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꾸는 요셉의 우물
1). 요셉의 꿈
인간은 누구나 꿈을 꾼다. 꿈은 가만히 서 있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꿈을 향해 움직이는 동적 활동력을 가진다. 꿈을 가진사람은 부지런히 꿈을 향해 달려간다. 꿈을 가진 사람은 한가닥 할놈이다. 이러한 말을 되풀이 하는 것은 성겨에서 꿈은 일어나라의 뜻이고 그리고 할롬이 기본형이기 때문이다. 한국 사람들에게서도 가장 사랑을 받는 말은 ‘꿈’이다. 꿈을 가진자여 일어나라.
꿈은 구덩이에서 건져지는 삶의 진흙탕에서 건져지는 것이 꿈이다. 진흙탕에서 일어나는 것이 꿈이다. 꿈은 요나가 고기 뱃속에서 건져지는 것이 꿈이다. 꿈은 예수가 사망의 나락에서 하나님에 의해 부활되는 것이 꿈이다. 이 구체적은 모양은 U이며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것이 꿈이다. 야곱이 벧엘로 돌아가는 길이며 요셉이 물 없는 구덩이에서 건져지는 것이 꿈이다.
성경에서 대표적인 꿈 이야기는 야곱에게 있다. 성경 창세기 37장에서 요셉의 꿈 이야기는 야곱이었던 이스라엘과 요셉과의 이야기로 엮어진다. 요셉이 꾼 꿈은 히브리어로 할롬 이 기본형이고 하할롬 이 때의 하는 한국식으로 말하면 크다는 뜻이다. 크게 할놈이다. ‘롬’은 한국식 발음으로 놈이다. ‘놈’이라는 말은 한국인에게는 애칭이다. 일반적인 남자를 지칭할 때에 ‘놈’이라 한다. 요셉이 형들에게 내 꿈을 들어보시오 할 때의 꿈이 ‘하할롬’이다. 그리고 청컨대 들으시오 꿈을 할 때의 하할놈은 꿈이라는 말 발음에 가까운 히브리어 쿰이 있다.
성경은 야곱인 이스라엘의 아들을 요셉이라 하였다. 사실 이와 유사한 요셉 발음은 거한 다는 뜻의 요셉도 있다. 늘 있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성경의 37장의 요셉은 야곱이 사랑한 아내 라헬에게서 난 11번째의 아들로 야곱의 지극한 사랑을 받았다. 이 요셉이 17세 때 형들에 의해 물없는 구덩이 안으로 가두어진다. 물 없는 구덩이는 땅 속에 든 요셉은 하나님의 손으로 건져진다는 의미가 있다. 성경에서 이야기는 죽이지는 말자는 야곱의 첫 아들 루우벤에 의하여 구덩이 안으로 던져졌고, 간곡히 죽이지는 말자는 루우벤의 말을 따라 멀리서 오는 장사군들에게 은 20개를 받고 팔아버린다.
야곱의 아들 요셉과 요세브 발음은 한국어에 있는 ‘요새 어떻게 지나십니까’와 연결해 볼 수 있다. 요새라는 개념은 현재를 말하고, 살아 있음의 감사이기도 하다. 하나님의 손으로 연단되어 하나님 집안에서 있게 되는 하나님을 믿은 사람 요셉은 야곱으로부터 축복을 받는다. 야곱뿐 아니라이 모세로부터도 축복을 받는다.
요셉이 팔려가는 때 나이는 17세때이다. 성경의 신성수 17은 히브리어로 ‘벤-스바-에스레 사나 스바’이다. 한국말로 하면 벤-서봐-에스라 사나 하야이다. 벤은 아들이고, 곧 배에 들어 있는 후계자이고 하나님 지붕 안에 영원히 서봐 사나 하여 이다. 하나님 집안에서 눈이 연단되면서 하나님을 바라 숨쉬는 날을 가진 요셉은 하나님을 소망하며 사는 삶을 말한다.
이러한 17은 신성수로서 그리스도 수치이며 야곱이 더하고 더하여 낳은 요셉이 팔려가는 때의 나이며 팔려가는 문제는 예수님 또한 팔려가신다. 은 30개에 팔려가시었고 요셉은 은 20개에 팔려간다. 이 예언성에서 일치성을 가진 요셉은 여호와께서 구원하신 예수를 낳는 수치를 지닌다.
이러한 반복리듬의 기본적은 메시지는 엘라 골짜기에서 골리앗을 물 멧돌 두개로 물리친 다윋일도 맷돌 두 개였으며 이 반복 리듬은 하야로 하여 숨쉼의 히브리어 ה가 두 번 반복되는 리듬이다. 반복 리듬은 요셉의 아들 예수로 이어지는 리듬이며 예수에서 그리스도로 이어지는 리듬이다.
창세기 37장 1에서의 요셉은 하나님의 손으로 연단되어진 야곱과 야곱의미가 지닌 하나님의 눈에 들어 겨우 집안에 든 야곱에서 이어지는 야곱의 아들 요셉이다. 그리고 창세기 37:2에서 요셉은 하나님의 전능하신 손을 바라 중심을 잡고 입으로 말하는 사역의미를 지닌다. 3절에서 요셉이란 사람은 야곱 이스라엘이 깊이 사랑하는 존재임을 히브리어 발음으로 ‘이스라엘 아하브’라 발음하였다. 한국어에 ‘아파라’는 말이 있는데 사랑한다는 것은 내가 아파하는 존재이다. 이 ‘이스라엘 하아브’는 베이스라엘이라 하여 배나 되도록 이스라엘이 사랑하는 요셉의 사랑깊이는 성경에서 야곱의 딸 디나를 사랑할 때도 ‘베예헤하브라 하였으며 요나단이 다윋을 자기 생명같이 사랑할 때도 ’베아하바아토‘라 하였다.
서로 사랑한다는 요한의 사랑장은 다음과 같다.
* 사랑장 요한복음
요한 복음은 사랑을 전제로 예수님과 요한(1장) · 가나안 혼인 잔치에 물이 포도주로 되는 · 다시 거듭나는 의미(2장)와 예수님과 나사로 두 사람의 의미를 거듭나는 문제(3장)로 한다. 사마리아 여인의 물을 통한 거듭남의 문제(4장)를 베데스다 연못(5장)의 물로 한다. 오병이어(6장)와 초막절이 뜻하는 생명과 할례와 교육을 통하여(7장) 빚진 자의 후손(8장)은 소경이 눈을 뜨게(9장)해야 하는 임무로 선한목자(10장)를 든다.
나사로의 눈물(11장)은 예수님이 예루살렘 입성(12장)하여 세족식(13장)을 행하심과 같이 다시 살아나게 하시어 씻어진다. 예수님은 고별설교(14장)로 헤어짐 기간이 있을지라도 포도나무의 가지처럼 붙어 있어야(15장)한다 하시면서 보혜사 약속(16장), 중보기도(17장)를 하시는 따뜻한 사랑 실천 후 기드론 골짜기에서 빌라도의 분명하지 않는 행보 속에서 체포(18장)되신다.
십자가 후(19장) 부활(20장)하시어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21)를 3회나 반복하시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이 나를 사랑하느냐고 다짐하신다. 사랑은 상대방을 사랑하는 마음이 지극하여 마음이 아픈 상태를 말한다.
성경에서의 사랑표현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그 대상보다 더 먼저 사랑하여 고쳐 주시는 일이 전개된다. 사랑이라는 말은 성경에서 아브라함의 아내 사래에서 찾아진다. 사래와 사라는 같은 사람이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의 아들을 낳게 하실 계획이시면서 사래로 바뀌어진다. 한국에는 ‘살아’ ‘사라’라는 말이 있다. 기본형이 ‘살다’이고 이 ‘살다’는 전성명사형으로는 ‘사람’이고 이를 연결어미로서 하여 ‘사랑’이 있다. 살아있음이다.
이스라엘이 요셉을 사랑하는 증거를 성경은 채색옷을 입히었다고 한다. 이 때 채색은 파스가 기본어이며 이 뜻은 입으로 중심을 잡는다이다. 본문에서는 파심이 되면서 경어 곧 파심이다. 아름답게 조각을 내는 일은 하나님일이며 하나님은 요셉을 위하여 꿈이 아름답게 될 수 있도록 꿈이 조각하였다. 하늘 이미지와 관련하여 하늘에 수를 놓게 하였다.
하늘에 수를 놓는 존재는 새이다.
어디를 나르게요
어디를 보시나요
꼬리를 꽃에 이어
꽃잎이 바라보는
고개를 오른쪽으로 돌리어서 바라본
- 이영지 「오른쪽으로」
아름답게 채색하는 일은 파심이다. 아름다운 옷으로 장식해준 요셉을 아비가 사랑하는 자라 하며 형들은 미워하였다. 이 때 미음의 히브리어는 사네를 기본형으로 하는 바이시느우이다. 우리말에 ‘사나운’ 이라는 말이 있다. 사나운 형들이 요셉을 미워하는 이유는 5장에서 명백해지는데 할롬이기 때문이다. 문제가 된 요셉의 꿈꾸기는 히브리어 ‘할롬’에서 제시되는데 바로 우리말로 봐요 할롬이며 할놈이다.
야곱은 자청하여 창세기 37장 6절에서 꿈 이야기를 형들에게 알려주면서 더욱 미움을 사납게 받게 된다. 요셉이 꾼 꿈은 할롬 기본형에 본문 하할롬이다. 큰 일을 할 놈이기에 미움을 받는 일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그 내용은 또 전개된다. 7절에서 요셉의 단이 일어나는 일이어서이다. 꿈과 일어나라와의 관계는 굼이라는 의미자체가 일어나라는 의미가 있다. 꿈이 있으면 우리들은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언제나 일어날 수 있다. 그리고 목표를 향하여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힘이 생긴다.
성경에서 일어나라 “소녀야 일어나라”는 “달리다 쿰”이다. 한국식으로 말해도 그대로 ‘달리다 꿈’이다. 멈추지 않고 달려가는 꿈은 ‘쿰’의 앞에 ‘마’가 붙어 마콤이 되었을 뿐이다. 앞의 ’마‘는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라는 접두사이다. 요셉의 단이 일어섬도 하나님이 일어나라 함에 일어서는 것이고 이를 형들이 싫어한 것이다. 그러므로 한국어 ‘꿈’과 히브리어 쿰은 동일성을 지닌다. 성경은 이 쿰을 애용하여 하나님을 믿는 백성들이 꿈을 가지고 일어나라라는 희망이 꿈이다.
9
요셉이 꾼 꿈은 형들이 절하는 것 외에도 해와 해와 달과 별이 내게 절하는 일이다.
두 발을 모으고서 꿈 딛고 일어나라
방금 곧 날아갈 듯 가벼이 머무르며
날개에 해와 달 별 들 일어나기 기다릴
- 이영지 「기다릴」
10
이 꿈 이야기를 들은 요셉의 아버지 야곱은 어처구니 없다는 표정으로 참으로 네 형제들과 어머니와 아버지인 내가 엎드려 절하겠느냐고 반문한다. 이 때 ‘엎드려 절하겠느냐’를 솨하 기본형으로 한국식발음 ‘절하’겠느냐이다. 본문은 르히쉬하오트로 ‘절하였다’이다. 야곱은 이 말을 가슴에 두었는데 요셉과 가족모두를 사랑하여서이다.
등배와 앞가슴을 빨갛게 물들이고
사랑을 꺼내어서 그들께 가리이다
고개를 뒤로 돌려서 바라보인 곳으로
- 이영지 「사랑을 꺼내어서」
11
이렇게 아들 요셉을 향하여 꾸짖으면서도 야곱은 요셉의 꿈 한 다발을 가슴에 그대로 삼아 두었다. 성경도 말 한 다발을 삼어 두었더라로 한다. 거울‘삼아’, 아버지 ‘삼아’ 등등 한국말에는 ‘삼아’라는 말이 있다.
저에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