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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지 시인의 작품읽기

이영지 시인
모더니즘의 특징 나와 너의 분리/논문작성이영지
작성자: 이영지 추천: 0건 조회: 8711 등록일: 2014-0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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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너와 나의 분리

 

1). 나와 너의 분리

 

봄에는 초록빛

여름에는 보랏빛

 

달려도

달려도

바닷가에 머무는 발걸음

저렇게 검푸른

바다의 깊이는 천길일까?

아니면 열길일까?

가을하늘

가을의 눈보라

 

지고한 하늘에서

스스로 태우는 태양

그 성실한 단심

춘향이의 마음은

아직도 타고 있을까?

 

밤마다

당신의

당신의 문전을 서성이는

나의 목숨 같은 그리움

이제는 보름달만큼이나

뚜럿한 믿음일 수 있을까?

 

돌작밭에 뿌려진 씨알을 보며

농부의 얼굴을 보며

흘러가는 강물의 음성을 들으며……

- 진실

 

눈으로 바라보는 들은 봄에는 초록빛 여름에는 보랏빛이다. 그리고 시의 은유적 기법으로 진실을 알려한 예리한 눈의 촛점은 인간의 한계성을 춘향이로 한다. 바라보면서 목숨 같은 그리움을 추구한 이 그리움은 절대 그리움이다. 절대라는 개념은 인간에게서가 아닌 신에게만 존재한다. 따라서 홍시인은 인간과 절대자와의 뚜렷한 거리를 절감한 모더니티다.

철저히 신의 세계를 이성적 사고로서 알아보려 하는 모더니티적 사고는 각박한 현실에서 찾는 비평대상이 인간의 한계성과 그 절대자에의 그리움을 시로 형상화하고 그것을 보기를 갈망한다. 이 보기 희망은 춘향이의 절실성에서 그 한계성을 예리하게 비평한 비평정학이다. 곧 모더니즘 시의 신화를 찾는 일이다. 이에 신을 찾아나서는 길 떠나기의 시학이 존재하고 그것은 에덴을 향하여 가는 신앙영웅신화를 쓰게 한다.

이에 그곳을 바라보기 신앙이 절대화되면서 그 길을 걸어가는 길 떠나기의 신앙자가 갖는 이성을 더 가까이 가기 위하여 신을 알아야겠다는 이성적 판단에 서게 된다. 왜 신에게로 가까이 가려 오늘도 길떠나기를 감행해야 하는가. 항상 길떠나기, 탐색하려 하는 모더니즘 계열의 홍시인은 삶과 생각과 실천의 동일성을 기하려한다. 이러한 일치감각은 사물화의 동일성을 추구하면서 홍시인이 감성으로 이 지상에서 할 수 있는 시인이 되어 그 구원의 시학을 이성적으로 만드려 한다.

 

(1). 신앙영웅이 가지는 모더니티의 분리의식

 

내가 신이 되는 것이 아니라 신과의 거리 때문에 그를 향하여 길 떠나기를 하는 홍 시인은 철저히 하나님과 나와의 거리를 인식한다.

홍교수는 한창 젊을 대학시절 호를 한 별이라 하였다. 큰 별이 되고 싶었던 것이다. 그러나 외람되게도 이 한별은 절대자에게만 해당되는 의미를 깨닫게 된 이후 호 한 별은 동천으로 바뀌어 진다. 한 별이 신에게만 해당된다는 신앙의식이 곧 동천으로 바뀌어 진 것이다. 자신이 에덴동산에서 흘러내려오는 물이 아니라 에덴을 향하여 길 떠나기를 멈추지 않는, 영원히 길 떠나기를 희망하는 사람이 되려 한다. 에덴을 향하여 흘러가는 물이어야 하겠다는 변경의식의 기저에는 냉철한 이성이 존재한다. 이 점으로 하여 즐겨할 호 정함조차 인간으로서의 신과의 냉철한 분리의식에서이다.

바꾼 호는 동천(東川)이다. 동천은 사전적 개념으로 동천(冬天, 東天)이 있다. 그러나 동천(東川)은 사전에 나와 있지 않는 신조어이다. 홍문표 만의 아호 동천(東川)이다. 홍시인의 호 동천의 은 히브리말로 나할(나할/시냇물)이다. 나할은 유업, 기업의 의미이다. 동천의 천은 동쪽으로 흐르는 물의 소명이 유업이어서 홍시인의 내해’, 곧 유업은 에덴을 향한 유업 내해, 나의 것이 된다. 철저히 나를 객관화 하는 는 히브리어로 물고기 נ(/물고기)이다. 물고기 נ(/물고기)은 히브리어의 속성상 접두사의 역할을 함으로 써 앞에 선다. 뒤 따라 가는 물괴가 아니라 앞서 가는 물고기이다. 그리고 접미사 ל(목적성 의미)가 항상 붙어 나의 할일 나할ל󰖏󰗺(나할)이 있다. 동천의 천()내가 할 일진행형으로 한 동적 이미지이다. 무엇인가 세상을 향하여 할 일이 있게 되는데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일을 명령받은 사역자 역할이다.

때문에 내가 아니면 안된다는 강한 소명이 문학인으로서의 할 일을 찾는다. 문학적 기질 글과 논문과 그리고 시와 시 해설을 담당한다. 특히 물고기, 즉 믿음이 있는 자가 해야 할(ל󰖏/)의 일은 언제나 하나님 울타리 안에서만 하는 일의 목적성이다. 홍시인이며 문학박사이며 신학박사가 할 일은 에덴동산을 향하여 가는 일이다.

홍문표 박사는 모더니티의 개념 속에서 이 세상의 에덴시학을 이루려는 신앙시학이 있다. 이 철학을 지닌 한 가장의 아빠이면서, 사회에서의 아버지 의식이 늘 적용된다. 그러기에 한국창조문학과 창조문학, 말씀과 문학, 그리고 목양문학회장직에 머물면서 할 일은 창세기 1:1절에서 2:3까지 41회를 사용하여 예수님의 족보 자리 41번째의 자리, 예수님 암시에 철저히 제자역할의 소명을 가진다.

어디까지나 예수님의 일을 흠모하며 따라가는 사역하여야 하는 일은 철저히 하나님을 위하여서이다. 불순종이 아니라 언제나 예 예하면서 절대명령에 복종하는 신앙 영웅이 길떠나야 하는 이유가 있다. 하나님 손에 붙잡힌 홍시인은 신앙영웅이 가지는 절대자가 명령하는 일 곧 그 사역을 붙들고 하나님의 돌보심에 따라 에덴을 향하여 길 떠난다. 동천의 소명으로 에덴을 향하여 흐르는 시냇물이 된다. 성경에서의 에덴의 물은 동방에서 발원하여 흐르는 물이다. 반면에 홍 시인의 물은 오히려 에덴을 소망하며 흐르는 물이다. 그럼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지극히 받음에 대한 감동으로 이 사랑을 향하는 절절한 그리움의 무게를 문표라는 글몫으로 한다.

물의 흐름은 강의 속성이다. 흘러가는 물중에서 강은 히브리어로 나하르와 나할이 있다. 홍 시인의 호 동천은 큰 강보다는 졸졸 흐르는 강을 표명하면서 오히려 자신을 낮츈다. 신과의 분리의식을 철저히 한다. 주신 기업에 충실하는 비평정학을 확립한다. 오히려 지극히 적은 내해 나의 것에 온 마음과 정성을 다 기울인다. 부지런리 길 떠나기를 감행하는 신앙영웅은 절대자와 나와의 그 먼 타자거리를 철저히 인식하며 이 세상에는 하나님만큼의 사랑이 없음을 절감한다.

 

환한 대낮에도

부끄럼을 모르는

정말 낮달처럼 투명한 사랑이 있을까

 

종로 네거리

시퍼런 욕망이 질주하는

광장에서도

훨훨 나비되어 춤추는

정말 홀가분한

자유가 있을까

 

가시밭

돌짝밭

뜨거운 불길마저 사랑하는 불새

 

춘향이처럼 사랑이

그렇게 확실한 것이라면

가진 것 모두 버리고

저승까지라도 달려가련만

연민의 잎들은

여전히 기억의 발등에 쌓이고

 

목마른 아스팔트

아물대는 저녁 길

아직도 부끄럼으로 포장된

내 영혼은

오늘도 후미진 골목을 돌며

바람 한 자락 움켜잡아 본다

- 알몸 달리기

 

이 세상에 완전한 사랑이 없음을 절감하며 절대자 하나님만이 사랑완전성을 주실 수 있음을 내면의 리듬으로 한다. 신과 나와 분리된 그 먼 거리는 다름아닌 절대사랑과 인간의 완전할 수 없는 사랑거리를 확인한다. 그러나 기업으로 얻는 홍 시인의 분야인 내해, 본인 나름에 내 할 일에 철저히 다한다는 철학이 존재한다.

이 하나님의 손이 되는 동적 사역을 엣레이젤(Dr. M. Reisel)사랑으로 가는’(to love) 길이라 했다. 사랑이 주제가 되는 일만을 들고 예, 예 하면서 따라가는 신앙영웅 홍시인의 길은 지금도 살아계신(3:14) 그 놀라운 일들을 한 별이 아닌 동천으로 그 호를 바꾸면서 홍시인 자신은 동천, 동쪽으로 흐르는 물이 되어 생명의 문학, 영성의 문학을 위해 구원의 문학임을 이성적인 최대의 방법을 동원한다. 목사로서의 설교시간에, 그리고 대다수를 향하여 디지털 문명이기를 빌린 동영상을 실시한다.

사역의 범위는 예수님이 하셨음에 감히 인간이 안하고는 견딜 수 없다는 불타는 신앙심이다. 홍시인은 둘째 아들로서, 예수님을 본받으면서 일을 한다. 이 움직임의 동적 에너지는 에덴을 향하여 가는 길에서이다. 이미 1700년 르 끌레르끄(Le Clerc)는 사역형의 의미를 “Creator eteffector rerum”이라 하였다. 그 후 라가르트(De Crere)약속의 땅을 존재에로 불러들이는 분’(’derjenige welsher das Verheissene in das Desein ruft)을 따르는 일이라 하였다. 반대학자 레이몬드도 하여(היה/하야) 동사가 사용된 근거가 없다하면서도 동일한 어원아래 묶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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