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의 의태어를 중심한
시와 시조의 하이퍼성
Ⅰ 서론
한국과 중국은 많은 문학적 교류가 있었다. 각기 한국문학과 중국문학은 각기 다른 언어와 언어로 구성되어 있듯이 이들 언어는 전혀 다르다. 이 차이를 세종대왕은 훈민정음 원문을 통해 한글창제 이유를 밝히고 있다. 다름 아닌 우리의 나랏말이 중국과 완전히 다름을 제시한다. 한국인들은 한국인들에게 맞는 한글을 쉽게 익혀 쓸 수 있다는 것이다. 한국인들의 일상 말과 같은 한글은 오래된 한글 그대로의 소리글자를 한글로 만들었으므로 특히 의태어가 발달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에는 중국 언어의 변형, 속칭 한국의 선비 문화가 있다. 한국에는 한문숭상으로 인한 한국 내에 한문어 문화권이 있다. 그리고 한국에는 순수한 한국 언어권의 의태어가 발달되어 있다. 외국에서 오는 사람들이 한국어의 어려움을 인식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에 국문학과 중국문학에서의 상이성과 유사성 연구의 일환으로 시를 통한 물의 의태어를 임의 선정하여 시와 시조들을 살핌으로서 양국 간의 언어차이를 넘어선 물의 의태어의 하이퍼성을 연구하는 문제를 제기한다.
범위의 심도를 깊게 하기 위해 형식주의 비평방법으로 접근되는 시의 외연과 내포를 살피는 일이다. 시공을 초월하여 사람들의 마음을 정화시키는 시가 보이는 문학기능은 시를 통한 희노애락 표현이 동일함을 살피는 일이다. 중국의 한산자나 황정견의 시, 그리고 조선시대의 이황시와 시조에서,현대시조시인 이영지 시조에서 연결의 가능성을 탐색하게 된다. 한산자와 강서시파의 6군자 중에 하나인 황정견과 이조시대에 이황과 이영지시조는 시대적 배경이나 살아온 환경과는 관계없이 물의 언어를 통한 그 연결가능성이 있다.
이황이 주장한 철학은 일찍이 심경에 심취되었던 중국의 진덕수 주장의 주리설과 연결되어진다. 한국에서의 대 철학 배경이 중국 시와 연결되는 가장 기본적인 연결이유다. 율시와 시와 시조를 형식주의 비평과 바슐라르의 현상학적 적용으로 물의 상력 범위의 학설로 접근할 수 있는 것은 물의 이미지를 4단계로 구분하는데 있다. 중국 선시는 양 무제 보통원년 달마가 중국에 들어와 혜가 → 승찬 → 도신 → 홍인(601~674)에 이르면서 홍인의 제자 중 대통신수와 혜능 둘이 북종과 남종으로 나누어지면서 시단에 왕유, 이백, 두보 등이 출현한다. 언어 절제를 전제로 하는 선시승에 신수와 혜능이 있고 승찬의 「신심명」 잠언시 그리고 영가현각 선승의 「증도가」는 깨달음의 희열 장편시와 석두희천의「참동계」와 선시인 왕유의 선체험 시화가 있다. 두보와 이백이 연결되어지며 이백은 선에서 출발하여 도가 세계로 들어갔고, 두보는 비참한 현실을 시화하였다. 중당기에 차츰 생활시로로도 바뀌면서 전설적인 한산의 인생무상 산거선시인의 영향으로 한국의 백낙천, 유종원 등으로 번역역문체의 산문시형식이 유행한다. 송 시대 성리학은 게송 번역문체로 되면서 안녹산의 난을 다룬 현종과 양귀비의 이야기까지 다루다 보니 불교진리가 일반속성화되어「장한가」까지 유행한다. 문학형태인 설화로 변형된다. 이러한 나열이유는 한국과 중국의 강서시파와의 관련은 서적의 유입으로 인한 출간문제가 되면서 중국 황정견은 이인로에게로 그리고『보한집』에서 좋은 시 방법이 전해진다. 이미 고려 중기 때부터 산곡집이 유통되어 공양왕대에 고려간 본 『산곡시집주』가 있고 황정견 중심의 시선집과 문집이 여러 차례 간행되면서 안평대군은『8가시선』을 엮고 황정견 시를 가려 뽑아『산곡정수』를 엮었다.
이러한 행보등을 정상홍교수는『중국문학발전사』에서 송시 형성의 강서시파의 전수를 알리고 있다. 소식 영향으로 선종 황정견을 비롯, 장뢰, 진관 등의 소문4학사와 진사도, '6군자'의 왕성기가 남긴 일은 환골탈태의 기법 때문이다. 남의 글을 조금 다듬어서 훌륭한 글이 되도록 하는 이 기법은 음률이 바뀌는 모방론이다. 한국과 중국의 문학전수 관계는 조선의 이언적의 시조 예에서 찾을 수 있다.
다음은 주리설에 심취한 조선 이언적 시조이다.
천복지재니 만물의 부모ㅣ로다, 부생모육이니 이 나의 천지로다, 이 천지, 저 천지 즈음에 늙을 뉘를 모르리라
- 해동가요에서
조선시대에 시조형식을 빌어 쓴 이언적 시조는 진덕수의 주리설에 심취하면서 실제 한국과 중국과의 교류 가능성을 보였다. 그래서 진덕수 → 이언적 → 이황으로 이어지는 철학 교류는 이들이 지은 문학작품 특히 시와 시조의 논의로 이어질 수 있도록 길을 열어 주었다. 진덕수의 『심경』 정민정은 이언적 시조에 이어 이황의 시조 「청량산가」에서 보다 높은 물의 의태어를 중심한 연계성을 드디어 찾게 된다.
청량산 육육봉을 아는 이 나와 백구
백구야 훤사하랴 못 믿을 손 도화로다
도화야 떠지지마라 어주자(魚舟子) 알까 하노라
- 이황 「청량산 가」
청량산 12봉을 아는 이 나와 흰 갈매기
갈매기 떠들건가 못 믿을 복숭아 꽃
도화야 떠들지마라 어부마저 알거나
- 이황의 「청량산가」 이영지역
이 시조는 중국의 율시와는 다른 한국 고유의 전통시이다. 이황은 이언적 이후 대 철학자가 되면서시조시인으로 그 이름을 알린다. 이 연결은 시대를 뛰어넘어 이영지 현대시조로 이어진다. 이영지의 시와 시조 기법은 강서시파에서 서곤파와 강서시파 두 부류 중 서곤체의 화답시 형태에 연결되어 질 수 있다. 화답시형은 시조의 초장과 중장에서 그 형태상 음수율은 같지만 화답형식과 의미의 대립으로 쌍을 이루는 이론이다. 똑같은 음수율을 지니면서도 그 의미는 내포성으로서의 대립성이 된다.
시조의 전통성은 삶의 진지성을 주제로 한다. 한산자 · 황정견 · 조선의 이황시와 시조 · 그 가계인 이영지 현대시조에서의 아직도 그 맥은 이어지는 이 엄청난 일은 중국 진덕수의 심경에 심취한 이언적이 시조로 쓰고 다시 이황 퇴계로 이어지면서 현대 이영지 시조로 이어진다.
Ⅱ. 물의 의태어
1. 물의 의태어
1) 중국 선시와 물의 의태어
중국 선시는 몇 가지 종류가 있다. 선의 법리를 전수하거나 설법하거나 입적할 때 선 경지를 읊은 시법시와 오랫동안 참선 뒤에의 깨달음의 개오시와 새로이 그 뜻을 밝혀 읊는 송고시와 선리를 바탕으로 한 선기시가 있다.
시법시는 자기의 본래 심성에서 구할 것을 주장한다.
어진 분 들 제 말 들어보소서
무엇을 가지려 하세요
깨우쳐 보시면
그 깨달음이 곧 부처에요
하늘 진리는 본래부터 있어서
얻었다 하면 곧 멀어져요
근본을 버리고 끝을 찾으려 하면
어리석게 한때를 지키는 것일 뿐
- 한산자 작, 필자 역
이 시는 시인 한산자가 천태산의 나무와 바위에 써놓은 시를 국청사 스님이 편집했다고 전해진다. 하늘의 진리는 부처임을 강조하면서 이것을 벗어나서 도를 닦는 것은 더욱 어리석은 짓이라는 것이다. 스스로 깨치고 나는 일이 부처라는 것이다.
반면 개오시는 선승들이 시를 빌려 깨달음의 경지를 읊는 시다. 송고시는 당송 시대에 시문학이 흥성했던 전통 속에서 태어난 시로 선지를 드러낸다. 어록이나 공안, 고칙을 시의 형식으로 선을 우회적으로 알린다. 스스로 철저히 주체적으로 깨달아가도록 하는 시로 위산은 향엄에게 “내가 말한 것은 나의 견해일 뿐이다. 너의 안목에 무슨 도움이 되겠는가?”라고 하였다. 누구도 대신해 줄 수 없는 길, 이것이 생사를 해탈하는 깨달음의 길임을 말한다.
선기시는 한용운의 시와 시조가 대표적이다. 『님의 침묵』90편은 ‘님’의 정체를 선의 관점에서 번뇌가 곧 깨달음으로 중생과 아픔을 함께하는 일이다. 남녀의 사랑 관계로 말하면 진정한 사랑은 이별의 아픔을 극복하여야 승화된다. 1917년 겨울, 백담사 오세암에서 오도 체험으로 민족의 아픔을 담는 참선의 선사가 무아 삼매의 경지에서 순간적인 언어를 시로 만든다.
(1). 중국의 동산양개와 한산자
물에 비친 나를 보며 읊은 개오시를 동산양개는 물에 비친 자신의 그림자로 오도송한다.
남에게서 찾으려 하지말아라
그건 아득하여 나하고는 너무나 멀다
나는 지금 혼자서 가고 있지만
곳곳에서 그것을 만나는
그가 지금의 바로 나지만
지금의 나는 그가 아니다
이걸 깨달아야만
여여한 진리가 하나가 되리라
- 동산양개 직지심경 240 「나는 그가 아니다」
이영지 역
사물 깨달음의 진행이 물에 비친 자신의 그림자를 보고 깨닫는 여러 가지의 계기를 지적한다. 갑이라는 소재로 하다가 을이라는 소재로 화법을 바꾸기도 하는 개오시는 즐거움이 들어 있다.
마음은 가을 달로
푸른 물 같아여라 맑고도 깨끗하여
어떠한 다른 것과 비교가 안되는
- 한산자 작, 이영지 역
자신의 심경을 맑고도 깨끗한 가을 달에 비유하며 푸른 물처럼이라 하여 푸른 시내와 맑은 샘과 떠오른 밝은 달 모두가 한산자의 벗임을 말하는 기쁨이 있다. 물을 대상으로 집착하지 않은 마음을 공으로 본 고요함이다. 더구나 실재의 물이 아닌 데서 출발한 이 마음의 물이 깨끗하다이다. 어지러운 생각을 없애버린 마음의 고요함이 시인의 마음속에 자리 잡아 생명수로 되는 마음의 경지는 마음의 고요함을 푸른 물로 한다.
물에 대한 깨끗한 선입관념은 바슐라르 이론의 2단계이다. 물에 대한 깨끗하다는 마음의 변하지 않음은 산에서 발견되는 청정한 나무들 사이와 아름다운 하늘과 맑은 공기를 벗한 자연의 물이 있을 대이다. 이 물은 시인의 마음에 깊숙이 자리 잡아 모든 것이 물로 보이는 하이퍼성이다. 시인 눈빛이 푸른 물이 되어 있다. 여기까지는 일반 시인들 모두 이러한 현상을 가질 수 있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선시는 깨끗함을 공으로 보려 한다. 실제로 물이 있던지 없던지 관계없이 어지러운 생각을 제거해 버린 뒤에 나타나는 마음 고요함이 물이다. 시인마음 속이 물이 되어 실제 물이 흘러가듯이 덧없음도 같이 있다.
(2). 선종 황정견
북송시인 황정견 문집은 고려조에 수용되었고, 조선조에 이르러 『산곡시집』이 널리 읽혔다.
당 시인 유우석의
멀리서 바라보니 아아주 밝게 보인
동정호 검푸르게 첩첩산 잘 둘어서
마치도 흰 은쟁반에 푸른 고둥 받쳤듯
「망동정」- 이영지 역
「망동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