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보이시려
우리가 아는 인식으로는 하나님의 아드님만이 번제로 드려져서 십자가에 달리신 일로 기억을 합니다 그러나 시편 104편을 통해서 드러나는 사실은 모든 것을 다 가지신 하나님은 자기의 모습을 시적인 특징의 옷을 입으시며 다 보이시려 합니다.
하나님 아드님만이 십자가에 달리시고 그리고 돌아가시는 것이 아니라 이와 못지않게 먼저 하나님이 먼저 그의 모습을 사랑하는 백성들에게 특별하게 보여주십니다 하나씩 보여주시는 모습은 동시에 하나씩 벗어보이시는 모습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들이 볼수 있도록 눈으로 보여주십니다
1 내 여호와를 송축하라 여호와 나의 하나님이여 주는 심히 광대하시며 존귀와 권위를 입으셨나이다
옷을 입으셨다
사람이 옷을 입는 것은 신체의 은밀한 부분을 가리기 위하여서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도 자신의 본 모습보다는 옷을 입으심으로 하여 자신을 백성들의 눈 높이에 맞게 보여주십니다
시인은 하나님이 옷을 ‘입으셨다’ 하였습니다 그분이 입으신 옷은 광대하심과 존귀와 권위를 입으셨다 입니다
1 내 여호와를 송축하라 여호와 나의 하나님이여 주는 심히 광대하시며 존귀와 권위를 입으셨나이다
“입으셨나이다” 옷을 “입으셨다” 참 아름다운 한국말 그대로가 저 머나먼 나라의 성경 원어에서 드러납니다 한글 그대로 ‘입으셨다’입니다 왜 입으셨을까요 원어에서보이는 바 목적형 ‘라멧’이 어두에 와서 그 분의 목적이 존귀와 권위의 옷을 입으셨다입니다 하나님이 존귀와 권위와 광대하심을 입으셨다 하심은 그 분이 사랑하는 백성들을 위해서입니다 어떤 옷인가요 존귀 ‘호드’와 권위 ‘하다르’의 옷입니다 둘 모두 그의 사랑하는 백성이 숨 쉴 수 있게 해 주시는 본인임을 드러내는 그대로 숨쉼의 의미 언어인 우리말 히읗 발음인 호드와 하다르입니다 이게 바로 여호와란 이름에서 보여주시는 하나님의 옳은 손이 하시는 숨 쉼의 두 번 반복리듬입니다 바로 여호와란 글자에서 이 숨쉼이 두 번 들어 있거던요.
이러한 하나님 드러내심의 은유 곧 숨쉴 수 잇게 해 주시는 하나님의 가슴은 아주 광대 ‘커다랗다’입니다. 이 때 똑같은 리듬이 드러나 하나님의 번제의 모습 ‘입으셨나이다’입니다 아주 커다랗게 모습을 드러내시는 일은 사랑하는 백성들을 겁주기 위해서 커다란 모습이 아니라 광대한 모습이 아니라 아들에 버금가는 본 모습 본보기가 되는 모습을 보이시는 일입니다 바로 광대함과 똑 같이 번제의미인 ‘오메가’로 끝나기 때문입니다 히브리어 타브 ת(타브)이지요 우리말로는 끝말의 ‘다’에 해당합니다 한국어의 중요한 이유는 히브리어가보이는 끝말 ‘타’ 바로 우리말 ‘다’에 있습니다 다 보여주시는 일은 하나님도 아들 못지앟게 본보기로 사랑하는 백성들이 숨쉬게하기 위하여, 즐 살리기위하여 희생의 의미인 타브를 끝말로 사용하시는 일입니다 발음도 입으셨다 그대로입니다 이 광대, ‘커다랗다’ 기본형은 ‘크다’, ‘크더라’ 발음 그대로이며 이 ‘가돌’은 ‘게돌’과 더불어 ‘커다랗다’입니다 이에 대한 우리말과의 긴밀성은 백제 근초고왕 나라이름이 ‘구다라’ 곧 큰 나라임을 상기할 수 있습니다. 바로 히브리어 ‘게도라’ 입니다.
2 주께서 옷을 입음 같이 빛을 입으시며 하늘을 휘장같이 치시며
빛으로 옷을 입다
:연쇄언어로 이어지는 옷을 입으심을 이번에는 빛을 입으심으로 하십니다. ‘빛을 입으시며’ 절대자이신 분이 우리 눈으로 보이게 하시려 빛으로 입으셨습니다 발음은 ‘옳다’입니다. 하나님의 알몸 상태를 빛으로 덮으신 것입니다. 우리 눈에 보이시는 빛 그게 바로 하나님이 입으신 옷입니다 글자는 십자가에 달리시는 뜻 글자 타브 곧 우리말 ‘다’에 해당합니다 타브로 하시는 옳다의 이 빛으로 온 힘을 다하여 눈으로 보여주시는 일입니다
그리고는 이 빛 옷의 옷 언어를 ‘살마’로 합니다. 옷을 삶아 입으신 거지요. 아주 커다란 빛 그 뜨거운 열로 삶아 내십니다. 삶아 내자면 불에 들어가야 합니다 바로 아주 광대하여 너무나 큰 빛으로 삶아 내신 것입니다 불에 삶아 지는 일은 번제드려지는 일입니다
하늘을 휘장같이 치심
: 하나님이 옷을 입으심을 나타내시기 위하여, 보여주시기 위하여 불속에 들어가 삶아진 다음에 보이시는 번제방법은 반복리듬, 빛으로 하늘을 휘장같이 치십니다. 이 ‘치심’을 히브리어가 바로 ‘나타’입니다 본문은 더욱 분명하게 하는 ‘놓다;로 합니다. 삶아서 내어 놓다 그것은 다름 아닌 빛으로 하늘을 휘장같이 치시는 모습을 내어 놓다입니다
이 때 하나님의 물 사용에 대한 목적을 분명히 합니다
3 물에 자기 누각의 들보를 얹으시며 구름으로 자기 수레를 삼으시고 바람 날개로 다니시며
물에 자기 누각의 들보를 얹으시며
광대하고 거대한 불로 삶아진 하나님의 모습은 다름 아닌 물에 자기 누각의 들보를 얹으십니다 이 때 하나님의 ‘자기누각’을 ‘알리이야’로 합니다 하나님 자신임을 알려야 합니다 이 끝 언어 ‘야’가 바로 여호와의 약자입니다 하나님 자신입니다 ‘야’ 앞의 ‘알리’는 알리는 일입니다 우리말 ‘알려야’입니다. 이래서 한국말이 복의 말이 되는 겁니다 우리들은 자기도 모르게 말 하는 가운데 하나님 일을 알려야 하는 일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합성어 까지 만드시면서 자신의 존재임을 알려야 하는 하나님의 긴박성은 자기누각입니다 바로 ‘알리요타이브’ ‘알리요다’ 바로 알렸다입니다 물위에 높이 앉으셨습니다 물은 말씀의미여서 바로 말씀위에 앉으심의 시적 표현방법입니다 앉으신 도구는 들보입니다. 이 들보는 바로 들어서 보이게 높이 달려 있는 물건입니다 그리고 이 들보는 필요에 따라 들려서 목적이행을 합니다 발음 그대로 ‘카라’입니다 이 ‘카라’는 ‘하므카레’입니다 하마라는 한국말 그대로 벌써 가라 빨리 가라입니다
하나님이 급하셨습니다 그의 사랑하는 백성들을 살리기 위해, 숨쉬게 하기 위해 빨리 움직여 가려 들보에 앉으십니다 물 위에, 말씀위에 앉으셔서, 말씀을 가지고 갑니다 아버지와 아들이 한 몸이 되는 대목입니다 같은 목적 그의 사랑하는 백성들이 숨 쉬게 하여 주시기 위하여 말씀을 들고 빨리 가야합니다 하나님이 움직여야 하는 이유가 바로 하나님의 백성들의 죄가 중다함으로 이를 해결하기 위하여 빨리 움직여야 하는 것이지요 물이 이동수단이 됩니다 말씀이 이동수단이 됩니다
하나님의 이동수단이 되는 거죠.
구름으로 자기 수레를 삼으시고
:이 구름이 도대체 무엇입니까 우리는 다른 사람의 말을 인용할 때 따음표 ‘’를 사용하고 그대로 인용할 때에는 인용표 “”로 합니다 이러한 글자의 원형은 다름 아닌 구름입니다. 시내 산에서의 하나님 말씀은 그대로 구름이 되는 흔적을 보이셨으며 따옴표 ‘’나 따옴말 “”로 오늘날도 그대로 전 세계적으로 말씀 인용으로 쓰입니다
바람 날개로 다니시며
:‘바람 날개로 다니시며’는 아주 빠른 모습으로 움직이십니다 바로 앞의 물에 들보를 얹으시는 발음 ‘하므카레’와 같이 빨리 움직이는 이유가 분명해 진 상대방을 숨 쉬게 하기 위한 방법이 다시 두 번 리듬으로 짝을 이루는 바람 날개로 다니십니다 ‘하므하레흐’입니다 ‘하마 하레’ ‘벌써 하레’ ‘아주 빨리 하래’가 되는 물로 숨 쉬게 하시는, 말씀으로 숨쉬게 하시는 일입니다
생명들이 살아있게 물로, 말씀으로 하시는 일입니다 장소마련과 다니심의 목적을 위하여 하시는 하나님의 구체적 행동입니다 하나님의 앉으신 자기누각 ‘알리요타이브’와 바람 날개 ‘알-카느페-루아흐’로 역시 ‘알’이 처음에 오면서 같은 리듬을 탑니다 그만큼 하나님은 그의 사랑하는 백성을 위하여 마음이 급하십니다
4 바람으로 자기 사자를 삼으시며 불꽃으로 자기 사역자를 삼으시며
바람으로 자기 사자를 삼으시며
:바람은 일반적으로도 성령으로 이해되어집니다. 이 바람은 바로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결과에서 얻어지는 사랑하는 백성들의 숨 쉼의 목적을 위해 바람으로 하나님은 자기 사자를 삼으십니다. 그냥 사자가 아니라 자기 사자입니다 그리고는 불꽃으로 자기 사역자를 삼으십니다
불꽃으로 자기 사역자를 삼으시며
:자기 사자 ‘마르아카이브’와 화염으로 자기 사역자 ‘므사르타이브’의 모두 물을 통한 하나님의 일 하십입니다 복수로 하여 여럿이서 하나님일 사역을 같이 하게 하십니다 하나님의 일 사역자들을 많이 삼으십니다. 저도 그 중에 하나죠
그런데 이 안에 중요한 의미가 숨어 있는데 명령만 내리고 가만히 높은 보좌 위에서 내려다보시는 하나님이 아닙니다 바람으로 자기 사자, 불꽃으로 자기 사역자를 삼으실 때 하나님도 같이 말씀에 번제 드려집니다 하나님 아드님이나 목사나, 지도자나 같이 번제 드려지는 삶을 삽니다. 이들과 같이 하나님도 함께 행동하시는 표시의 원어에서 ‘타브’가 있음으로써 하나님 역시 우리와 동행하십니다
예수님만이 하나님의 뜻에 의하여 십자가에 달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자신도 그 중심에 계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놀라운 일은 바로 하나님이 번제의 제물입니다 같이 우리들이 되는 일입니다 왜 우리라는 말이 있을까요 우리는 같이 어울려 생사고락을 같이 합니다 부하나 상사나 지도자나 백성이나 대통령이나 국민이나 목사나 성도가 같이 어우러져 생명을 구하는 일을 같이합니다.
5 땅의 기초를 두사 영원히 요동치 않게 하셨나이다
땅의 기초를
: 하나님의 아들 예수만이 십자가에 고통을 당하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의 식구들 모두 그리고 하나님도 물론 우리와 같이 합니다 이 기초위에 하나님의 원대한 뜻이 숨어 잇습니다
이 일을 하나님의 백성에게 보이시려고 나타나시고 빛을 입으시고 존귀와 권위와 광대함을 보이십니다 물의 날개로 들보에 앉으셔서 움직이십니다 하나님 자신부터 모든 사람을 위하여 다 보이시게 하시는 이 우주적 희생의 기초를 두십니다.
이 때 눈으로 보여주기 위한 기초를 ‘알-’로 합니다 알울 눈으로 보이어 주십니다 그리고는 이것이 바로 영원함을 강조합니다 다름 아닌 ‘오람 바에드’로 합니다. 바로 눈으로 오래 봐도 변함없는 사실입니다 변함없는 진실입니다 하나님 빼고 예수님만 달랑 십자가에 달리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한 몸이 되어 움직이십니다 하나님과 아드님은 한 몸입니다 그러기에 그에게서 하나님의 아드님이 탄생하시었습니다 한 몸이 되어 십자가에 달리심을 보여주시기 위하여 이 세상의 만물을 입으신 것입니다 희생을 보이어주시는 일입니다
예수님, 즉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의 자식에게 뿐만 아니라 스스로 자신을 희생 제물로 드림을 눈으로 보여주고 계십니다. 누가 아버지를 닮겠습니다 그대로 똑 빼 닮겠습니까 놀라운 사실은 그 아버지에 그 아들이라는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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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아 사랑아 88
물에 자기 누각을 삼으시며 시10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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