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하나님을 이긴 야곱
- 창 32 - 이전보다 나아져(20140112)
사람은 하나님과 싸워 이길 수가 없다. 그런데 유일하게 성경에서 야곱이 하나님과 싸워 이긴 걸로 되어 있어서 그야말로 이해하기 어려운 성경의 장이 창세기 32장이다. 살아생전에 빚을 진 야곱이 형 에서와 만나는 장면 창세기 32장 18절은 “대답하기를 주의 종 야곱의 것이요 자기 주 에서에게로 보내는 예물이오며 야곱도 우리 뒤에 있나이다 하라 하고”이다.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 특히 야곱의 경우 형이 가져야 할 장자권을 빼앗고 축복마저 가로챈 야곱이 다시 형을 만날 리가 없다고 생각하였을지 모르지만 이제 역사적 순간이 닥아 왔다. 야곱은 형 에서를 만나러 갈 때 많은 휘하 사람들을 데리고 갔다. 야곱이 종들에게 명령하기를 하라는 대로 하라는 (브아마르타/대답하기를 하라 하고, C.VQAMYS. Then thou shalt say, έρείς, 창 32:18) 부탁 말을(르아브데하 르야아코브 민느하 히바 쉴루하 레아도니/주의 종 야곱의 것이요 자기 주 에서에게로 보내는 예물이오며, P. NMS. MYS P.NE NFS NPFZS VQppfs P.NMS.CXS P.NE, They be thy servant Jacob"s a present it is sent unto my lord Esau, Τού παίδος σου Ιακωβ δὧρα άπεσταλκεν τῷ κωρίώ μου Ησαυ, 창 32:18)라고 하라 명한다. 하나님일 하는 야곱이라 전제하고 자기주인 에서에게로 미는 예물이라고 말을 하라는 것이다.
이 때 예물 히브리어 발음은 ‘미는’이다. 예물을 성경은 강권적으로 말씀을 영원히 드리미는 것이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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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알간
제 몸으로
드리는
예물에요
파아란
속마음인
풀입의
푸르름을
보셔요
정말 달라진
저의마음 드려요
- 이영지 「마음의 선물」
창세기 32장 25절은 “야곱은 홀로 남았더니 어떤 사람이 날이 새도록 야곱과 씨름하다가”가 되어 있다. 흔히 야곱이 천사와 씨름하는 것으로 이해되고 있는 성경 히브리어 원문은 한국말에 같이 가다가 차를 탈 경우 ‘야 타라’라고 하거나 차를 가지고 가서 픽업하는 경우 ‘야 타라’ ‘봐 이 봐 타라’라고 말한다. 야 타라, 봐 이 봐 타라 (야타르/바이바테르/남았더니, CW.VNIMZS, And was left, ύπελείφθη δέ. 창 32:25)로 되어 있다.
구약에서의(야곱/야곱, NE, Jacob, Ιακωβ, 창 32:25)은 하나님의 손에 잡히어 하나님 눈에 들어 어렵사리 하나님 집안에 든 사람이다. 평소 지니고 있는 이해타산에 아주 빠른 사람인 말하자면 구제불능인 사람이기에 하나님 택하심에서 겨우 허락하시는 범위 안에 드는 사람 야곱이다. 야곱은 바득바득 애를 쓰는 사람이다.
히브리어는 (바드/르바도/홀로, P.NMS.MZS,alone, μόνος, 창 32:25)로 표시되는데 야곱 홀로 하나님과 대면하고 있다. 바득바득 애쓰며 들이미는 야곱은 먼저 가슴으로 하늘을 보며 진정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었다. 이에 하나님을 움직이게 한다. 하나님과의 씨름을 아바크 (아바크/바예아바크/씨름하다가, καί έπάλαίεν, 창 32:25)로 표시하는데 한국말에 박치기라는 말이 있다. 직접 부딫치며 덤비는 몸으로 씨름하는 야곱에게 하나님이 야곱을 하나님의 집 안에 겨우 들인다.
세상에서 사람은 남자와 여자 뿐인데 성경 히브리어는 남자를 이쉬 /남자, NMS, one, ἓκαστοσ, 창 32:25)로 표현한다. 남자들은 걸핏하면 이씨, 이씨 하고 힘을 내는 이 남자란 하나님 손으로 연단되기에 남자는 하나님 아닌 다른 사람에게 지배받기를 싫어하는 속성을 지닌다.
(임/임모/야곱과, P.MZS, with him, μετ αύτού, 창 32:25)에서 야곱과 함께라 번역되는 이 임은 사랑을 받고 있는 남자임을 성경은 제시한다. 곧 하나님이 야곱과 함께 하며 말씀을 높이 들어, 사모하는 이 모습은 마음 깊이 따르며 함께하는 것이다. 상대방이 하고자 하는 뜻을 그대로 같이 따라 주는 행위이다.
천사와 야곱이 밤을 같이 보내는데 성경은 (아드 올라/아드 알로트/새도록, P. VQNG, until the breaking of, ἕως , 창 32:25)라 하여 함께 올라가는 길에 선 야곱은 하나님의 눈을 가슴에 넣고 그 눈에 들려 몸부림치며 십자가 준비를 하게 하나님이 하시었다.
그러다 보니 새 날이 닥아온다. 목숨을 건 밤 새어 솨하르/하솨하르(솨하르/하솨하르/날이, D.NMS, the day, 창 32:25)내기 다음날은 야곱의 진심이 하나님께 알려 진 날이다.
온 밤을 함께 있어 사랑이 무르익음
당신의 뜻을 알아 그대로 따르리다
새 날이 밝아온뒤에 빨간입술 어때요
입하고 꼬리만을
빨갛게 물들이며
몸 안에 이런마음
들었다 고백하며
그렇지 아니하다면
온 밤을 다 파랗게
-이영지 「투정」*창 32:25
입하고 꼬리만을 보셔도 알으시라
두발에 사랑실어 주시면 날아가서
마음을 알아주시게 날아돌아 옳으리
- 이영지 「투정」
창세기 32장 25절은 “그 사람이 자기가 야곱을 이기지 못함을 보고 야곱의 환도뼈를 치매 야곱의 환도뼈가 그 사람과 씨름할 때에 위골되었더라”이다.
이 때 눈의 절대성인 히브리어로 ‘봐야’봐야 (바야르아(바야르아/그 사람이 보고, CW.VQIMZS, And when he saw,εἷδεν δέ, 창 32:25)로 시작되는데 어미어 א(아)가 어휘 끝에 올 때에는 하나님이 살려두시는 진행형 א(알레프)이다. א(알레프)는 묵음이지만 앞 모음을 장음화 한 기법으로 하여 싹 냄을 표면구조로 한다.
이 어미 א(알레프)는 하나님의 법을 배우는 의미의 내면구조로 생명에 대해서이며 세상에서 사람이나 모든 생물이 살아 있게 하시는 이의 뜻을 말한다. 야곱의 경우 하나님이 죽이지 않고 살려두심이 된다. 이 분이 야곱을 이기지못하였다는 그야말로 믿기지 않는 사실, 그로 약올라(키 로 야콜 로/자기가 야곱을 이기지 못함을, CW. VQIMZS C ABN P.MZS, not that not againsr him, ὅτί ού δύναται πρός πρός αύτόν, 창 32:26)로 표시된다.
야곱의 중심을 잡게 하시는 하나님의 손에 의해 곧 열심히 사는 자는 하나님이 감동하심이다. 감동을 받으신 분이 사랑하는 야곱의 다리의 중요한 부분을 왜 칠까이다. 겉을 상하게 하는 대신 성경은 봐 이 거 부러뜨리고(바이가아 브카프-브레코/야곱의 환도뼈를 치매, CW. VQIMZS P.NFZG-N, he touched the hollow of his thigh, καί ἢπατο τού πλάτους τού μερού αύτού, ckd 32:26)로 하여 뼈가 위골된다. 그만큼 사람 자신이 내세울 것이 없도록 하시고 절대 의지하는 마음의 경우로 세상은 살기 편하게 된다.
성경은(아바크/브헤아브코/씨름할때에, τῷ παλαίείν εύτόν, 창 32:26)하면서 한국어로 박치기라는 말을 사용한다. 하나님이 야곱을 하나님의 집안으로 들인다.
나무가 부러지듯
꺾이듯 휘어져도
다리가 부러지듯
아픈건 별거아냐
하늘의 보금자리로 들어가는 일에는
꽁지의 파랑으로
머리에 모아두고
나르지 못한 나무
네 대신 날아주려
하늘을 보금자리로
날아오를 일에서
- 이영지 「아픈건 별거아냐」
성경의 창세기 32장 28절은 “그 사람이 가로되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를 것이 아니요 이스라엘이라 부를 것이니 이는 네가 하나님과 사람으로 더불어 겨루어 이기었음이니라”다.
이 때 성경은 이 절을(바이오마르/말하되, CW. VQIMZS, that he said, είπεν Αβλαμ, 창 32:28)라고 한다. 이름은 바로 선다는 뜻으로 성경은 (쉬므하/네 이름을, NMS.MYS, Thy name, τό ὅνομά σου, 창 32:28) 라 한다. 섬이 되는 이 일은 또한 ‘심어’라는 말이다.
이스라엘 (임-이스라엘/이스라엘이라, C NE, but Israel, Ισραελ, 창 32:28) 이 인구에 회자하는 이 뜻은 내 손으로 내가 생각하는 바를 실현하는 일이라는 글자 뜻이 포함되면서 야곱은 하나님의 말씀이 그대로 나타나게 일하는 사람임을 임명받은 자이다. 말하자면 임명장을 받은 이가 야곱이요 이스라엘 민족이 된다.
이제 하나님으로부터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얻은 야곱은 “그러므로 야곱이 그 곳 이름을 브니엘이라 하였으니 그가 이르기를 내가 하나님과 대면하여 보았으나 내 생명이 보전 되었다 함이더라”라는 말씀에서 하나님과 이기었음을 “내가 하나님과 대면하여 보았으나 내 생명이 보전되었다 함이더라”라고 번역되었는데 사실은 외모적으로는 야곱의 다리가 절었음에 비추어 볼 때 나아졌다는 것은 삶의 질이 이전의 야곱과는 달라졌다는 것이다.
한국말에 생활이 나아질 것이라는 말이 있고 생활이 나아졌다는 말 그대로 히브리어(나잘/바티나젤/보전되었다, CW.VNIFZS, and is preserved, καί έσώθή)은 영원히 향기가 나려는 일을 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시키시는 십자가 준비를 영원히 잘 향기 나게 하려는 일을 하는 사람이다.
우리들의 살에서 생활이 더 나아졌다다는 것은 하나님의 시키시는 사역의 십자가 일을 더 잘 향기나게 하는 삶을 의미하고 전적으로 야곱은 이를 위하여 존재한다. 브니엘(브니엘/브니엘, NE. Peniel, Εἵδος θεού, 창 32:28)에서 보듯이 하나님 일을 말하는 사람이다.
이전의 나보다도 통통히 살이쪘죠
입으로 포롱포롱 쏟아내 나를께요
꽁지에 물들인 사랑 빨간입술 노래로
- 이영지 「포롱포롱 쏟아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