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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지 시인
늘 푸른 강물이듯이의 존재
작성자: 이영지 추천: 0건 조회: 10760 등록일: 2014-02-09

늘 푸른 강물이듯이의 존재

 

李 英 芝(문학박사, 철학박사)


늘 푸른 강물이듯의 시어의 구성은 52편의 기인 강물의 흐름에서 푸르른 삶의 눈물이 투영되고 있다. 이러한 시의 내포는 홍시인이 살아 오면서 얻는 남자로서의 눈물이 지상의 연가와 관련지어지면서 늘 푸르름을 얻기 위한 눈물이고 그것은 더욱이 신학자로서의 눈물임을 이 연작시는 신화구조로서 그 모습을 드러낸다. 늘 푸른 강물이듯에 대한 신화구조는 -늘 푸른 강물이듯이-는 뚜렷한 고향의식으로 하여 고향을 찾는 감격을 맛본다. 곧 에덴동산에의 회복성에 감읍하는 감사의 눈물이 있다.

지난 푸른 그리움의 사랑눈물 파트에서 밝혔듯이 홍문표 시인의 물고기는 강물이 되고, 강물이 눈물이고 눈물이 또한 홍시인이 되는 것은 당신과 나와의 혼연일체가 되는 근거이다. 이 시의 기본원리가 되는 시적 화자로서의 36 당신 눈물 이 된다. 37 눈물 강물 여인 38 여인 강물이 된다. 그리고 39 강물 나를 눈꽃이 되게 한다. 드디어는 40 꽃잎 나를 강물 예수 죽음 41 강물 (that)로 까지 가게 된다.

사람의 사랑중에 가장 귀중한 것이 나를 위해서 내가 아닌 누군가가 대신 목숨을 버리는 그 순간의 사랑을 이 홍시인은 읊고 있다. 따라서 로 이어지는 5부 먼훗날 다시 지상에서의 다시 그(that)로 이어진다. 42 (that) 밤 꽃밭 43 꽃 밤 강물 할미꽃 44 할미꽃 강물 45 강물 강물 46 강물 꽃씨 47 꽃씨 강물 당신 48 당신 밤 기쁨 49 기쁨 밤 당신 무지개 50 무지개빛 당신 가슴 51 가슴 당신 강물 목 52 목숨 강물 고향 1 고향길로 이어진다.

 

야곱의 귀향과 화해의 신앙

33:1-11

설교자 홍문표

 

우리는 가끔 남북이산 가족들의 눈물어린 상봉장면을 보면서 수십년간의 헤어진 부모형제자매들의 헤어짐으로 인한 그리움과 아픔과 원통함이 얼마나 절실한 것인가를 실감합니다. 인간은 원래 가족 속에서 태어나는 것이고 그러기에 태어나면 가족과 더불어 사랑을 나누며 살아야하는 것이 당연한 순리입니다. 사실 우리가 행복하다, 평안하다 하는 감정도 따지고 보면 가족과 함께 살아가는 일체감의 감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기에 그러한 가족공동체의 관계가 깨어졌을 때는 늘 신체의 일부가 잘려간 것처럼 허전함을 느끼게 되고 그래서 잘리워진 부분을 그리워하게 됩니다.

우리가 불행하다고 생각하는 감정의 본질이 무엇일까요. 그것은 함께 관계하고 함께 누리던 관계나 조건들이 상실되거나 변질되었을 때의 상실감이나 고독감이 아니겠습니까. 우리가 인생을 살면서, 가장 크게 느끼는 불행의 충격을 배우자와의 이별이라고 합니다. 부부는 일심동체라 부부는 한 몸인데 그 반이 잘려 나갔을 때 그 충격은 말할 수 없는 고통입니다. 그 다음의 충격은 바로 혈연의 상실, 바로 가족공동체의 상실입니다. 혈연이란 이 세상에서 오직 같은 피를 가진 공동체입니다. 이를 신앙적으로 말하면 하나님이 정해주신 부모형제며, 바로 천륜이 되는 것입니다.

요즘 잘못된 개인주의가 만연하여 부모형제도 모르고 나는 나다, 나만 잘 먹고 잘 살면 된다는 극도의 개인주의가 세상을 어둡게 하고 있는데 이는 하늘의 섭리, 즉 천륜을 거역하는 것이며 인간은 마땅히 가족과 이웃과 더불어 살아야하는 인륜을 거역하는 악마의 패륜적 행위라고 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저는 가끔 시골 농장에 토종 삽살이들을 보면서 뉘우칠 때가 많습니다. 개들이 주인에게 충성하고 반가워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지만 그들의 가족애를 보면 정말 머리가 숙여집니다. 개들 부부와 새끼들은 늘 서로 핥아주고 입 맞추고 껴안고 뒹굴고 그것이 그들 공동체생활입니다. 개들은 아무리 먹을 것을 많이 주어도 자기가 먹을 양 이외에는 절대로 욕심내지 않습니다. 가족을 모르고 형제를 모르고 서로 싸우며 한 없이 욕심을 내고 있는 인간들의 끝없는 욕망과 질투와 시기심을 보면서 동물들은 하나님이 정해주신 순리를 따르는데 인간들은 그 순리를 거역하고 있으니 바로 인간들이 죄인인 이유를 돌물을 보면서 알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선민 이스라엘 민족을 형성하는 과정에 제일 먼저 조상으로 선정한 아브라함, 그의 아들 이삭을 거쳐 제3대의 조상이 되는 야곱은 야곱(Jacob)이란 이름의 뜻처럼 빼앗는 자, 형의 발꿈치를 잡고 먼저 나오려고 발버둥친 자로서, 그는 욕심이 많고 집념이 강한 인물이었습니다. 쌍둥이로 태어나 아쉽게도 발뒤꿈치를 잡고 태어나는 바람에 동생이 된 야곱은 형의 장자권을 인정하게 싫었습니다. 이는 바로 당시 장자권이 갖는 막강한 권력에 대한 욕심 때문이었습니다. 결국 팥죽 한 그릇으로 교묘하게 형의 장자권을 빼앗습니다. 그뿐 아닙니다. 그는 하나님의 축복에도 욕심을 냈습니다. 복은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것이며 장자에게 주는 것인데 그러한 하나님의 복도 본인이 받아야겠다는 욕심이 어머니와 결탁하여 아버지를 속이고, 축복을 가로챕니다. 하나님의 축복마저도 정당하게 받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와 형을 속이고 불법적인 방법으로 받은 것입니다. 그는 권력과 축복을 쟁취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정말 이기주의, 자기주의의 극치를 보이는 인물이었습니다. 그러한 욕심은 결국 가족 간의 의리를 저버리게 되고 가장 친해야할 형제간에 원수가 되는 불행을 자초하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야곱은 부모형제와 함께 사는 공동체, 바로 가족이 있는 고향을 등지고 홀로 낯선 타향살이를 하게 됩니다.

그런데 낯선 타향살이를 하는 동안에도 그는 욕심과 집념을 버리지 못하였습니다. 그는 먼저 행복이란 재물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행복은 가족을 확보하는 일이라 생각했습니다. 그가 재물을 모으고 가족을 모으는데 얼마나 악전고투했는지를 보여주는 내용이 바로 창 31:40-41입니다.

 

내가 이같이 낮에는 더위와 밤에는 추위를 무릅쓰고 눈 붙일 겨를도 없이 지냈나이다. 내가 외삼촌 집에 있는 이십년 동안 외삼촌의 두 딸을 위하여 십사 년, 외삼촌의 양떼를 위하여 육년을 외삼촌에게 봉사하였거니와 외삼촌께서 내 품삯을 열 번이나 바꾸었으며

- 31:40-41

 

 

그는 낯선 타향의 악조건과 냉대 속에서도 재물을 모으는 일과 가족을 일구는 일에도 정말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았습니다. 그리하여 그는 많은 양떼를 얻었고, 네 아내와 열두 자녀를 거느리는 성공자가 되었습니다. 고향을 떠나 타향에서 성공한 사람을 우리는 출세했다고 말합니다. 출세(出世)란 세상에 나아가 부귀공명을 얻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야곱도 혈혈단신으로 고향을 벗어나 이국땅에서 부자가 되었고, 많은 가족도 거느렸으니 많은 사람들이 부러워할 만큼 출세를 한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그래서 출세를 열망합니다. 특히 대장부라면 당연히 집을 떠나 넓은 세상에 나아가 이름을 날려야 합니다. 그런데 야곱의 경우는 돈도 있고, 가족도 있고, 특별히 사랑하는 라헬도 있습니다. 어떤 이는 사랑하는 연인을 얻고자 왕좌를 버리는 경우도 있습니다만 야곱의 경우는 사랑하는 사람을 얻기 위해 14 년을 무보수 머슴살이를 할 만큼 열렬한 사람의 로멘스를 갖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야곱은 지금 복이 터진 것입니다. 수천의 가축 떼가 있고, 많은 아내와 자식들과 종들이 있고, 더구나 그가 그렇게도 사랑했던 아내 라헬도 있습니다. 정말 남들이 보기에 너무나 부러운 출세한 인물입니다. 그는 지금까지 하고 싶은 것, 가지고 싶은 것, 다 가졌고, 이제는 누리기만 하면 되는 행복한 처지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야곱은 지금 행복하지가 않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모두 열망하는 물질도 가졌고, 가족도 가졌고, 사랑도 가졌는데 마음이 평안하지가 않습니다. 그의 마음은 쫒기고 있고, 불안하고 괴롭습니다. 사람들은 고향을 떠나 하란 땅으로 가서 출세하기를 꿈꾸고 있고, 야곱도 그러한 꿈을 좇아 하란에 와서 지금은 그 꿈을 실현한 성공한 존재로 생각했는데 야곱은 지금 대단히 두렵고 불안한 존재인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이유를 말하는 대목이 바로 창세기 31:1에 있습니다.

 

야곱이 라반의 아들들이 하는 말을 들은즉 야곱이 우리 아버지의 소유를 다 빼앗고 우리 아버지의 소유로 말미암아 이 모든 재물을 모았다 하는지라

-31:14-15

 

야곱이 모은 재물에 대하여 시기질투를 하는 것입니다. 라반의 안색도 좋지가 않습니다. 라반의 본심에 대한 불평은 그의 딸들, 바로 야곱의 두 아내인 라헬과 레아에 의해서 드러납니다. - 31:14-15


라헬과 레아가 그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우리가 우리 아버지 집에서 무슨 분깃이나 유산이 있으리요 아버지가 우리를 팔고 우리의 돈을 다 먹어버렸으니 아버지가 우리를 외국인처럼 여기는 것이 아닌가

31:14-15

 

야곱이 고향을 떠나 멀리 하란에서의 생활은 세상 사람들은 모두 성공의 길 출세의 길이었다고 생각하지만 그 이면을 보면 거기엔 사기와 질투와 물질에 대한 욕심과 증오와 투쟁, 누가 먹고 먹히느냐는 치열한 싸움만 있는 곳입니다. 이처럼 물질과 욕망으로 충혈 된 하란 땅에 하나님은 야곱을 더 이상 머무르게 할 수가 없었습니다. 더 이상 그곳에 머물다가는 물질적 욕망의 소용돌이 속에서 희생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그것은 하나님의 원대한 구속사적 스케줄에 차질을 빚을 수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사자가 꿈에 야곱에게 나타난 창 31:13

 

나는 벧엘의 하나님이 네가 거기서 기둥에 기름을 붓고 거기서 내게 서원하였으니 지금 일어나 이곳을 떠나서 네 출생지로 돌아가라

-31:13

 

하나님은 위기에 처한 야곱에게 즉시 귀향할 것을 명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야곱에 대한 하란에서의 귀향 명령, 이것은 하나님의 구속사적 측면에서 대단히 의미 있는 대목입니다. 야곱이 비록 인간사적 측면에서 보면 교묘히 형의 장자 권을 빼앗았고 아비 눈을 속여 축복을 받은 가정을 배신한 부도덕한 인물이며 그래서 부모 형제와 고향에서 동거하지 못하고 타향으로 야반도주한 교활하고 야비한 인간이지만 하나님의 구속사적 측면에서 보면 하나님은 이미 야곱이 태중에 있을 때 창 25:23 후반

 

이 족속이 저 족속보다 강하겠고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

- 25:23 후반

 

는 예언을 하였고, 비록 방법은 교활하였으나 아버지 이삭으로 부터도 창 27:29

 

만인이 너를 섬기고 열국이 네게 굴복하리니

- 27:29

 

라는 축복을 받았으며 야곱이 야반도주하여 광야에서 야곱이 야반도주하여 광야에서 돌베개를 베고 자고 있을 때 하나님은 창 28:13-15

 

네가 누워있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네 자손이 땅의 티끌같이 되리라,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를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 28:13-15

 

그래서 야곱도 그곳을 하나님이 계신 집 즉 벧엘이라 했고, 돌기둥을 세워 내가 다시 이곳으로 돌아올 수 있게만 하신다면 여호와는 나의 하나님이 될 것이고, 나는 십일조를 드리겠다고 약속도 했습니다.

 

따라서 인간사적으로 보면 야곱은 부모형제 고향을 떠나 출향민으로 살아야하는 처지이지만 하나님의 구속사적으로 보면 반드시 가나안으로 귀향해서 선민 이스라엘의 조상이 되어야하는 아브라함, 이삭에 이은 제 3개 약속의 가문인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하나님의 구속사적 구상일 뿐이고 인간 야곱으로서는 약속의 가문으로서의 인격과 신앙으로 거듭나야 하는 통과의례가 있어야만 했던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선민 이스라엘의 첫 조상으로 일찍이 내정하셨을지라도 그가 일백세에 난 아들을 번제로 드리라는 시점에 순종하여 자식에게 칼을 뽑는 믿음을 보시고는 그제야 언약가문으로 확정하셨고 이삭을 제2대 언약가문으로 정하실 때는 아버지 아브라함이 그에게 칼을 들이 대는 순간에도 말없이 순종했기에 가능했던 것처럼 사기꾼 야곱이 의인 야곱이 되어 언약가문으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그만한 믿음과 변화가 요구되었던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야곱에 대한 하란에서의 귀한 명령이었던 것입니다.

 

따라서 야곱의 하란에서의 다시 가나안으로 돌아오는 귀향길은 그가 하나님의 언약의 가문으로 확정될 수 있는가 없는가 하는 절체절명의 갈림길이기도 한 것입니다. 그도 그럴 것이 인간야곱으로서는 아무리 고향을 가고 싶어도 갈 수 없는 땅입니다. 20년이 지났다하지만 부모형제를 배신하고 밤중에 도망쳐 나온 야곱으로서 고향에 다시 간다는 것은 죽음을 각오 해야 할 일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지금 야곱에게 고향으로 가야한다는 것입니다.

야곱은 지금 생애 최대의 딜렘마에 빠져 있습니다. 하란에서 계속 머물자니 물질주의에 혈안이 된 라반과 그 자식들의 횡포에 맞서 싸우다 결국 패배할 수밖에 없다는 불안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이 최선입니다. 그러나 부모형제를 배신한 죄인이라 갔다가는 형에게 응징을 당할 수밖에 없다는 불안이 있어 그것도 그리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또 너와 약속한 고향 땅 벧엘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야곱이 벧엘에서 다시 만나기로 약속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야곱이 하나님의 축복 속에 편히 살 수 있는 곳은 고향 벧엘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고향에서 죄를 많이 지어 돌아갈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야곱의 최대 과제는 반드시 고향을 가기는 가야하는데, 그 갈 수 없는 결점들을 해결해야만 합니다.

 

저는 야곱이 지금 고향으로 가는 것이 그가 살 수 있는 최선의 길이지만 그를 가로 막고 있는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는 결코 고향에 갈 수 없다는 과제를 보면서 그것은 35백년전 야곱에게만 주어진 디렘마가 아니라 모든 성도들 그리고 모든 인류에게 주어진 공통된 과제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인생에게는 생명의 길 구원의 길이 있는가 하면 죽음의 길 멸망의 길이 있습니다. 아담이 선악과를 따 먹고는 자신의 지혜로 하나님 같이 되겠다고 했지만 인간 중심, 물질 중심의 세상을 시기와 질투와 살인의 세상이 되고 말았습니다. 야곱이 자신의 재주만 믿고 교활하게 부모형제를 속였고, 집을 떠나 물질적으로 인간적으로 성공했으나 거기엔 물질 때문에 피나는 쟁탈전이 있을 뿐입니다. 인간들은 지식과 물질과 기술만 있으면 된다는 생각으로 도시로 문명으로 달려갔습니다. 그리하여 물질적인 증오는 기술의 발달을 가져온 것이 사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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