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치유의 영원한 행복: 이영지 론(2)
이병용(문학박사, 시인, 문학평론가)
나무를/심으리라/한 그루 심어놓고 기다림 심으리다//
둘레를/심으/리다//
사랑 법 심어드리니/사랑 올 때/보이소
-<사랑 법-새벽기도․1715 전문>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에 제일은 사랑이라-<고린도전서 13장 13절>
Ⅰ. 들어가며: 사랑시야(視野)
나는 지금 끝나지 않을 것만 같은 사랑의 시조집을 읽고 있는 중이다. 누구나 가슴 저미게 하는 동서고금의 위대한 사랑은 그 절실한 울림으로 말미암아 못내 여운을 남긴다. 우리는 그 시공간적 다양성의 각별한 의미로 말미암아 불멸의 위대한 사랑, 즉 영원한 사랑을 동경하게 된다. 이영지의 그 근작 시조집 『행복의 물을 먹으며, 사랑으로』(창조문학사, 2008)는 행복한 사랑의 질서를 보여주는 일련의 종교시들로 이루어져 있다. 그녀는 첫 시조집 『하오의 벨소리』를 제외하고 그 이후로 초지일관 <새벽기도>와 관련된 연작시조를 발표해왔는데, 작금에 와서 그 수가 무려 8권의 시조집에 해당하는 1727편에 이르고 있다.
한국 근대 시조시(時調詩)에 있어서 한 주제로 대작(大作)을 엮은 사례를 찾아보기란 그리 쉽지 않다. 그런 면에서 이영지의 <새벽기도․1~1727(?)>는 일관된 ‘사랑’의 주제를 가지고 다층의 변모를 보여주는 역작이 아닐 수 없다. 또한 다른 한편에서 그녀의 ‘사랑시조’ 편들은 한국 기독교 종교시의 전범(典範)을 이룬다. 그러므로 그녀의 연작시조의 형식적 ‘크기’는 다시 종교시라는 내용의 ‘깊이’와 만나면서 시인 자신이 경험적으로 말하는 ‘사랑시야’(<사랑시야(視野)-새벽기도․1716>)를 터득한다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시인은 ‘사랑시야(詩野)’란 ‘사랑시야(視野)’라는 관계식을 통하여 시조의 미학적 비젼을 몸소 사랑으로 형상화하려는 소명을 완수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나는 부지불식간(不知不識間)에 이영지 시인의 심상이 한마디로 ‘사랑 법’이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되었다. 게다가 나는 시인의 ‘사랑 법’이 근원의 사랑을 노래하던 감성적 습성으로부터 점차 종교적인 사랑의 이타적 실천으로 확장해나가고 있는 자아의 성숙한 변천을 주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사실 세속적 연애시의 관습을 따르던 시인의 초기 작품 세계도 후기로 나아가면서 확연히 달라져 본격적인 종교시의 면면(綿綿)들로 구체적인 윤곽을 드러내고 있음이 목도되고 있다. 따라서 이 글은 독실한 신앙을 가진 시인 필생의 사랑의 요체와 그 변주법을 면밀하게 궁구해 보는 것을 일차적인 목표로 하기로 한다. 그렇기에 나는 성서에 나오는 <고린도전서> 십삼장의 한 구절을 빌려서 시인의 작품 세계가, 첫째 믿음을 어떻게 형상화하고 있는가, 둘째 소망의 마음 상태는 어떠한가, 그리고 마지막으로 사랑의 언약으로 행복이 어떻게 구현되고 있는가를 고찰해보기로 한다.
Ⅱ. 믿음: 청지기적 사명
믿음은 영혼의 소경들이 진리를 보도록 만들어준다. 이 때 진리는 우리의 근원이요, 우리 영혼을 잉태한 토양과 같다. 우리는 그 진리를 추구하지만, 장님과 다를 바 없는 미약한 존재자인 인간이 우주와 같은 거대한 진리의 실재(實在)를 어떻게 밝혀낼 수 있단 말인가? 그 발원을 이영지 시인은 하나님의 형상성으로부터 시작하고 있음을 다음의 단시조가 확인시켜주고 있다.
1) 이 나의 하나님이 얼굴에 씨줄 날줄 한 겹씩 넣으시면 가로로 세로로 짠 눈썹이 두 개 나란히 그려지고 귀 쫑긋-<사랑 쫑긋-새벽기도․1647 전문>
위의 시조는 창조주인 하나님이 스스로의 형상을 입혀서 피조물인 인간을 창조하신 거룩한 행위를 연상시킨다. 그러나 ‘얼굴’의 형상은 ‘씨줄’과 ‘날줄’로 얽힌 복합물로 표현되어 있어 그 구성의 질감을 단번에 파악할 수 없다. 또한 ‘눈썹’과 ‘귀’와 같은 신체의 부분들의 나열만 반복되어 있어 얼굴의 정확한 모습도 그려볼 수 없다. 실제로 시조집 속에서 몸을 형성하는 신체의 부분들로는 눈(동자)・머리・이마・(속)눈썹・볼・뺨・보조개・목(덜미)・가슴・심장・배・배꼽・등・살(갗)・손・엄지손가락・발・꼬리・귀・코・입・입술 등이 언급되고 있다. 이러한 신체 부위들은 각각의 시편들로 나누어져 세부적인 이미지를 정밀하게 그려 나가지만, 전체적인 몸의 형상을 일괄적으로 구성하는 방식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부분의 합이 전체 또는 그 이상을 구성할 수 있다는 전일론적 혹은 통전적(holistic)인 사고를 할 수 있는 이성적 능력을 보유하고 있다. 다시 말해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장님의 코끼리 만지기’의 비유에서처럼 통찰력을 십분 발휘하여 ‘각자’ 혹은 ‘부분’의 경험을 올바르게 조합한다면 존재의 실상에 제대로 접근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시조집의 여기저기에 산재하는 신체기관의 이미저리를 유기적으로 종합하면 하나님의 임재를 여실하게 보여주는 완전한 형상으로 탈바꿈되어 믿음의 확실한 전거(典據)가 된다.
이와 같이 이영지는 믿음의 대상인 유일한 존재의 형상을 동원할 수 있는 신체 부분의 총합으로 지탱가능한 몸성을 어떻게든 복원해내려는 혼신의 노력을 보이고 있다. 왜냐하면 그녀에게 있어 믿음은 하나의 절대적인 대상의 발견이요, 그로부터 시작되는 기나긴 시작(詩作) 과정을 통해 그 대상을 온전한 형상으로 완성하여 그녀의 믿음을 구체화하는 실천의 방편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 방법도 주로 ‘몸의 형상’을 감지해낼 수 있는 감각 기관과 그 지각 작용을 중시하고 있는데, 시인이 사용하고 있는 시조시 이미저리의 문법이 어떠한지 아래의 예를 통하여 정리해보기로 한다.
2-ⅰ)어여쁜 연분홍 볼 연분홍 살 얻으면-<꽃 따라 길을 가다>
햇볕이/등에 붙어/따듯한 말을 한다-<사랑햇볕>
ⅱ)새파란 손으로 내민 하늘 잎의/내음새-<사랑이면>
봄 곁에/봄의 손이/봄 꽃씨/심어놓아-<봄 손>
ⅲ)행복이 하애질랴/입술이 부풀도록 그릴랴-<사랑병>
빠알간 잎술을 열어/주렁주렁/웃음을-<행복잎․사랑입>
ⅳ)파도의 발걸음이/바람의 목소리로-<바다구슬>
[사랑의/사람 음성 들리면]/물이 이네-<사랑 음성 들리면>
위의 시구(詩句)에는 한 눈에도 시각, 청각, 후각, 미각, 촉각 등과 같은 오감(五感)의 이미저리들을 최대한 활용하여 묘사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경우 두 가지 이상의 감각적 이미지를 즐겨 사용하므로 공감각적인 효과를 극대화하고 있음도 유의해 볼 필요가 있다. 2-ⅰ)에서 신체 부위를 형용사와 서술어를 사용하여 감각적 이미지로 확장하고 있다. 즉 ‘연분홍’이라는 색채 형용사로 신체언어를 수식하면 시각적 이미지가 되고, 이와는 달리 ‘등’이란 신체언어를 ‘붙어’라는 서술어로 표현하면 촉각을 나타내는 이미지가 된다. ⅱ)에서 ‘새파란 손’은 본래 손의 뜻이지만, ‘봄의 손’은 비유적인 뜻이다. 전자는 색채형용사의 수식에 의한 시각적 이미지에서 ‘내음새’라는 후각적 이미지로 전환한다면, 후자는 비유적 주체인 ‘손’이 ‘꽃씨’를 심는 구체적 행위를 기술하고 있다. ⅲ)에서 ‘입술이’는 주격 조사가, ‘잎술을’은 목적격 조사로 사용되고 있다. 전자는 ‘부풀도록’이라는 서술어에 의해, 후자는 색채언어와 의태어의 수식에 의한 시각적인 이미지로 표현되어 있다. ⅳ)에서 앞의 문장은 단문이지만, 뒤의 문장은 조건절이 포함된 복문이다. 둘 다 청각적인 이미지를 잘 활용하고 있다.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이영지의 시적 수사는 구문을 다양하게 병치할 뿐만 아니라 감각적인 이미지의 복합적인 결합으로 신체기관의 단조로운 묘사에서 탈피하여 위대한 존재자의 궁극적인 형상성을 가시화하는데 이상적으로 기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영지의 종교시에서 무엇보다도 창조주와 피조물의 상호 관계를 파악하는 것은 그 시혼(詩魂)을 규명하는 핵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