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학심층탐구/ 홍문표 문학 연구 2
홍문표의 에덴시학 연구 2
– 고향 백제의 하늘과 에덴
이 영 지
Ⅰ. 홍문표 에덴시학의 철학성
홍문표 교수의 고향은 부여이다. 부여는 백제시대의 수도이었다. 김부식은 삼국사기 온조왕(溫朝王)조에 ‘검소하지만 누추하지 않고 화려하지만 사치스럽지 않다’는 검이불루 화이불치’한 백제를 소개한다. 1500년의 수면을 끝내고 백제시대의 모습들이 유네스코에 등재되면서 홍시인도 고향 충남 부여를 중심으로 한 이번 백제문화제에서 그의 예술혼을 시로 드러내게 되었다.
천오백년 침묵하던 백제 정신을 되살려 오늘의 하늘에 다시 비상시킨 것이다. 백제인 홍문표교수는 이번에 「예가 바로 백제의 하늘이다.- 백제금동대향로에 부쳐」라는 시를 통하여 그 장엄한 비상을 보여주게된 것이다.
높으디 높은 상상봉에
두 날개 활짝 펴고
꼬리마저 하늘로 치켜든
봉황의 장엄한 자태
하늘로 하늘로 치솟는
저 불사의 황금빛 날개 짓을 보아라
여의주 목에 걸고
눈빛은 하늘너머 우주를 응시하며
가슴엔 생성의 하늘 뜻 뜨거워
햇살처럼 쏟아내는 축복의 향내가
천지에 가득하여라
예가 바로 백제의 하늘이다
온통 산들이다
스물 네 겹 층층이 솟아오른 청산이다
계곡엔 철철철 명경의 강이 흐르고
호수엔 고기들 떼 지어 논다
숲에는 사철 꽃들이 웃어대고
온갖 새들이 지저귀는 곳
사람들은 노루 사자 호랑이와 더불어 산다
악사들의 청아한 연주소리 들려라
나무들이 춤을 춘다
새들이 춤을 춘다
산들이 춤을 추고 하늘도 춤을 춘다
예가 바로 백제의 하늘이다.
연꽃이다
연분홍 꽃밭이다
잎 새 마다 하늘을 꿈꾸는
무궁한 하늘나라다
애오라지 하늘을 머금었기에
세속의 더러움에 물들지 않는
저 청정함의 지고한 순결
모두를 품에 안고
안식과 풍요를 빚어내는
꽃잎들의 지극한 정성
예가 바로 백제의 하늘이다
황룡이다
백마강 이무기가 황해를 박차고
방금 하늘로 승천하는 용트림이다
천지를 뒤흔드는 열망의 몸부림이다
입으로는 불꽃을 뿜으며
앞발로는 구름을 헤치고
갈기로는 바람을 휘저으며
청산의 나라 연꽃의 나라 머리에 이고
구만리장천으로 날아오르는
저 우람한 생명력의 소용돌이
예가 바로 백제의 하늘이다
부여 땅 골짝마다
지금도 천오백년 침묵을 깨고
솟아오르는 그날의 향연(香煙)
더욱 높이 올라라 더욱 멀리 내 뿜어라
백제의 하늘이여
- 홍문표 「예가 바로 백제의 하늘이다」- 백제금동대향로에 부쳐
홍시인의 「예가 바로 백제의 하늘이다.」시는 백제금동대향로를 통해 평소 홍 시인이 추구하는 에덴 시학의 청산인 이상향 세계와 무관하지 않다. 이무기가 하늘로 오르는 시상은 바로 1992년에 발표한 『지상의 연가 - 늘 루른 강물이듯이』의 시적 화자인데 2015년 「예가 바로 백제의 하늘이다.-백제금동대향로에 부쳐」의 작품과 하이퍼성으로 연결하면서 뚜렷한 역사바로잡기의 선두가 되어 있다. 어릴 때부터 어머니로부터 늘 들었던 그 이무기가 하늘로 오르는 홍시인의 비상의식은 구체적으로 백제의 하늘에 오르는 에덴 시학으로 확대된다.
홍시인의 1992년 시「늘 푸른 강물이듯이 42」에서 불었던 피리젓대는 남풍을 부르는 십자성 언저리의 피리젓대이다. 에덴시학의 구체적인 트레드마크였던 무궁화와 진달래와 쑥부쟁이의 피리젓대가 삼현육각 나팔로 장구 치고 노래하는 즐거움의 날이 ‘후일’의 그 후일이 된 것이다. 바로 2015년 10월 3일 축제의 밭이 되었다. 가는 길을 멈추지 않았더니 드디어 축제의 주인공 이무기는 영원의 시간을 건져올렸다.
무절제한 하늘 오르기가 아니라 12 소통로로 시를 통해 기독교적 신화소 12구멍으로 타임머신을 탄다. 신기루처럼 쏟아져 내리는 축복을 받을 수 있는 하늘과의 소통로는 성경의 드보라가 우리 우리 우리 일어나 깨어나라 깨어나라며 웨쳤던 그 날개짓으로 홍 시인이 내 고향을 위해, 내 이웃을 위해 그리고 내 나라를 위해 전 세계를 위해 일어나라! 노래한다. 그것은 소부리 사비성이 되고 백제가 되고 다시 대한민국의 수도인 서울의 모습이 되고 그리고 대한민국의 단아하여 결코 검소하되 누추하지 않고 화려하되 사치스럽지 않는 시인의 노래로 거듭난다.
뿌리가 없이는 현재가 있을 수 없다. 이 뿌리에서 대한민국은 하늘로 오르는 에덴시학의 꿈을 비상한다. 전 세계에 한국을 안내한다. 유네스코에 등재된 에덴 시학은 하나님을 위한 길에 선 사람이 왜 전 세계의 이목을 집중하는지, 왜 한류가 그토록 전 세계로 웅비하는지를, 왜 김부식이 삼국사기 온조왕(溫朝王)조에 ‘검소하지만 누추하지 않고 화려하지만 사치스럽지 않는 고향땅 이야기’를 알린다.
에덴은 인간이 갈망하는 유토피아의 세계이다. 이 에덴이 장소의 개념이 아닌 사람 에덴이 성경에서 하나님 일을 하였듯이 홍문표 교수는 직장을 위해 그리고 가족을 위해 그리고 사회를 위해 더 나아가 제자들을 위해 막연한 에덴이 아닌 현실의 에덴시학 가능성을 알린다. 온 정성을 다 쏟은 절대자를 위해 사역하는 목사로서의 삶을 하나님의 일 사역으로 한다. 입으로 말씀전하기이다. 이 입은 피 사역이다. 피를 가진 산 자의 은혜를 하나님이 베푸시니 우연찮게 택하게 된 자신의 백제 고향을 백제금동대향로에 부쳐 알린다. 에덴시학을 펴내는 홍시인 고향 백제의 하늘은 그 푸르름으로 전 세계에 빛나 오른다. 사람은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으로 산다. 이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너로 알게 하려 하시기에 신앙시인 입술에서 청산의 시로 낭송한다.
내 입에 베푸시는 말씀을 시로 전하는 절제력은 입에 주신 에덴시학을 ‘내가 여호와를 항상 송축하기를 내 입에’ 두는 일이다. 하나님이 나에게 베푸시는 축복의 입을 소박하지만 누추하지 않고 화려하지만 사치스럽지 않는 우리 대한민국의 보편성의 진리를 황금율 에덴시학으로 편다. 그러기에 하나님이 베푸시는 말씀은 달기가 꿀과 같다. 네가 그들에게 말하고 그 입에 말을 주는 네 입에 베푸시는 하나님의 입 홍시인의 말씀사역은 하나님 축복으로 타임머신을 타고 에덴시학의 문학 설교 입으로 전해진다. 하나님이 베푸시는 말씀으로 한국문인교회에서 실행된다. 하나님의 입에서 지혜와 지식과 명철을 내기에 내 입을 조금도 떠나지 마라시는 말씀 따라 ‘내게 보라 내가 내 말을 네 입에 두었다’ 하시었기에 백제 사비천도 푸른 감청색의 뿌리로 시를 쓴다.
바로 시인의 대문에 칠해진 색이다. 한국의 색 감청색이 타임머신을 타고 홍시인의 대문에 와 있다.
늘 푸른 강물이듯이
부재한 당신의 숨결을 찾아
시간들의 지층을 뒤적입니다,
강가에 주저앉은 망부석
형제는 빗물에 씻기어
강물이 되었어도
당신의 체온을 날개되어
아침마다 은빛으로 기상합니다.
무성한 피안의 갈대 숲으로
아른한 당신의 예감이기에
자주빛 갑사댕기 씹으며
오늘도 강가에 서서 기다리고 있습니다.
금년에도 망우리 언덕에는
지절대는 할미꽃
당신의 애잔한 숨결이 확실하온데
가버린 왕손은 돌아오겠지요.
구름타고 오실
새하얀 약속은
행여 오늘밤은 아닐는지,
낚시대 물속에 세우고
빨간 손수건 하나 목에 걸었습니다.
여기는
대한민국 서울 서대문구 홍은동 397의 26번지
문은 무쇠빗장이지만
진한 감청색 칠을 하였습니다.
허허로운 대지에
바람은 멎고
오늘도 황토빛 일몰이 잘려가지만
늘 푸른 강물이듯이
기다리게 하소서,
기다리다
기다리다
흘러가는 강물이게 하소서.
- 홍문표 『지상의 연가』-늘 푸른 강물이듯이 44
진한 감청색은 높푸른 한국의 가을 하늘색이다. 백제의 날을 맞아 백제가 지정한 백제의 색이다. 홍문표 집 대문에 칠해진 감청색이다. 왕조를 기다리는 색이다. 왕조를 만나러 시적 화자 이무기가 여의도 고수분지에 조각배가 다닐 것을 알고 짐을 내려놓은 일이다. 부여의 구뜨레가 소재가 되어 있다. 외부와의 소통로이다. 이 조각배를 타고 지금 신앙영웅이 길 떠나기 위해서이다. 조각배는 일평생 몸을 달고 살아온 오십평 짜리 집안에 그 주소를 둔다.
이 일평생의 집 대문에 별을 달아 반짝이게 하고 밤새 잠을 자지 않고 일해 온 시적 화자 이무기는 돌기둥에 목숨의 끈을 백지수표 한 장으로 헤 놓는다. 키 한 뼘 늘리는 물결 소리로 오십년 세월을 견딘 이무기, 일백년쯤의 욕심을 접고 별 하나 부르는 강가에 있다.
이러한 이무기에게 기적이 온다. 그것은 강가 할미꽃의 기적을 보는 아침이다. 늘 푸른 강물이듯이의 44번째에서 할미꽃의 숨결이 살아 있다. 숨결은 지층해의 망부석을 들고 온 빗물이 되어있고 체온은 날개를 가진다. 아직도 살아 있음을 감사하며 몸단장을 한다. 아침의 은빛 그 갈대에 갑사댕기 길게 늘이고 기다리는 처녀의 모습이다. 기다리는 강가, 망우리 언덕 숨결을 가진 왕손이 되는 기적의 아침. 낚시 대 끝에 빨간 손수건을 달아 둔 대한민국 서울 서대문구 홍은동 397의 26번지에서의 홍 시인이다. 바로 현실에서의 홍 시인의 주소 지금의 서대문구 가좌로 86 동천아카데미이다. 이무기 홍 시인의 시적 화자 물고기이다. 시적 화자 이무기의 문에 달린 무쇠빗장은 감청색 그 하나로 충분하다.
인간의 힘을 넘어서는 하나님과의 소통으로 인한 ‘에덴시학’에는 하늘로 향하는 환희와 즐거움과 쾌락을 주는 감청색 하늘이 있다. 즐거웁고 기쁘게 이 에덴동산을 향하여 늘 웃는 모습, 백제인의 모습은 현재 진행형이다. 에덴은 현재진행형이다.
1). 에덴의 눈
시가 가장 시적이게 되는 데는 시인의 현재 진행형이다. 백제금동대향로에서 봉황이 춤추는 노래는 진행형이다. 홍교수의 현재진행형 일생은 시적 화자의 춤추기, 곧 즐기기의 진동이다. 다름 아닌 하나님 섬기기의 신앙시집 두 권 『시몬에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와 『십자가 십자가』가 그 실증이다. 일반시집 『정든 땅 언덕 위에 』역시 하나님 은혜에 감사하는 진동 그 자체이다. 삶의 현재를 시적으로 하는 진동의 춤추기이다.
시적으로 사는 시인의 길은 에덴 시학의 길이다. 에덴 철학의 길이다. 이 위대성은 백마강의 3천 궁녀가 물에 낙화처럼 떨어졌다는 왜곡성을 바로 잡지 않고는 못 견디는 신앙영웅면모이다. 이무기가 하늘로 오르는 홍시인 마을 전설을 버리지 않고 기어이 찾아내 대한민국백성의 진실 된 국민의식을 알려야 하는 소명의식이 춤춘다. 소정방이니 머니 하면서 전해오는 역사왜곡을 바로잡는 땀의 노력이 바로 일생의 철학 에덴시학이다. 여기에 홍문표 시인이며 학자이며 목사의 무게가 있다.
에덴시학의 진정한 가치는 현재를 행복하게 할 수 있다는 확신이다. 방법은 영원한 현재에서의 에덴시학 행복론을 펼치는 일이다. 천국이 결코 미래형이 아니라 이 지상에서도 가능함을 예시한다. 이 지론은 홍문표 교수 혼자만이 에덴시학 실행을 즐기는 것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