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삭을 번제로 드려라 - 창 22:1-19
꽃다발 가슴에 안고 돌아와 (20131124) 李英芝
창세기 22장은 아브라함이 이삭을 하나님의 명령대로 번제로 드리라는 명령을 준행하고 이에 하나님이 넘치도록 큰 축복을 받고 난 다음에 그의 몸종들에게 돌아오는 일로 기록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손으로 숨쉬게 하시는 일을 하시려는 하나님은 봐 여기(바예히, 창 22:1)라는 문장을 통하여 하나님이 우리를 숨쉬게 하시는 일을 하나님의 손을 통하여 하시게 하심으로 하여 그의 아들을 뜻합니다. 곧 하나님이 시키시는 하나님의 아들이 이 세상에 오시어 우리들이 숨쉬게 하실 수 있음을 나타냅니다. 그리고 곧 한국어에도 있는 아래(아하르/후, 창 22:1)를 사용하여 시간의 연속성을 제시함으로써 하나님의 역사는 어느 한 순간만이 아니라 지속됨을 제시합니다.
하나님의 말씀 한 다발(하드바림/그 일, 창 22:1)이 곧 이 세상에서의 일이 되며 반드시 사역자가 있게 되는데 오늘은 일차적으로 아브라함을 통한 사역행위가 장차 오실 예수님의 사건의 전초적이 되는 예로 드러납니다. 말하자면 첫 번째의 사건 제시로 예시되고 두 번째를 강조하는 진짜 예수님의 이 세상의 오심과 번제드려짐과 다시 오심에 대한 예시의 장이 되는 거지요.
이 일 하나님의 일(하엘라, 창 22:1)많은 일 중에서 가장 큰 것이 우리를 숨 쉬게 하려하시는 일이 가장 큰 것임을 강조합니다. 곧 하나님이라는 히브리어 글자가 의미하는 힘(베엘로힘, 창 22:1)에서 그리고 내가 하려는 일은 숨 쉬게 하려는 일이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도 그렇게 하고 있는지를 니사(니사/시험하시려고. VPAMZS, did tempt, έπείραζεν, 창 22:1)할 수 있다 하시며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향한 중심을 잡고 있는지를 알아보고 있는 장이 창세기 22장입니다. 그래서 아비라 함(아브라함, 창 22:1) 글자에서 보듯이 하나님의 집안에서 아브라함이 그 사역을 담당하게 하시려는 뜻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봐요 말을(바요마르, 창 22:1)들어보라시며 내가 너의 말씀의 머리라고 하십니다. 그리고는 내가 시키려는 너(엘라이브, 창 22:1 ) 곧 아브라함을 부르십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봐요 말을(바요메르, 창 22:1)들어보라는 말씀에 아브라함은 내가 여기 있나(힌네니/내가 여기 있나이다, 창 22:1)라고 대답합니다. 곧 하나님이 숨 쉬게 하심을 영원히 하시는 분임을 믿습니다라는 믿음의 조상다운 말로 응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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봐요 내 말을(바요메르/그가 가로되, 창 22:1)들어 보라시며 아들을 데리고 가(카/데리고, 창 22:2) 아주 어려운 일을 해 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곧 빈 네(빈네하/네 아들, 창 22:2)마음을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아들을바칠정도의 빈 마음을 지적하십니다. 하나님은 엣다 여기있는(에트-예히드하/네 독자, 창 22:2) 아들을 데리고 번제 드리러 가라는 것입니다. 이 아들은 바로 하나님의 지붕 안에서 하나님의 가슴을 가지고 있는 아브라함의 아프도록(아쉐르-아하브트/사랑하는, 창 22:2) 사랑하는 아들입니다. 바로 이삭이지요.
이삭(이즈학/이삭, 창 22:2)을 데리고 모리아 산으로 가라는 것입니다. 이유는 이삭의 이름에서 보이듯이 이삭을 하나님의 손으로 향기 나게 하는 사람이 되게 하시려 하신다는 것입니다.
그 사역을 아브라함 네가(브레그-레가/너는 가서,창 22:2)가서 하나님이 할 일을 너가 사역하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아브라함의 사역은 아래쪽(엘- 에레쯔 하모리아 에레쯔/모리아 땅으로, 창 22:2)으로 가라는 것인바 곧 내일 모래(모리아, 창 22:3) 곧 3일 뒤에 아들을 번제로 드리라는 것입니다. 모래 산상으로 가서 내가 하려고 하는 일 곧 나의 향기가 숨 쉬게 되는 일을 사역하라는 것입니다.
이 사역은 너의 아들 이삭(베하알레후/그를 드리라, 창 22:2)을 하나님께 번제 드리라는 것입니다. 번제는 사람이 살아가는데 모두가 숨쉬기 위한 가장 주요한 일이 번제라는 것입니다. 한 사람을 죽이는 일 곧 번제란 한 사람이 희생됨으로 하여 우리 모두 숨 쉬게 되는 일을 아브라함보고 시행하라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연단작업을 하라는 것입니다.
참(솸/거기서, 창 22:2) 거기에 너는 올라(레올라/번제, 창 22:2) 곧 번제의 현장에서 눈으로 보이는 알 하나(알 아하드 하하림 아쉐르/그 한 산에, 창 22:2)드리라는 것입니다. 그것도 아브라함의 가장 사랑하는 아들을 말입니다.
이 명령은 절대적이어서 네게 지시하는(오마르 엘레이하/내가 네게 지시하는, 창 22:2)곳으로 일어나 봐야(바야스켐/일어나, 22:3)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야만 하나님인 내가 너를 내 손으로 중심을 잡게 하실 수 있다 하시었습니다. 곧 복을 줄 수 있다는 조건입니다. 이 엄청난 명령은 아브라함(아브라함/아브라함을, 창 22:1) 이름에서 보듯이 믿음의 조상이 되게 하시는 조건입니다.
아브라함은 이에 바보라(바보케르/아침에 일찍이, 창 22:3) 할 만큼 말씀을 그대로 따라하는 그대로 아침에 일찍이 안장을 지우고 봐야 보이는 (바야하보쉬/안장을 지우고, 창 22:3) 하나님을 만나 뵈오려 갑니다. 모리아 산으로,
갈 때에 나귀를 데리고 가는데 이 나귀는 하나님이 숨쉬게 하는 말씀을 사모하는 의미 하모로(에트-하모로/나귀에, 창 22:3)입니다. 곧 그렇습니다입니다. 한국말에 하모 그렇습니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봐 이거(바이카/데리고, 창 22:3) 가라시는 두 몸종, 이 몸종은 아브라함의 사역협력입니다. 사역은 혼자서 하는게 아닙니다. 이 나아(에트 스네 나아라이브 오토/두 사환을 데리고, 창 22:3)지게 되는 사람을 데리고 갑니다. 그리고 두 번째의 의미 강조입니다.
아들(브노/아들, 창 22:3) 곧 하나님의 집안에 영원히 있을 이삭(이즈학/이삭, 창 22:2)과 같이 갑니다. 이삭은 하나님이 향기 나게 하시는 뜻이 있습니다. 곧 산에 올라(바으바카 아제 올라/번제에 쓸 나무를 쪼개어 가지고, 창 22:3)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집안에 잘 들어가려 이삭 향기를 가지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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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3일째 되는 날에 모리아 산에 도착하는데 이 또한 3일째의 의미가 성경은 예수님이 십자가 달리시고 다시 부활하시는 기간이 3일인데 이것을 상징하는 삼일 후에 하실(하쉴리쉬 바욤/제3일에, 창 22:4)일 곧 숨 쉬게 되는 날, 모리아 산에 도착합니다. 하나님이 하나님의 아드님을 통해서 역사가 일어나는 날입니다. 예수님은 3일 만에 부활하시었습니다.
장소에 도달하여 아브라함이 눈을 들어 봐(바이사 아브라함 에트-에나이브/아브라함이 눈을 들어, 창 22:4) 먼 곳을 봅니다. 이 때 히브리어는 (바야르아 에트-하마콤 마라호크/멀리 그곳을 바라본지라,창 22:4)입니다. 하나님의 사역을 잘 하려 하는 믿음으로 모리아 산을 바라 본 것입니다. 믿음은 멀리 바라봐야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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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기에 아브라함은 하나님과 아들과 아브라함 자신이 있어야 하는 자리를 마련하려 봐요 말을 들어보라며 사환과의 거리를 둡니다(바요메르 하브라함 엘-느아라이브 스부-라켐 포 임-하하모르/아브라함이 사환에게 이르되 너희는 나귀와 함께 여기서 기다리라, 창 22:5) 봐요 내가 하나님의 집안에서 하는 사역은 하나님의 일을 눈으로 보는 일이니 너희들은 여기 있으라는 것입니다. 이 때 사환은 두 사람입니다.
보아하니(바아니 브하나아르 날르카 아드-코/내가 아이와 함께 가서, 창 22:5)라고 내가 아이와 함께만 가야 하는 상황이니라고 사환에게 말합니다. 내가 단독으로 하나님만 모시고 내 마음을 중심잡아야 하니 곧 하나님께 경배(브니스타하베/경배, 창 22:5)드리고 나서
날래 쉬이(베나수바 알레켐/너희에게로 돌아오리라, 창 22:5) 돌아오리니, 여기서 기다리라는 말을 사환에게 남깁니다. 이 때 돌아오리니의 의미는 성경적 해석을 가능하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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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브라함은 아들에게는 번제나무(에트-아제 하올라 바야셈 알-이자크 브노/ 번제나무를 취하여 아들, 이삭에게 지우고, 창 22:6)를 지게 합니다. 곧 하나님의 하실 일을 위해 향기를 가지고 갑니다. 그것도 아들을 향한 칼과 불(바이카 브야도 에트-하에쉬 브에트-함마아켈레트 바얄레쿠/자기는 불과 칼을 들고, 창 22:6)을 들고 단지 하나님의 손으로 하시는 일을 믿음으로 갑니다. 이 때 성경은 혼자가 아니라 아버지와 아들 두 사람이 함께 간다 하였습니다. 곧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는 일은 예수님 혼자의 일이 아니라 하나님과 함께 하는 십자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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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때 아들은 아버지에게 하늘에 올릴(브아예 하세 르올라/번제할 어린양은 어디있나이까?, 창 22:7)며 아들 이삭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고 묻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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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때 아브라함은 이렇게 하리라(이르에- 로/친히 준비하시시라, 창 22:8) 곧 하나님의 일이 지금 이렇게 하는 일 이라는 것입니다. 곧 하나님이 알아서 하신다는 것입니다. 이 전적으로 의뢰하는 일은 아브라함의 믿음에서 나오는 일입니다. 아주 침착하게 맡기는 아브라함의 믿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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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는 바짝 아들 몸을 묶어(바야아코드/결박하여, 창 22:9) 하나님의 손으로 하실 일에 맡겼습니다.
10 칼로 치려(함마켈레트 리스호트/칼을 잡으려 하더니, 창 22:10) 할 이 때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중심이 자기를 향하였음을 아시고 그 사역을 멈추게 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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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두 번 그렇게 하지 말라는 말씀 알 다칠라(알 티슬라 야드하 엘-한나아르 베알-타아스 로 므우마/그 아이에게 네 손을 대지 말라 아무 일도 그에게 하지 말라, 창 22:12)입니다. 아브라함 너는 하나님인 내가 하는 일의 십자가 연단작업을 너 마음대로 흔들지 말라 나의 진심은 너의 아들을 죽이자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숨 쉬게 하여 살리려 함이라는 것입니다.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인 나의 아들을 희생 제물로 하는 것이니 사람인 너는 나의 아들이 아닌 너의 아들에게 손을 대지 말라라는 것입니다.
너의 그 마음만이 배로 커서 네 아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