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사람들은 혼자도 아니고 둘도 아니고 셋이 같이 한다. 나와 너와 그 셋이 어울려 우리가 일을 한다. 나와 너와 단 둘이 있을 때도 보이지 않는 조상이나 하나님을 염두에 두고 조심하였다. 그리하여 오천년이 이어오는 역사를 만들었다. 주인공은 우리이다. 우리는 우리라 한다. 하나님조차 절대로 혼자 하시지 아니하시고 성삼위라 하신다. 성삼위께서 사람을 만드실 때에도 우리 셋이서 사람을 만들자했다. 바벨탑을 쌓고 하나님에게 도전하는 자들의 언어를 흩으실 때에도 우리 셋이서 이를 막자 하시었다. 아브라함이 아들을 하나님이 원하는 제물로 들이기 위해 산을 오를 때도 아브라함과 이삭과 하나님과 셋이서 동행하였다. 아들이 아버지 우리 둘 뿐인데 하나님께 들일 제물은 어디 있느냐고 물었을 때 하나님이 알아서 준비하셨다 했다.
이러한 진리를 시조작품으로 쓸 수 있다.
우리 셋 해달별이 있는 걸 보고싶음
산으로 오십시오 산머리 저 너머에
어울려 지금 하나로 보여주고 있네요
하아얀 손바닥을 펴시어 보십시오
사랑함 이라고 쓴 얼룩진 사랑 눈물
별 달 해 넘어가면서 남겨주고 갔네요
당신의 고운 손에 별처럼 무늬지어
어리는 유리창에 달덩이 그대 얼굴
해같이 빛나는 사람 바라느라 별가슴
하여서 내님이라 여기며 사는 우리
가슴에 반짝이는 별같이 살아가는
사랑의 별들이 사는 해달별의 우리는
뽀오얀 새바람이 언제나 일게하는
거울로 서로 비춰 오르막 오를 때에
손잡고 셋이서 가는 해달별이 빛나네
- 이영지 「셋의 공존」
달과 별과 해가 있는 셋은 물과 깊은 관련이 있다. 물은 샘물 강물 바닷물이 있는데 샘물은 하나님이 마 애 놓듯 깊은 산중에서 우리 앞에 놓으시었다. 깊은 바다에도 샘을 태어놓으셨다.사람도 물에 태워 물 위에 뜨게 하시는 날이 3일째이다. 3일째 우리몸은 그 분의 선히 여기시는 배 위에 타기만 하는데 바로 물 위 뜬 사람이 우리이다.
3일이나 3월이나 30년이나 모두 3벤 째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물과 깊은 관련이 있다. 그 이유는 물이 세 글자 곧 마아임이어서이다. 바로 내 임이 되는 이야기어서이다. 이 황홀한 대상에 대한 그리움은 하나님이 명령하여 이 뼈, 저 뼈가 들어맞아서 뼈들이 서로 연락되며 사람 몸에 피와 살이 있게 하시기 때문이다. 우리를 살게 하는 물의 사역, 물의 이름은 ‘마 임’이다. 바로 임이다. 임이라고 말 하는 ‘마 임’이다. 이 마임인 물은 이제 곧 황색의 땅이 곡식들을 살아 있는 생명들이 파랗게 돋아나게 할 것이다. 곧 가을이면 사랑을 맺을 수 있다.
셋째날에는 다음의 표에서 보이듯이 물이 영원부터 영원까지 존재하여 처음과 끝에 소속되지 않는다. 그 증거는 다음과 같다.
[* 물의 초월성]
① 한 날 하늘 - ת(1: 1)→ 땅 תˏ(1: 1) →
빛 - ת(1: 4)
② 둘재 날 궁창 - ת(1: 7)
③ 셋째 날
④ 넷째 날 두 광명 - ת(1: 16) →
큰 광명 - ת(1: 16)→작은광명-ת(1: 16) →
별들 ת(1: 16)→ 그들 ם(1: 17)
⑤ 다섯째날 물고기 - ת(1: 21)→생물 - ת(1: 21) →
새 ת(1: 21)→ 그들 ם(1: 22)
바닷물 - ת(1: 22)
⑥여섯째 날 짐승 - ת(1: 25)→ 육 축- ת(1: 25) →
모든 기는 - ת(1: 25) →
사람 - ת(1: 27) 그를 וֹת(1: 27)→
그들 ם(1: 27)
그들 ם(1: 28)
땅 - ת(1: 28) →
채소 - ת(1: 29) → 나무 - ת(1: 29) →
모든 - ת(1: 31)
⑦일곱째 날 날 - ת(2: 3) → 그를 וֹת(2: 3)
셋째 날은 처음과 끝의 전체가 되는 ‘에트’가 없다. 다른 날은 다 있는데 셋째 날은 에트가 없다. 왜 없을까. 우선 성경은 셋과 셋째를 구분하는데 셋은 히브리어 ה(슬로솨 · 셋, τφεις)이다. 마른 뼈들을 살리기를 희망하는 소망사로 한다. 성경은 셋 우리 셋이 합하여 사람을 만들자고 한다. 그리하여 아담이 만들어 진다. 셋이 어울려 힘을 합하는 의미로 우리나라에서는 형제간에 하도 싸우니까 아버지가 유언으로 한사람은 힘이 약하지만 셋이 합하여 나가면 어려움이 없을 거라고 뭉쳐서 이 어려운 세상을 살아가라고 권고 유언한 속담이 있다. 바로 독립된 셋이 합할 때 셋의 의미이다.
이와 달리 셋째는 히브리어로 셋째 יי(쉘리쉬·셋째, τυιτσς)이다. 우리 속담에 있는 셋째 딸은 물어 보지도 않고 아내로 삼거나 며느리 감으로 데려간다. 그만큼 조화를 잘 이루는 인물이고 아름다운 여인이다. 흔히 아름다운 여인을 달덩이 같다고 하는데 황진이는 자신을 명월 달덩이로 하여 벽계수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서동이 반한 선화공주는 아름다운 셋째딸이다.
聞新羅眞平王第三公主善花(一作善花美艶無雙削髮來京師 以薯草.창..乃作謠 誘群童而唱之云?.
이름이 선화善花인데 일명 선화善化라로도 불리어진다. 화花나 화化는 선화의 ‘선’이 셋째임으로 셋째 딸인 셋희이다. 즉 셋째 딸이다. 한국민속에 따르면 혼인미담으로 셋째 딸은 물어보지도 말고 데려 간다는 속설이다. 따라서 셋쩨 딸은 가장 아름다운 여인이라는 말이다. 서동이 실제 인물이 아니고 서동요가 백제와 신라와의 유대관계를 위한 의도적인 인물의 작품이라고 본대도 셋째는 아름다움뿐만 아니라 가장 조화를 의미지수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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