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사이버문학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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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효석문학관
김소해 시인의 작품읽기
김소해 시인
시조시학, 시인연구
작성자: 김소해
조회: 1318 등록일: 2023-11-25
< 시인연구 > 시조시학 2018 가을호
신작
경이
연리지 아니라도 연리지가 거기 있다
바람 비탈 미끄러지지 않게 안간힘 버티고 있다
두 팔 꼭 , 팽나무 참나무 업어주고 잡아주고
구렁도 꽃밭이네요
갯물의 전생은 소금이라 했다지요
조수가 거듭 치던 풍화의 퇴적물들
침묵이 소금 포대다
거친 파도 무릎 꿇린
사는 게 그다지도 짜기만 했을까요
어머니 시집살이 소금밭이라 하시더니만
할머닌 며느리 모시기 소금 기다리 듯 하셨다지
짠물을 양식으로 퉁퉁마디 자라난다
젖은 앞섶 아우르며 말리느라 눈부시던
구렁도 꽃밭이네요
소금창고 소금 꽃
대표작
투승점 投繩點 을 찍다
쟁깃날 벼리고 세워 경작한 바다였다
수평선 너머까지 가보고 오는데 육십년
근육질 어깨 죽지에 동해호가 파도친다
아버지 가시던 길 따라가지 않겠다고
빈 어창 魚艙 에 버티던 길 여기까지 따라왔다
한 그물 당길 때마다 다시 듣는 그 말씀
비장 秘藏 의 낡은 유산 놓고 가신 어장도 漁場圖
난바다 물너울에 투승점을 찍는다
소금길 썩지 않는 법 나침반에 새긴다
하늘 빗장
어디에 신은 계신지 알지도 못하지만
아들의 가는 길에 한 그릇 찬물이나마
밝히어
부탁할 수 있다면
빌고 또 빌 뿐입니다
심장의 무게가 고작 깃털 하나일진대
영혼의 무게는 어느 저울입니까
그 저울
찬물 한 그릇에
밝아오는 동녘 하늘
저 깊은 저울 위에 송두리째 얹습니다
새벽빛 물의 무게 산처럼 높습니다
마침내
당신 기도에
풀려오는 하늘 빗장
압축파일
잘 익은 호박 한 덩이 택배로 보내왔다
푸근하게 들어앉는 이 가을의 전리품
헐거운 내 안의 창고 아재 웃음 그득하다
흙 한 짐 햇빛 한 짐 냇물도 바람도 한 짐씩
파일에 압축하여 팽팽하게 여문 가을
호박은 앞소리 메기고 후렴구 받는 또 가을
가을 , 허수아비
선 채로 늙어가는 그런 길도 있다는 걸
발목을 빠뜨린 채 한 생이 저문다는 걸
알면서 제 할 일 끝낸 저 넉넉한 파안대소
사물놀이
꽹과리
작아도 무리지면 폭우처럼 무서운 것
기다리던 사람 혼자 지름길로 갔다 해도
한평생
버릴 수 없는 희망
두드리고 두드려라
징
가슴엔 끓는 쇳물 아직도 뜨거운 피
잔등에 패여진 골 그 강산 맥을 돌아
한마디
진실한 말 듣고 싶다
목 놓아 울어라
장구
한반도 백성이면 만들고 싶을거다
동여맨 허리 아파오면 만들밖에 없을거다
두고 온
아리랑 가락
잊을 수가 없어서
북
너 하나 얻기 위해 생명의 피를 흘려
비나리 한 마당에 신문고를 두드린다
그 소리
하늘과 땅을 잇는
가슴을 열고 있다
자갈치
살다가 힘이 들 땐 자갈치에 와 보시게
사유 깊은 그대 마음 짐이 되면 부디 오게
올 때는 빈손으로 오시게
빈 그릇 빈 마음
어판장 돌아 나온 향수 묻은 뱃고동
첫 새벽 열고 오는 봄 도다리 가을 전어
내 더는 권하지 않겠네
오던 길 되돌아가든
반백년 품어 온 삶 아니리로 풀어내면
시든 가슴 그대 심장 박동소리 들리겠네
돌아갈
저기 충일한 길
말은 두고 가시게
화장
- 깊은 강
내 사랑 어디에서 길을 물어 볼 것인가
사람들 웅성거림 말이 되지 못한 말들
불꽃만 살아 춤추는 제 할 일을 하느니
만나고 헤어짐이 태우고 씻는 거라면
이곳에서 이루어지고 다시 또 흩어지는
먼 훗날 한 줌 재를 모아 갠지스에 온다 하리
치장할 그 무엇도 남지 않은 얼굴이다
이승으로 돌아오는 버스에 오르면서
꽃다발 꽃잎 몇 장으로 깊어지는 강이 있다
중산리 가는 길
- 빨치산 박물관
다시 찾지 않으리 당신의 그 무릎 앞
산이 산을 지고 흔들리며 저문 시간
아득히 이날 까지도 말을 숨겨 깊어있네
바람길 그 곳이 어디냐 묻지 않겠네
하마 그냥 벌린 입술 달싹도 못하겠네
문이란 그래 열려있고 또한 어디 닫혀있네
의문부호 숨겨둔 채 가까이 오지 말라하네
비탈져 오르는 길 먼 길일까 높은 길일까
내 엄두 꺼내기도 전 문이 벌써 산이네
신 神 으로 가는 길
저기 아득 , 설산 너머 바다가 있다는 거
모래 골짝 더 멀리 고래 살고 파도친다는 거
바람이 가르쳤을까
큰 신은 “ 바다 “ 라니
본 적 없어 꿈 꾼 적 없는 그 바다에 어찌 가나
오체투지 어느 봄날 닿겠거니 했던 걸까
태풍은 바다 아니라도 불어
오색 깃발 기도문
어디든 사람 사는 곳 아린 생이 함께 살아
나부껴 흩어지는 타르초 실오라기
바람은 신으로 가는 길
그 바다를 알고 있다
만근 萬斤 인 줄 몰랐다
거기 오래 당신 없어 고향집 쓰러질 듯
빈 집 애처로워 제값이라 팔았는데
이상한 거래도 다 있다 고향이 없어진
고향을 잃어버린 남의 동네 서먹하다
하늘과 바람이며 갯바위나 파도까지
덤으로 팔려버렸다 어이없이 밑진 장사
그게 그렇게 고향산천 떠받치는 줄 몰랐다
마당만 몇 평 값으로 팔았다 싶었는데
낡은 집 한 채 무게가 만근인 줄 몰랐다
자전적 시론
시조는 나를 찾아가는 여정이다
대표작을 고르려니 참으로 난감하다 .
시조집 겨우 몇 권내고 무슨 대표작이 있을까마는 고슴도치도 제 새끼 함함하다
한다 듯이 전부 다 대표작 같아 보이고 또 보니 전부 실없어 보인다 .
그런 와중에 발표작 몇 편 골라봤다 . 내 취향이 드러나는 작품인가 싶다 . 속내를
들킨 것 같다 . 어차피 시란 , 내 속의 나를 찾아가는 길이다 . 자기 마음이 가장 먼
오지이고 가장 얽힌 미로라 하지 않던가 . 그래서 상처받기 쉽고 부서지기 쉬운 내
마음에게 위로와 치료제 되는 시조를 쓰고 싶다 .
그게 바로 내 시론이다 . 시조에 몰입할 때는 행복한 시간이다 .
바람은 신으로 가는 길
그 바다를 알고 있다 - 신으로 가는 길 - 부분
지혜의 바다 ! 그 “ 바다 ” 를 찾아가는 여정이 내시조작업의 여정이다 . 그런데 그 바
다는 도처에 있으면서 어디에도 없단다 . 바람만이 알고 있는 걸까 ? 바람이 안다는
것은 아무도 모른다는 뜻 아닌가 .
길은 어디에 있는가 ?
여고시절 이런저런 문학책을 읽으면서 가졌던 의문이다 . 이 소설의 결말은 왜 이
것 뿐 인가 ? 세계적 명작이라 해도 나는 늘 허기를 느꼈다 . 그게 바로 명작의 묘
미란 걸 늦게사 알았다 . 아쉬운 여운을 남겨서 독자가 여러 갈래의 길을 상상하
게 하는 것 , 그런 시조 쓰기를 희망한다 .
탑
더 높이 더 높이로 정토에 닿으려면
더 멀리 더 멀리로 사바를 떨치려면
오늘은
탑 하나 세울밖에
천일기도 열원으로
북소리 두웅두웅 하늘의 영고 靈鼓 소리
새벽의 태를 열어 너울 치는 삶의 무늬
이승에
길을 묻는 손님
혼자 불을 밝히는가
베적삼 앞자락에 맺히고 얽히는 죄
도라지꽃 설움 같은 황토길 막막해도
서로는
이물과 고물을
맞부비며 여기 있네
1988 년 부산일보 신춘문예 가작작품이다 . 국제신문은 폐간되고 없었고 부산일보
신춘문예도 오랫동안 < 시조 > 가 없다가 그 해 시작했다 . 그런데 이물과 고물 때문에
사달이 났다 . 심사위원들께서 이물과 고물의 뜻을 이해하지 못한 채 전체적인 분위
기는 좋은데 이 부분이 걸려서 당선작 없는 가작으로 했다는 뒤 소식을 들었다 . 이
물과 고물은 배船의 앞과 뒤를 가리키는 순수 우리말 이다. 이하 생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