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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선규 시인
마당 깊은 날
작성자:
정선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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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8999
등록일:
2011-11-27
<BR>제65편<BR>마당 깊은 날<BR><BR>벌써 2011년도 거의 마침표를 찍으려 하고 있다<BR>올 한 해를 보내면서 참 힘들고 외로웠다는 것은 어쩔 수 없나 보다 <BR>하지만 늘 외롭고 힘들었던 것은 아니다<BR>그 와중에서도 현대칼라를 만나 좋은 인연으로써<BR>많은 도움의 버팀목이 되어 주었다<BR>올 4월부터 고물을 하기 시작했다<BR>말로만 듣던 고물을 내가 직접 손수레를 끌고 거리에 나가<BR>폐지를 수집하며 많은 발 푼을 팔았다<BR>이런 나를 보고 주변 사람들은 보기 좋다고도 말했고<BR>또는 다른 사람들은 굶어 죽었으면 죽었지<BR>손수레는 안 끄는데 글쟁이가 붓을 놓고 고물 하는 것을 보면서<BR>다시 봤다는 사람도 있었다<BR>그러나 나는 은근히 내심 걱정이었다<BR>나서기는 나섰었어도<BR>나를 바라보는 사람들이 실망하지 않도록 <BR>끝까지 완주를 잘해야 하는데 적은 내 안에 있으니<BR>언제 어떻게 내가 스스로 포기할지<BR>무너져내릴지는 전혀 장담할 수 없었다.<BR>그래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BR>그저 잘해야지 암 그렇고말고 한 오백 년 잘하자는데 <BR>웬 성화요 다짐하고 또 다짐하면서<BR>자신과의 치열한 싸움에 전략을 다할 뿐이었다<BR>시간이 가면서 나는 외로웠고 더 힘들었다<BR>이제 나는 죽는 것도 사는 것도 내 마음대로 할 수 없고<BR>아픈 것도 내 마음대로 할 수 없는 공인이 되어 가는구나 하는<BR>또 다른 절망으로 사로잡혔다<BR>이렇게 힘들 때 만난 든든한 버팀목이 현대칼라였다<BR>손수레를 끌고 나와 어디로 어떻게 가야 할지<BR>어디에 고물이 많은지 <BR>어떤 것이 돈이 되는지 아무것도 몰랐다<BR>그저 막막하기만 할 때 어떻게 손수레를 끌고 나간 곳이<BR>중촌동이었다<BR>뚜벅뚜벅 손수레를 끌고 가는데<BR>뒤에서 누군가가 나를 불렀다<BR>"아저씨~ 아저씨~"<BR>뒤돌아 보니 낯모르는 아저씨가 손사래 짓을 했다<BR>나는 가던 길을 멈추고 그 아저씨에게 갔다<BR>아저씨는 나한테 물었다<BR>"아저씨 이 길로 다니세요."<BR>질문의 요지가 뭔지도 모른 채 어안이벙벙해서 <BR>나는 대답했다<BR>"예"<BR>그 아저씨의 말은 이랬다 <BR>현대칼라가 용전동에 있다가 중촌동으로 이사 온 지가 얼마 안 되는데 <BR>종이상자와 플라스틱이 제법 나온다는 것이다<BR>이사 오기 전에는 나이 드신 아저씨 한 분이 매일 오셔서 가져가시곤 했지만<BR>이제 회사가 중촌동으로 이사하고 용전동에서 그 거리가 너무 멀어 오실 수 없으니<BR>가져갈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BR>그러니 하루도 빠짐없이 이 길로 다니신다면 나한테 주겠다는 것이다<BR>작업을 하면서 나오면 나오는 대로 빈 종이상자와 플라스틱 통을 <BR>2층 계단에 내놓을 테니 와서 가져가라는 것이다<BR>그뿐만 아니라 건물지하도 현대칼라이니 계단으로 내려가서 <BR>종이상자를 비롯한 파지를 가져가라고 했다<BR>이렇게 현대칼라와 첫 인연을 5월에 맺었다<BR>고물을 해본 사람은 알겠지만<BR>정말 가진 것 없이는 살기 어려운 세상살이를 반영하는지 어려운 경제를 실감 나게 하는 것인지<BR>올봄만 해도 이사 가는 집에서 냉장고. 가스레인지. 책. 신발. 신문 등을 버리고 가거나 <BR>거리를 지나다 보면 주고 가는 경우가 있어 그나마 수입에 도움이 됐지만<BR>이제 사람들은 이사하면서도 버리는 것 없이 <BR>아예 자신들이 버릴 물건을 챙겨 고물상에 넘긴다<BR>이뿐인가?<BR>이제는 어느 집에서도 헌 옷가지 하나 신문 한 장 내놓지 않고<BR>반찬값이라도 보태기 위해 모았다. 고물상에 팔거나 중고 가전제품<BR>수집하는 차에 팔기도 한다<BR>그런가 하면 동네 어귀를 지나가는 80대 할아버지 할머니도 그냥 가지 않고<BR>보이는 대로 종이상자를 들고가지 또 다른 한편으로는 자전거를 타고 돌아다니며 <BR>폐지 거둬가는 사람은 핑핑<BR>손수레를 가로질러 앞에 있는 종이상자를 재빨리 싣고간다<BR>현실이 이렇다 보니 고물도 이제 거래처가 있어야 한다<BR>쉽게 말해서 주는 사람이 필요하다<BR>어떤 할아버지는 대전 인쇄 골목을 돌아다니며 <BR>인쇄업체에서 요구하는 보증금을 넣고 실어낸다고 한다 <BR>예전처럼 새벽 5시부터 손수레를 끌고 부지런히 거리를 나가<BR>아침을 거르고 점심까지 거르며 온종일 발 푼 팔아봐야 <BR>그렇게 해서 온종일 수고하고 손에 쥘 수 있는 건 겨우 1만 원 안팎이다<BR>그나마 넉살 좋고 비위가 좋아야지<BR>동네 슈퍼나 완구도매상이나 문구도매상. 신발가게 또는 편의점 등이나 공사판을 돌며 <BR>젊은 사람이 먹고살려고 하는데 좀 도와달라고 사정하거나 청소라도 도와줘야<BR>다만 뭐라도 가지고 나올 수 있으며 또 다음부터 그 집에 단골로 드나들면서 나오는 <BR>종이상자나 폐지를 가져갈 올 수 있다.<BR>하지만 이것도 그리 넉넉하지 못하다<BR>어디를 가나 점주들은 대부분 아직도 우리나라에 <BR>경로우대사상이 뿌리깊이 내리고 있어<BR>젊은이들한테 내주기보다는 노인들에게 준다 <BR>하다 보면 정말 목구멍에서 밥 타는 냄새가 절로 나는데<BR>이러한 판에 남들보다 뒤늦게 뛰어들었으니 <BR>더 말해서 무얼 하겠는가?<BR>그런데 하늘도 무심하지 않았는지<BR>구세주 같은 현대칼라를 만나 벌써 6개월을 드나들었다 <BR>이것만도 천행이건만 아저씨를 덤으로 만났다<BR>늘 지하에서 혼자 일하시고 계시던 아저씨는<BR>내가 가기만 하면 잊지 않고 어서 오세요 하고 <BR>항상 반겨주시면서 말씀하시곤 했다<BR>"집에서 몇 시에 나오세요."<BR>"예 새벽 5시에 나옵니다."<BR>깜짝 놀라시면서<BR>"그럼 아침은 드시고 나오세요."<BR>"아니요. 끝나고 집에 가서 먹습니다"<BR>하고 대답하면 아저씨는 향수에 젖듯 이렇게 말씀하셨다<BR>"나도 참 안 해본 일 없이 막노동까지 다 해봤는데<BR>폐지는 안 주워봤어요<BR>젊은 사람이 폐지 줍는 것 보면 정말 대단합니다<BR>우리 일거리가 많아서 작업을 많이 하면 많이 들릴 수 있을 텐데<BR>요즘 일거리가 많지 않아서 이것밖에 안 되네요"<BR>오히려 미안하다는 듯이 말씀하셨다<BR>때로는 자신이 간식으로 먹는 빵을 주시기도 하고<BR>식당에서 남몰래 오후 간식으로 먹으려고 갖다 놓은<BR>떡까지도 아깝지 않게 내주셨다 <BR>어느 때에는 출근하시면서 집 정리를 하시면서 나온 책을 잔뜩 창에 싣고 오셔서<BR>오늘은 일당 됐으니 집에 빨리 들어가라고까지 하셨다<BR>쭉 이런 사랑만도 너무 과분한데 오늘은 갔더니<BR>빈 종이상자 안에 양은 압력밥솥과 프라이팬. 냄비를 다소곳이 앉혀 놓았다 <BR>나는 알면서 가만히 있을 수 없어 아저씨한테 달려갔다<BR>"아저씨 저기 저 그릇 누가 갖다 놓았어요"하고 물으며<BR>양은그릇이 담긴 종이상자 쪽을 가리키자 <BR>관리부장님이 가지고 왔다고 했다<BR>순간 나는 알았다<BR>요 몇 주 전부터 관리부장님은 나를 볼 때마다<BR>입버릇처럼 말씀하셨다<BR>집에 압력밥솥을 갖다 줘야 하는데 차가 없어 못 가져오고<BR>있다는 말을 자주 했다 <BR>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아저씨 혼자 지하에서 일하셨는데<BR>언제부터인가 과장님과 부장님이 내려오시면서 두 식구가 늘어<BR>지금 세 분이 일하시는데 아저씨 혼자 계실 때부터 자주 지하에 내려와 <BR>일하실 때 뵈어서 익히 알고 있었다던 터였다<BR>더 감동적이면서 놀라운 사실은 부장님 마음은 자꾸 갖다 주고 싶은데<BR>차가 없어 출근하면서 가지고 와서 지하에 갖다 놓으면 가져갈 것을<BR>안타까워하시는 부장님 모습을 보고<BR>"손수레 끌고 집으로 가면 돼지 삼성동에서 중촌동 오는 거리나 <BR>삼성동에서 홍도동 가는 거리나 똑같은데 뭘" 하시면 <BR>부장님은 미안하신 듯 "아이고 얼마나 된다고 거기까지 오래 말도 안 돼"<BR>두 분이 논쟁을 벌이시더니 오늘 <BR>아침에 아저씨가 출근하시는 길에 부장님 댁에 일부러 들러 <BR>두 분이 함께 양은그릇을 차에 싣고 오신 것이다<BR>두 분에 따뜻한 사랑이 있었기에 오늘의 내가 있는 것이다<BR>그런데 더 감동적인 것은<BR>아저씨는 부장님이 가지고 왔다 하고<BR>부장님은 아저씨가 차에 태워주어서 가지고 왔다고 하니<BR>정말 두 분의 사랑을 가늠하고도 남을 날이다<BR>두 분은 내게 산 글이며 시대적 암울한 배경 속에서 빛나는<BR>산 증인이며 내 삶에 역사의 주역이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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