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부 현대시조와 현대시 Ⅰ 시와 시조시조가 민족 문학적이라면 지극히 민족적인 것은 세계적이라는 극과 극의 상호작용을 말 할 수 있다. 가장 시적인 특성을 지닌 시가 시조라는 말이다. 이 아이러니는 소월시의 경우를 예로 말할 수 있다. 본 연구자가 연구한 바에 의하면 소월시의 의미구조는 전통 시 시조와 그리고 연구한 바에 따른 오감도의 구조와 같다. 그 리듬구조는 다음과 같다. 전통 시와 시조작품과 그리고 가장 현대적이라는 이상의 오감도의 김소월 시 「진달래 꽃」이나 산유화가 지닌 리듬이 같다. 그리고 『진달내 』 시집 김소월(1)902~1934이 생전에 낸 유일한 시집인 『진달래꼿』초판본(사진이 1억3500만원에 낙찰됐다. 경매사 화봉 등에 따르면 지난 19일 오후 서울 종로구 인사고전문화중심에서 열린 제35회 화봉현장경매에서 김소월의 『진달래꼿』 초판본이 처음 9000만원에 경매를 시작해 1억3500만원에 팔렸다. 『진달래꼿』은 1925년 12월26일 매문사에서 간행한 시집으로, 책 제목과 같은 「진달래꼿」시’를 비롯해 ‘먼 후일’ ‘산유화’ ‘엄마야 누나야’ ‘초혼’ 등 작품 127편이 16부로 나뉘어 수록돼 있다. 『진달래꼿』은 총판매소에 따라 중앙서림 총판본과 한성도서주식회사 총 판본으로 나뉘는데 이 책은 중앙서림 총판본이다. 이 가지는 시어의 긴장관계는 아주 다른 시들과 동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시조나 이상의 오감도가 가지는 전통성 위에서 논의될 때 보다 더 친근감으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시와 시조가 공통적인 동일성과 필연성으로 엮어지는데 다름 아닌 우리나라 운문형태 문학이 바로 이 시조의 보편성에 있다는 문제제기이다. 이에 대한 관심으로 시조집 25권과 시집 25권을 분석 이영지, ‘이상시에 나타난 시어의 이미지 연구’ 『열므나 박사 회갑기념논문집』한샘. 참조. 한 결과 50명 조사 중에서 36명이 시조적 보편성을 지니고 있었다. 매일 매일의 때의 리듬을 건져 올리는 시인들의 심상에서 현대시조는 보다 일상을 솔직하게 털어 놓는 삶을 위주로 한 것이라면 시는 메카니즘적 불가능의 영역에 더 머문다. 신라본기 진흥왕조에 보면 우리나라에는 풍류의 사상이 있다고 했다. 유교나 불교나 도교나 두루 포함한 것이라는 말을 고운 최치원이 난랑이라는 활의 비문을 통하여 인용하고 있다. 현실사회에서 바르게 살며 또 영원을 믿고 자연 속에서 고르게 사는 우리 고유의 영생에 대한 자각은 자연과 더불어 영생함을 추구한다. 곰마저 인간이 되고 싶어 하는 인간위주 유추 상상은 사람을 중요시하는 영역이다. 이 유추의 영역이 시보다는 시조에서 높이 나타난다. 비록 현실의 유한한 삶 속에서 그것도 일상에서의 환멸과 권태, 땀 흘리는 고통이 따르는 현실이라 할지라도 시조작품경향은 보다 일상의 기록을 너무 야단스럽지 않게 자연스레 받아들인다. 이 백분율 차례는 조운 98% · 이병기 96% · 이은상 90% · 김오남 80% · 정훈 70% · 정인보 69% · 최성연 66% · 서정주 65% · 김소월 65% · 박병순64% · 정지용 64% · 이호우 63% · 윤금초 62% · 이영도 60% · 박남수 58% · 정완영 57% · 김광균 57% · 황석우 56% · 이태극 55% · 유치환 51% · 최승범 50% · 최남선 50% · 김현승 50% · 노천명 45% · 김상옥 45% 의 순서이다. 이와 비교하여 경험유추적인 시 이미지를 가장 낮게 접근하는 박영희 10% · 이육사 18% · 이상 21% · 박두진 22% · 윤곤강 23% · 송욱 25% · 송욱 25% · 김영랑 26% · 한용운 27% · 윤동주 28% · 박경용 31% · 김기림 32% · 조지훈 32% · 김춘수 32% · 김수영 33% · 서벌 33% · 박목월 36% · 하한주 37% · 장하보 38% · 송선영 39% · 이상범 30% · 정소파 40% · 장순하 40% · 신석정 43% · 전원범 44% · 김광섭 45%의 순서이다. 이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한 경향의 시조다운 작품들은 일상의 즐거움 보다 일상성의 고통 Dabid Bioney, Myth Symbolism and Truth, Thomas A Sebeok Indiana University Press, Bloomingtion and London. 과 슬픔이 표면화 Cedric H. Whitman, Euripides and The Full Circle of Myth, Havard University Press, Cambridge, Massachusetes., 107. 되는 시인들의 감성이다. 이 경험유추는 사람이 끊임없이 과학문명을 발전시키고 편리를 위한 갖가지 문명도구를 이용하지만 그러한 기계마저 시속에서는 계속 부정적인 경험으로 시화 Paul Ginestier, The Poet and The Machine, translated by Martin B, Friedman Newhuven; The University of North Caralina Press., 23∼30. 되는 경향이다. 따라서 한국시들이 한을 주제로 하고 있다는 설도 이러한 일상의 어려움 이미지를 시로 하는 시인들의 공통적인 특징이어서이다. 따라서 한국시의 단절성 내지는 불행개념이나 슬픔의식은 누구나 가지는 세계문학적인 보편성이다. 곧 세계적인 공감대에 편승하는 문제이다. 다만 그 문학성을 어느 각도로 조명하는가가 문제이다. 현실 삶의 다반사적 일상성을 얼마만큼 순수성으로 인지하느냐는 관점에서는 한용운의 『님의 침묵』 64% · 박목월의 『청록집』 51% · 김영랑의 『영랑시집』 46% · 김상옥의 『초적』 42% · 최남선의 『백팔번뇌』 42% · 신석정의 『촛불』 40% · 이육사의 『육사시집』 38% · 노천명의 『산호림』 37% · 『창변에서』 37% · 전원범의 『걸어가는 나무들』 35% · 박경용의 『치류집』 31% · 이상의 『이상시집』 · 조지훈의 『청록집』 · 정완영의 『백색부』 · 박병순의 『낙수첩』 · 30% · 이영도의 『청정집』 · 박두진의 『청록집』 39% · 이상범의 『일식권』 27 % · 장하보의 『한야보』 · 윤둥주의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 김현승의 『견고한 고독』 26% · 박영희의 『회월시초』 · 정소파의 『슬픈 조각달』 % · 정완영의 『채춘보』 25% · 김수영의 『김수영 시집』 24% · 최승범의 『계절의 뒤란에서』 23%의 순서이다. 시조와 시의 차이를 탐색하고자 얼마만큼 작품을 쓰는 관점이 순수를 겨냥하는 흐름이 강한 이미지 기호권과 그렇지 않은 이미지 기호권을 구분하여 본다면 상위권 이미지 기호일 경우 시조와 시의 비율은 11:14의 비율이다. 순서에 있어서도 상위권의 시어기호일수록 시가 순수유추 기호에 머문다. 하위권의 비율을 보면 조운의 『조운시조집』 1% · 이병기의 『가람시조집』 4% · 하한주의 『태양의 노래』 6% · 정훈의 『벽오동』 · 이은상의 『노산시조집』 · 『노산시조선집』 · 『푸른 하늘의 뜻은』 9% · 정지용의 『지용시선』 10% · 김기림의 『기상도』 % · 최성연의 『은하』 · 윤곤강의 『만가』 12% · 김오남의 『김오남 시조집』 · 김광균의 『와사등』 13% · 황석우의 『자연송』 15% · 윤금초의 『어초문답』 16% · 박남수의 『사슴의 관』 · 『초롱불』 17% · 서정주의 『서정주 시선』 · 유치환의 『청마시초』 · 이호우의 『이호우 시조집』 18% · 김소월의 『소월시집』 19% · 정인보의 『정인보 시조집』 · 서벌의 『하늘색 일요일』 20% · 이태극의 『꽃과 여인』 · 송욱의 『나무는 즐겁다』 · 김춘수의 『처용가』 · 김광섭의 『겨울』 21%로 되어 있다. 가장 낮은 순수유추의 기호들로 하위권에 머물러 있는 분포도는 시조집과 시집이 12:13으로 비슷하지만 비율이 10% 이내에 들어 있다. 시의 순수 유추적 이미지 기호는 한용운의 『님의 침묵』인 경우 64%이다. 박목월 · 김영랑의 경우 51.46%이다. 조운 · 이병기 · 하한주 · 이은상 · 정훈 등의 아주 낮은 시조시인의 분포도와 좋은 대조를 이룬다. 매우 많은 현상은 아니지만 순수의 세계는 현실적인 비애를 반드시 승화시키는 특징을 지닌다. 이 세계는 현실적인 비애를 가벼움으로 여과작용을 하는 것이 되고 잠재적인 힘 혹은 잠재적인 힘의 실제적인 발현상태로서 정신작용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인간은 현실적인 인간 이상을 늘 비상할 수 없으므로 순수세계의 관심도는 높을 수 없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순수경험이란 언어, 상식, 과학, 이론 등의 모든 의미구조를 가능하게 하여 지탱해 주는 확실한 밑바탕이 되어 편견을 없애고 모든 이차적 개념을 생각하지 않는 원초적 지각을 의미한다. 보다 더 우리의 이성은 늘 주어진 환경이나 자연을 재조명하여 자기 것으로 만들려 한다. 이성유추의 제일 높은 빈도는 19%이며 제일 낮은 경우가 0%이므로 백분비율의 5분 1 분포권에 들고 있다. 이것은 시조와 시를 막론하고 높은 비율이 될 수 없는 시론적인 원리가 된다. 시가 목적성을 띌 수 없다는 것은 목적으로 쓰여진 시는 시적 가치를 저하시키는 작법이기도 하다. 이 분포율의 상위권은 시조와 시의 비율이 9:16이어서 목적적인 시가 시조보다 많다. 그 차례를 보면 『침류집』 19% · 『지용시선』 18% · 박두진 『청록집』 17% ·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16% · 『이상시집』 · 『육사시집』 · 『겨울비망록』 15% · 『진달래꼿』 · 『계란의 뒤란에서』 14% · 『견고한 고독』 · 『리호우 시집』 · 『청마시초』 · 조지훈의 『청록집』 13% · 『일식권』 · 『만가』 12% · 『김수영 시집』 · 『처용가』 · 『촛불』 · 『사슴의 관』 11% · 『한야보』 % · 『하늘색 일요일』 · 『어초문답』 · 『나무는 즐겁다』 10% · 『기상도』 9%이다. 이와는 반대로 하위권의 분포는 시조와 시가 16:9의 비율이어서 시조가 이성적으로 쓰여 지기보다는 감성적인 특징을 가진다. 인간이 인간의 힘으로 완전성을 기하리라는 인간의 사고는 항상 회의적이라 할 수 있다. 이것은 역설적으로 한국인이 모험심을 즐기지 않는다는 뜻이다. 곧 자연 그대로를 시화하거나 혹은 순리적인 것에 익숙해져 있는 민족심리이다. 한국인들은 신에 대한 관심이 별로 없다. 현대시조와 현대시의 비율은 8:17이다. 따라서 시는 현대시조보다 신계에 관심이 많은 것으로 나타난다. 그러나 그 백분율이 아주 낮음으로써 문학작품과 종교와는 엄연하게 구분된다. 관심이 있다하더라도 시어로서 승화하여 표출시킨다고 보겠다. 신이나 인간 및 동물과는 달리 식물에 대한 관심은 시조 쪽이 더 높음으로서 현대시조의 특징이 된다. 물질에 대한 비율관계는 자연어와 문명어로 나누어지는바 시조와 시의 관계가 상위권에서 15:10의 비율이 되고 하위권에서 11:17이 된다. 따라서 현대시조는 현대시보다 작품 속에 자연적인 물질계의 시어가 더 많이 배열되어 있고 반대로 물질계와 문명어 시어는 상위권에서 13:12로 나타난다. 하위권에서는 12:13으로 나타나서 거의 비슷하다. 한마디로 우리 한국사람들은 시를 쓸 때 솔직한 표현을 더 즐기는 시인들이다. 그만큼 우리의 언어는 그대로 한 편의 시가 되어 있다. 흔히들 시를 쓸 때 의미가 많이 숨겨진 시 이를테면 직설적인 표현을 하지 않는 시가 좋은 시라고들 한다. 그러나 우리들의 정서는 의미를 너무 깊숙이 감추지 아니한다. 바꾸어 말하면 우리말 그대로가 시적 언어가 되어 있어서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그대로 적용된다. 그만큼 감성적이라는 표현이 된다. 우리의 마음을 그대로 시적으로 드러낸다는 말이다. 소월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소월시의 “예전엔 미쳐 몰랐어요”라는 시 문구는 오늘날도 그대로 우리의 일상에서 사용되고 있는데 바로 이러한 시어가 우리의 일상에서 그대로 쓰이는 말이고 그만큼 시는 우리와 밀접하여 동떨어진 말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렇기 때문에 가장 우리들이 좋아하는 시인이 되었기도 하다. 우리의 마음을 그대로 옮겨 놓았기 때문이다. 그만큼 우리의 정서와 일치한다.
1 소월 시와 시조1) 소월시의 공감대소월 시와 시조와의 연관성은 우리의 전통문학성 무엇인가로 탐색될 수 있다. 소월시의 시어기호의 분석을 통하여 그 중에서도 특히 김소월은 시조적 시인이다. 그래서 김소월 시인을 민족적 시인이 되게 한다. 이제 김소월시를 통해서 그의 뚜렷한 특징이 무엇이며 그 특징은 어떠한 시어로 구성되었는지를 살펴보면 우리나라의 일반적이고 보편적인 정서에 더 가까이 갈 수 있게 된다. 소월시를 분석하여 본 결과 분포비율이 경험유추에 최다빈도 현상을 보인다. 특히 그 차례가 시조들의 특징에 가깝다. 그 차례는 조운 시조집(98%) → 가람시조집(96%) → 노산시조집(80%) → 김오남시조집(75%) → 벽오동(정훈시조집 70%) → 은어(최성연 6%) → 『진달래꼿』(김소월 시집 65%)의 차례에서 뚜렷이 그 증거가 나타난다. 거기에다가 소월은 명사시어 첫글자 초성자음을 선호하는 ‘ㄱ’이 102회로 가장 많다. 이영지, 소월시에 있어서의 긴장관계,명지어문학9집, 명지대, 1990. 6.. 따라서 목구멍으로 토하듯 불러내는 시이기에 더욱 우리에게 아니 누구에게나 있는 마음의 슬픔이 우리의 마음을 건드려 호소력으로 다가온다. 이른바 막힌 마음의 소리를 시로 정서 화 한 것이다. 이러한 시의 특징을 잘 살리면서도 소월시의 우수성은 시가 지니는 외연과 내포를 잘 드러내서 시적 가치를 높인다. 겉으로는 여성적이고 이별의 시로만 일관된 듯한 모습이 그와는 전연 다른 시의 내포가 있는 시가 되게 하는데 소월시의 우수성이 있다. 이때의 내포는 우리 민족이 가지고 있는 은근과 끈기를 말한다. 곧 시가 지니는 우리의 이 슬픔과 상응대되는 우리민족의 영원성을 타나내기에 시의 가치가 있다. 당시의 일제 강점기하의 시대상으로 본 소월시의 훌륭한 점은 우리 민족이 일제의 강압에서 영영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시를 통해 우리민족의 영원성을 의미로 숨기고 있다는 소월시이기 때문이다. 예언자적 그리고 우리민족의 정서를 그대로 반영해 준다. 시의 내포는 어떠한 분석으로도 사실상 내포 그 자체로 머무는 애매성을 지니는 위험성이 있다. 그래서 흔히들 소월시가 극한의 이별시로 이해되는데 있다. 더욱이 산문처럼 설명되지 않기 때문에 더욱 그러하다. 그러나 이 논문을 통해 소월시의 우수성은 시의 내포가 지닌 다름 아닌 우리들이 흔히 말하는 그 일상어를 그대로 드러내 누구나 시인이 되게 하는 이 가까움의 참뜻을 찾아내는 일이다. 이러한 해결방법의 접근은 시의 외연을 통해 시의 내포를 알아내는 일이다. 가령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시의 문구가 이별의 시가 아니라는 점이다. 분명히 ‘가실…’이라는 싯구가 있는데 왜 이별의 시가 아닐까? 이다. 이의 답은 우선 ‘가실’이라는 시어이다. 가실은 현재형이 아니라 미래형이어서 가시는 이야기가 아니다. 미래를 가정한 시로 된다. 우리말도 그대로 아주 결정적인 말보다는 말을 아끼는 말이다. 시의 겉모양만 말해도 소월은 온통 전부 시들이 ‘ㄱ’ 음가의 목구멍 막힘 소리로 시작되어 한이 맺힌 시로 이해된다. 그러나 연구에 따르면 시의 내면은 시의 겉모양과는 전연 다른 우수한 시의 내용이 담긴 시가 소월시이다. 소월의 명사시어 첫글자 초성자음 선호도는 경험을 바탕으로 한 ‘ㄱ’이 102회로 가장 많다. 소월시 전체는 ‘가....’ ‘기....’ ‘그....’ ‘고....’등의 ㄱ초성자음으로 시작된다고 하여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말은 사실 소리글자라는 개념으로 하여 뜻을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아니다. 의미를 지닌 글자가 되는 것은 우리가 ‘오물오물’ ‘우물우물’ ‘조글조글’ ‘지글지글’ 쭈글쭈글‘ ’찌글지끌‘ 등의 우리말 어감에서 그 뜻이 전연 달라진다. 이러한 우리말의 아름다움은 바로 다름아인 언어가 주는 묘미를 한국인들은 잘 구별하면서 사용하는 점이다. 그만큼 한국 언어의 우수성은 단순히 하루아침에 생성된 말이 아니라 오천년이라는 긴 세월동안 농익어서 말과 묘미가 같이 전하여지는데서이다. 우리들 바로 우리민족 바로 우리 이웃은 우리말을 즐긴다. 이러한 우리말의 아름다움을 김소월은 그의 시를 통하여 잘 드러낸 시인이다. 아주 대표적인 예가 바로 김소월시의 「진달래꽃」 시이다. 이로 하여 진정으로 달라고 하는 의미까지 확대되면서 소월시의 아름다움움은 민족정서에 맞은 그 깊이를 무한하게 뻗어 나간다. 더구나 님이 간다는 문제를 님이 가실때라 하여 그 이미지를 현재형이 아닌 미래형으로 하여 의미를 한국정서에 맞는 님과는 결코 헤어질 수 없다는 논리로 공감대를 형성하는 데에 김소월의 매력이 있다. 이 매력은 바로 우리들의 매력이 된다. 왜냐하면 우리의 의식속에서의 님은 그 무한성을 가지고 있어서 바로 절대의 힘을 가지기 때문이다. 그러히게 축복받는 민족이 되는데 이 축복은 바로 절대자의 힘으로까지 님이 그 가치를 가지기 때문이다. (1) ‘가’로 시작된 시어들가고싶은... 가고마랏느냐 - 「바다」 에서 가고 오지 못한다 - 「나는 세상을 모르고 사랏노라」에서 각금 각금 - 「춘향과 이도령」에서 가기도 햇소 - 「춘향과 이도령」에서 가나니(2회 - 「첫치마」에서 가노랍니다 - 「실제失題」에서 갑니다 - 「산우헤」에서 가느스름한 - 「분 얼굴」에서 가는 봄(3 - 「첫치마」「봄비」에서 가는 님은 - 「半달」에서 가늣한 손가락이 - 「꿈으로 오는 한」에서 갈내갈내 갈닌길 - 「길」에서 갈닙의 노래 - 「엄마야 누나야 강변살자」에서 가다가(3 - 「들노리」에서 가도가도 - 「왕십리」에서 가다오다 - 「곽주산성」에서 가도 아주가지는(2 - 「개여울」에서 감도록(2 - 「닭은 꼬꾸요」에서 가라시구려 - 「못니저」에서 가라닙고도 - 「달마지」에서 가로막킨 - 「산우헤」에서 가람(2 - 「실제」에서 가람이지요 - 「춘향 이도령」에서 가람(2 - 「失題」에서 가로막고 - 「밤」에서 가마귀 한 쌍 - 「찬저녁」에서 가마귀 가왁가왁 - 「길」에서 강물을 -「기억」에서 가마귀 한 쌍 - 「찬저녁」에서 갈봄녀름업시 -「산유화」에서 간밤에 - 「부헝새」에서 가마귀 한 쌍 - 「찬저녁」에서 가슴뛰노는 - 「닭소래」에서 가슴엔 - 「달마지」에서 가시는 거름거름 - 「산유화」에서 가신님 - 「금잔듸」에서 가시옵소서 - 「진달래꼿」 에서 가실길에 - 「진달래꼿」에서 가실때에는(2 - 「진달래꼿」 시」에서 감으면 - 「닭은꼬꾸요」에서 가을 - 「찬저녁」에서 가을밤에 - 「희망」에서 가을봄 - 「꿈길」에서 가잇슬텐고 - 「삭주귀성」에서 가을밤에 - 「희망」에서 가쟈고(3 - 「달마지」에서 가지게되엿노라 - 「꿈으로 오는」에서 가튼말도 - 「나는 세상모르고 사랏노라」에서 가튼저녁 - 「눈 오는 저녁」에서 강변살자(2 - 「엄마야 누나야」에서 강촌(3 -「강촌」에서 ㄱ초성자음이 양성모음인 ‘ㅏ’와 같이 ‘가’가 되는 시어들이다. 이들은 거의 떠나는 이미지이다. 이러한 시어의 외연은 소월 시가 지닌 존재들과의 거리감 또는 사람들과의 이별의 시로서 해석되어지는 면과 동일시된다. 이러한 떠남 이미지에 대한 공감대형성은 ‘가마귀’시어가 다 빈도 현상으로 들어남으로써 시의 외연은 크게 김 시인을 이별의 시인으로 현재 해석되고 있다.그립다 말을 할까 하니 그리워 그냥 갈까 그래도 다시 더 한번 저산에도 가마귀 서산에는 해진다고 지저깁니다압강물 뒷강물 흐르는 물은 어서 따라오라고 따라가자고 흘러도 년달아 흐릅듸다려 - 김소월 「가는 길」「가는 길」시는 “저산에도 가마귀/ 서산에는 해진다고/ 지저깁니다”로 되어 있다. 이에 이 시를 내포적인 의미로 접근할 수 있다. 까마귀를 시에서 많이 활용하는 김현승 시가 있다.가을에는 기도하게 하소서 낙엽들이 지는 때를 기다려 내게 주신 겸허한 모국어로 나를 채우소서가을에는 사랑하게 하소서 오직 한 사람을 택하게 하소서 가장 아름다운 열매를 위하여 이 비옥한 시간을 가꾸게 하소서가을에는 호올로 있게 하소서 나의 영혼 굽이치는 바다와 백합의 골짜기를 지나 마른 나무 가지 위에 다다른 까마귀 같이 - 김현승 「가을의 기도」 김현승시 「가을의 기도」의 “까마귀 같이”는 김현승의 다른 시에서도 나타나는 까마귀의 이미지가 지닌 고독한 영혼의 갈 길을 의미하는 많은 빈도의 상징으로 등장한다. 김현승 시 외에도 고시조에서도 ‘까마귀’는 그 빈도가 높다.수풀에 까마귀를 아이야 좇지마라 반포효양反哺孝養은 미물도 하는구나 나 같은 고로여생이 저로 부러하노라뉘라서 까마귀를 검타 흉타 하돗던고 반포보은反哺報恩이 긔 아니 아름다운가 사람이 저 새만 못함을 못내 슬허하노라 - 박효관까마귀가 검은 그 모양과는 달리 효의 이미지가 발견됨으로써 까마귀의 일반적인 불길한 외연의 의미가 전환하여 인간의 갈 길을 알려주는 역할을 한다. 이에 김소월 시인에게서의 가마귀 역시 다빈도 현상에 따르기 때문에 그 의미가 어떠한지 탐색이 필요하다. ....... 울 짓는 가막까치 놀나 난 소래 ........ 두새업는 저 가마귀 울 짓는 저 까치야 - 김소월 「몹쓸꿈」에서저 가마귀 한 쌍 바람에 나래를 펴라 -- 김소월 「찬저녁」에서어제도 하로 밤 나그네 집에 가마귀 가왁가왁 울며 새엿소 - 김소월 「길」에서이들 시는 일반적인 철자법인 ‘까마귀’의 ‘까’가 아니라 부드러운 음운인 ‘가마귀’를 의도적으로 선택함으로써 시의 내포가 있음을 암시한다. 이러한 유추의 가능성은 김 시인의 「가는 길」 시 끝 연에서 물의 흐름이 “따라오라고 따라가자고”로 되어 있음과 리듬을 같이 하면서 나쁜 이미지가 아닌 갈 길을 안내하는 이미지이다. 이상의 오감도에서도 긍정적인 상징체가 제목에 가마귀 ‘오烏’로 되어 있지만 사실은 효조로 그 의미를 숨기고 있음을 연구한 바로 학위논문이 통과되었었다. 따라서 가마귀 새는 불길한 의미만의 새가 아니다. 한국 사람들의 일상사에서는 가마귀가 울면 불길한 일이 일어난다고 예측한다. 그리하여 금기시한다. 그러나 한국에 있는 민속에서는 반포조라고도 하여 가마귀 새끼가 자라 어미새에게 효를 행하는 일이다. 가마귀가 전해준 이야기는 오작교도 있고 종을 울려 항아리 안에 든 사람을 구해주는 일도 전해진다. 다음의 시조에서 보면 겉은 검다하더라도 속조차 검지는 않다. 가마귀 검다하고 백로야 웃지 마라 겉이 검은들 속조차 검을 소냐 겉 희고 속 검은 이는 너 뿐인가 노라 정주동·유창식 교주, 『眞本 靑丘永언』(서울: 신생문화사, 1967, 517. 이 직(1)362/공민왕 때 - 143/세종 13까지, 호는 형재. 고려 공민왕 때 예문각 제학이었고 세종때에는 영의정을 지냄. 위 시조의 예에서 가마귀는 겉은 검지는 속은 검지 않을 것이라는 신념이 작가에 의하여 나타나고 있다. 이 시조에서 검음과 흼의 관계는 겉과 속이 다를 수 있다는 비유에서 비롯된 것이고 이 비유는 외모로 인간을 판단하지 않는다는 민속적인 속설까지 있다. 칠월칠석날 견우와 직녀를 만나게 해 주기 위하여 가마귀는 까치와 오작교를 놓는다. 한국의 민속은 바로 결코 가마귀가 나쁜 의미로만 전해지지 않음을 증명하는 일이다. 이처럼 우리의 속담들은 그 내려오는 한국의 정서를 그대로 반영하여 한국인의 문화가 지닌 숨은 뜻을 잘 전해주고 있다. 한국민속에서의 가마귀와 까지가 몸을 잇대어 은하에 다리를 놓는다는 전설 칠월칠석의 오작교가 있다. 가마귀가 겉은 검지는 속은 검지 않다는 것을 상징한다. 따라서 소월이 말하는 가마귀가 나쁜 의미로만 일관될 수는 없다. 하물며 남산 나린 끝에 오곡을 갖춰 심어 먹고 못 남아도 긋지나 아니 하면 내 집의 내 밥이 그 맛이 어떠하뇨 채산낙수하니 수륙품도 잠간갓다 감지봉양을 족하다 할까마는 오조함정을 벱고야 말렸노라 박인로의 사제곡(莎堤曲 중에서. 이상보, 『노계시가연구』 (서울: 이우출판사, 1978, 142-144. 하물며 남산 나린 끝에 오곡을 갖춰 심어/ 먹고 못 남아도 긋지나 아니 하면/ 내 집의 내 밥이 그 맛이 어떠하뇨/ 채산낙수採山約水하니 수륙품水陸品도 잠간갓다/ 감지봉양甘旨奉養을 족하다 할까마는/오조함정烏鳥含情을 벱고야 말렸노라. 효조가 가마귀 오와 관련되는 것은 낳아주고 길러준 어미와의 일이 되는 실제의 상황에서 비롯된다. 미물인 새도 그의 어미에게 받은 은공을 다할진대 만물의 영장인 인간이 가마귀를 본받지 않을 수 있는가하는 역설이 강조된다. 효의 방법은 감지봉양의 형식이 아니라, 즉 맛난 음식보다 더 중요한 오조함정 가마귀가 먹은 마음의 정은 그의 어미가 늙으면 먹이를 물어다 준다는데 그 깊은 뜻이 있다. 남산 줄기가 내려앉은 그 끝에 오곡을 갖추어 심어 먹고 그것이 남지는 아니해도 끊어지지나 아니하면 내 집의 내 밥이 진미가 되는 것이다. 산나물을 캐고 물고기를 낚으니 뭍과 물의 물건들을 갖추는 것이 된다. 이것은 보모님을 공양함에 있어서 넉넉하지는 않지만 인간도 가마귀처럼 효도를 하고야 말겠다고 하는데 큰 의의가 있다. 효조함정孝鳥含情은 낳아주고 길러준 어버이에게 효를 다하고 있는 마음이 자연적으로 발생함을 의미 한다. 인간에게 있어서 낳아주고 길러준 부모에게 효를 다하고자 하는 마음은 누구나 일반이다. 인간과 가마귀를 동일시하는 효와 관계되는 가마귀의 역할은 가마귀의 좋은 점을 인간이 본받게 하는데 그 중요한 의미 개념이 숨어 있다. 효조반포孝鳥反哺나 자오왈효조장측반포기모慈烏曰孝鳥張則反哺其母니 하는 민속적 구절들이 이를 뒷받침해 준다. 모든 행실의 근원 孝에 이르러 孔子는 부孝者德之本也라 하였고, 孝는 百행之原善之初也라 하였으며 행人의 根本이라하였다. 퇴溪도 百행之原이라 하였으며, 율곡도 孝위百행之道라하였다. 이 되는 효의 개념은 내가 남을 받들어 모시는 마음의 자세에 있다. 회화로는 눈을 들어 위를 쳐다보는 자세라고 할 수 있다. 다른 사람을 향하여 늘 올려다보는 사람은 결코 그 행실이 그릇될 수 없다. 불길한 개념으로서가 아니라 효조로 변하여진 가마귀에 대한 우리의 정서는 바로 우리민족의 긍정성을 엿보게 된다. 미물에 대한 불길한 느낌을 오히려 그와는 반대가 되는 의미로 전해지는 우리의 정서는 우리민족이 얼마만큼 긍정적인 것을 알게 한다.(2) ‘그’시어로 시작된 시어들소월시는 ‘ㄱ’초성자음이 ‘ㅡ’와 합하여 만들어 내는 ‘그...’시어가 가장 많다. ‘그’라면 ‘그대’를 생각하게 되는데 한용운의 ‘님’이 186회 ‘당신’이 295회나 되면서도 ‘그대’시어가 없는 것과 좋은 대조가 된다. 김 시인의 ‘그’시어로 시작되는 예이다. 그것이 - 「자나 깨나 안즈나 서사」에서 그곳에서 - 「무덤」에서 그계집 - 「분 얼굴」에서 그냥 - 「꿈으로 오는 한사람」에서 그날까지 - 「사노라면 사람이 죽는 것을」에서 그냥 갈까 - 「가는 길」에서 그네들도 - 「훗길」에서 그는 - 「꿈으로 오는 한사람」에서 그 누가(2) - 「가을 저녁에 오는 봄」에서 그 내님도 - 「나는 세상 모르고 살았노라」에서 그늘깁퍼 - 「가을 저녁에」에서 그늘닙새를 - 「녀름의 달밤」에서 그늘이나 - 「오는 날」에서 그대(3) -「니젓든 맘」「분 얼굴」에서 그대가(3) - 「무언」 「귀뚜람이」 「개여울의 노래」에서 그대만 - 「닭소래」에서 그대는 - 「니젓든 맘 분 얼굴」에서 그대로 - 「꿈으로 오는 한 사람」 「달마지」에서 그대를 - 「가을아츰에」에서 그대여(5) - 「기억」 「옛날」 「님과 벗」 「바다가 변하야 뽕나무 밧 된다고」에서 그대요 - 「안해」「몸」에서 그대의 가슴속의 - 「가을아츰에」 「불운에 우는 그대여」에서 그대의 - 「불운에 우는 그대여」에서 그대 잠든 품속에 - 「구름」에서 그대 한테로 - 「새벽」에서 그대는 먼 첨 - 「묵념」에서 그대의 잠든 몸 우에 - 「묵념」에서 그대의 이름을 - 「초혼」에서 그대의 손의 - 「여수」에서 그대은 모르고(2) - 「촛불을 켜는 밤」에서 그래도 - 「먼 후일」에서 그런데 - 「옛니야기」에서 ...그려 - 「자나 깨나 앉으나 서나」에서 .그럴듯한 - 「후살이」에서 그런날이오(2) - 「비단안개」에서 그림자 - 「먼 후일」에서 그립은(3) - 「풀 따기」 「바다」에서 그림자 갓치 - 「해가 산마루에 저무러도」에서 그리워 - 「비단안개」에서 그런때러라 - 「비단안개」에서 그립다 - 「기억」에서 그립은 한때는 - 「가을아츰에」에서 그립은 끗테는 - 「옛날」에서 그리하면 그 역시 그럿 듯 한도 한 일을 - 「생과 사」에서 그를 - 「맘에 있는 말이라고 다.....보냐」에서 그러나 그러나 - 「새벽」에서 그리는 - 「새벽」에서 그러나 - 「오는밤」 「찬저녁」 「무심」 「부귀공명」 「바라건대는 우리에게 보섭대일 땅이 잇섯다면」 「사노라면 사람이 죽는것을」에서 그림자 가득한 - 「무덤」에서 그립은 바다 - 「여수」에서 그리합니까 - 「개여울」에서 그래도 - 「가는길」에서 그리합니까 - 「개여울」에서 그래도 그들은(2) - 「촛불을 켜는 밤」에서 그래서 - 「산」에서 그럴말로 - 「사노라면 사람이 죽는 것을」에서 그러면 - 「사노라면 사람이 죽는것을」에서 그림자뿐인 줄을 - 「희망」에서 그림장이 - 「전망」에서 그리워 오네 - 「닭은 꼬꾸요」에서소월 시에서는 ‘그....’로 시작하는 언어가 가장 많은데 특히 ‘그리움’ ‘그림자’ ‘그대’ ‘그 여자’...등이다. ‘그...’어감이 가져오는 먼 곳에 있는 대상에 대한 애틋한 감정을 시의 외연으로 한다.박게는 눈이 와라 고요히 창 아래로는 달빛치 드러라 어스름 타고서 오신 그 여자는 내 꿈의 품속으로 드러 함빡히 저젓서라 그만 그 여자는 가고 마랏느냐 다만 고요한 새벽 별 그림자 하나가 창틈을 엿보아라 - 김소월 「그 옛날」 못니저 생각이 나겟지요 그런대로 한세상 지내시구려 사노라면 니칠날 잇스리다못니저 생각이 나겟지요 그런대로 세월만 가라시구려 못니저도 더러는 니치오리다그러나 또한긋 이럿치요 그립어 살뜰히 못닛는데 어쩌면 생각이 떠지나요 - 김소월 「못니저」해가 산 마루에 저무러도 내게 두고는 당신 때문에 맑은 아츰이라고 할 것입니다땅이 꺼져도 하늘이 무너져도 내게 두고는 끗까지 모두 다 당신 때문에 잇습니다다시는 나의 이러한맘뿐은 때가 되면 그림자갓치 당신한테로 가우리다 오오 나의 애인이엇든 당신이어 - 「해가 산마루에 저므러도」눈물이 비단안개에 들니울 때 그 때는 차마 닛지못할때러라 만나서 울던 때도 그런 날이오 그리워 밋친날도 그런때러라눈물이 비단안개에 들니울 때 그때는 홀 목숨은 못살때러라 젊은 계집 목매고 달닐때러라눈물이 비단안개에 들니울 때 그때는 종달새 소슬 때러라 들에랴 바다에랴 하늘에서랴 아지 못할 무엇에 취할 때러라눈물이 비단안개에 들니울 때 그때는 참아 닛지못할때러라 첫사랑 잇든 때도 그런 날이오 영 리별 잇든날도 그런 때러라 - 김소월 「비단안개」소월에게 있어서 여자는 이 여자도 아니고 저 여자도 아닌 ‘그여자’이다. 홀로된 여자이고(「후살이」) ‘달아래 멋업시 섯든 그 여자(「기억」) 이다. 이 경험 속에 ’그 여자‘는 어스름 타고 내 꿈의 품속으로 들어와 안기는 ‘그 여자’이고 고요한 새벽에 그만 가버리고 마는 ‘그 여자’이다. 어스름 타고서 오셨다가 고요한 새벽에 가는 ‘그 여자’와 같이 있는 때는 밤이다. 이러한 그리움의 대상은 「못니저」시에서 보면 못 잊는 시간의 연속으로 이어진다. 이 시에서 역시 이런대로 한 세상이 아니고 ‘그런대로 한세상’과 같이 ‘그...’로가 강조된다. ‘그러나’ ‘그립어’등과 같이 울음 우듯 목구멍 막힘 소리로 일관한다. 그것은 낮이 아니라 ‘해가 산마루에’ 걸린 때이다. 때는 낮이 아니라 해가 산마루에 걸린 때이다. 그 시간은 낮이 아니라 ‘해가 산마루에 저무러’(「해가 산마루에 저무러도」)오는 시간에서 시작하여 ‘밝은 아츰’ 때가 오는 때이다. 여기에서 김소월시가 가지는 은유의 극치인 밤을 지나 아츰이다. ‘그림자’같이 늘 따르는 존재는 김 시인에게 ‘그..’가 따라다닌다. ‘눈물이 비단 안개에 들니울 때’의 ‘그때’(「비단안개」)이다. ‘그리워 밋친날’이고 ‘홀 목숨은 못살 때’이고 ‘밋지 못할 때’이다. 그 때는 ‘첫사랑 잇든 때’이고 ‘영 리별 잇든날’이다. 따라서 ‘영이별’한 시간은 ‘시’의 외연이 된다. 김소월시의 이러한 외연은 오히려 김소월시를 높이 평가하는 내포를 탐색하게 된다. ‘꿈은 그 옛날에서’와 같이 ‘그여자’가 되고 만 상황에서도 ‘새벽’ ‘창틀’의 시어로 하여 영 이별이 아닌 시의 내포를 만든다. 이러한 시의 내포는 ‘시 「못니저」에서도 잊음과 못잊음의 긴장관계에서 못잊음이 가지는 의미는 시 「해가 서산마루에 저므러도」에서 ’그림자갓치 당신한테로 가우리다‘로서 영이별이 아닌 상황으로 내포의 긴장관계를 지닌다. 이와 같이 ‘그....’로 시작하는 그 먼 곳의 시적 외연의 다빈도성은 겉으로 볼 때 당연히 김 시인의 시가 지닌 ㄱ초성자음과 결부되면서 어둡고 쓸쓸하고 외롭고 고독하고 불행한 소월 시로 인식하게 된다. 그러나 이러함을 반전하는 의미를 탐색하게 된다. 조사한 바에 의하면 현대시의 명사시어 첫글자 초성은 최다빈도가 ㅂ → ㅇ → ㅅ → ㄱ음운의 차례 인 것을 보면 김 시인은 그의 내면과 긴밀성을 가진 한의 정서와 연결된다. 김 시인에 같이 공감대가 형성된 시인은 서벌과 이영도 그리고 박목월 윤동주 윤금초 정완영 장순하 등이 있다. 그러나 이들과의 변별성은 ‘그리움’이나 ‘그대’등의 ‘그..’로 이미지하고 있다. 이러한 변별성은 김 시인이 경험을 바탕으로 한 순수 시인이기에 당시의 처한 현실과 가정의 어려운 당시의 현실이 민족 시인으로 되게 하였다. 참고로 하여 보면 ㅂ음가선호의 시인은 장하보 → 이은상 → 이은상 → 이태극 → 전원범 → 윤곤강 → 김영랑 → 조지훈 → 정훈 → 박영희 → 송욱 → 박경용 → 이육사 → 이병기에서이다. 이병기가 가장 높다. 이들 특징은 리얼리틱성을 전제로 한다. ㅅ 음가는 박남수 → 서정주 → 김광균 → 유치환 → 송선영 → 김기림 → 김춘수 → 이상 → 김광섭 → 이상범 → 정지용 서열이다. 이들은 모더니즘 시 및 인생파 시인들의 모임이다. 특히 김소월의 경우 양성 모음보다는 음성 모음 선호도로 하여 특히 ㄱ음선호도로 하여 목구멍소리가 의미하는 절규의 이미지의 시인이다. 슬픔의 극한을 들어낸 절창을 읊는 결과가 되었다. 시의 외연이다.삼수갑산 가는 길은 고개의 길 samsu kap san kanwn kilwn kokewi kil - 김소월 「삼수갑산」의 3.4연이러한 /k/g의 머리음가는 그의 시도적인 시이다.물 구슬의 봄 새벽 아득한 길[gil] 하늘이며 들 사이에 넓은 숲 젖은 향기 불긋한 잎 위의 길[gil] 실그물의 바람 비쳐 좋은 숲 나는 걸어가노라 이러한 길[gil] 밤저녁의 그늘진 그대의 꿈[kum] 흔들 니는 다리 무지개 길[gil] 바람조차 가을 봄 걷히는 꿈[kum] 이러한 ㄱ자음의 특징은 님의 대상을 ‘그대’라고 하는 것과 연계된다. ‘그.....’의 시어들은 시적화자 옆에 없는 대상을 외연으로 하였다. 시의 외연이다. 내포는 아니다. 지시대명사로서의 ‘그’는 객관적 상관물의 ‘그’이다. 이 ‘그’의 보편성으로 하여 김소월 시는 김소월을 떠나서 보편성의 언어로 바뀌어 지낟. 이 보편성은 진리개념으로 발전한다. ‘ㄱ’ 음가의 입안에서 막히는 정서의 발음을 하면서 시가 가지는 애절함을 더한다. 그러기에 한국만이 지닌 지리적 조건과 세력의 불균형에서 오는 외세 침략등을 겪어온 우리들의 정서로 표현되어 확대된다. 그러나 소월시의 우수성은 민족정성의 한이라는 일반 정서를 이 정서와는 관계없이 긍정적으로 끌어 올리는데 김소월의 시의 힘이 있다. 이 힘은 바로 우리의 힘이다. 우리의 힘은 민족이 지닌 역사 속에서 지리적 위치조건에 의한 갖가지 외침으로부터 견디어 오는 힘을 만들어 만드는 자생성의 힘이다. 이 힘은 우리의 정서가 지니는 나 혼자만이 아니라 우리라는 정서로 하여 삶을 우리의 살으로 바꾼다. 같이 어울려 일을 해결하는 정서는 오늘날 갖가지 비리의 온상이 되었다고도 하고 고맙다는 인사를 지나치게 하여 비리의 온상이 되었다고도 한다. 그러나 이러한 왜곡성과는 다른 우리의 한국인이 지니는 정서는 남을 돕고 그리고 같이 즐기는데 있다. 즐긴다는 말은 같이 시간을 보내는 우리의 공유과정을 통해 서구문명과는 분명히 다른 그 무엇 그것은 다름 아닌 나의 민족이라 하지 않고 우리민족이라는 개념이 없어지지 아니한 우리들은 어떠한 방법으로든 우리의 정서가 지켜지는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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