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님, 봄은 파종의 철입니다. ‘파종’은 종자를 넣고 ‘싹 틀 날’을 예견하는 일입니다. 이어 ‘흙 한 삽’을 다독여 ‘덮는’ 것으로 잘 자랄 것을 기원하며 작업 절차를 완료합니다. 마찬가지로 시인이 언어를 거둠은 자신의 ‘육필’로 ‘백지’를 덮으며 활자화를 꿈꾼다는 걸 의미합니다.이에 독자 호응을 기대하는 행간 뒤의 시인이 있지요. 화자는 ‘맨몸 바닥’의 ‘백지 위’에 ‘육필을 덮’으며‘간절한’ 시의 발아를 기원합니다. 그래 이 시조는 ‘파종’을 글쓰기의 알레고리로 전환한 이른바 메타시법을 원용합니다. <농부>가 행하는 ‘파종’이라는 상투적 시발점을, ‘시 쓰기’라는 전환적 <시인>의 역할로 바꾸는바, <농부→시인>으로의 전변을 징험화합니다. 만일 ‘파종’이란 제하에, 씨 뿌린 후 그게 싹 틀 날을 기다린다는 희망만을 묘사했다면 시가 아닌 진술이 되었을 터입니다. 그건 릴케가 우려한바 ‘현상’을 ‘눈사태에 묻히게’ 하는 일이 되고 말지요. 이런 ‘종결법’을 필자는 시인의 다른 작품에서도 살펴본 적이 있습니다. ‘안다리걸기’ 같은 모래판의 아우라를 가연상하니까요. 릴케(말테)가 지적했듯 시인이 시적 성과를 거두려면 미세한 현상을 뚜렷한 이미지와 감각들로 바꾸어야만 합니다.드러난 현상과 상응한 사물을 어떻게 엮느냐도 중요한 문제입니다. 이 시조에선 ‘흙과 싹’이란 <농사 재료>를 ‘백지와 육필’이란 <시작 재료>로 대체하는 알레고리를 취합니다. 하면, 관념어들의 ‘눈사태’를 예비하여 제설제를 미리 뿌리는 시학일 듯도 하지요.
Contact Us ☎(H.P)010-5151-1482 | dsb@hanmail.net
서울시 구로구 고척동 73-3, 일이삼타운 2동 2층 252호 (구로소방서 건너편)
⊙우편안내 (주의) ▶책자는 이곳에서 접수가 안됩니다. 발송전 반드시 전화나 메일로 먼저 연락을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