월”에 대한 시어에 대하여 두 번째 시집 『지상의 연가 ∼늘 푸른 강물이 듯이∼』에서 그 답을 5부로 되게 하면서 전달한다. 시에서 시에로 전달되는 일은 시를 사람들이 읽을 수 있는 기회를 주는 일이다. 한 용운도 그랬고 홍 시인도 같이 당신이라 부르면서 사랑하는 사람에게 하는 애칭으로 당신이라 부른다. 그러기에 홍 시인의 시는 당신을 향한 연가이다. 시집 제목이 『지상의 연가 ∼늘 푸른 강물이 듯이∼』이다. 이것은 혼자만의 일이 아니라 신앙의 선조 여호수아가 했다. 홍 시인의 시가 보여준 절대자는 누구나 볼 수 있는 황금률 시인의 시로 그 의미를 전하는 것이다. 홍 문표 시인의 시집『나비야 청산가자』의 ‘나비’야 라는 말은 성경의 나비 · 선지자 אי(나비야). 라는 발음 그대로 나비와 관련지을 수 있는 하이퍼성을 지닌다. 왜냐하면 홍 문표 교수는 신학자시인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미 인구에 회자하는 고대시의 나비야 시 그대로 흥미를 일으키는 문학용어이기 때문이다. 이 때 특징의 공통점은 청유형인 동시에 선지자 의미이어서이다. 선지자 역할을 담당하는 홍 문표 학자는 시를 통해 나비야 청산가자고 외친다. 나비가 있는 곳은 청산이다. 청산은 에덴동산이다. 홍 문표 학자는 평생 에덴시학을 주장한다. 에덴동산은 아름다운 숲과 새와 맑은 공기가 있어서 사람이 건강하게 살 수 있는 곳이다. 갖가지 동물들과 싱싱한 흙이 있다. 일반적 개념으로는 유토피아의 세계이다. 곧 하나님의 집이 있는 곳이다. 믿음의 백성들은 언제나 이 하나님이 계신 집 최명애 · ‘Ⅱ · 히브리어 알파벳과 그 의미’ ∼ 2. ב∼『알기쉬운 히브리어 기초와 그 의미』(서울: 쿰란사 · 2005) · 70. 정상 청산을 찾아간다. 굳이 하나님의 백성들이 아니더라도 쉬는 날이면 산을 향해 일찌감치 집을 나서 자연을 찾아가서 맑은 공기를 마음껏 마시고 힘을 얻는다. 꿈을 가진 자는 하나님에게로 돌아가려 끊임없이 일어나서 에덴동산을 찾아 간다. 에덴동산에는 향기가 있다. 에덴을 향하는 사람들은 이 향기를 맡으려 간다. 에덴을 향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수 있다. 이 은혜를 받을 꿈을 향해 “나비야 청산가자”며 에덴으로 달려간다. 하나님에게로 돌아오는 향기 나는 삶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있다. 구약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일주일 곧 7일 동안 13번이나 여리고성을 돌아 여리고성을 열었다. 에덴동산을 열었다. 정상의 자리인 꿈의 향기에 대하여 성서는 왕이 상에 앉았을 때에 나의 나도 기름이 향기를 י(레아흐 아 1:12 · 향기를). 토하였구나! 하였다. 무화과나무에는 푸른 열매가 익고 · 포도나무는 꽃이 피기에 향기 י(레아흐 · 아 2:13 · 향기를). 가 있다. 성서는 나의 사랑 · 나의 어여쁜 자야 일어나서 함께 향기를 향해 가자!고 한다. 나의 신부야! 네 사랑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 네사랑은 포도주 향기!라 하였다. 네 기름의 향기는 י (베레아흐 · 아 4:10). 각 향 품보다 승하구나! ‘..’(베). 하였다. 향기 나는 자를 하나님은 열국 중에서 나오게 인도하시고 “나비야 청산가자”라고 인도하신다. 에덴시학은 얻은 시학이다. 왜냐하면 이 에덴이 ‘얻은’이라는 우리말이기 때문이다. 이 증거는 산스크리트어에서 찾아진다. 윌리암 존스는 우리말 그대로의 토속어를 그의 사전에서 기록하고 있어서이다. 바로 사람이 살아가면서 얻는 일이 있다. 아름다운 숲 · 새 · 맑은 공기가 있는 곳은 사람으로 하여금 건강하게 살 수 있게 한다. 이 곳을 얻으면 된다. 갖가지 동물 · 들 · 싱싱한 흙이 있다. 일반적 개념으로는 유토피아의 세계이다. 이곳은 하나님의 집이다. 홍 시인의 고향에서 시인은 이 행복을 누린다. 언제나 이 하나님이 계신 집 최 명애 · ‘Ⅱ · 히브리어 알파벳과 그 의미’ ∼ 2. ב∼『알기쉬운 히브리어 기초와 그 의미』(서울: 쿰란사 · 2005) · 70. 에서 감사하며 살아간다. 하나님은 공평하게 이 아름다운 속에서 사는 사람에게 은혜를 베푸신다. 깊이 숨을 들어 마시면 폐가 건강해 진다. 휴식을 취하게 하신다. 행복한 꿈을 가진 자는 하나님에게로 돌아오면 에덴동산을 얻는다. 에덴동산에는 향기가 있다. 에덴을 향하는 사람들은 이 향기를 맡으려 간다. 에덴을 향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수 있다. 이 은혜를 받을 꿈을 향해 “나비야 청산가자”며 에덴으로 달려온다. 하나님에게로 돌아오는 향기 나는 삶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있다. 구약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일주일 곧 7일 동안 13번이나 여리고성을 돌아 여리고성을 열었다. 사람들은 자기 주거지에서 매일 되돌이표로 들고 나고 숨을쉰다. 그 만큼 그의 주위 환경이 그를 만든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하나님의 향기를 י(레아흐 아 1:12 · 향기를). 맡으며 산다. 아름다운 가정에서 아름다운 말을 하며 아름다운 음식을 먹는 자유가 주어졌다. 각 가정에서는 푸른 열매가 익고 자식들이 꽃이 피는 향기 י(레아흐 · 아 2:13 · 향기를). 가 된다. 부모들은 생명을 다해 자식을 사랑한다. 바로 아 하는 감탄으로 낳아 놓은 자식을 향한 사랑이 하나님이 인간을 사랑한 무게만큼은 아니더라도 큰 사랑으로 가정을 유지하게 한다. 홍 시인에게는 이 사랑의 본받기가 있다. 그의 사랑이 얼마나 큰지 자식들에게 층층마다 살게 한다. 마치 성서가 나의 사랑 · 나의 어여쁜 자야 일어나서 함께 가자 하듯이 한다. 아내 사랑이 얼마나 큰지 성서에서 나의 신부야 네 사랑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 네사랑은 포도주 향기라 하듯이 아내사랑을 한다. 누구나 그 가정의 향기 י (베레아흐 · 아 4:10). 가 있다. 홍 시인의 가정에서 나오는 향기 향 품보다 승 ‘..’(베). 하여 세상 일을 하게 하는 원동력이 되게 한다. 그래서 홍 시인은 그의 시를 통하여 “나비야 청산가자 범나비 너도 가자”라고 할 수 있었다. 홍 시인은 이 향기의 주체인 그 분이 계신 곳을 향하여 가자이다. 에덴동산에는 절대자의 향기 וֹחי י (베레아흐 니호아흐 · 겔 20:41). 가 있다. 향기 나무와 실과가 있는 곳이 에덴동산이다. 더 나아가 하나님의 백성인 신부의 입술이며 이 입술에서는 꿀방울이 떨어지고 혀 밑에는 꿀과 젖이 있고 옷에 향기 י(베레아흐 · 아 4:11). 가 난다. 절대자의 사랑하는 자의 전도입술이다. 향기 וי(베사마이브/향기를 · 아 4:16). 이다. 향기의 방향은 하늘로 오른다. 하나님이 하늘에서 향기를 내릴 때 그 향기를 먹고 다시 말씀대로 살면서 나는 향기이다. 홍 시인에게서 나는 향기 · 돌아옴의 마음 평안 · 홍 학자에게서 나는 향기 · 홍 목사에게서 나는 향기 · 말씀 사모하여 늘 말씀상고와 연구와 가르침에서 나는 겸손의 향기이다. 하늘 궁창에서 내리는 단비를 맞아서 나는 향기인 하늘이슬에 젖는 일이다. 절대자 그가 하감하심 신 26:7 · 15; 시 33:14 · 85:11 · 102:19 · 138:6 · 행 4:29. 으로서 나는 향기를 맡아서 나는 향기이다. 이 향기의 삶에 보답하며 대상을 향하여 “나비야 청산가자” 한다. 하늘 ם ∼ן (민∼하솨마임/ 하늘에서부터 오는). 에서 내려오는 말씀으로서만 나비야 청산가자 할 수 있다. 그리고 말씀을 들고서만 청산을 갈 수 있다. 이러한 특징으로서만 여리고 성이 일리는 일이며 여리고 성 모양인 잔에 담긴다. 여리고 성에 들어가 사는 삶은 하늘에서 내려온 만나만을 먹고 사는 삶이다. 홍 문표 교수는 어릴 때 교회를 가기 시작하여 교회내의 목사사택에서의 성경말씀에 익숙한 생활을 현재도 이어간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하늘에서 내려오는 만나를 먹고 산 생활가 같다. 이 만나는 만나라는 글자 앞에 ‘민’ ∼ ן (민/..에서부터). 에 마켑(∼)이 붙어 하늘에서 온 ם ∼ן(민∼ 하솨마임/ 하늘에서 부터 · 삼하 22:14; 왕하 1:10 · 14; 대상 21:26; 대하 6:23 · 25 · 30 · 33 · 35 · 39; 대하 7:14; 삿 5:20; 신 5:28; 대상 21:26. 것임을 표시한다. 웬함(Gordon J. WenHam) Gordon J. Wenham · Word Biblical Commentary Genesis 1∼15 (Waco: Word Books · 1984) · 91. 은 하늘로부터 라는 히브리어 ‘미봐사마임; ם(미바솨마임/하늘에서). 에 붙는 ‘미’∼ן. 를 하늘에서 내려주는 양식(느 9:15)이라 하였다. 하나님 일을 하는 자는 하늘로부터 내려오는 양식향기로 대상에게 “니비야 청산가자”라 청유한다. 하나님은 어디에나 계시 W. Eichrodt · tr. · A. Baker · TOT 1 · 115. 어서 홍 교수는 말씀의 향기 창 21:17 · 30:22; 출 2:24; 민 20:16 21:3; 신 26: 33:7; 삼하 21:14 · 24:25; 왕상 8:28 · 29 · 34 · 45,49 · 52 · 17:22; 왕하 19:16; 대상 28:8; 대하 6:19 · 20 · 23 · 25 · 30 · 33 · 35 · 39 · 20:9 느 9:27 · 9:28 등 이하 생략. 를 얻어 뿌린다. 하나님 신부의 뺨 향기 ם(하보삼/향기로운 · 아 5:13). 이다. “나비야 청산가자”를 평생 에덴시학으로 하는 향기로운 ם(하보삼/향기로운 · 아 6:2). 내음이 나는 삶이다. 이 향기에 대하여 성서는 꽃밭에 이르러서 동산 가운데서 양떼를 먹이며 백합화를 꺾을 때 향기로 묘사한다. 또한 내가 너를 이끌어 내 어미 집에 들이고 네게서 교훈을 받을 때의 향기로운 ה(하라카/향기로운 · 아 8:2). 내음이 난다하였다. 석류 즙으로 네게 마시게 םי(베삼밈/향기로운 · 아 8:14). 하여 향기가 난다는 것이다. 향 품 םי(베삼밈/향 품). 의 달콤한 향기 출 30:23. )를 위해 향 품 םי ת(함미르카하트 라베삼밈/향 기름을 향 품으로 · 대상 9:30). 을 만드느라 홍학자에게서는 향 기름 냄새 ת ח(로카흐 미르카하트 · 출 30:25). 가 난다. 하나님법대로 하라는 것을 늘 문서로 전달하느라 순종한다. 하늘 안 ם(바솨마임/하늘 안에서 · 신 1:28 · 5:8; 왕하 7:2 · 19; 대하 20:6)・시 2:4 · 11:4 · 18:14 · 78:26 · 103:19 · 119:89 · 123:1). 향 품 םי(베삼임/향 품 · 아 4:14). 을 맡아 관리하느라 향기가 난다. 향기를 만드느라 윗 이와 아랫 이 (솨)와 (사). 를 맞물려 말씀을 씹어 소화하고 마음으로 만들어 전달하는 목사로서의 삶의 향기이다. 이 향기의 가치를 성서는 아무리 향기나는 물건이어도 “나의 신부보다는 못한 향 품”(아 4:10)이라 하였다. 하나님이 보쌈하여 낸 이스라엘 백성 · 하나님의 신부 · 홍 문표 교수는 하나님이 사랑하시어 아주 일찍부터 보쌈 ם(하보셈/향기로운 · 아 6:2). 한 역사가 있기에 향기가 난다. 하나님이 책임지시는 보쌈 ם(하보셈/향기로운 · 아 6:2)・םי(베삼밈/향기로움 · 아 8:14). 된 홍 문표 시인은 일평생 하나님의 백성이 되어 향기로움 (티심마/향기로움). 으로 산다. 이 구체성은 신앙공동체의 삶 현장에서 일어나는 일들이다. 여리고성은 문학형태이며 삶을 살찌우는 곳 (삿 1:17; 수 4:26): Stanley. Gevirtz · "Jericho and Shechem: A Religio∼Literary Aspect of City Destruction," Vetus Testamentum (Leiden: EJB · 1963) · 52∼53. 이다. 물이 있어서 에덴동산은 신앙시인이 삶을 풍요롭게 · 이야기하며 · 친근하게 “나비야 청산가자”고 하는 곳이다. 여리고성 물은 2∼3km까지 가도록 향기 민 대훈 ·「여리고성을 무너뜨린 역사」 (경기도: 광림세미나하우스 · 2006). 서울기독대학교 대학원 10. 23. 가 난다. 홍 시인의 저서들은 서점가나 · 학계나 · 시계에까지 번져간다. 풍부하도록 물이 있어서 향기롭다. Neen. David & K. O. Emery · Ibid 홍 문표의 삶은 하나님의 은혜로 말씀전달의 풍요가 있다. 홍 시인은 부여 농원 “청산”에서 향기 받아 왕하 2:19∼22: Ibid · 93. 일상을 산다. 하늘이 주는 환경을 누리며 · 말씀 물을 들고 산다. 말씀전할 기회가 주어지면 오로지 에덴시학의 길 “나비야 청산가자”의 청유형 삶을 알려 준다. 하나님의 백성이기에 결코 주저하지 않으며 · 두려워하지 않으며 당당하게 “나비야 청산가자” 한다. 1). 돌아옴의 마음 평안(1). 한국문인교회 설립 여호수아에게 특별한 명령이 주어진 여리고성 René Dussaud · Les monumenis palestiens ei judaiques (Paris · 1912) · 5. 이듯이 홍 문표학자에게는 특별히 하나님이 명령한 삶의 방식이 있다. 그분에 곁에 오는 사람 마음에는 평안이 있다. 마음이 ‘여리고’ 착하며 심히 섬세한 홍 문표는 그 분의 품안에 돌아와 평안을 얻는다. 다른이도 그러하다. 하나님 말씀 없이는 움직이지 못하는 삶의 평안에 머무는 신앙생활은 문학 설교를 철두철미하게 준비한다. 고향에 돌아온 사람은 마음의 평안을 얻는다. 하나님께 돌아온 사람은 마음의 평안을 얻는다. 성서는 돌아옴을 ‘수부’ ב(수브/돌아옴). 라 한다. 우리말 그대로 아주 쉽다. 하나님 하시는 일에 늘 아멘아멘! 주님에게로 돌아오는 자의 마음의 평안이다. 마음의 평안 속에는 구덩이에서 건져지는 삶이 있다. 요셉이 그러하였다. 물고기 뱃속에서도 기도한 요나 마음의 평안이다. 고기 뱃속 U모양에 들어앉아 기도해서 구해지는 마음의 평안이다. 노아는 하나님에게 은혜를 입고 · 배에 빛이 들어오는 창구를 위쪽으로 만들었다. U모양이다. 하늘의 빛을 들 일 창하나 (창 8: 6)A. Dillman · Genesis · trans. W. B. Stevenson (Edinburgh · 1897) · 272. 를 만들어 노아의 식구들을 구하고 하나님의 백성을 이어갔다. 위가 뚫리 ןוֹל∼ת(에트∼하론 · 창 8: 6). 면 하늘의 절대적인 빛이 들어온다. 절대적인 빛이 들어오는 그 안에서 목회를 한다. 홍 문표 신학자는 한국문인교회를 설립하였다. 마음의 평안을 얻으면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다. 이 용기는 개인의 어떤 자의적인 힘만이 아니다. 위로는 하나님의 은혜로 아래로는 협력자의 힘을 얻어 한국문인교회는 움직인다. 다음은 한국문인교회 설립예배식순이다. 축 시 당신의 거룩한 집 ∼ 한국문인교회 설립에 부쳐 홍 문 표 당신의 거룩한 집 머릿돌은 베드로의 반석으로 다졌습니다“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기둥은 열 두 기둥 문은 열 두 대문 스물넷의 장로들과 온 교회의 성도들은 화강암의 돌기둥이 되고 백향목의 들보와 석가래가 되기로 하였습니다제단엔 여호와 하나님 어린 양의 빛나는 십자가 일곱 금 촛대 정금으로 빛나는 당신의 언약궤 돌 판에 새긴 말씀들과 만나 항아리 아론의 지팡이도 모셨습니다 말씀은 늘 햇살보다 빛나고 은하수로 쏟아지는 생명의 강가엔 오순절의 열기 성령의 뜨거운 불길이 가슴마다 용광로로 타오릅니다머리되신 여호와여 당신은 귀하신 몸 우리들은 그 지체 어여쁜 성도들의 시와 찬양은 온 땅에 피어나는 시온의 백합화 화해와 평화의 아름다운 향기 하늘 문이 열립니다 천군 천사들이 할렐루야로 화답합니다알파와 오메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당신은 우리들의 만세반석 믿음과 소망과 사랑이 충만한 나라 여기는 당신만이 가득한 거룩한 집입니다 한국문인교회 설립예배 일시: 2012년 1월 8일(일) 오후 4시 ∼ 식 순 ∼ 인도 조성국 목사 ․묵도와 기원 …………………………………………………………인도자 ․찬송………………1장(신)…………………………………………… 다같이 ․성시교독…………109 헌당예배…………………………… 인도자 성도 여호와의 집 우리 여호와의 성전 곧 우리 하나님의 성전 뜰에 서 있는 너희여 여호와를 찬송하라 여호와는 선하시며 그의 이름이 아름다우니 그의 이름을 찬양하라 (시 135:2∼3) 내가 주를 위하여 거하실 성전을 건축하였사오니 주께서 영원히 계실 처소 로소이다(대하 6:2) 우리가 그의 계신 곳으로 들어가서 그의 발등상 앞에서 엎드려 예배하리 로다(시 132:7) 문들아 너희 머리를 들지어다 영원한 문들아 들릴지어다 영광의 왕이 들어가시리로다(시 24:7) 그러나 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의 종의 기도와 간구를 돌아보시며 주의 종이 주 앞에서 부르짖는 것과 비는 기도를 들으시옵소서(대하 6:19) 내가 곧 그들을 나의 성산으로 인도하여 기도하는 내 집에서 그들을 기쁘게 할 것이며 그들의 번제와 희생을 나의 제단에서 기꺼이 받게 되리니 이는 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 일컬음이 될 것임이라(시 56:7) (다같이)오직 여호와는 그 성전에 계시니 온 땅은 그 앞에서 잠잠할지니라 하시니라(합 2:20)․신앙고백…………사도신경(신)……………………………………다같이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를 내가 믿사오며 · 그 외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사오니 이는 성령으로 잉태하사 동정녀 마리아에게 나시고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장사한 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시며 하늘에 오르사 전능하신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저리로서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시리라 성령을 믿사오며 거룩한 공회와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과 죄를 사하여 주시는 것과 · 몸이 다시 사는 것과 영원히 사는 것을 믿사옵나이다 아멘․찬송………………28장(신)…………………………………………다같이 ․기도………………별쇄………………………………………맹 숙영 권사 ․성경봉독…………창세기1:1………………………………………·인도자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창 1:1) ․특송…………………………………………………………··이 은희 집사 ․설교………………창조적 인간………………·박 재천(연흥교회 담임 목사) ․기도……………………………………………………………………설교자 ․설립보고 및 인사…………………………………····홍 문표 담임 목사 ․헌금…………………………………………………………………헌금위원 ․헌금기도………………………………………………………·박 기임 권사 ․축시……………………………………………………………·한 솔아 집사 ․축사……………………………………………………………·임 영천 목사 ․광고……………………………………………………………………인도자 ․찬송………………438장·····………………………………·………다같이 ․축도·····………………………………………………………………설교자▣ 광고 오늘 설립예배에 참석해주신 여러분께 심심한 감사를 드립니다. 한국문인교회는 매월 2회 · 둘째와 넷째 주일 오후 4시에 예배를 드립니다. 1월 넷째 주일 예배는 구정관계로 다섯째 주일 1월 29일 오후 4시에 드립니다. 다음 예배 설교의 제목은「새해의 노래」(고후 5:17∼19)입니다. 주제에 맞는 신앙시를 준비하시어 예배 시 낭송하도록 하겠습니다. 예배 후 명지대 방면에 칼 국수집에서 만찬을 갖겠습니다. 모두 참석해주시기 바랍니다. 1. 한국문인교회 설립 의의 1). 시와 찬양으로 드리는 예배 시를 지어 즐거이 그를 노래하자(시 95:2) ·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들로 시로 화답하며(엡 5:18)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를 부르며(골 3:16) 구약시대와 신약시대 초기에는 시와 찬양과 말씀으로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 뒤 시는 후퇴되고 찬양만 강화되었습니다. 1). 말씀의 문학적 선포 예수께서 이 모든 것을 우리에게 비유로 말씀하시고 비유가 아니면 아무것도 말씀하지 아니하였으니(마 13:34) 구약과 신약에서 하나님과 예수님과 선지자들과 사도들은 말씀을 전할 때 느르 비유라는 문학적 형식으로 하셨습니다. 그래서 성경말씀은 대부분 문학적으로 기술되어 있습니다. 이는 말씀을 바르게 읽고 효과적으로 전해야 하는 우리들의 선교나 설교에 있어서 문학성의 회복이 필수적이며 이는 가장 성경적인 것입니다. 3). 문학성이 회복된 예배와 설교 시와 찬양으로 예배하던 구약과 신약 초기의 감동적인 예배와 말씀을 늘 문학적으로 선포하신 주님의 설교를 본받아 말씀을 문학적으로 읽고 문학적으로 전하고자 찬양중심에배를 시와 찬양예배로 · 이성중심의 논리적 설교를 감성중심의 문학적 설교로 하여 이 땅에 문학성이 회복된 은혜로운 교회문화를 도모하고자 합니다. 4). 한국최초의 문인교회 2011년 9월 19일 한국기독교문학선교협회를 창립하고 문학선교사역의 하나로 문인들을 위한 교회를 설립하기로 하고 2012년 1월 28일 동천(東川)아카데미에서 홍 문표목사(시인 · 평론가) 박재천 목사(시인) 임영천 (평론가) 조성국목사(시인) 김지향장로(시인) 등 30여 크리스천 문인들이 말씀과문학교회 설립예배를 봄으로 한국최초의 문인교회가 탄생하게 되었다. 이어서 2012년 10월 당회에서 한국문인교회로 명칭을 변경하였다.(2).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홍 문표 신학자의 고향은 하나님에게로 돌아온 하나님의 땅 · 청산이다. 모세에게 하나님이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는 거룩한 땅이다. 이 시적 홍 문표 · ‘출애굽전승의 찬양시’ · 한국문인교회설교. 인 삶의 터전에서 홍 문표목사는 한국문인교회를 설립하였다. 홍 문표 목사는 아주 “좋아라‘ 하였다. 노아 방주 지붕 이름이 히브리어로 ‘좋아라’ ר(쪼하르/창 · 오정 · 창 6: 16; 아 1:7. 이다. 왜 좋아라할까. 홍 시인에게 고향은 태양리이고 이 태양이 홍 시인의 머리 위에 늘 비추는 생활이다. 햇빛이 늘 비치는 일상의 삶 속에서 홍 시인의 시적인 삶은 어릴 때부터 시작되었다. 교회 내에서의 훈련된 기독교교육을 바탕으로 하여 현재의 한국문인교회 설립으로 이어진다. 담임목사로서의 하나님 알리는 일은 늘 시적이다. 시를 가르치는 홍 문표 학자로서는 좋아라 할 수 밖에 없다. 홍 문표 목사는 예배순서에 하나님에게 드림 시(詩) 시간을 갖는다. 홍 문표 목사는 모세의 출애굽 전승의 찬양 시에 대하여 국민애송시임을 발견한 설교를 통해서 하나님을 찬양하였다. 하나님은 모세를 지도자로 선정하시면서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입니다. 이는 극히 상징적이고 시적입니다. 하나님의 어법은 이렇게 논리적인 어법이 아니라 시적인 어법이라는 사실입니다. 이는 천국복음 · 즉 하늘의 뜻을 지상에 펴는 하나님의 인간에 대한 언어는 추상적이고 논리적인 언어가 아니라 비유적인 언어 · 그 중에서도 은유적인 언어 · 바로 시적인 언어가 되고 있습니다. 인간과 인간 사이의 언어에도 시적인 언어가 보다 감동적이고 보다 호소력 있는 언어이지만 왜 하나님과 인간 · 신과 인간 사이의 언어에 은유적인 언어 · 시적인 언어를 사용하는가. 이는 하나님과 인간과 인간 사이는 소통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주님께서도 늘 천국복음을 전하실 때는 비유로 말씀하셨고 · 마 13:34에서는 “예수께서 이 모든 것을 비유 무리에게 비유로 말씀하시고 비유가 아니면 그들에게 말씀하지 아니하셨으니”라는 기록을 남기게 된 것입니다. 왜 하나님과 인간 사이엔 계시적이고 시적인 언어인가 · 그것은 신과 인간 · 하늘과 지상 사이엔 버전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외국인과 한국인이 소통하려면 통역이 필요하듯이 신과 인간 사이에는 계시와 은유의 통역이 필요합니다. …… 앞에서는 홍해바다 뒤에는 애굽 군대 · 정말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2백만 이스라엘 민족은 홍해바다가 갈라지는 도저히 믿어지지 않는 하나님의 기적을 통하여 모두가 살게 되었고 · 바로의 군대는 모두가 수장되는 광경을 보면서 출 14:31 “이스라엘이 여호와께서 애굽 사람들에게 행하신 그 큰 능력을 보았으므로 백성이 이 여호와를 경외하며 여호와와 그의 종 모세를 믿었더라” 그동안 여호와에 대하여 모세에 대하여 반신반의하고 걸핏하면 불평하던 그들이었지만 이 홍해의 엄청난 기적과 능력과 선민 이스라엘에 대한 축복을 보면서 그들은 그 기쁨과 감격과 감사를 하나님께 드리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모세와 이스라엘 자손들은 일제히 하나님께 시와 찬양으로 영광을 돌리게 됩니다. 그것이 바로 오늘 우리가 봉독한 출애굽 전승의 찬양시가 됩니다. 오늘 읽은 본문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누어집니다. 1절에서 18절까지는 모세와 이스라엘 자손 · 그 중에 남성들의 합창시이고 · 19절에서 21절까지는 아론의 누이 미리안과 모든 여인들이 소고치고 춤을 추며 남성들의 합창에 화답한 남녀의 합창형식의 교성시라고 해야 하겠습니다. 그 중에 1절 “내가 여호와를 찬송하리니 그는 높고 영화로우심이요 말과 그 탄자를 바다에 던지셨음이로다” 이 구절은 21절 여성들의 화답 시에도 같은 내용인 것으로 보아 이스라엘 민족에게 있어서는 이 구절이 민족적인 애국가요 민요요 구약에 나타난 신앙시의 원형이라고 해야 하겠습니다. 신의 시로 알려진 성시 시편 150편 속에는 바로 이 구절이 여러 곳에서 반복적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가 바다를 갈라 물을 무더기 같이 서게 하시고 그들을 지나가게 하셨으며 시 78:13이에 홍해를 꾸짖으시니 곧 마르니 그들을 인도하여 바다 건너가기를 마치 광야를 지나감 같게 하사 시 106:9 홍해를 가르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시 136:13이사야 예언서에서도 수없이 반복됩니다. 바다 가운데 길을 큰 물 가운데 지름길을 내시고 병기와 말과 군대의 용사를 이끌어 내사 그들이 일시에 엎드러져 일어나지 못하고 사 43:15∼17바다를 넓고 깊은 물은 말리시고 바다 깊은 곳에 길을 내어 구속받은 자들을 건너게 하신이가 어찌 주가 아니시니이까 사 51∼10느헤미아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또 주께서 우리 조상들 앞에서 바다를 갈라지게 하사 그들이 바다한가운데로 육지같이 통과하게 하시고 ∼ 느 9:9그러니 “여호와를 찬양하라 그는 높고 영화로우시다”가 선민 이스라엘 역사의 기본 주제가 됩니다. 사실 이 시는 1절에서 총론처럼 여호와를 찬양하라는 기본적인 찬양의 부문과 적들을 수장한 역사적 업적을 종합적으로 제시하고 있으며 2절에서 19절까지는 이를 반복적으로 부연하는 전형적인 찬양시의 형태를 취하고 있습니다. 2절 3절에서는 하나님 찬양을 리듬과 매타포로 확대됩니다. 여호와는 나의 힘이요 노래이며 구원이며 하나님이며 용사이기에 그를 찬양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4절에서 10절까지는 1절에서 말과 그 탄자를 바다에 던졌다는 역사적 사실을 부연 설명하고 있습니다. 4절에서는 바로의 병거와 군대를 바다에 던졌다. 5절에[서 깊은 물이 그들을 덮었다. 6절에서는 주의 오른 손이 원수를 부수었다. 7절에서는 주의 위엄이 거스르는 자를 덮었다. 8절에서는 바닷물이 요동치는 모습을 · 9절에서는 적들의 야욕을 · 10절에서는 바람으로 · 그들을 덮었다는 내용입니다. 이에 11절에서는 그러기에 여호와는 신중에 신이며 거룩하고 영광스러우며 찬송할만한 분이심을 다시 강조합니다. 12절에서는 주의 오른 손의 힘으로 그들을 삼켰다는 말을 다시 반복합니다. 13절에서 18절까지는 미래에 들어갈 약속의 땅을 기대하면서 홍해 위기에서 구원해 주신 하나님이기에 그 위대하심과 신실하심은 분명 약속의 인도해 주실 줄을 알고 더욱 여호와를 찬양한다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살펴본 출애굽기 15장 1절에서 21절의 시와 찬양은 모세와 이스라엘 민족이 앞에서 홍해 · 뒤에는 바로의 군대로 모두가 죽게 되는 위기에서 바다가 갈라지는 하나님의 놀라운 기적으로 기사회생을 하게 되면서 진정으로 하나님의 이스라엘에 대한 사랑과 능력과 위대함을 깨닫고 그 선하심과 인자하심을 찬양한 시입니다만 · 역사적으로나 정치적으로 보면 이스라엘 민족이 유월절의 재앙을 통해 애굽에서 해방되는 계기를 갖게 되어 애굽을 떠나게 되었지만 사실은 홍해를 건너야만 애굽 땅의 국경을 완전히 벗어나는 것이며 · 진정으로 해방과 독립으로 확인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보면 유월절은 예비적 해방이고 완전한 해방은 홍해를 건너면서 이루어집니다. 그러기에 홍해를 벗어나는 이 기적적인 사건은 온 민족이 춤추고 노래하는 축제일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의 성도로서 하나님을 찬양하는 신앙시를 쓰는 크리스천 문인으로서 이 찬양 시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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