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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지 시인의 작품읽기

이영지 시인
모더니즘 계열 서정시인의 에덴 시학자 논문작성 이영지
작성자: 이영지 추천: 0건 조회: 9403 등록일: 2014-0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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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모더니즘 계열 서정시인의 에덴 시학

 

시는 재 생산성이어어 상상력이 동원된다. 홍문표는 에덴의 시학 창 2:7-25 정의를 내리고 있다.

 

 

생명나무와 에덴의 시학

2:7-25

 

우리는 창세기 1장을 묵상하면서 하나님이 태초부터 계셔서 우주만물을 창조하시고 마지막으로 인간을 창조하시는 과정을 보면서, 우리는 어데서 왔는가.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근원적인 족보를 분명히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의 족보는 참판지나 원숭이나 아메바의 해괴망측한 혈통이 아니라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친히 우리의 형상과 모양대로 사람을 만들자라고 다짐하면서, 모든 만물 중에서도 으뜸인 하나님의 혈통으로 만들어진 정말 천하보다 귀한 존재인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엿새 동안 인간이 살기에 가장 좋은 환경으로 하늘과 땅, 해와 달과 별과 바다와 강과 온갖 동물과 식물을 만드시고는 당신의 형상과 모양과 속성을 지닌 사람을 만들었으며 모두가 생육하고 번성하도록 축복하시고는 사람으로 하여금 만물을 다스리고 관리하라는 권한까지 위임하셨습니다. 이러한 창조 기사를 보면 하나님의 창조 섭리와 목적은 인간을 최고의 주인공으로 하는 장엄한 창조 드라마라는 사실에 감격하게 됩니다. 도대체 인간이 무엇이기에 하나님은 이토록 인간에게 특별한 관심을 가지셨던 것일까, 그것은 바로 창1;31 “하나님이 지으신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하나님의 천지 만물 창조와 마지막 인간창조의 궁극적인 목적은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에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지으심을 받은 만물과 인간의 존재 이유도 분명해집니다. 바로 하나님 보시기에 심히 좋은 존재가 되어야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창세기 1장을 통해서 피조물인 인간이 알아야할 절대 의무인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하나님의 우주만물의 창조와 특히 인간창조에 관한 놀라운 기적은 너무나 중요하고 소중한 것이기에 창세기의 기자 모세는 1장의 말씀만으로 끝낼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창세기 2장에서 좀더 구체적으로 인간창조의 그 심오한 사건을 보충하여 기술하게 됩니다.

 

창세기 2장의 구성을 보면 먼저 1-3절에서는 천지만물창조의 종결선언과 제7일에는 하나님의 안식하심, 그리고 이 날의 복되고 거룩함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2:1-2 읽어보겠습니다.

 

1 천지와 만물이 다 이루어 지니라 2 하나님이 그가 하시던 일을 일곱째 날에 마치시니 그가 하시던 모든 일을 그치고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 3 하나님이 그 일곱째 날을 복되게 하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시며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그 날에 안식하셨음이니라

 

천지의 만물이 다 이루어지니라,” 하나님의 천지만물 창조 작업이 완료되었음을 선포하시는 말입니다. 참으로 엄숙하고 장엄한 선언입니다. 그리고는 창조 주체인 하나님이 일곱째 날에는 그가 하시던 일을 그치고 안식했다고 했습니다. 이처럼 창 2:1-3는 하나님의 창조 사업이 일단락되었음을 보여주고 있는데 그러나 하나님은 6일간 창조 하시고 일곱째 날은 쉬기만 하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일곱째 날 하나님은 안식하시면서도 이 날을 복되게 하셨고, 거룩하게 하셨다 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6일간 일하고 일요일은 무조건 쉬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하나님을 믿는 기독교인들은 이날을 복되고 거룩하게 보내야합니다. 그 이유가 바로 이 말씀에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주일날 복되고 거룩하게 보내는가 그렇지 않는 가에 따라 성도와 비성도가 구별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복되고 거룩하게의 진의는 무었일까. 특히 복되고란 말이 애매합니다. 영어 성경에서는 이말을 God blessed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피조물들에게 복을 주신다는 말씀이지요. 최근 이 blessed를 두고 말이 많습니다. “하나님이 복주셨다” “하나님이 축복하셨다어느 쪽이 맞느냐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기도할 경우에도 하나님 복주옵소서하나님 축복해 주옵소서냐 하는 하는 것입니다. 물론 문법적으로는 하나님이 복주셨다, 복주옵소서가 맞습니다. 왜냐하면 축복이란 누구에게 복을 빌다라는 뜻이니까 하나님이 누구에게 복을 빌다는 말이 않됩니다. 하나님은 복을 직접 주시는 분이지 누구에게 비는 분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말은 관습적이고 사회적이고 의도적인 것입니다. 따라서 축복이란 말을 복주옵소서 또는 blessed의 의도로 사용했고, 듣는 이도 그렇게 이해했다면 허용할 수 있는 것이며 더구나 정죄의 대상이 되지 않는 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기독교에서 거룩이라는 말을 많이 사용하는데 이를 성별이니 성화니 하여 그 개념이 더 까다롭습니다. 이는 영어로 Holy입니다. Holy의 참뜻은 with a divine power 신의 힘과 함께하는 삶, 일상적인 삶이 아니라 하나님과 동행하는 영적인 삶을 말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복되고 거룩한 삶은 기독교 성도들의 기본적인 삶이고 구원받은 성도들의 바른 삶의 경지라 하겠습니다.

 

그런데 창 2:4-7에서 다시 인간창조에 대한 말씀을 보게 됩니다. 인간창조는 그만큼 중요한 사건이기도하지만 하나님이 창조하신 인간이란 구체적으로 어떤 존재인가를 보다 근본적으로 밝혀야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왜냐하면 창세기 1장에서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창조했고 만물을 다스리고 정복하라 했으니 행여 인간들이 하나님과 동격인 것으로 오해하고 배신할 수 있을 것임을 염려하셨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사실 창 1:26-31에서 인간 창조는 정말 눈물겹도록 환상적이었습니다. 다른 생명들은 명령적인 말 한마디로 창조했지만, 사람만은 3위 일체가 협의하여 하나님의 모양과 형상대로 창조하셨고, 우주만물을 다스리고 정복하라는 정말 리틀 하나님으로 창조 하셨고, 하나님의 완벽한 분신으로 창조하셨습니다. 따라서 창세기 1장만 본다면 인간은 바로 지상의 하나님입니다. 그만큼 인간은 대단한 존재입니다.

 

그런데 창세기 2장에서는 하나님이 창조하신 구체적인 인간의 실체는 1장과 다릅니다. 창세기 2:7 함께 봉독하실까요. “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 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니라1장에서는 하나님의 모양과 형상대로 창조하셨다 했는데 여기서는 흙으로 만들었다 했습니다. 1장에서 형상과 모양이란 외형적인 윤각과 영적인 속성에 있어서는 하나님과 닮았음을 지적한 것이라면 2장에서는 그 윤곽들을 구성하고 있는 재료는 흙이라는 것입니다. 히브리어에 흙은 땅으로부터 또는 티끌이라는 뜻을 갖고 있습니다. 이는 대단히 의미심장한 대목입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과 속성으로 창조되었지만 동시에 땅으로 그 육신이 만들어 졌다는 사실은 하나님의 속성을 지닌 영적인 존재이면서도 유한한 지상의 물질적인 존재라는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잘 하면 인간은 하나님처럼 영원한 영적 존재가 될 수 있지만, 잘 못하면 유한한 땅의 존재가 될 수 있는 양면성의 아슬한 절벽에 서 있는 존재라는 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1장에서는 우리가 하나님 족보라는 황홀한 환상을 했지만, 2장에서는 하늘이냐, 땅이냐, 하나님이냐, 육신이냐, 이 절체절명의 기로에서 선 것이 인간의 실상입니다. 그래도 하나님은 인간을 사랑하셨고, 인간을 특별하 존재로 여기셨습니다. 그래서 흙으로 만든 인간에게 하나님은 생기를 그 코에 불어 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니라”, 하나님은 흙으로 만들어진 육신이지만 하나님의 생기를 불어 넣으셨습니다. 다른 생명체와 달리 인간에게는 하나님 당신의 생명의 호흡을 넣으셨습니다. 그랬더니 흙으로 만들어진 육신이 살아있는 생명체, 즉 생령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도 생령이란 단어에 주의할 문제가 있습니다. 생령이라면 살아있는 영, 즉 영적 존재로 오해할 수 있는데, 히브리어 성경에는 이를 네페쉬 하야, 즉 살아있는, 호흡하는 생명체라 했습니다. 영문 성경에서도 이 부분을 living soul이 아니라 living being이라 했습니다. 살아있는 존재라는 말이지 살아있는 영이란 말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생령이란 번역은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인간의 영혼에 관한 부분은 오히려 1우리의 모양대로 사람을 만들자고 한 부분에서 영성을 찾아야할 것입니다.


그러나 비록 흙으로 만들어진 육신이지만 하나님이 직접 코에 생기를 불어 넣어 만드셨다는 사실에서 다른 생명체와 달리 하나님의 인간에 대한 사랑과 관심을 다시금 확인하게 하는 대목이며 그러기에 27절의 의미도 우리에겐 무한한 감격일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학을 하고 시를 쓰는 우리로서는 이 대목에서 중요한 시학의 원리를 발견하게 됩니다. 사실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의 단계는 아직 숨쉬고 맥박이 뛰는 생명이 있는 인간이 아니라, 생명이 없는 단지 흙덩이에 불과한 것입니다. 문제는 그러한 흙덩이에 생기, 즉 생명의 호흡인 숨을 불어 넣으니까. 생명 있는 인간이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그것은 문학작품의 경우도 그렇습니다. 흩어진 단어들을 모아놓았다고 작품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산문에서는 일정한 플롯과 스토리가 있어야 산문의 생명을 얻게 되고 시에서는 리듬과 메타포가 있어야 살아 있는 시가 되는 것입니다. 시에서 리듬은 독자에게 생명력 있는 환기력을 갖게 합니다. 따라서 시의 생명력은 리듬에 기초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흙으로 만들어진 무생명의 인간에게 불어 넣은 생명의 호흡 즉 네폐쉬 하야도 따지고 보면 들 숨과 날 숨의 연속적인 리듬입니다. 따라서 모든 생명체들에게 하나님이 주신 생기란 다름 아닌 리듬을 주신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리듬은 생명체들만이 아닙니다. 우주 만물의 질서도 리듬입니다. 따라서 리듬은 하나님의 창조 질서이고 생명이고 그러기에 시도 리듬이 있어야 살아있는 작품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처럼 창 1:27에서 하나님을 닮은 영적인 인간을 만드시고, 2:7에서는 흙으로 육적인 인간을 만들어 영과 육을 갖춘 온전한 인간을 만드셨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인간에 대한 관심은 여기에서 끝내지 않으시고 그들이 거처할 수 있는 특별한 공간까지 마련하셨습니다. 그곳이 바로 우리가 선망하고 그리워하는 에덴동산입니다. 2:8 “여호와 하나님이 동방의 에덴에 동산을 창설하시고 그 지으신 사람을 거기 두시니라

 

여기서 동방이란 창세기 기자인 모세가 있는 위치에서 동쪽이란 말이며 그 다음에 이어지는 4대강의 설명으로 보아 학자들은 이곳을 세계 4대 문명 발생지의 하나인 메소포타미아 지역으로 보고 있습니다만 에덴이라는 말은 기쁨, 복락이란 뜻이며, 동산은 울타리를 치다, 보호하다의 어원을 갖고 있으며 이를 파라다이스로 표현하는 것으로 보아, 기쁨의 낙원, 우리가 흔히 말하는 이상향이 됩니다.

 

에덴 동산에 대한 묘사는 29절에서 하나님이 그 땅에서 보시니 아름답고 먹기에 좋은 나무가 있고 동산 가운데는 생명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가 있다고 했습니다. 창세기 1장에서는 만물을 창조하실 때마다 보시기에 좋았더라였는데, 에덴 동산에 대해서는 아름답고 먹기에 좋은 나무가 풍부한 곳이라 했습니다. 이는 철저히 인간이 살기에 좋은 조건임을 말해 주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이 에덴 동산으로부터 네 강이 사방으로 흐르는데 첫째는 비손강으로 금은 광물이 풍부한 곳입니다. 둘째는 기혼강으로 수량이 풍부합니다. 셋째로 힛데겔인데 이는 티그리스강을 말하며 넷째는 유프라데스 강으로 모두가 메소포다미아 문명을 이끈 비옥한 지역입니다.

 

이처럼 에덴 동산은 아름답고 먹을 양식이 풍부하며 기후는 온화하고 땅은 수량이 많고 비옥한 옥토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최초로 창조한 그 사람 아담에게 거기서 놀고 먹기만하며 살도록 하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낙원이니 천국이니 이상향이니 하는 곳은 생노병사가 없고 늘 먹고 노는 편안한 곳으로 아는데 에덴에서는 15절 그것들을 경작하여 지키게 하였으며 20절 아담은 그것들의 이름을 붙이기도 하였습니다. 에덴에서는 일정한 일을 했다는 말이 특이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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